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당은 사림(士林) 개혁세력과 경륜의 보수세력이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양대 정치세력의 단결은 우리 정치사에서 실로 획기적인 것입니다.
우리 정치에서는 지금도 보수가 진보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진보가 보수에 편승하는 정치적 사술(詐術)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당은 보수와 개혁이 대등하게 만나 이 시대에 맞는 ‘제3의 길’을 모색키로 했습니다….”
3월8일 민주국민당 호(號) 출범을 알린 창당선언문 첫 머리다.
2·18 한나라당 공천파동을 시작으로 불과 19일 만에 급조된 신당의 출발 이후 정치권의 손익계산은 제각기 엇갈리고 있다.
사실상 신당을 배태시킨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총선전략을 전면 재수정했고 민주당은 야권 텃밭이었던 영남권의 표 분산이 수도권 영남표 균열로 이어질 경우 예상되는 ‘어부지리’를 기대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야당의 선명성 경쟁이 불을 뿜기 시작하자 야당대열에 참여키로 한 자민련은 자구책 차원에서 더욱 더 강도높게 김대중대통령을 비난하는 차별화전략에 당운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총선전은 이렇게 여야4당이 서로 물고 늘어지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선거일을 한달 남긴 시점에 나타난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뚜렷한 지지의사를 밝히지 않는 부동층이 50∼60%에 육박하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총선 결과를 예측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제3의 길’을 표방한 민국당 호(號)는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선거전의 중심을 표류하고 있다.
한풀이 노정객(政客)들의 ‘거품정당’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수권세력의 구심점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총선을 지켜보는 관객들이 민국당 호의 순항여부에 관심을 쏟는 것도 이 때문 아닐까.
민국당이 한나라당 공천파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정치권의 일치된 견해다.
이회창총재 진영이 이번 당 공천을 차기 대권 가도를 정비하는 징검다리로 삼으면서 ‘반란의 싹’은 자라났다.
2월18일 발표된 당 공천결과는 가위 충격적이었다. 이총재 체제를 구축하는 ‘일등공신’이었던 김윤환(金潤煥) 고문을 비롯해 이기택(李基澤) 고문, 신상우(辛相佑) 국회부의장, 오세응(吳世應)·김정수(金正秀) 의원 등 당 중진들이 대거 공천탈락이라는 쓴잔을 마셔야 했다.
자신의 목을 죄는 움직임을 전혀 감지못한 김고문은 2월18일 아침에서야 자신이 공천에서 배제된 사실을 알았고 급히 하순봉(河舜鳳)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답변은 “죄송하게 됐다”는 한마디였다.
이총재의 전국구행 요청을 뿌리친 이기택고문은 공천발표 전 기자회견을 갖고 지역구 사수의지를 밝히며 배수의 진을 쳤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낙천 통첩뿐이었다.
권철현(權哲賢)의원과 공천 경합을 벌인 신상우부의장도 이총재에게서 “걱정하지 마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총재가 내세운 공천 명분은 ‘개혁공천’이었다. 거세게 일었던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 운동으로 촉발된 중진물갈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적극 반영했다는 것이다.
“이회창 공천은 昌生의 정치”
이총재 진영의 공천작전은 그만큼 극비리에 추진됐다. 윤여준(尹汝雋) 총선기획단장과 젊은 실무진을 중심으로 개혁성 강화만이 이총재의 대권가도를 정비할 수 있는 핵심 관건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이면에서 이총재 체제를 끊임없이 흔드는 비주류진영의 싹을 미리 잘라야 한다는 정치적 계산이 한몫한 것은 물론이다.
2·18 한나라당 공천 후유증은 비주류 진영의 반발로 확전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광일(金光一) 전의원이 2월20일 기자회견을 갖고 당 공천(부산 해운대-기장을)을 반납하면서 공천파동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
김전의원은 “이총재가 부르짖던 상생(相生)의 정치는 다름아닌 창생(昌生)의 정치”라며 이총재의 독선적 당운영을 질타했다. 이총재 진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어 탈당 및 공천반납 사태가 속출했다. 서울 종로에 출마를 선언한 조순(趙淳)명예총재가 공천 반납을 선언했고 김윤환 신상우의원 이기택고문의 탈당행렬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특히 김전대통령의 오랜 지역구였던 부산 서구에 동교동사단의 청년외곽조직인 연청 부회장 출신인 이상렬(李相烈)씨를 공천한 것은 공천파문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
공천파문 진화에 나선 이총재 진영은 급히 개혁공천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일부 문제가 된 지역구 공천자를 바꾸는 등 내부 전열을 수습했으나 일단 시위를 떠난 신당 창당의 대세를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신당 창당 물꼬는 그동안 다각적으로 이를 모색해온 신상우 부의장이 열었다.
조순명예총재 김윤환·이기택고문 신상우 부의장 등 비주류 중진 4인은 2월20일 저녁 서울 강남에서 긴급 회동, 신당 창당 원칙에 공감했다.
이틀 뒤인 2월22일 오전 신부의장과 자리를 함께 한 이수성(李壽成) 전국무총리와 장기표(張琪杓) 새시대개혁당대표가 신당에 합류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신당 창당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김윤환고문 직계로 낙천한 윤원중(尹源重) 의원이 창당 실무작업에 가세했고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 대변인을 지낸 김철(金哲) 의원이 합류, 이총재를 겨냥한 주포를 자임했다.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상현(金相賢)의원과 박정훈(朴正勳)의원도 궁리 끝에 신당호에 올랐고 박찬종(朴燦鍾) 허화평(許和平)전의원도 그 대열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신당의 물줄기가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급조된 민국당을 따라다니는 별칭은 많다. ‘낙천자 은둔지’ ‘영남당’ ‘제2의 이인제 정당’ ‘민국당 아닌 망국당’ ‘신당아닌 구당’등등.
이런 별칭은 일면 민국당을 공격하는 편에서 일리있는 지적이기도 하지만 민국당의 실체가 총선정국의 변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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