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세에 사업 시작, 김윤환 민국당 대표 사위
- 창업 4년만에 8개 계열사 둔 지주회사로 급성장
- 재벌 2,3세들과 호형호제…도움 주는 사람 많다
- 소문 떠도는 괴문서는 검찰에서 나온 것
- 국정원·청와대 사정팀 방문 받았다
- 아스텐·피코소프트 인수, 주가조작 의혹
- 뒤 봐주는 실세 있나
- 자금난 소문…매출 낮아 스포츠토토 사업 기로에
지난 두세 달 TV에서 심심찮게 방영된 광고다. 체육복표 사업인 ‘스포츠토토’를 홍보하기 위한 것. 이 스포츠토토 사업을 이끄는 회사가 바로 타이거풀스다.
타이거풀스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주관하는 체육복표사업 수탁사업자로 선정된 것은 올해 2월. 복표사업이 ‘현 정권 최대의 이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면서 사업권을 따낸 타이거풀스에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에 부응이라도 하듯 1998년 자본금 1억원에 직원 5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오늘날 지주회사인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이하 타이거풀스INT) 하에 8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급성장했다.
6개월 전부터 정계와 증권가에는 타이거풀스를 둘러싼 여러 가지 ‘설(說)’들이 광범위하게 유포됐다. ‘체육복표 위탁 사업자 선정에 정권 실세를 등에 업은 비리가 있었다’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 ‘기업 인수 과정에서 주가 조작이 있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 최근에는 타이거풀스의 ‘비리’를 담은 200쪽 분량의 괴문서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았다. “토토게이트라도 터지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추측까지 나오는 지경이었다.
이러한 갖가지 의혹에 대해 책임 있는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타이거풀스의 ‘실질적 오너‘인 송재빈(33) 대표뿐이었다. 송대표는 민국당 김윤환 대표의 사위. 나이마저 적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곤 했다.
그동안 송부사장은 언론에 노출되기를 극구 사양해 왔다. “너무 젊어 쓸데없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가만히 있으면 의혹을 시인하는 꼴이 된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11월12일, 강남역 사거리 타이거풀스빌딩 뒤편 한 음식점에서 마침내 송부사장과 마주할 수 있었다.
2시간 가량 계속된 인터뷰 중 송대표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괴문서는 검찰에서 나온 거다. 그걸 들고 찾아온 국가정보원 사람이 내게 직접 말했다. 청와대 사정팀의 방문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억울하다. 문서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경쟁업체인 A사 편에 선 검찰 모 인사가 날 음해할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 틀림없다.”
만일 송대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야말로 큰 스캔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사업자 선정은 정말 투명하게 이루어졌나. 타이거풀스의 급성장에 다른 비밀은 없는가. 권력의 비호를 받은 것은 타이거풀스인가, 경쟁사인 A사인가.
“괴문서 출처는 검찰”
체육복표 사업이란 스포츠 경기의 승패나 점수를 맞춘 사람에게 상금을 지급하는 일종의 베팅 게임이다. 국내에 이 사업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98년 4월. 영국의 세계적 풀스게임(투표권사업)업체인 리틀우즈가 대한축구협회에 “향후 10년간 풀스 사업 독점권을 주면 월드컵 경기장 신축자금으로 총 1억~4억파운드(약 2500억~1조원)를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다. 이미 이탈리아, 일본 등이 월드컵 재원 마련을 위해 풀스사업을 허용한 전례가 있는 만큼 대한축구협회도 적극적인 검토에 나섰다. 외환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체가 외국 회사라든가 사행성 사업이라든가 하는 문제제기는 별 힘을 받지 못했다. 리틀우즈는 그 다음달 아시아유럽정상회의(아셈) 참석 차 영국을 방문한 우리 대표단에게 같은 제안을 다시 한번 던졌다.
