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24일 한글대장경이 완간됐다. 이로써 우리는 ‘대장경 판은 있으나 대장경은 없는’ 시대를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대장경을 갖게 됐다. 대장경 완역은 동국역경원(원장 월운 스님)이 37년을 투여한 대역사로 불교계는 물론 역사적으로도 한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는 데는 16년이 걸렸으나(1236~1251년), 그것을 번역하는 데는 두 배 이상 걸린 셈이다.
역경원의 설립목적은 크게 다섯 가지인데 고려대장경의 보존, 영인 및 국역사업이 그 첫째다. 이 밖에도 역경원은 역경사업, 한글대장경 간행, 한국불교의 세계화, 불교의 현대화 및 대중화 등을 추진해왔다. 불교계에서는 지금도 “역경원이 종단과 독립돼 있었기에 잡음에 휩싸이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숱한 격랑을 겪은 한국 현대불교사에서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역경원의 노력은 단연 돋보인다.
1965년 ‘장아함경’ 1집 2000부를 출간하며 첫 성과를 올린 역경원은 한글대장경 완간으로 확실한 위상을 확보했다. 하지만 대장경 완간을 불교사적 의미에 국한하는 것은 너무 좁은 시각이다. 당대의 역사와 문화, 지리 등이 녹아 있는 용광로가 바로 대장경이다. 때문에 한글대장경의 완간은 향후 역사학이나 지리학 등 관련 학문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국역경원 최철환 편집부장은 “혜심 스님의 ‘선문염송’이 한글로 번역된 이후 이것을 다룬 논문만 수십 편이 나왔다. 한글대장경 완간을 계기로 이와 관련한 연구작업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배경과 제작원칙 등을 기술한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 같은 경우, 또 다른 대장경인 ‘북송장경’과 ‘거란장경’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팔만대장경이 한글로 ‘환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대의 한 걸출한 학승(學僧)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주인공은 현재 동국역경원장을 맡고 있으며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봉선사 조실인 월운 스님이다. 어버이날인 5월8일 봉선사로 차를 몰았다.
한글대장경은 민족적 자부심
학승이기 때문일까, 스님은 구도자에 앞서 스승이었다. 춘원 이광수가 묵었다는 ‘다경당’에 있는 스님의 방에는 신도들이 갖다 놓은 꽃바구니가 여러 개 눈에 띄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신도들이 꽃을 들고 찾아왔다. 세수 73세. 스님은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게 느껴져. 힘이 들어”라며 세월의 흐름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스님의 형형한 눈빛은 5월의 찬란한 햇살을 꿰뚫고 기자의 가슴에 콕콕 박혀왔다.
―한글대장경 완간의 불교사적, 사회문화사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먼저 자라나는 세대가 불교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 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16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불교계가 그 동안 제대로 된 우리말 불경 하나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 나라에서 ‘간경도감’을 만들어 20여 종을 번역하고 필사본 등을 남겼지만, 經(경전) 律(계율) 論(이론) 등에 걸쳐 체계적으로 번역한 것은 역사상 이번이 처음입니다.
37년 만에 한글대장경을 완성한 것은 민족적인 자부심을 갖게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호국의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한글번역을 계기로 국민들이 대장경의 본래 제작 취지를 마음에 새긴다면, 자연스럽게 양심을 지키고 탈선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생겨날 것입니다. 올해가 국민들이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원년이 됐으면 합니다.
새로운 문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본틀을 마련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현재 불교는 내부에서도 한문을 멀리하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불교의 근본정신을 계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는데 의외로 오래 걸렸습니다. 또한 팔만대장경 속에는 제작 당시 중국, 인도, 우리나라의 사회상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한글대장경 완간으로 우리는 이제서야 진정한 의미의 대장경을 갖게 됐습니다.”
―번역과정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크게 세 가지를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인력난 재정난 저력난(底力難·추진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인력난은 한문과 불교를 모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생긴 거죠.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제일 어려웠던 것은 재정난이었습니다. 한 권을 만드는 데 번역비 등 실제 경비가 2500만원이 들어갑니다. 318권으로 나왔으니 산술적으로만 따져봐도 795억원이 들어간 셈이죠. 조계종단에서 약간 지원해 줬지만 큰 힘이 되지 못했고 다른 종단과 단체의 지원도 태부족이었습니다. 국가의 지원이 큰 힘이 됐지만, 역시 특정 종교에게 전액을 줄 수는 없었죠. 그래서 번역된 책을 열심히 팔아 자금을 마련했는데, 들어온 돈을 바로바로 투입해야 할 만큼 빠듯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 동안 한글대장경을 구입해 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93년 말 제가 역경원장이 돼보니 고려대장경을 기준으로 반 정도가 번역돼 있었습니다. 7년간 나머지 번역작업을 했습니다. ‘부처님도 경전을 출판하면 공덕이 크다고 하셨다. 경전을 번역하는 것은 불제자의 의무’라고 주장하면서 후원회도 만들었습니다. 3만명이 1만2000원씩 내면 1년에 필요한 3억5000만원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계산을 했는데, 이게 안 되더군요. 역경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돌아서면 그만이었습니다. 지금은 후원회에 2500여 명이 가입해 있습니다.
