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영구 귀국한 뇌 영상 분야 최고 권위자 조장희 교수

“세계 1위 못할 연구엔 손도 대지 않는다”

  • 글: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팀장 wolfkim@donga.com

    입력2004-09-23 1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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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도 베일에 가린 두뇌의 신비를 밝혀내기 위해 국내 연구진이 도전장을 냈다. 9월6일 창립한 가천의대 뇌과학 연구소가 뇌세포와 뇌 신경조직 전달체계의 비밀을 찾아내는 연구에 본격 착수한 것. 그 수장을 맡은 인물이 뇌 영상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조장희 교수다.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 과학자’로 꼽히는 조 교수는 “5년 안에 PET와 MRI를 결합한 퓨전영상시스템을 개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영구 귀국한 뇌 영상 분야 최고 권위자 조장희 교수

    30여년간 미국에서 연구한 조장희 교수는 “가능성을 발견했기에 한국에 왔다”고 말한다.

    “한국에 왜 오셨습니까?”미국 어바인 소재 캘리포니아대(UC어바인) 조장희(趙長熙·67) 교수가 입국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던지고 싶었던 질문이다.

    그는 한마디로 ‘성공한 과학자’다. 우선 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미국학술원(National Academy) 회원(한국인 회원은 조 교수를 포함해 9명뿐이다)이고, 지난해에는 UC어바인 2500여명의 교수 중 단 한 명을 뽑는 ‘올해의 최우수 교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언론이 노벨상 후보로 한국인 과학자를 꼽을 때 항상 언급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여유롭다. UC어바인 정교수로서 최고 호봉의 연봉을 받았고 미국 국립보건연구원으로부터 매년 고액의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었다. 컨설팅 비용으로만 한 번에 10만 달러를 번 적도 있다. 최고의 연예인이나 프로 스포츠 스타 부럽지 않은 부를 쌓았다는 의미다. 이런 ‘잘나가는’ 과학자가 한국에 자리를 잡고 새롭게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30여년간 미국에서 생활했지만 여전히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미뤄 생각해볼 때 애국심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애국심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에요.”

    의외로 ‘비정치적인’ 답변이 선선히 나왔다.

    “세계적인 경쟁에서 1등을 하지 못할 연구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아요. 한국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선도할 수 있는 과학 분야가 있다는 얘기다. 과연 무엇일까.

    지난 9월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가천의과대학 뇌과학 연구소가 공식 창립됐다. 독일의 대표적 의료기기 업체인 지멘스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이 연구소의 총 투입 예산은 640억원. 가천의대는 앞으로 지멘스와 장비 개발에 따른 지적재산권 수입을 절반씩 나눠 갖기로 했으며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지적재산권 수입의 2.5%를 각각 한국정부에 기부하기로 했다. 연구소 출범과 동시에 기부 계획을 내놓을 정도로 꽤 자신만만해 보이는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된 것. 가천의대가 ‘든든하게 믿는 구석’은 바로 조 교수였다.

    조 교수는 이날 ‘21세기 뇌기능 분자영상연구의 최근 동향’이란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한 마디로 우리의 뇌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촬영해 속속들이 눈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칼을 대지 않고 뇌를 해부해 세부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다소 황당한 얘기처럼 들린다. 인체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장기가 바로 뇌다. 자신의 양 주먹을 맞댄 크기에 불과하지만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의 수는 150억개에 달한다. 더욱이 신경세포들은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를 들어 한 개의 신경세포가 주변의 수십 개 신경세포로부터 신호를 주고받는다.

    심장이나 팔다리와 달리 겉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의 존재였기에 인체의 다른 장기보다 가장 늦게 연구가 시작된 분야가 뇌다. 오죽하면 신경(神經)이란 말에서 따온 ‘신(神)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별명이 뇌과학에 붙여졌을까.

    “일단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눈으로 보는 일이 출발점이에요. 신경세포끼리 신호를 주고받을 때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데 이것도 봐야죠. 나노(nano)라는 말 들어보셨죠? 머리카락의 10만분의 1 크기를 가리키는 용어예요. 신경세포나 신경전달물질이 바로 나노 수준의 크기입니다. 물론 맨눈에는 보이지 않죠. 특수한 의료장비가 필요해요.”