리틀우즈가 한국 시장에 눈독을 들인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다. 1997년 리틀우즈는 싱가포르에 타이거풀스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아시아 시장 개척을 위한 전진기지였다. 이를 편의상 타이거풀스싱가포르라고 하자. 같은 해 4월, 타이거풀스싱가포르는 우리나라에 1차 시장조사단을 파견한다. 별 소득 없이 돌아가게 된 그들 앞에 29세의 청년 사업가 한 명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송재빈. 스포츠마케팅을 하는 임팩프로모션, 옥외광고업체 인터아트 등을 운영하는 젊은 사업가였다.
여기서 잠깐 송대표의 이력을 훑어보자. 송대표는 1968년 생이다. 본적은 충남 공주. 1987년 서울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단국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꿈은 패션 마케팅 전문가. 유학 계획을 세우고 제대(육군 병장) 직후인 1991년, 사전 답사 차원에서 유럽 여행을 떠났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여행 중 밀라노의 두오모성당에 들렀죠.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기도 중 문득 ‘유학은 필요 없다’는 ‘암시’를 받게 됐어요.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지요.”
대학교 4학년 때인 1992년, 친구들과 첫 사업을 시작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레포츠클럽이었다.
이어 아버지가 유학 자금 대 주는 셈치고 건넨 500만원을 밑천 삼아 옥외광고 및 이벤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2년만에 자본금 5000만원, 직원 30명을 둔 회사로 성장시켰다.
부인 김윤미씨와 결혼한 것은 1993년의 일. 김씨는 민국당 김윤환 대표의 1남3녀 중 셋째다. 유명 정치인의 딸이라는 점이 부담스럽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 땐 어려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요즘 들어서는 장인이 ‘자연인’이면 편할텐데 하는 생각을 간혹 한다”고 답했다.
“축구협회의 아는 분으로부터 타이거풀스싱가포르를 소개받았습니다. 이거 말 된다 싶었죠. ‘한국은 (당신들에게) 생소한 나라 아니냐, 복표사업 자체도 잘 모른다, 그러니 우리 같은 홍보회사를 대리인으로 쓰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습니다. 얘기가 잘 돼 리틀우즈와 그 관계사인 APMS의 지원을 받아 1987년 8월 코리아풀스마케팅(KPM)을 설립했죠.”
KPM의 자본금은 1억원이었다. 지분의 50%는 임팩프로모션이, 나머지 50%는 영국의 두 회사가 25%씩 나눠 가졌다. 직원은 4명. 임팩프로모션 사무실 한 귀퉁이를 빌어 업무를 시작했다.
일을 맡은 송대표는 복표사업 홍보와 법안 마련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먼저 월드컵축구조직위원회 최창신 사무총장(현 한국유소년축구협회장)을 찾았다. 송대표는 이전부터 프로축구연맹 김모 부장 등 체육계 인사들과 친했다. 또 주변에는 최 전총장도 아는 ‘일단의 유망한 젊은이들’이 포진해 있었다고 한다.
“월드컵조직위가 나서 복표 사업을 추진하자”는 송대표의 제안에 최 전총장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한다.
“그 전에 영국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봤지만, 당시 축구계에서 타이거풀스싱가포르는 무슨 괴물처럼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저도 (복표사업의) 좋은 면을 아주 생각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선뜻 나서야겠다는 판단이 서질 않질 않더군요. 그런데 (송대표가) 이어 찾아간 대한축구협회 쪽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나봐요. 협회에서 적극적으로 나오고 또 나도 ‘좋은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돼 이후 몇 가지 도움을 줬습니다. 김종환 중·고골프연맹 회장이 허주 동생이라 그쪽도 좀 신경을 썼고요.”
“법 개정 자체가 타이거풀스 작품”
이에 대한 송대표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1997년 하반기 동안 열심히 뛰었는데 별다른 성과가 없었어요. 다소 힘이 빠진 상태였는데 정몽준 축구협회장이 복표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군요. 세계 각지의 현대 계열사들을 통해 실태 파악도 하고요. 그래서 다시 달려들었죠.”
