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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살릴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김대중 살릴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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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972년 11월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대표간의 2차 회의에서 한국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김일성 수상이 만나 나눈 대화 내용 가운데 일부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같은 해 5월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해 처음 김일성을 만났으며, 7월4일에는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사안을 협의하기 위한 11월2~4일의 평양 회담에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외에 장기영 전부총리와 최규하 대통령특별보좌관이 동행했다.

김일성-이후락 간의 이 대화 초록은 72년 11월9일 하비브 주한 미 대사가 미 국무장관 앞으로 보낸 비밀 전문에 들어 있는 내용이며, 이 비밀 전문은 최근 비밀 해제된 것을 KISON이 입수한 것이다. ‘11월 2~4일, 평양의 남북조절위원회 회동’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전문은 2급 비밀(Secret)로 분류되어 있으며 ‘배포 금지(NODIS, No Distribution)’라는 등급이 매겨져 있다.

이 전문(A4 용지 5매 분량) 머리부분의 요약란에는 “한국 중앙정보부장이 평양 조절위원회 회담 초록 사본을 주한 미 대사관에 제공해주었음”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이후락과 북한 사람들의 회동, 특히 김일성과 회동은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기술되어 있음”이라고 적고 있다.

따라서 미 국무부의 이 전문은 한국 중앙정보부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며, 평양 회의를 보는 하비브 주한 미 대사의 평가와 의견이 첨부되어 있다. 총 6개 항으로 되어 있는 이 전문은 첫번째 항에서 남북 대표들 간에 ‘연방제’를 놓고 현격한 의견 차가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평양 회의의 본질적 측면은 토의에서 나타난 바 세 가지 단어(합작, 연방, 공동 보조: 역주)로 요약됨. 김일성과 북한 고위 관료들은 시종일관 연방(confed eration)으로 가기 위한 즉각적인 합작(협동 또는 합동 노력으로 번역될 수 있음)을 고집했으며, 이후락 일행은 공동 성명에 나타난 바 공동 보조(정치적 연합의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 공동 협조로 번역할 수 있음)라는 용어를 줄곧 주장했음.”



11월3일 10시15분부터 13시50분까지 점심 식사를 겸해 이후락이 김일성을 만남

A. 김일성이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한국이 통일되리라고 믿지 않고 있으며 통일되기를 바라지도 않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해달라면서 이후락에게 한국인은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간에’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합작(coalition)을 위해 함께 뭉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인은 서로 다른 점을 조정해 조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박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는 조절위원회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행동을 해야 한다면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군사 지원을 받고 있지만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그렇게 많은 지원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방위비 부담이 크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는 또 연방제가 되면 군사적인 노력과 군사 예산에 힘을 쏟는 대신 평화로운 산업 분야에서 협조해야 하며, 연방제 하에서는 양쪽이 있는 그대로의 사회 체제를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락은 시종일관 양측은 서두르지 말아야 하며, ‘급격한 변화’보다는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후락은 또 김일성의 연방제는 고려해볼 만하고 더 연구 검토해볼 만한 것이지만, 박 대통령의 제안은 통일로 가는 특정 단계가 성사되기 전에 ‘민족회의(national conference)’가 열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 이후락은 7·4 공동성명은 평화조약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B. 김일성은 단정지어 말하기를 북한이 분단 국가로 유엔에 가입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했다.

C. 김일성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박정희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촉구했다. 이후락은 이에 대해 공동 협조가 잘 이행되고 조건이 성숙했을 때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대답했다. 대화중에 김일성은 박 대통령이 좋다면 자기 동생인 김영주를 12월이나 1월쯤 박 대통령에게 특사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대사관 노트: 한국 정부는 11월30일 아마도 김영주의 서울 방문과 관련된 중대 발표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음).

D. 김일성은 국호를 ‘고려연방공화국’으로 새로 지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오래 전부터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를 개인적으로 제안하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락이 박정희에게 그의 말을 전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E. 김일성은 또 오래 전부터 자신이 제안해온 10만명 수준의 상호 병력 감축을 되풀이 주장하면서 절감된 군비 예산은 경제와 정치 협력을 위한 공동 개발에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박 대통령이 1980년의 통일을 제안했는데 그때가 되면 김일성은 70대가 되고 박 대통령은 67세나 68세가 되므로 두 사람은 나이가 너무 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후락은 박 대통령의 말은 늦어도 1980년까지는 통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응답했다.

