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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Bottle Collector’ 서울대 의대 김원곤 교수

“자신의 한계를 알고 환자를 스승으로 여기는 의사가 명의”

‘Mini Bottle Collector’ 서울대 의대 김원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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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Bottle Collector’ 서울대 의대 김원곤 교수

수술 후 죽은 아이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훔치는 김원곤 교수

“너 오늘 환자 옆에서 자!”

그가 교수 직함을 갖고 진료한 지는 23년 됐다. 초기 10년 동안은 심혈관 수술에 주력했고 이후 10년은 심혈관 연구에 전념했다. 3년 전부터는 정맥류라는 새 영역을 개척해 선구자 노릇을 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의 정맥류 수술은 그가 거의 도맡고 있다. 그렇긴 해도 전공이 심혈관이므로 요즘도 심혈관 계통을 연구하고 관련 책도 집필하고 있다.

김 교수처럼 임상교수로 오래 일했던 의사가 연구교수로 옮겼다가 진료 분야를 바꾼 것은 드문 사례로 꼽힌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변화의 시도였죠. 흉부외과의 인기가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학회 차원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죠. 요즘은 흉부외과에서 정맥류를 다루는 병원이 많아졌어요.”

그가 서울대 의대에 들어간 것은 1972년. 대학병원 의사가 되려면 20년 가까운 지난한 수련기를 거쳐야 한다. 과거엔 학부과정이 예과 2년, 본과 4년 해서 6년이었다. 4년제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학생은 2년 더 공부하는 셈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인턴 1년, 전문의 과정 4년을 마쳐야 한다. 남자의 경우 군복무도 한 과정이다. 3년 동안 군의관을 하거나 공중보건의로 군복무를 대체해야 한다. 전문의 과정이 끝나면 2~3년간 펠로(fellow) 과정을 밟는다. 김 교수는 그중 레지던트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외과 중에서도 가장 힘든 데가 흉부외과입니다. 레지던트를 할 때 다들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선배가 ‘너 오늘 환자 옆에서 자!’라고 지시합니다. 그럼 밤새 병실을 지켜야 합니다. 평일엔 집에도 못 들어가다가 주말에 한 번씩 들르는 정도였습니다. 보람을 느끼지 않는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요즘 의사 지망생들의 흉부외과 기피현상이 심각한 모양이다. 마치 일반 대학에서 모든 학문의 기본이라는 ‘문사철(文史哲)’의 비중이 낮아져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생겨난 것처럼.

“예전에 비해 흉부외과의 인기가 크게 떨어진 것은 웰빙과 여가활동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의 가치관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인시간을 즐길 수 없는 과에 대한 선호도가 많이 낮아진 거죠. 이것은 사회 전체의 가치관이 변한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의대생 중) 여학생 비율이 높아진 것도 한 원인입니다. (여학생은) 아무래도 업무강도가 높은 과를 피하는 편이죠. 부모들도 말리고. 몇 년 전 레지던트를 하다가 그만둔 후배가 있었습니다. 결혼할 여자가 흉부외과를 그만두라고 적극 말렸던 겁니다. 나중에 다른 과로 옮겨가 새로 레지던트 과정을 밟는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이처럼 전국적으로 이탈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떠나는 사람이 생기면 남은 사람의 일 부담이 커집니다. 그러면 지망생은 더욱 줄게 됩니다. 악순환이죠.”

그의 표정에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강한 자부심과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흉부외과는 임상학의 꽃입니다. 모든 과를 돌면서 공부하는 인턴들이 흉부외과를 돌고나서는 다들 ‘정말 좋은 과이고 임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과’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안 가겠다’라고 하는 게 문제죠. 그래서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연애는 흉부외과와 하고 결혼은 다른 과와 한다’고 합니다. 우리 때만 해도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흉부외과를 선택했습니다. 순수했던 시절, 정말 좋아 보였죠. 힘들지만 보람을 느꼈고요. 그 뒤로 운명처럼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모 대학교 의과대에 가까운 친척이 다니는데, 얼마 전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요즘 흉부외과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간다고요.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문득 그의 손에 눈길이 미쳤다. 키에 걸맞게 커다란 손이었다. 손가락도 길었다. 손이 크면 수술하는 데 유리할까.

“예전엔 수술을 전부 손으로 했잖아요. 그래서 손가락이 길면 수술에 유리하다는 농담이 통했지요. 하지만 요즘은 정교한 기계가 손으로 할 일을 대체합니다. 손 크기와 관계없이 손재주가 중요한 거지요.”

외과수술에서는 체력도 중요하다. 여자는 물론 남자도 체력이 몹시 약하면 외과를 선택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충분히 잠을 못자는 걸 떠나서 일단 수술장에 들어서면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균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고정된 위치에서 몇 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하거든요. 긴장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요. 기본 체력이 없으면 곤란하죠.”

흉부외과 수술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열 몇 시간씩 한다는 수술은 다른 과 얘기다. 심장에 그냥 칼을 대면 수술 자체가 불가능하다. 곧바로 피가 뿜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장수술을 하려면 일단 심장을 멈춰놓아야 한다. 그런데 심장이라는 게 한정 없이 세울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제한된 시간에 빨리 끝내야 한다. 안전하고도 노련하게 제때 끝내는 게 중요한 것이다. 보통 네댓 시간이나 대여섯 시간 걸리는데, 다른 과 수술과는 긴장의 강도가 다르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심장수술 기술이 처음 개발될 때만 해도 유명한 외과의사들조차 심장수술은 불가능한 걸로 생각했습니다. 심장은 바늘 하나로만 찔러도 압력 때문에 피가 천장까지 솟구칩니다. 심장이 피로 차 있으면 안에 아무것도 안 보이죠. 그걸 어떻게 째서 병을 치료하느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죠.”

심장은 산소가 들어있는 피를 우리 몸에 내보내는 장기다. 심장이 멈추면 죽는다. 의사들은 심장 대신에 피를 몸 전체로 내보내는 기계를 개발했다. 수술하는 동안 심장 대신에 기계로 피를 내보내는 한편 심장은 특수한 약으로 마비시켜 기능을 정지시킨다. 그러면 심장 대신 기계가 우리 몸에 피를 공급해준다. 그 사이 의사는 심장을 절개해 수술을 한다. 수술이 끝나면 절개한 부위를 닫고 피를 다시 심장으로 보내 심장을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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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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