1998년 4월 송대표는 KPM를 해체하고 타이거풀스코리아(주)를 설립했다. 같은 해 6월 영국 측 조사팀이 입국해 5개월간 조사 및 지원 활동을 폈다. 송대표, 축구협회 등도 복표사업 시행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경기장 건설 투자 제안이 있은 직후여서 스포츠계는 물론 정·관계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영국인들이 뭐가 아쉬워 경기장을 그냥 지어주겠나. 법 개정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말만 띄운 것”이라는 비아냥이 터져나왔다.
1998년 11월 박세직 의원 외 54명이 개정법률안을 입법 발의했다. 그러나 이른바 ‘방탄국회’가 장기화하면서 법안 의결은 불발되고 말았다. 다음해 8월, 개정법이 드디어 본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됐다. 주관단체인 국민체육진흥공단에 체육진흥투표권준비단이 설치됨과 더불어 수탁 사업자 선정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당시 일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법안 통과 자체가 타이거풀스 진영의 작품이었다’고 증언한다. 송대표 역시 “국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영국에서 온 사람들을 적절히 활용했죠. 서양 사람들을 죽 데리고 다니면 아무래도 대접이 달랐어요. 복표사업의 장점에 대해 입이 닳도록 설명했습니다. 장인 이름을 팔지는 않았어요. 정치적으로 그럴 상황도 아니었고요.”
어쨌거나 갓 서른인 젊은이가 정·관계, 축구협회 등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벌이고 소기의 성과까지 거뒀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몽준 회장과 송대표 간에 밀약이 있다거나, 정치권 실세가 뒷배를 밀어주고 있다는 소문이 돈 것도 그런 ‘의외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송대표는 “이상한 소문이 날까봐 명절 때도 아내와 아이들만 보낼 뿐, 처가집 문턱조차 넘지 않았다”며 이같은 소문을 일축했다.
법안통과가 지지부진한 동안 송대표는 자금 부족으로 큰 위기를 겪었다. 4명 남짓한 직원들의 월급마저 챙겨주지 못하는 상황이 다섯 달 이상 계속됐다. 영국에서 매달 보내오는 1만 파운드 가량의 수수료가 수입의 전부였다. 일 진행이 늦어지자 영국 측은 사업철수 의사를 밝혔다. 결국 스톡옵션만을 남긴 채 지분 전체를 회수해갔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타이거풀스에는 영국 쪽 지분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999년 법안이 통과되자 송대표는 수탁 사업자 선정에 대비한 사전 작업에 착수했다. 한국갤럽과 공동으로 마케팅 리서치를 실시하고 삼보컴퓨터, 온라인 스포츠베팅업체인 이탈리아 스나이사 등과 전략적 제휴도 맺었다. 2000년 6월에는 회사 이름을 한국타이거풀스(현 타이거풀스INT)로 바꿨다.
2000년 8월 수탁사업자 제안 요청 공고가 났다.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1대주주 지분이 전체의 50%를 넘을 것’, ‘자본금 규모가 400억원 이상일 것’ 등이었다. 당시 한국타이거풀스의 1대주주인 밸류라인벤처는 지분율이 16%에 불과했다. 다급해진 송대표는 한국타이거풀스가 52%의 지분을 갖는 새 법인을 만들었다. 이를 기점으로 기존의 한국타이거풀스는 타이거풀스INT라는 이름의 지주회사가 됐다. 초기에는 새 법인을 한국타이거풀스컨소시엄으로 불렀으나 지금은 한국타이거풀스(이하 한국풀스)라 칭하고 있다.
