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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유교질서 추구한 사대주의자 김부식…한민족의 역사적 정체성 구현한 민족주의자 일연

김부식과 일연

중국식 유교질서 추구한 사대주의자 김부식…한민족의 역사적 정체성 구현한 민족주의자 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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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부식과 일연은 각각 우리 고대사를 대표하는 두 역사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의 편찬자이자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저자다.
  • 김부식이 전형적인 유학자라면 일연은 대표적인 불교 승려다.
  • 두 사람은 똑같이 역사를 기록했지만, 가슴에 품었던 시대정신은 확연히 달랐다.
중국식 유교질서 추구한 사대주의자 김부식…한민족의 역사적 정체성 구현한 민족주의자 일연
사회학 연구자로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관심이 가는 학문 분야는 철학과 역사학이다. 사회학의 분석 대상이 개인과 사회에 있는 만큼, 개인을 다루는 철학과 사회적 변화를 다루는 역사의 중요성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갈수록 이 분야의 책을 많이 읽게 된다.

전공과 관련해 그동안 읽은 역사 관련 서적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들 수 있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은 내용도 방대하지만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일깨워준다. 브로델은 이른바 ‘아날 학파’의 제2세대를 대표하는 역사학자다. 일상적인 생활세계의 역사에서 시간도 마모시키지 못하는 구조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브로델은 역사의 다층적 측면을 총체적으로 복원하고자 한다.

브로델의 역사학에서 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그의 시간론이다. 브로델에 따르면 시간은 사회적 창조물이다. 그는 사회적 시간을 시간지속의 길이에 따라 세 개의 범주로 구별하는데, ‘단기지속’ ‘중기지속’ ‘장기지속’이 그것이다. 역사는 이 세 가지 시간의 차원에 따라 각기 ‘사건사’ ‘사회사’ ‘구조사’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브로델이 특히 주목한 것은 사회사와 구조사다. 먼저 사회사는 주기 또는 국면의 역사다. 사회사가 중요한 까닭은 어떤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놓여 있는 국면에 따라 의미와 해석이 달라진다는 점에 있다. 우리 역사를 예로 들자면, 박정희 시대와 함께 시작한 산업화 시대의 ‘61년 체제’와 외환위기와 함께 시작된 세계화 시대의 ‘97년 체제’는 다른 주기 또는 국면의 역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구조사는 장기지속에 대응하는 역사다. 그것은 지리적 영역 혹은 문화적 영역에서 매우 더디게 진행되는 시간을 함축한다. 이 장기지속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것이 다름 아닌 자본주의의 역사인데, 브로델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개별 민족국가의 영역을 넘어서서 더욱 넓은 지리적 영역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브로델의 이러한 문제틀이 미국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세계체제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사회사와 구조사라는 다층적 역사인식이 시대정신의 탐구에서 갖는 의미다. 다시 말해, 시대정신 탐구의 과제가 현재를 판독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있다면, 바로 이 현재와 미래가 놓인 시간을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바로 이 시간의 층위로서 중기지속과 장기지속, 즉 사회사와 구조사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사와 구조사로서의 역사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이렇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각축하는 두 개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와 ‘선진화’다. 민주화가 진보세력의 시대정신이라면, 선진화는 보수세력의 시대정신이다. 그런데 이 민주화와 선진화라는 시대정신이 놓인 시간의 지평은 중기지속 국면의 역사다. 진보세력의 시각이 산업화에 뒤이은 민주화를 공고히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차적 과제라고 본다면, 보수세력의 시각은 민주화를 넘어선 선진화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차적 목표임을 강조하는 셈이다.

나아가 사회사와 더불어 구조사적 시각에서도 시대정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수세력의 일각에서 주장하는 ‘유교민주주의론’이나 정통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대안론’이 염두에 두는 시간적 지평은 모더니티(자본주의)의 시간이며, 따라서 이들의 문제의식은 구조사적 시간의 지평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시대정신은 시간의 지평에 따라 달리 제시될 수 있다. 현재적 관점에서 시대정신으로 담을 수 있는 가치 또는 비전은 이중적 차원, 다시 말해 모더니티라는 구조사적 차원과 국면이라는 사회사적 차원에서 모두 제기될 수 있으며, 이들은 각기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

시대정신에 대해 다소 길게 논의하는 이유는 구조사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모더니티의 한 층위인 민족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모더니티를 이루는 핵심적 세 영역은 자본주의, 국민국가 그리고 민족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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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연세대 교수, 사회학 kimhoki@yonsei.ac.kr
연재

김호기 교수가 쓰는 ‘시대정신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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