    조 교수가 말한 장비는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와 MRI(자기공명영상장치)다. 번역된 우리말은 어렵지만 한번이라도 병원에 입원해본 사람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는 의료 장비 이름이다. 원리는 잘 몰라도 인체 내부 장기의 상태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는 첨단 의료장비라는 것쯤은 짐작이 간다. 이 두 가지 장비의 세계적 권위자가 바로 조 교수다.

    PET는 신경세포의 ‘화학적 움직임’을 감지한다. 예를 들어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세로토닌을 보자. 이 물질은 불안, 충동성, 폭력성, 우울증 등과 연관된다고 다소 막연하게 알려져 있다. 만일 세로토닌이 잘 분비되지 않으면 작은 자극에 대해서도 쉽게 우울해지고 심한 경우 자살에까지 이를 수 있다. PET는 세로토닌이 신경세포에서 얼마나 분비되고 다른 신경세포에 어떤 순서로 영향을 미치는지 촬영할 수 있다.

    이에 비해 MRI는 신경세포의 ‘정지된 구조’를 정확히 잡아낸다. 세로토닌의 분비가 시원찮아 뇌의 신경세포 구조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제 기본 아이디어는 퓨전(Fusion)입니다. PET와 MRI 영상을 동시에 얻어 구조와 움직임을 한번에 파악하려는 것이죠. 특히 PET는 질환이 눈에 띌 정도로 진전되기 전에 잡아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뇌종양이 생길 때 우선 세포의 유전자가 비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한참 지난 후 우리 눈에 보일 정도의 혹이 생깁니다. PET는 바로 혹이 생기기 전에 유전자의 비정상적인 활동 조짐을 미리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조기진단이 가능한 거죠. 또 MRI는 수술을 할 때 능력을 발휘합니다. 종양을 제거하려면 ‘정지된 구조’를 알아야만 정확하게 종양을 도려낼 수 있을 테니까요.”

    의료장비 분야에서는 세계 최초의 시도다. PET와 MRI가 처음 선을 보인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두 가지를 합쳐서 촬영하겠다는 것은 순전히 조 교수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평생을 이 두 가지 장비 개발에 몰두해온 전문가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두 장비를 외국에서 들여와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경비가 예상된다. 운영비를 제외한 기본 장비값만 해도 얼추 100억원은 들 거라는 게 조 교수의 말이다.

    “가천의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장비는 물론이고 연구소 건물, 연구원 등 제반 여건을 갖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거든요. 가천의대에서 그런 투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43세에 컬럼비아대 정교수로 임용

    하지만 이 일은 실현됐다. 가천의대와 지멘스는 인천 길병원 안에 ‘뇌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PET와 MRI를 결합한 ‘퓨전영상시스템’를 개발키로 했다. 물론 시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감행’한 것이다. 가천의대와 지멘스측은 PET-MRI가 개발되면 연간 20억달러 규모의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못지않은 충분한 연구 인프라 제공. 이것이 조 교수가 한국을 택한 한 가지 이유다. 한국에 우수한 학생 인력들이 많다는 점 역시 그의 한국행을 앞당겼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한국의 또 다른 매력은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에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KAIST)에서 초빙교수로 10여년 활동할 때 미국에서보다 훨씬 많은 일을 했습니다. 학생들의 정열적인 연구의욕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죠.”

    1972년부터 캘리포니아대(UCLA) 공학부에서 부교수를 맡고 있던 조 교수에게 1978년 두 곳으로부터 동시에 채용 제의가 들어왔다. 미 컬럼비아대와 한국의 카이스트였다. 컬럼비아대의 채용 조건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컬럼비아대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과 함께 미국에서 10위 내에 드는 명문이었다. 컬럼비아대 교수 사회의 전통으로 볼 때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정교수 급은 주로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외부에서 영입함으로써 내부 교수들이 피나는 노력을 하도록 경쟁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물론 정년은 어느 정도 가능했다. 조 교수는 이런 자리에 1979년 43세라는 젊은 나이로 정교수에 채용됐다.

    “처음 컬럼비아대에 갔을 때 한 교수가 와서 진지하게 조언하더군요. 이곳은 경쟁이 심하니까 잘해야 될 거라고요. 내가 젊으니까 조교수나 부교수로 온 줄 알았던 거죠.”