이름이 너무 자주 바뀐 데다 글자마저 비슷비슷해, 회사 관계자가 아니면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극히 어렵다. 짧은 기간 동안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얼마나 잦은 변신을 해왔는지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2000년 10월 수탁사업자 제안서 접수가 마감됐다. 한국풀스와 전자복권전문업체인 A사만이 제안서를 냈다. 강력한 후보였던 대우정보통신 컨소시엄은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
한국풀스의 규모와 구성은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2000년 1월 기초자금자본금이 10억원에 불과했던 회사가, 유무상증자(유상 3회, 무상 1회)와 전환사채 발행 등을 통해 어느새 자본금 477억원의 ‘덩치’로 커져 있었다. 삼보컴퓨터, 조흥은행, LGEDS, 동국실업, 경방, 경향신문사, 한국일보사, 문화일보, 넥스트미디어신문, 스포츠조선 등 컨소시엄 참여 업체들의 면면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세간에는 유력 인사들이 한국풀스 및 그 관련사들에 자금을 대거 출자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공공 사업의 경우 필요에 따라 관련 법안에다 ‘민간에 사업 운영을 위탁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곤 하는데, 개정 국민체육진흥법에는 아예 ‘위탁 운영하도록 한다’고 못 박고 있는 점 또한 의혹을 부채질했다.
송대표는 이에 대해 “비리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제가 사업 설명회만 40회를 했습니다. 다행히 평소 믿고 우정을 나눠 온 분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사업내용보다는 저란 사람 하나만 보고 투자해 주신 분들이 더 많은 줄 알고 있습니다. 사업권 선정에서 탈락하면 돈을 돌려드리겠다는 약속을 한 것도 신뢰가 갔을 테고요.”
아닌 게 아니라 송대표는 남달리 폭넓은 교우관계를 자랑한다.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한 덕분인지 7~8세 연상인 이들과도 친구처럼 가까이 지낸다. 특히 신일고 동문들과의 교류가 활발하다. 신일고 출신 중에는 벤처·금융업계에 진출한 이들이 유난히 많다. ‘신일고파’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 최태원 SK회장, 최재원 SK텔레콤 부회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 김상범 이수화학 회장 등 재벌2, 3세도 여럿 포진해 있다. 타이거풀스 사외이사인 김대희 변호사(법무법인 대륙 소속)도 신일고 출신이다.
“제 가장 큰 재산은 사람입니다.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는 거라 생각해요. 30살 연상인 분들과도 쉽게 마음을 틉니다. 아무래도 술자리가 잦은 편인데 정신을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죠.”
타이거풀스 주주 명부를 보면 송대표의 남다른 ‘친화력’이 사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타이거풀스INT의 최대주주(12.83%, 2001년 7월)는 ‘밸류라인벤처(사장 권상훈)다. 동국실업이 지분의 70%를 보유하고 있는 창투사. 권상훈 사장은 송대표의 신일고 6년 선배다. 권사장은 타이거풀스INT 지분 1.09%(2001년 7월)와 한국풀스 지분 0.5%(2001년 9월)를 갖고 있는 에이팩스기술투자의 사장도 겸하고 있다.
삼보컴퓨터가 타이거풀스INT 및 한국풀스의 대주주로 참여한 것 또한 이홍순 부회장이 신일고 선배인 것과 무관치 않다.
김각중 경방그룹 회장의 아들인 김준 (주)경방 전무이사도 송대표와의 친분이 계기가 돼 타이거풀스에 투자했다. (주)경방은 타이거풀스INT 지분 1.43%(2001년 7월)를 갖고 있다. 김준 전무와 송대표는 각기, 타이거풀스 주주사인 이벤처캐피탈의 대표이사 사장과 대표이사 부사장을 나눠 맡고 있기도 하다.
어떻게 재벌 2,3세들과 교분을 텄느냐고 묻자 송대표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다.
“김준 전무와는 ‘푸르내’라는 친목 모임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다른 분들과도 거의 그런 식이었어요. 선배 하나를 알게 되면 그 분이 또 주위의 다른 분들을 소개해 주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 재산은 사람뿐입니다.”