한국일보 사장 장기영은 김일성에게 통일이 얼마나 빨리 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김일성은 만약 박 대통령이 동의만 하면 우리는 한 달 안에, 아니 하루만에라도 통일할 수 있다고 답하면서, 그러나 불행하게도 박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북한의 동기를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F. 김일성은 덧붙이기를, “솔직히 말해서 나는 통일된 조국의 수상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내 철학 저술을 다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기는 누가 통치를 하느냐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통일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일성은 “박 대통령에게 이렇게 전해주십시오. 나는 통일을 밀어붙이는 게 아니며 서두르지도 않는다고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후락은, 박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며, 공동의 노력이 통일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G. 이후락은 남쪽에서 공산주의자를 체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북에 와서 공산주의자와 협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이후락은 공산주의자와 제휴를 시도할 만큼 용감하기 때문에 그와 동행한 최규하나 장기영보다 더욱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이후락은 자신에게 영웅 칭호를 부여하겠다는 김일성의 제안을 극구 사양했다.

H. 김일성은, 남북조절위원회가 대화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공동의 노력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락은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의 철학도 김일성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김일성, 청와대 기습사건 사과

다음은 1972년 11월20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하비브 주한 미 대사를 만나 당시 진행중이던 남북조절위원회의 진행 상황 및 향후 전망, 이후락 부장의 김일성에 대한 평가 등을 주제로 나눈 대화 내용 가운데 주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이후락과 하비브의 이 대화 내용은 1972년 11월22일 하비브 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2급 비밀(Secret) 전문(Telegram)에서 밝혀진 것이다.

‘남북 관계 진전에 대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토론(Discussion with ROK CIA Director Lee Hu-Rak on South/Nor th Developments)’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 비밀 전문은 A4 용지 6장 분량이며 대통령, 국무장관, 임무 책임자 등 특수 인가자에게만 공급하도록 되어 있는 ‘배포 금지(NODIS, No Distribution),의 등급이 매겨져 있다.

이 전문은 남북조절위원회의 평양 2차 회의(11월2~4일)가 끝나고 서울에서 열릴 3차 회의(11월30일)를 1주일 가량 앞둔 시점에 타전되었고, 남북한 정부가 남북조절위원회를 통한 정치 대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입을 통해 미국 측에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남북 관계 진전에 대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한 토론

요약: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11월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조절위원회 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기본 주장을 변경하거나 논의의 진행 속도를 가속하지도 않았다고 말했음. 소위원회가 열리게 되어 있긴 하지만 한국 정부가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할 때까지는 가동하지 않을 것임. 그는 11월30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남북조절위원회에서 특별한 진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음. 박 대통령과 김일성의 정상 회담은 가까운 시일 안에는 열리지 않을 것임. 평양은 남북 적십자 회담을 통한 인도적 분야의 진전에 진정한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음.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이 지금 당장은 개정되지 않을 것임. 이후락은 남북 대화 및 외교 정책에 대한 한국 정부의 상황과 관련, 조율의 필요성을 인정했음.

1. 1972년 11월20일, 한국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만나 한반도 내부 상황과 관련, 의견 교환에 따른 남북한 관계의 진전에 대해 토의했음.

2. 이후락에게 11월2일부터 4일 사이에 열린 2차 남북조절위원회 기간에 북한을 방문하면서 느낀 일반적인 인상, 특히 김일성과 45분간에 걸쳐 개별 면담할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음. 이후락은 이번 회담은 특별히 중요한 것은 없으며, 주로 이전의 토의 내용을 재검토했다고 했음. 김일성은 1968년 1월21일 발생한 청와대 습격 및 실패한 박 대통령 암살 기도를 설명하고 사과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음. 김일성은 재차 북한의 강경 분자들을 비난하고, 박 대통령에게 자신의 사과를 전해줄 것을 요청했음.