    컬럼비아대가 조 교수를 택한 이유는 그가 UCLA에서 PET에 관한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한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당시 컬럼비아대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잘 만들어지지 않으면 파킨슨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한 에릭 칸델 교수가 있었다(그는 이 발견으로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파킨슨병은 뇌에 이상이 생겨 팔다리가 불규칙적으로 떨리는 등의 운동장애를 일으키는 난치병이다. 칸델 교수는 자신의 신간 ‘신경과학의 원리’에서 PET 영상을 표지사진으로 장식할 정도로 뇌의 영상촬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당시 600만달러 규모의 연구비를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신청하고 조 교수 영입에 나섰다(하지만 이 연구비 신청은 결국 무산됐다).

    조 교수는 UCLA 시절이던 1975년 원형으로 생긴 PET를 처음 개발했다. 당시 학회에 이를 보고하자 사람들은 이 ‘원형 PET’를 ‘조스펫(Cho’s PET)’ 또는 ‘조스링(Cho’s RING)’이라고 부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동료 교수의 ‘질시’가 문제였다.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워싱턴대의 터 포고시언 교수가 PET 개발에 착수했다. 원리는 유사했지만 모양이 원형이 아니라 육각형이었다. 당연히 조 교수와는 경쟁관계였다. 그런데 포고시언 교수 아래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마이클 페업스 교수가 UCLA에 채용됐다. 그는 포고시언 교수와 함께 ‘육각형 PET’를 개발하면서 조 교수의 ‘원형 PET’보다 성능이 뛰어나다고 알리고 다녔다. 심지어 ‘원형 PET’의 개발 공로가 자신들에게 있다는 거짓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던 차에 조 교수가 컬럼비아대에 정교수로 임명된 것이다. 당연히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다.

    박사 26명, 석사 100여명 배출

    “컬럼비아대 시절 카이스트의 초빙교수로도 활동했어요. 카이스트에서는 MRI 연구에 전념했죠.”

    컬럼비아대는 조 교수가 어디에 있든 좋은 논문만 발표한다면 제약을 두지 않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래서 조 교수는 능력이 닿는 대로 많은 시간을 한국의 학생들과 보낼 수 있었다. 당시 카이스트에는 지금과 달리 이공계 석박사 과정을 위한 대학원만 있었다. 조 교수가 이끌던 연구실의 이름은 ‘영상실’. 여기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세미나가 열렸는데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토론자리였다.

    왜 하필이면 토요일 오후였을까. 조 교수의 고집 때문이었다. 학문을 제대로 하려면 세속과의 인연을 끊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신념. 학생들은 어쩌다 한 번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으면 조 교수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에 감히 불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시 석사과정 중이었던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과 박현욱 교수는 “가정의 대소사마저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아예 친구와 친지로부터 연락이 끊어졌다”며 “심지어 자신의 결혼식도 토요일에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조 교수는 이 시절 1년의 절반 정도를 카이스트에 머물렀다. 비행기로 이동하는 시간마저 아까워 늘 탑승 일정을 취침 시간에 맞출 정도였다. 즉 미국에서 밤에 출발하면 서울에 새벽에 도착하는 항공편을 자주 이용했다.

    이 연구는 세계적으로 초를 다투는 분야였기 때문에 조 교수는 모든 학생들이 하루 8시간씩 3교대해가며 시스템을 개발하게 했다. 문제는 실험 대상. 누군가 장비 안에 들어가야 영상을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실험팀의 한 명이 실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기술이 발달해 30분 가량 누워 있으면 촬영이 끝나지만, 당시에는 2~3시간 정도는 걸렸다. 처음에는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게 곤욕이었지만 이내 숙달이 됐다. 특히 잠이 모자란 ‘새벽타임’ 실험조는 장비 안에서 잘 생각에 서로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이런 꾸준한 노력 끝에 1985년 드디어 연구용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MRI 시스템을 개발했다(2.0테슬러급 초전도 MRI). 초창기 0.1테슬러급에 비교하면 엄청난 진보였다.

    조 교수가 배출한 학생들은 현재 학계와 대기업에서 ‘잘나가고’ 있다. 물론 모두 MRI에 관해서는 달통한 수준이다. 조 교수가 카이스트에 10여년간 머물면서 배출한 박사는 26명, 석사는 100여명에 달한다.