인수개발인가 ‘머니 게임’인가
주주명부를 살펴보면 송대표의 지분이 그리 많지 않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체육진흥공단에서 1대 주주가 지분의 50% 이상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못 박은 것은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서인데, 이래서야 근본 취지와 어긋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타이거풀스INT 주식의 50%쯤은 제 우호지분이라고 보시면 돼요. 특히 밸류라인벤처 같은 창투사는 큰 무리가 없는 한 투자한 회사의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돈이 걸린 문제인데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것 아니냐고 재차 물었다.
“아닙니다. 사업 이전에 정으로 뭉친 사이인데요. 설사 경영에 실패해 대표 자리에서 쫓겨난다 해도 그건 제 능력 부족 때문이니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죠.”
타이거풀스의 한 관계자도 “겉으로 드러난 지분 구조와 상관없이 송대표가 회사 운영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육복표 수탁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한국풀스와 A사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먹이’가 큰데다 정치권 유력 인사 두 명이 각기 다른 회사를 물밑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세간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2000년 12월 한국풀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다. 같은 달 29~30일 수탁사업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체육진흥공단은 해가 바뀌도록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A사는 ‘한국풀스에 사업자로 선정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한마디로 한국풀스가 체육진흥공단이 내건 몇몇 요건을 어겼다는 것이었다. 한국풀스는 즉시 A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A사의 한 임원은 “그로 인해 검찰에 들락거리며 7개월 이상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며 “사건은 결국 무혐의로 종결됐다”고 밝혔다.
2001년 2월, 우여곡절 끝에 한국풀스가 최종 수탁사업자로 선정됐다. 선정과정은 시민단체 대표 5명이 심사에 참석하는 등 비교적 공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좀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3월 중순, 느닷없이 타이거풀스INT가 코스닥 상장기업인 한국아스텐엔지니어링을 A&D (인수 후 개발)한다는 소문이 터져 나왔다. 합병설은 사실이었고 3월 말 두 회사는 5개 관계사간의 상호출자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한 몸’이 됐다.
이에 대해 증권 전문가들은 “A&D로 포장돼 있지만 실상은 관계사간의 지분상호출자에 불과하다. 일반 투자자들은 대부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 5월, 타이거풀스INT는 또다시 코스닥등록 업체인 피코소프트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인수 방식은 아스텐 때와 거의 동일했다.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피인수업체인 피코소프트가 전환사채를 발행해 인수업체인 타이거풀스INT에 매각한다.
②이렇게 조성한 자금으로 피코소프트는 다시 타이거풀스INT 주식을 취득한다.
③지분 매각 대금으로 타이거풀스INT는 또 다시 피코소프트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인수한다.
단순 지분 거래로도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굳이 복잡한 과정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로 인해 증권업계에서는 “내부자거래 혐의가 짙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
“차라리 검찰에 고발해 달라”
비슷한 시기, 아스텐에 주가 조작이 있었다는 설이 제기됐다. 아스텐의 올 초 5개월간 종목 주별차트를 분석한 한 증권 전문가는 “그래프에 (주가조작의) 전형적 형태가 나타나 있다. 매집기간-랠리-정리(대량매집) 기간을 정확하게 집을 수 있을 정도”라고 주장했다.
아스텐 주가조작설에 대해 송대표는 “인수 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면 모를까, 우리는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계열사 중 하나인 전자복권업체 타이거풀스아이의 해외 진출 자금을 마련코자 코스닥에 백 도어 리스팅(우회등록)을 한 것 뿐”이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루머를 흘려 우리 주식을 매입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친 김에 송대표의 ‘부정비리 혐의’를 적시하고 있는 괴문서의 존재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문서에는 정권 실세와의 관련설, 주가조작설, 사업자 선정 과정의 문제점 등이 매우 소상히 기록돼 있다고 한다. 안그래도 그로 인한 마음 고생이 심했던 듯 송대표는 다소 흥분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직접 보기도 했고. 검찰에서 내사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어느날 국정원 사람이 찾아왔어요. 뭘 내밀기에 받아보니 그 문서의 2장짜리 요약본이었어요. 항목이 마흔 몇 개나 되더군요. 죽 읽어봤는데 이건 몽땅 거짓말이에요. 아, 1년 반 전에 몇 번 갔던 술집 이름은 정확하게 적어 놨더군요. 근데 뭐, 내가 하룻밤에 술값을 1000만원이나 썼다고…? 어떻게 마시면 그럴 수가 있습니까. 또 200억원을 동원해 주가조작에 참여했다는데 우리 회사에는 지금 그만한 돈이 없어요. 조사해 보면 그냥 알 수 있는 일이에요.