이후락은 평양 방문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을 아직 정립하지 못하고 있었음. 그러나 그는 평양의 목표는 북한의 혁명 공작이 한국에 잘 먹혀드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 북한은 한국의 경계 태세가 늦춰지고 반공에 대한 수위가 약화되며 반공법이 개정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임.


남북한 ‘시간 벌기’

3. 김일성과 이후락은 경제 분야에 대해서도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음. 김일성은 특히 북한의 광물 자원에 대해 열을 올리면서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음. 이후락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본 북한 사람들에 따르면, 500만 명의 노동력 가운데 약 100만 명이 북한의 광물 자원 개발에 투입되어 있다는 것임. 이후락은 북한이 경제 자립을 시도하면서 노동력을 비경제적으로 분배하고 있다고 결론지었음. 이후락은 또 농업과 여러 방면의 제조업 분야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노동력이 전용되고 있다고 보았음. 김일성은 분명히 남북한의 경제 교류를 원하는 것 같았음.

4. 한국이 남북조절위원회에 설치되어 있는 소위원회에서 경제 및 군사 교류를 추진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음. 북한은 남북한을 갈라놓고 있는 주요 현안들에 대해 토의하고자 하는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임. 이후락은 소위원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대답했음. 소위원회를 열기로 했지만 한국이 소위원회를 개최할 준비가 됐다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가동되지 않을 것임. 한국은 북한이 재촉하는 현안들에 대해 토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그런 주장을 완강하게 고수할 것임.

한국이 진척시킬 수 있는 분야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후락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문화·스포츠·경제 교류가 가능하겠지만 소위원회 가동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답했음. 조절위원회가 적십자 회담의 진전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이후락은, 평양이 인도적 분야의 진척에 진정으로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기 때문에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음.

5. 북한은 분단국으로는 유엔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김일성의 언급을 상기시키면서, 유엔 문제에 대한 많은 토의가 있었는지 물었음. 이후락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면서, 평양은 한국이 거부권 때문에 유엔에 가입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음. 이후락이 받은 인상으로는 김일성은 기본적으로 평화 공존의 기간, 즉 전쟁 없는 상태를 원한다는 것임.

연방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후락은, 연방제는 ‘생각할 수 없는(not thinkable)’ 것이라고 말했음. 김일성은 연합(federation)이나 연방(confederation)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명백하게 공식화하지 못했음. 이후락은 김일성이 막중한 군사비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찾고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았음.

6. 평양이 촉구하는 큰 현안들을 한국이 회피하려 하기 때문에 남북 대화가 결렬될 가능성은 없느냐, 어떻게 대화를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을 했음. 이후락은 통일은 남북조절위원회라는 방법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음. 이후락은 자유 사회와 공산 사회가 합쳐지기를 바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거듭 말하면서, 그러나 남북한은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다름아닌 시간벌기(buy time)라고 했음.

한국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강력한 국가 건설을 위한 것임. 즉 서독이 동독의 우위에 서 있는 것처럼 남한이 북한의 우위에 서야 한다는 것임. 북한 역시 시간이 필요함. 자본주의 체제의 내부 모순으로 남한이 취약해지고 혁명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임. 비록 목적은 서로 다르지만 남북 양측은 시간이 자기 편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대화를 지속하게 될 것임. 하지만 한국은 평양이 채택하고자 하는 큰 현안들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 한국 정부는 김일성 이후를 바라보고 있음.


이후락 남북조절위원회 의장직 기대

7. 2차 남북조절위원회는 진전 속도가 빨라진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고 말하자 이에 대해 이후락은, 외견상 진전된 것 같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사실은 진척된 것이 없다고 말했음. 남북 양측은 자신들의 게임 계획(game plan)에 집착하고 있으며, 실제로는 어떠한 실질적인 양보도 하지 않고 있음. 이후락은 이전의 접근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겉보기에 바뀐 듯 보이는 것은 형식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전문가가 취하는 한 방편임.