    침구학과 신경과학 연결

    카이스트에서 획기적인 MRI 시스템을 만든 바로 그해에 조 교수는 컬럼비아대를 떠나 UC어바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독지가가 UC어바인에 세계적인 전문가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MRI 관련 연구센터 설립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했고, 이에 UC어바인은 당장 조 교수를 지목했던 것. 그리고 10여년 후인 1996년 조 교수는 MRI 관련 분야 논문 100편을 국제학술지에 게재한 기념식을 가졌다.

    UC어바인에 있을 때 조 교수는 ‘동양의학’이라는 전혀 새로운 영역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 계기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등산을 좋아해 전국 명산을 헤집고 다녔던 그는 1992년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북악산 등반에 나섰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당장은 별로 아프지도 않았는데 이튿날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는 순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뼈에 이상은 없다는 데도 몸 곳곳이 쑤시고 아픈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안다. 병원에 가봐야 ‘그냥 쉬라’는 말 외에 별다른 처방이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침이나 뜸 같은 ‘전통의학’에 의지하는 일이 많다.

    조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답답한 마음에 장안에 소문난 용한 침술사를 찾았다. 10대쯤 침을 맞았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10분 정도 있자 통증이 말끔히 사라지는 게 아닌가. 서양과학에 오랫동안 빠져 있었던 그는 그간 침 같은 동양의학을 전혀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보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조 교수가 신체 부위에 침을 놓았을 때 뇌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연구하게 된 계기였다.

    영구 귀국한 뇌 영상 분야 최고 권위자 조장희 교수

    ① 1975년 미국 UCLA에서 조장희 교수가 처음 개발한 ‘원형 PET’. ② 조 교수는 “뇌 퓨전 영상 기술만이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01년 7월 조 교수는 한국에서 열린 ‘침과 과학’이라는 주제의 국회 석학강연에서 “통증을 덜어주는 침술의 경우 특별한 침점(경혈) 외에 몸 아무 곳이나 침을 놔도 상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주지하다시피 한의사들은 특정 경혈을 침으로 찔러 효과를 낸다. 하지만 인체의 아무 곳에나 침을 놔도 통증이 상당히 가신다는 얘기는 처음이었다. 당시 조 교수는 “통증 경혈로 잘 알려진 태충(엄지와 둘째발가락 사이에 있는 경혈)을 침으로 30초 동안 찌른 결과 통증이 상당히 가셨지만, 침 놓는 시간을 5배로 늘리면 아무 곳이나 찔러도 모두 통증이 가신다”며 “통증에 관해서는 온몸이 경혈인 셈”이라고 밝혔다.

    물론 경혈에 대한 과학적 입증은 이제 시작단계다. 다만 조 교수가 침에 대한 연구를 처음으로 신경과학과 연결시킨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미국의 시사지 ‘뉴스위크’는 2002년 12월 ‘대체의학의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다뤘다. 여기서 조 교수는 “미국에서 많이 보급된 대표적인 대체의학인 침구학의 메커니즘을 뇌영상장치 같은 첨단기술로 규명하고 있는 선구자”로 소개됐다. 조 교수는 한국에서도 침에 대한 연구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한 날 그는 국내 침술사들과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편 조 교수는 PET와 MRI를 최초로 결합한 시스템이 개발되면 한국의 생명공학 수준이 한층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기대감을 가장 크게 충족시킬 수 있는 과학자로 그는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를 꼽고 있는 눈치다. 황 교수와의 인연은 가천의대 뇌과학 연구소 태동기부터 시작됐다. 조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연수하던 가천의대 신경외과 김영보 교수의 소개로 지난해 5월7일 황 교수와 만났다. 당시 황 교수는 조 교수 연구소를 포함해 UC샌디에이고, UCLA 등 유수 대학의 뇌과학 연구소를 탐방한 후 가천의대에서 설립하려는 연구소를 적극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조 교수는 “40여년 외국 생활을 했지만 황 교수만큼 세계적인 파급효과를 낸 과학자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지난 2월 미국이 발행하는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한 연구논문을 게재해 화제를 모았다.