최근 한글대장경 완간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오늘도 칠순잔치 할 돈을 보시한다며 한 퇴역장성이 1억원을 보내주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역경작업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이 1억원씩 큰 돈을 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역경사업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불교 사업에 동참해줄 것을 바랄 뿐입니다. 내가 이런 구상을 밝히니까 주변에서 ‘다른 단체라면 몰라도 절은 안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안 되면 불교를 때려치우자. 부처님까지 불질러버리자’고 말합니다. 승가(僧家)는 결국 화합입니다. 불교적인 화합은 무조건 단합하자는 게 아니고 거룩한 목적 밑에 응집력을 연마하자는 것입니다. 응집력이 없는데 거기서 무슨 꽃이 피고 미래가 있겠습니까.”
‘역경의 대부’로 꼽히는 월운 스님의 ‘번역원칙’은 무엇일까.
“원문에 충실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언어관습까지 포괄하거나 때로는 정황이나 상상력에 근거한 과감한 번역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그건 나중 문제이고 우선은 원문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원문을 바탕으로 해서 여러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 의미를 새겨봐야 할 것입니다.”
―역경이 왜 중요합니까.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따르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역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히 경제논리로만 따질 수 없는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맥락이 있습니다. 경전 속에 있는 많은 얘기들이 나름대로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역이 돼야 합니다. 그 뒤에는 일반인들이 찾기 쉽게 포장하는 일이 필요하겠죠.
정당이나 종교단체가 요란스럽게 한다고 해도 현재 국민들의 정서를 바로잡기 힘듭니다. 국민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줄을 서야 하는데 안 선다면, 경찰이 단속하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줄서는 습관을 익혀야 합니다. 신행(信行)의 근본을 튼튼히 하려면 경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데 여기서 언어가 걸림돌이 돼서는 곤란합니다.”
―한글대장경을 국민들이 가까이 하도록 돕기 위해 여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5년 정도까지만 인쇄본을 내보내고 멈출 생각입니다. 그 뒤엔 전산화에 주력할 생각이에요. 국민들 누구나 자기 취향에 맞게 대장경을 볼 수 있게 하려는 거죠. 내가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경전이 있어요. 이런 것은 전문가들이나 보라고 하고, 국민들은 컴퓨터를 두드리면서 보게 할 생각입니다. 향후 10년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 일반인들도 몇 년 뒤면 인터넷을 통해 한글판 경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스님은 “역경작업이 완료되기까지는 여러 어른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내가 칭찬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불경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야구의 희생타자처럼 한 단계의 일을 마치고 물러날 뿐이니 앞으로 나올 선지식(善知識)들이 더 갈고 닦아 길이 빛날 우리 시대의 국보로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벌써부터 일부에서 ‘역경 잘했다더니 엉망으로 해놨네’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당연한 겁니다. 한술에 어찌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어찌 보면 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입니다”라며 겸손해 했다.
―경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경전은 부처님 말씀이고 사상을 담은 것입니다. 부처님 사상의 근본은 절대적인 휴머니즘이죠.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엑셀러레이터나 브레이크를 잘못 밟으면 죽습니다. 가속과 정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게 중도이고 불교입니다. 이런 철학이 뿌리내렸으면 세상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불교가 한때 제 기능을 잃어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불교는 사람들이 모두 제자리에 서도록 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종교 가운데 인과응보의 법칙을 가르치는 것은 불교가 유일합니다. 불교는 금생(今生)에 닦은 것을 내생(來生)에 다시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불교 교리를 따르면, 국민들은 자기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자리에, 어머니는 어머니 자리에 서게 해주고, 나를 내 자리에 서게 해주는 것이 불교입니다. 기본설계를 모르면 단청을 새로 하고 내부를 고쳐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를 모르고 어떤 일에 종사한다면, 결코 잘할 수 없습니다. 불교는 나와 가족, 나와 삶의 관계에서 나를 나답게 하는 법을 터득하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불교 경전이 널리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글대장경에 들어 있는 경전 가운데 특별한 의미가 담긴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어느 약이 가장 중요합니까?’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결국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약이 중요한 약이지요. 경전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과연 그렇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자신에게 필요한 경전입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우주의 진리를 꿰뚫어 설파한 경전의 경우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독송하면, 책장이 공중에서 술술 넘어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뭐가 생긴다고 해야만 좋아하게 됩니다. 예컨대 ‘경전을 머리맡에 놓고 자면 꿈자리가 편해진다’거나 ‘재물을 많이 얻을 수 있다’거나 하는 얘기죠. 어린애다운 경전, 어른다운 경전 등 경전마다 다 특징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불경은 인생문제의 종합백화점입니다. 경전은 ‘무슨 물건이 좋으냐?’고 묻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 맞는 것이 다 있으니 일단 와보라’고 말하는 겁니다.”
