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7월 연세대에서 열린 ‘상생 영 리더십 포럼’에 참석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딸 최민정 씨.
기자가 최근 지인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재벌 3세 하면 떠오르는 것은?”하고 묻자 돌아온 답변은 비슷비슷했다. 재벌 3세가 부러움의 대상이긴 하지만 존경의 대상은 아니라는 게 공통적 의견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가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풍족한 후원 아래 최고급 교육을 받은 후 공식처럼 그룹 계열사 대표직을 꿰차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특히 ‘맨땅’에 ‘맨주먹’으로 굴지의 그룹을 일으킨 창업주나 그런 기업을 세계적인 규모로 키운 2세들과 달리, 3~4세는 ‘황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행운아’로 인식되곤 한다.
지난 8월 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둘째딸 최민정(23) 씨가 해군 사관후보생 시험에 합격했다는 뉴스가 알려지면서 큰 화제가 됐다. 유학, 질병 등을 사유로 한 국내 재벌가 자식의 병역면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현실에서 여성인 최씨가 해군 입대를 자원했고, 그것도 가장 힘들다는 항해 병과를 선택했다는 뉴스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병역 의무가 없는 민정 씨가 굳이 군에 지원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횡령 혐의로 법정 구속된 아버지 최 회장에 대한 여론 반전을 노린 것” “투병 중인 외할아버지(노태우 전 대통령)가 국립현충원 안장을 원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오랜 기간 민정 씨와 알고 지냈으며 사업 파트너이기도 한 이종식 판다코리아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최씨는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군인을 동경해왔다. 오래전부터 군 입대를 희망했다”고 밝혔다. SK그룹 고위간부는 SK 측의 언론 플레이라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 “상식적으로 판단할 일”이라며 “민정 씨의 입대가 회장님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언론 플레이를 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오히려 입대 사실이 언론에 알려진 후 몹시 곤혹스러워한다”고 전했다.
중국 유학 간 SK 두 딸
사실 민정 씨의 ‘남다른 행보’는 그간 몇 차례 언론에 공개됐다. 그는 국내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혼자 중국 유학길에 올라 베이징 런민대부속고를 나온 후 2010년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경영학과)에 입학해 올 초 졸업했다. 최근 들어 재벌가 자녀의 중국 유학이 늘기는 했지만 민정 씨가 유학을 떠난 7년 전만 해도 드문 사례였다. 민정 씨의 언니 윤정(25) 씨도 중국 베이징국제학교(ISB)를 졸업했다.
최태원 회장이 두 딸을 모두 중국으로 유학 보낸 데는 SK그룹의 미래 전략, 장인과 부인의 국제 정세 인식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씨의 외할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1988년 7월, 중국 소련 등 공산권 국가에 처음 빗장을 열었다. 또한 SK는 국내 대기업 중 중국 사업 진출에 가장 적극적이다. 노소영 관장은 2012년 동생 노재헌 변호사와 함께 ‘한중문화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중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병상의 아버지에게 ‘왜 북방정책을 폈는가’라고 물었더니 ‘통일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 북한이 거부감 없이 빗장을 풀려면 그만한 환경이 조성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주변국과의 관계 강화가 필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최근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하면서 재벌가 자녀의 중국 유학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일례로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의 딸들은 상하이의 홍콩계 국제학교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재벌가 자녀는 대개 학비는 비싸지만 시설이 좋고 영어와 중국어로 함께 수업하는 홍콩, 싱가포르계 국제학교를 선호한다.
편의점, 와인바 아르바이트
하지만 민정 씨는 국제학교 대신 현지인이 다니는 공립학교를 선택했다. 또한 중국 최고 명문대인 베이징대 입시 준비를 할 때 고가의 과외 대신 한국 유학생이 많이 다니는 현지 한인 대상 입시학원에 다녔다. 민정 씨는 베이징대 합격 후 다른 합격자들과 함께 학원 공식 ‘합격자 포스터’에 이름과 얼굴을 올렸고, 이후 이 학원이 주최한 홈커밍데이 파티에도 적극 참여했다.
정신적 독립의 선행 조건은 경제적 독립이다. 어머니 노 관장은 한 인터뷰에서 “민정이는 대학에 입학한 후 집에서 한 푼도 안 가져갔다. 그 부작용으로 어떤 말도 안 듣는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심지어 “교회에 가서도 민정이는 고개를 푹 꺾고 잠만 잔다”는 것. 실제 민정 씨는 경제적 독립을 위해 고등학생 때는 방학마다 한국 편의점, 와인바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베이징 현지 입시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대학 시절은 어땠을까. 올 초 베이징대 한인유학생회 웹진에는 졸업생 최민정 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당시 오고 간 문답을 요약했다.
▼ 중국에 유학 온 이유는.
“제가 7년 전 중국에 왔는데 당시만 해도 ‘중국은 도피유학’이라는 인식이 컸어요. 하지만 한국의 교육이 서양에 편향됐다고 생각했어요. 언어를 알면 내가 속한 세계가 넓어져요. 나의 세계를 더 넓히고 앞으로의 무대를 넓히려면 영어권을 제외한 새로운 세계가 필요할 거라 생각했어요. 게다가 제가 어릴 적부터 워낙 중국 문화, 고전, 역사 등에 관심이 많았어요.”
▼ 중국에 와서 어떤 활동을 했는가.
“1학년 2학기 때 ‘손에손잡고(handinhand)’라는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멤버는 중국인 반, 한국인 반으로. 당시 ‘혐한(嫌韓)’이 화두가 됐는데, 혐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의식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후 ‘한중 Intercultural Union’, 즉 ICU라는 단체를 만들게 됐어요. 혐한뿐 아니라 국제교류를 위해 시야를 넓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