    줄기세포(stem cell)는 원리적으로는 몸의 모든 조직으로 분화될 수 있는 ‘원시세포’다. 우리 몸에서 피부와 심장을 구성하는 세포는 서로 모양이나 기능이 다르다. 그런데 우리의 생명이 시작할 때, 즉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나 수정란을 이뤘을 때 세포는 하나일 뿐이다. 이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세포로 분화돼 점차 피부와 심장 등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현대 의학계는 줄기세포가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손상된 심장 부위에서 ‘건강한’ 심장세포가 자라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관이 많다. 무엇보다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아직 초창기인 까닭에 임상에 적용하기까지는 적어도 10년 이상 걸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평이다. 줄기세포가 원하는 대로 심장세포로 분화될지, 아니면 전혀 엉뚱하게 피부세포로 분화돼버릴지 아직 확신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면역거부반응이다. 지금 줄기세포를 얻는 주요 소스는 산부인과에 냉동 보관된 ‘잉여 배아(수정란)’다. 산부인과에서는 불임 부부에게서 정자와 난자를 얻어 시험관에서 인공적으로 수정란을 만든다. 이 수정란을 여성의 자궁에 이식하는 것이 대표적인 불임치료 방법이다. 이때 단 한 번에 임신에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산부인과에는 항상 여분의 수정란이 준비돼 있다. 실패하면 다시 자궁내 이식을 시도하기 위해서다.

    만일 임신이 쉽게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수정란이 필요 없어진다. 산부인과는 이 남는 수정란(잉여 배아)을 보관하고 있다가 5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폐기시킨다. 이와 같이 폐기처분될 운명에 처한 수정란으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 실험이 활발하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볼 때 이 줄기세포는 엄연히 ‘남의 것’이다. 즉 내 몸에 이식할 때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

    한 가지 해결책이 바로 황우석 교수가 성공시킨 인간배아복제 실험이다. 내 심장에 병이 났다고 치자. 나의 건강한 세포를 귀나 넓적다리에서 하나 떼어내 속이 빈 난자와 결합시킨다. 바로 복제다. 난자는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유전자의 99% 이상은 내 세포에서 제공된 것이다. 이렇게 만든 복제 수정란을 3~4일만 자라게 해서 이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 실험이 바로 인간배아복제다. 결국 내 세포로부터 만들어진 줄기세포이기 때문에 내 심장에 이식해도 면역거부반응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황 교수는 지난 실험에서 줄기세포를 성공적으로 얻었다. 남은 것은 줄기세포의 특성을 파악하는 기초연구와 함께 동물에 적용해보는 실험. 만일 병이 난 부위가 뇌라면 줄기세포를 뇌에 이식해 제대로 손상된 부위가 치유되는지 파악해야 한다. PET와 MRI가 결합된 조 교수의 ‘퓨전시스템’이 완성된다면 손쉽게 실험의 성공 여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9월6일 열린 ‘뇌과학 연구소’ 창립식에 참석한 황 교수는 “배아줄기세포를 뇌에 이식한다고 해도 어떤 형태로 성장하는지 정확하게 관찰하지 못하면 그 적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 퓨전 장비가 개발돼 뇌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게 된다면 줄기세포의 치료 적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만일 황 교수가 추출한 줄기세포를 원숭이 등 동물의 뇌에 이식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한다면 깔끔한 연구결과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미 이 소식을 들은 외국의 과학자들이 장비를 이용하고 싶다는 희망을 계속 전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벨상은 연구의 정직한 대가”

    조 교수는 한국인 과학자로서 ‘노벨상감 후보’를 거론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데에는 근거가 있다. 흥미롭게도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는 영상장치를 개발한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20세기 초 발견된 X선, 1970년대 초 개발된 컴퓨터단층촬영(CT) 장치, 1970년대 중반에 개발된 MRI 장치 모두 과학자들에게 노벨상을 안겨줬다.

    이제 남은 것은 PET와 기능자기공명영상(fMRI) 분야라는 게 관련 학자들의 평이다. 기능자기공명영상은 일본인 세이지 오가와 박사가 1990년대 초 개발한 것으로 뇌 특정 부위의 기능이 활성화되는 현상을 감지해내는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나 치매에 걸린 환자의 경우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일목요연하게 알려준다.

    PET의 권위자는 조 교수를 포함해 두 명으로 압축돼 있다. 다른 한 명은 UCLA에서 조 교수를 ‘폄하’하던 페업스 교수다. 페업스 교수의 스승 격이던 포고시안 교수는 사망했다. 물론 조 교수 자신도 노벨상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만 노벨상 수상이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노벨상 자체를 목표로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노벨상은 연구의 정직한 대가일 뿐이에요. 정부가 실력 있는 과학자를 발굴해서 꾸준히 지원해준다면 한국에서도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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