―한국불교는 참선이나 기도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경학(經學)을 중시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요.
“그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교리 구성상으로도 참선이 경보다 위입니다. 그래서 사교입선(捨敎立禪·교학을 버리고 선으로 들어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교학을 보고 내용을 파악한 뒤에는 이론적인 교학에 마냥 머물러 있지 말고 그것을 떠나 실천 수행인 선(禪)의 길로 들어가라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무조건 교학을 멀리하라’는 얘기로 잘못 받아들이고 있어요. 교학을 무시한 채 참선에만 매달려 세월을 낚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는 경향이 있어 걱정입니다.
여기서 ‘버린다’는 것은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린다는 말이지, 가져보지도 않은 것을 버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교학을 공부해서 이론으로서의 불교, 학문으로서의 불교를 이해한 사람에게 과감히 길을 떠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렇듯 교학을 배운 이가 참선을 수행하고, 그렇게 해서 깨친 이가 다시 중생 속으로 들어가 이미 얻은 교리와 수행의 힘으로 중생을 교화하려는 것이 불교 전체의 흐름입니다. 그렇다면 선과 교는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안과 밖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라 하셨습니다. 요즘은 선을 정신수련의 한 방법으로 보는 사람이 많고 세계적으로도 관심이 높습니다. 특히 한국의 선법(禪法)에 대해서 관심이 대단합니다. 이처럼 선의 붐이 이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봅니다. 이럴 때 교학의 튼튼한 토대 위에 선을 하는 분들이 수행을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아직 기초를 쌓지 못한 분들은 선학적 기반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틈나는 대로 경전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의 선이 세계적인 권위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한글대장경 완간은 교학계와 선학계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한글대장경도 완역됐으니 스님이라면 어떤 경전이든 60종은 읽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좋은 약은 쓰다고 했습니다. 힘이 들어도 경전을 열심히 읽다 보면 항체가 생기고 인내심도 커집니다. 경전을 열심히 파고들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것도 들립니다. 경전을 제대로 읽지 않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른다면, 일상을 제대로 보낼 수 없습니다. 경전을 안 읽는다면 자의적인 해석에 의지하게 되고 불교는 쇠퇴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스님들은 교단의 장래를 위해 비전을 갖고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전파하는 기반을 세워야 합니다.
스님이라면 자기수행과 대인포교를 겸해야 하는데 경전을 읽음으로써 그 방법을 알게 되고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신도나 일반 국민들도 불경을 읽고 그 속에서 힘을 얻어야만 행복하게 사는 법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완간된 한글대장경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시대변화에 뒤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스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실제로 강원교육 같은 경우 보완할 점이 많지만 오랜 전통 때문에 쉽게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인도의 경우 쇠고기를 먹어도 되는데 오랜 전통 때문에 안 먹는 것으로 굳어졌잖아요. 그 사회에서 편하지 않기 때문에 못 먹는 겁니다. 승려들의 전문교육기관 역시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맞추어 교육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영원한 진리를 현대 감각으로 포장만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오랫동안 내려온 한문경전을 중간에 번역하는 과정도 없이 바로 현대식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한문경전을 교재로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거죠. 초보자들에게는 번역된 경전으로 먼저 이론을 알려주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문경전으로 공부를 시켜야 합니다. 각자의 실력에 맞게 교육과정을 세분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종단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조계종단의 3대 사업은 포교 역경 도제양성입니다. 이 가운데 역경이 바탕이 돼야 도제양성이나 포교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세 개의 축이 바람개비처럼 돌아가야 합니다. 포교나 도제양성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역경은 이제 걸음마 단계입니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은 불교계가 싸움만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역경사업을 마무리한 뒤 ‘싸움질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언제 이런 것을 했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글대장경 완간을 계기로 포교와 도제양성이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조계종은 표바람에 휘말렸다
―한국불교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무조건 잘되겠다고 하면 근거 없는 낙관론이고, 안 될 것이라고 하면 욕을 먹겠지요. 부처님은 각자가 자기 자신의 창조주라 했습니다. 자기 하기에 달렸다는 뜻이지요. 지금 종단은 군주시대의 체질에 익숙해서 신·구세대의 지식을 골고루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희망은 계율정신이 많이 강화됐다는 점입니다. 종단이 전에 비해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신진 승려들이 지식을 쌓고 사회봉사를 열심히 해서 균형을 맞춰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도 밝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분규가 일어나 종단이 흔들린다면 한국불교의 장래는 어둡고 막막할 따름입니다. 결국 선택이 좌우하는 거죠. 딱히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라는 정답은 없는 셈입니다.”