8. 이후락은 조절위원회가 1년에 최대한 5회 정도 개최될 것으로 생각하고 집행위원회는 좀더 자주 정기적으로 열릴 것으로 기대했음. 그는 남북조절위원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위원회는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가 북한의 ‘평화 공세(peace offensive)’를 무디게 만드는 도구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임. 그는 조절위원회를 모든 남북 관계가 그쪽으로 통해야 하는 ‘통합된 창문(integrated window)’으로 묘사했음.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남북 관계 진전에 어떤 구실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는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조절위원회를 통해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음. 그는 11월30일의 3차 조절위원회는 평양의 2차 회의와 유사할 것으로 보고 특별한 진전은 기대하지 않았음. 11월23일부터 정홍진(중앙정보부 협의조정국장: 역주)과 김덕현(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지도원: 역주)이 회의 의제와 합의서 초안 준비에 착수할 것임.

박 대통령의 재가가 있어야 되는 사안이긴 하지만, 이후락은 장기영이 3차 조절위원회의 의장 대행이 될 것으로 보았음. 그는 북한이 이 안에 반대해주고 결국에는 자신이 의장 자리를 유지하게 되기를 기대하고(expect) 있었음. 조절위의 다른 한국측 위원은 최규하, 정홍진, 강인록(전문에는 Kang In-Rok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강인덕의 잘못 표기인 것 같음: 역주)이 될 것임. 이후락은 평양이 소위원회 가동을 촉구할 것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할 의사가 없었음.

9. 이후락은 박정희와 김일성 사이의 정상 회담은 가까운 장래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음. 그는 5년이나 10년 후 국제적 상황이 호전되거나, 한국 경제가 충분히 좋아졌을 때, 또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외교적으로 승인받는 것을 한국 정부가 막지 못할 경우에는 정상회담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음.

약 5년 후에는 한국의 경제 상황이 북한 경제보다 우위를 점하게 될 것임. 그렇게 되면 김일성이나 그의 후계자는 남한을 접수하려는 그들의 희망을 포기할 것임. 현재 평양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심각한 퇴보를 겪게 될 것이며, 이 때문에 혁명적 상황이 야기될 것으로 믿고 있음. 따라서 현재는 정상회담에 적절한 시기가 아님.

10. 한국 정부가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개정할 계획이 있는지를 물었음. 이후락은 자신이 개정 가능성을 암시하는 말을 공개적으로 한 일이 있음을 상기시켰으나 지금 당장 시행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음. 한국 정부의 다른 지도자들도 개정에 호의적이지 않으며, 한국 국민도 자칫 이를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임. 국민들은 한국 정부가 북한에 너무 가깝게 접근하고 있으며 공산화가 가능할 정도로 개방하고 있다고 걱정할 것임. 이후락은 조심스럽게 나아갈 것이며 내부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음.

그는 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두 가지 결의안이 통일을 위해 채택되기를 원했음. 첫째는 박 대통령에게 평화통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전권을 부여하는 것이고, 둘째는 남북 교류에 생산적으로 종사하는 남한 국민들이 반공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임.

11. 이후락이 어려운 현안들에 대해 북한과 의견을 나누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현안들에 대한 토론은 이미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고 그에게 말해주었음. 본인은 한국 정부는 평양이 제기한 현안들을 놓고 계속 토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 아직까지는 한국 정부가 남북한 대화와 일반적인 외교 정책 간의 조율에 성공하지 못한 것 같이 여겨짐.

예를 들면, 한국 정부의 대유엔 정책, 남북한 중 누가 국제적인 대표성을 갖느냐 하는 문제, 일본의 북한 접근에 대한 한국 정부의 견해 등임. 이후락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조율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음. 그는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가 북한을 승인하려는 것을 계속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음. 그러나 이후락은 국제적 조류가 이런 노력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가 어려우리라는 것은 인정했음.

12. 마지막으로 이후락은 북한의 강경파(har dliners)와 훨씬 현대화된 분파(more modern elements) 사이에 벽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음. 그는 또 명백한 증거는 없지만 한국에 접근하는 자세에서 김일성은 좀더 온건한(more moderate)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음. 반면에 북한 군부의 주류는 남북한 관계의 진전에 덜 호의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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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환·정광호 미국 KISON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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