정치권 유력인사인 모, 모씨 이름도 있더군요. 근데 다 말이 안돼요. 제 뒷배경이 그렇게 든든하면 왜 법안 통과가 늦어지고 사업자 선정마저 두 달씩 미뤄졌겠습니까. 정말 억울한 사람은 접니다.
다 읽어보고 제가 그랬어요. 이거 어디서 났느냐고요. 검찰이라기에 차라리 고발해달라고 했죠. 그러면 사실관계가 분명해질 테니까요.”
송대표는 이런 말도 했다.
“청와대 사정팀 사람도 왔었습니다. 비슷한 내용이더군요. 그래서 저희도 나름대로 알아봤어요.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음해를 하는지 추적해보니까 경쟁사였던 A사 쪽 인사가 만든 거예요. 우리 쪽 변호사가 그 사람을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만들어진 시점은 꽤 오래 전인 것 같아요. 사업자 선정 경쟁이 한창 치열하던 시점에 나온 얘기들이 많이 포함돼 있더군요. 그때는 서로 사람을 붙여 동향 파악도 하고 그랬는데, 주로 그 내용을 바탕 삼아 작성한 것 같아요.”
송대표는 “누가 이걸 갖고 국회 같은 곳에서 터뜨려도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 내 직위와 명예를 걸고 사실을 밝혀나갈 것”이라며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사실 검찰 조사와 관련해서는 또 다른 설이 있다. 타이거풀스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두 차례에 걸쳐 내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번 시작했다 중단하고 또 다시 시작했다가, 그 팀이 통째로 다른 큰 사건에 투입되는 바람에 중단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스텐 주가 조작설과 관련, 사내에 검찰 내사 소문이 돌았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타이거풀스에 대한 검찰 내사 여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A사 측에 송대표의 발언을 전하고 답변을 요구했다. A사 사장은 “왜 아직까지 우리를 물고 늘어지는지 모르겠다. 사업자 선정 후 ‘서로 비방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약조를 했는데 신사적이지 못하다. 쏟아지는 의혹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 아니냐”며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전사장은 이용호게이트가 터지기 전인 7월4일, 회사 돈을 이사회 결의 없이 이용호씨에게 빌려준 것이 문제가 돼 대표직을 사임했습니다. 빌려줬던 돈도 이자 18%까지 합쳐 모두 다 돌아왔고요. 문제가 있다면 김 전사장이 해명할 일이지 회사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A사 사장은 전후사정을 설명한 후 “나도 하고픈 말이 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세월이 가면 다 밝혀질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요즘 ‘토토게이트’ 의혹만큼 송대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스포츠토토의 저조한 매출이다. 애초 매달 5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10억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 송대표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사업자 선정부터 사업 개시까지 보통 16개월 정도의 기간을 둔다. 그런데 우리는 7개월뿐이었다. 시스템은 완성됐지만 유통, 마케팅 부문이 채 정비되지 않은 채 사업을 시작해 난관이 많다”고 토로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홍보와 마케팅에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나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은 실정. 은행 돈을 빌리고 싶어도 체육진흥공단 측이 제시한 사업자 요건 중 ‘부채 비율이 200%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포츠토토 매출 ‘빨간불’
타이거풀스의 한 임원은 “원칙대로 가는 것도 좋지만 문제가 발견됐을 땐 사업 활성화를 위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순리 아니냐”며 “체육진흥공단이 좀 더 유연하게 나와줬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타이거풀스 측의 지속적인 요구와 호소가 주효했는지 최근 들어서는 체육진흥공단의 태도가 다소 협조적으로 바뀌었다. 지난 11월13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체육진흥공단 최일홍 이사장도 모 스포츠지와의 인터뷰에서 “그 동안 오해의 소지가 있어 스포츠토토를 적극 홍보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해 시선을 모았다.
