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들어 총!”
“전진! 신고합니다. 중위 이태중외 O명은 XX지점의 DMZ작전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2001년 12월 X일 일몰 XX분전, 영하 10도의 날씨에 완전군장 차림의 ‘무장병력’이 ‘개선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개선문은 서부전선 X지점에 위치한 DMZ(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통문.
O명의 병력이 오늘 받은 명령은 DMZ XX거점을 점령해 매복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적의 기습적인 도발을 막기 위한 ‘첨병(尖兵)’ 임무는 내일 아침까지 계속된다.
“한방에 때려잡겠습니다! 부모님을 위해 또 조국을 위해, 서부전선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매복작전에 들어가는 김경덕 상병의 각오다.
살아있는 병사들의 눈
작전에 투입되는 장병들의 눈은 매섭게 살아있다. 혹한의 날씨도 ‘군기’ 앞에선 적수가 되지 못한다. 소대장의 호출에 관등성명을 대는 모습은 고생을 모르고 자라 ‘군기’가 예전같지 않을 거라는, 신세대 장병에 대한 선입견과는 크게 달랐다.
대대장에게 작전 투입신고를 마친 장병들은 굳게 닫힌 통문을 열고 사주경계를 하며 북을 향해 ‘진격’했다. 통문은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매복병력이 이른 아침 개선할 때까지 절대 열리지 않는다.
한반도는 현재 정전상태가 아닌 휴전상태. 따라서 갈대숲 속으로 사라진 매복병력은 ‘훈련’이 아닌 ‘실전’에 나선 것이다. 한 병사는 “매일 반복되는 일과지만 통문을 통과할 때마다 전쟁터로 나간다는 생각에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매복한 장병들은 언제 적과 조우할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한겨울 밤 내내 추위와 싸우며 한치의 두려움 없이 경계근무에 임해야 한다.
DMZ작전에 투입되는 장병들이 비무장지대 북쪽으로 사라지자, 다른 한 무리의 병력이 개선문을 향해 행군해왔다. 남방한계선 합동 경계근무 병력이 근무지에 들어가기 위해 도착한 것이다.
이들은 서부전선 철책선을 따라 세워진 초소에서 적의 침투를 감시하고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 소대장과 무전병을 선두로 한 병력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초소로 줄을 지어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들어갔다.
육군 전진부대가 관할하는 서부전선 X통문의 황혼 무렵 풍경이다. 전진부대는 1947년 12월 육군에서 가장 먼저 창설된 사단으로 현재 서부전선 최전방에서 국토 방위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서부전선의 한 철책초소. 전진부대 병사 두 명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멀리 국군 GP와 북한군 ‘민초’가 한눈에 들어온다. GP와 민초는 같은 개념으로 DMZ 내에 자리잡은 요새를 말한다. 북쪽 하늘에서 독수리가 까치에게 쫓기는 모습이 이채롭다. 독수리 뒤로 개성외곽 도시가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온다.
“휴전선 근무에 처음 나섰을 때는 적이 언제 내 목숨을 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습니다. 낮보다 시야가 좋지 않은 야간 경계근무가 훨씬 힘듭니다. 야음을 틈타 수로 등을 이용해 적이 침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초소근무를 하고 있는 오세욱 일병의 말이다.
1947년 국군 최초로 창설된 사단
한겨울 초소에서 사병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영하40도까지 내려간다. 추위를 쫓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근무를 열심히 서는 것. 눈을 말똥말똥 뜨고 경계근무에 집중하지 않으면 졸음이 와 추위를 견딜 수 없다고 한다.
야간 경계근무는 한 초소씩 이동하는 ‘밀어내기’ 식으로 이뤄진다. 병사들이 긴장이 풀려 해이해지는 것을 막고 오랜 시간 경계근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초소 중 하나는 ‘대기초소’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대기초소에서 병사들은 라면을 끓여 먹으며 추위를 달래고 휴식을 취한다. 초병들은 대기초소에 들어갈 시간을 기다리면서 경계근무의 전반부를 보내고 그곳에서 따뜻해진 몸으로 후반부 근무에 대한 각오를 다진다.
전진부대 예하의 쌍용부대 이상규 상병은 겨울철 철책근무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체감온도가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전방의 추위는 살인적입니다. 그러나 야간근무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 때 느끼는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지루하고 힘든 일과지만 남들보다 보람찬 군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전진부대는 1947년 12월 ‘남조선 과도 입법정부’ 통위부(국방부)에 의해 서울 남산동에서 ‘조선경비대 제1여단’이라는 명칭으로 전군 최초로 창설된 사단이다. 이후 경기도 포천, 강원도 홍천으로 주둔지를 옮겼고 경기도 연천을 거쳐 1971년 3월 전진부대 역전의 용사들의 혼이 서린 XX지역으로 돌아와 현재까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O번국도를 따라 전진부대가 위치한 XX지역으로 들러가는 길엔 대(對)탱크 방어진지와 낙석(탱크 방어를 위해 만들어놓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서울 방향으로 종(縱)으로 발달한 도로가 전시에는 적군의 ‘고속침투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놓은 것. 전진부대가 책임지고 있는 서부전선 XX지역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45Km. O번국도를 통해 서울로 진입하는 데는 불과 30~40분 정도면 충분하다.
예로부터 이곳은 서울과 평양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고, 삼국시대 이후 국가가 전란에 휩싸였을 때마다 적과 아의 ‘주력’이 집중,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혁혁한 전공(戰功), 전사(戰史)를 빼고 전진부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전진부대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전진부대가 오늘의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인천상륙작전의 초석이 된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부터. 1950년 8월12일부터 25일까지 계속된 다부동 전투는 6·25 전쟁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전투 중 하나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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