월운 스님은 한국불교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출가했다는 생각을 잃어버린 데서 한국불교의 문제가 비롯됐다” “현재 조계종단은 중풍에 걸렸다” “표바람에 휘말렸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한 “종교는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번 종단의 어느 지도자가 특정 정치인을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등 정치적인 행위를 했을 때 세간의 비판 여론을 따갑게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적인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불교적인 삶은 한마디로 불교사상을 골격으로 한 삶입니다. 여기에는 서구 사람들이 말하는 청교도적 자세, 동양에서 말하는 군자적 자세도 다 포함돼 있습니다. 불교용어로 하자면 보살도(菩薩道)지요. 보살은 양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부처님과 거의 같은 수준이면서도 중생과 별 차이가 없는 게 보살입니다. 보살을 상징하는 것은 자비와 지혜입니다.
불교적인 삶이란 전진이나 후퇴를 좋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러면서 전진과 후퇴를 포기한 것도 아니고, 추진력과 목표의식 속에서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것을 하나씩 가꿔 나가는 삶입니다. 물론 첫째는 자신의 물욕을 제지하는 것에서 출발해야겠지요.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살도 속에 파묻어 버리는 공부부터 시작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완성을 봐야 합니다.”
스님의 설명은 ‘불교의 본질’로 이어졌다.
“불교의 본질은 우리가 말하는 신앙이니 영험이니 하는 개념과 달리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믿는 마음이 바르게 서면 영험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불교신앙의 본질적인 영험은 자신이 ‘참 자기(眞如)’의 변화체임을 믿고, 그 믿음으로써 삼보(三寶·佛法僧)에 간절히 귀의하여 참 자기로 복귀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잃었던 참 자기로 복귀했을 때 너와 나의 참 자기가 둘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고, 너와 나의 차이를 보지 않을 때 남의 괴로움과 나의 즐거움을 둘로 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는 누구입니까.
“부처를 하늘이나 산 또는 곰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완전한 인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결함 없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개념인 셈이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일신론자의 신 개념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 신은 ‘나는 빛이요, 생명’이라고 했지만, 부처는 ‘네 생명은 네가 갖고 있지, 내가 갖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뗏목과 같습니다. 단지 이쪽 편에서 저쪽 편으로 건네주는 나룻배 노릇을 할 뿐이지, 정작 길을 찾아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거죠. 그게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하루 일과를 소개해 주시지요.
“여느 스님들과 비슷합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에 예불을 합니다. 6시에 공양을 한 뒤 7시30분부터 수업을 합니다. 차세대 강주 수업을 받는 스님 11명과 함께 경전을 공부합니다. 오후에는 다음날 공부할 것을 연구하는 게 보통 일과입니다. 일찍 끝나면 역경을 하면서 지냅니다. 매주 금요일은 역경원에 나가 각종 사무를 처리하고 사람들도 만납니다. 저녁 9시에는 자게 돼 있는데 잘 안 돼요. 10시나 11시쯤 잠자리에 듭니다.”
스님은 9월5일 장충체육관에서 한글대장경 완간 회향법회를 할 예정이다. 3만명을 목표로 한 사람이 1만2000원씩 한구좌 갖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한 해에 3억5000만원 정도는 마련할 수 있어 역경사업에 어느 정도의 재정적 토대를 갖출 수 있다. 스님은 “이제 한글대장경 완간이라는 터를 닦아놨으니 앞으로는 이것을 바탕으로 하나씩 마련해가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컴퓨터를 못 배운 게 한이라는 스님은 올 여름에는 컴퓨터를 배우고 운전면허를 따 자동차를 몰고 싶다고 했다. 스님의 말을 들으니 봉선사의 녹음이 더욱 푸르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