그러나 한켠에서는 “체육진흥공단이 전향적 자세를 보인다 해서 복표 사업의 어려움이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스포츠토토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포츠토토는 복권이나 카지노 도박과는 달리 스포츠 경기의 승패, 혹은 점수를 예측할 줄 알아야 한다. 해당 스포츠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축구·농구 팬은 높은 매출을 바탕으로 수억원대의 당첨금을 창출하기엔 아무래도 규모가 적다는 지적이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국민성 때문에 일정수의 경기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임 방식에 쉬 적응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매출액 대비 수탁사업자 운영비 비율이 25%(2001년)에서 20%(2006년)로 제한돼 있고, 비용 지출 후 순익이 발생할 경우엔 그 중 일부를 또 다시 공익기금으로 내놓게 돼 있어 구조적으로도 높은 이윤을 내기가 쉽지 않다. 회사 내부에서조차 “이런 식일거면 사업을 왜 하느냐”는 푸념이 흘러나올 정도다.
요즘 타이거풀스는 체육진흥공단의 지급보증 하에 국민은행으로부터 700억원을 차입하려 하고 있다. 자금사정이 상당히 어렵다는 방증이다. 만일 타이거풀스가 자금사정 악화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경우, 공익기금 조성과 월드컵 성공 개최를 위해 의욕적으로 시작된 복표 사업은 숱한 루머와 재산 손실만을 남긴 채 허물어져버릴지도 모른다.
타이거풀스 자체의 건재도 중요하다. 이미 타이거풀스 관련 주식은 거래소와 코스닥 양편에서 무시 못할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타이거풀스에 문제가 생길 경우 우리 주식시장은 진승현·정현준 게이트 때 못지 않은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타이거풀스가 뭔가 석연치 않은 방식으로 기업 인수합병에 나서고, 고만고만한 계열사를 계속 늘려 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토토게이트는 끝나지 않았다?
“계열사와 코스닥 시장을 이용해 ‘폭탄 돌리기’(신용카드 돌리듯 빚을 얻어 빚을 갚는 방식)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묻자 송대표는 칠판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타이거풀스INT에는 아직 50억원의 여유자금이 남아 있습니다. 타이거풀스아이는 매년 자체적으로 2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업체이면서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서도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타이거풀스 유통·텔레서비스 등도 나름의 수익모델을 갖고 있어요. 문제라면 한국풀스 하나인데, 이쪽도 아직은 300억원 정도의 여유가 있습니다.”
송대표는 “내년 3월부터는 스포츠토토 사업도 본궤도에 오를 것”이라며 “그 때까지 잘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타이거풀스는 여러모로 진승현 사건의 모체였던 ‘MCI코리아’나 정현준 사건의 진원지인 ‘KDL(한국디지털라인)’을 떠올리게 한다. R&D 기법을 내세워 기업 사냥에 열을 올렸던 최유신 회장의 리타워그룹도 멀리 있지 않아 뵌다. 젊고 유능한 CEO, 과감한 투자, M&A와 R&D, 정계 인사와의 연계설, 특혜 시비, 주가조작, 꺼질 줄 모르는 루머….
그러나 까다로운 선정 과정을 거쳐 공공 사업의 수탁 사업자가 된 점, 머니 게임이 아닌 ‘자영업’으로 첫 사업을 시작한 점, 대주주 보다 전문경영인을 꿈꾸는 CEO가 있는 점 등은 다른 세 업체들에서 발견하기 힘든 미덕이다.
현재로선 ‘토토게이트’의 존재 유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비리 의혹을 담은 문건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타이거풀스를 둘러싼 이런저런 ‘설’들도 쉬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