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전문가들이 침체된 한국 건설업을 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CM(Construction Management, 건설관리)을 제시한다. CM은 1960년대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개념으로 건설 기획단계에서부터 사후관리까지 전과정을 전문가 집단이 관리하는 용역이다. CM 방식이 보편화된 미국의 경우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크게 줄였으며, 부실공사도 예방하고 있다. 실제로 골조공사 1층을 짓는 데 한국은 10~15일이 걸리지만, 미국은 불과 2~3일 만에 끝낸다.
한국에서 CM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1996년 ‘건설산업기본법’에 CM을 선언적으로 넣었지만 아직까지 세부 시행규칙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찍부터 CM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온 사람이 있다. (주)한미파슨스의 김종훈 사장이다.
―한국 건설업은 오랜 구조적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CM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한국 건설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고비용 저효율입니다.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후진적이에요. 만일 고속전철 사업과 신공항 사업에 CM을 도입했으면, 지금처럼 공사비가 몇 배로 드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민간 부문에서는 설계를 다 해놓고 공사과정에 계속 뜯어고쳐요. CM을 통해 이 부분을 개선하면 공사비를 5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CM으로 건설업의 복잡한 구조까지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CM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건설업의 체계가 워낙 낙후돼 있어서 그것을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솔직히 말해서 관 쪽에는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고쳐야 할 게 너무 많거든요. 건설법규만 100개 정도 되는데 제대로 지키지도 않고 서로 맞지도 않아요. 하지만 민간 쪽은 CM이 가능하다고 봐요.”
CM(건설관리)방식의 필요성
김사장은 경남 거창 출신이다. 6·25때 피란을 떠난 뒤 한번도 고향을 찾지 못했다는 그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30년 가까이 건설업계에 종사하면서 그가 마음속에 간직한 좌우명은 ‘기본’과 ‘원칙’이다.
“말레이시아에서 KLCC(높이 452m) 건설 현장소장을 할 때였습니다. 콘크리트가 엄청나게 들어가는 공사인데 그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물을 타지 않더라구요. 그 순간 호스로 물을 뿌려대는 한국의 건설현장이 떠올랐어요. 기술은 따라가면 되지만, 기본은 몸에 배어야 해요.”
―외국과 한국의 건설현장을 모두 경험했는데, 가장 큰 차이는 무엇입니까.
“외국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요. 그곳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공사 감독을 해도 별 차이가 없는데, 한국은 누가 감독을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에요. 건설 소장에 따라 경비가 5%까지 차이 납니다. 그래서 CM방식이 부실한 시스템을 바로잡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한미파슨스는 지난해 매출 150억 원에 10억 원 이상의 순수익을 올렸다. 건설업계가 불황인데도 세전 수입이 7%에 이른 것은 주목할 만한 결과다. 또한 한미파슨스는 세계적 관심사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의 CM업체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 최초의 관공서 CM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건설업에서 CM이 가장 절실한 부문은 어떤 분야입니까.
“설계가 취약해요. 설계 능력이 향후 한국 건설업의 성패를 좌우할 겁니다. 설계가 나오면 80%는 결정된 겁니다. 원가와 공사기간 측면에서 특히 그래요. 그런데 한국 건설업체는 설계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어요.”
―소형 건물에도 CM을 도입한 후 계획이 있습니까.
“건축 문제로 정신적 고통을 받는 국민들이 너무 많아요. 체계가 없으니까 건축주와 시공자가 뒤엉키는 겁니다. CM으로 처리하면 그럴 일이 없어요. 국민봉사 차원에서 값싸게 서비스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