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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자들의 헌법재판소 진단

인적 구성 다양화하고, ‘과도한 정치성’은 배제해야

헌법학자들의 헌법재판소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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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습헌법’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헌재는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다양한 비판론을 수용해 체질을 개선하고, 소수자·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며 국민의 기본권 신장에 기여하는 헌재 본연의 자세를 추스를지, 아니면 비대해진 사법권력에 취해 한층 더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될지 헌법학자들은 애정과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헌법학자들의 헌법재판소 진단
“관습헌법을 인정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수도가 서울이라는 게 관습헌법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를 억지로 끼워 맞춘다 하더라도, 관습헌법으로 정해진 것을 바꾸기 위해 (성문)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누가 봐도 억지다.”-고려대 장영수 교수

“대통령 탄핵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판결로 볼 수 있다. 국민의 70%가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다는 점을 의식해 그에 맞게 판결하다 보니 무리한 결론이 도출됐다. 역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판례 중 이렇게 논리가 비약된 적은 없다. 성문헌법의 보충적 효력을 갖는 관습헌법을 바꾸는 것은 헌법이 아닌 법률개정 절차로 가능하다.”-한양대 권형준 교수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법률이나 공권력이 현재 자신의 기본권을 직접 침해하는 경우여야 한다. 그런데 수도가 서울이어야 한다는 데서 무슨 기본권이 나오나. 즉 청구인 적격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헌재는 궁리 끝에 청구인들이 자격을 갖도록 헌법 130조의 국민투표권을 끌어들였다. 수도이전은 헌법개정 사안이기 때문에 국민투표가 필요한데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았으니 기본권 침해라는 것이다. 이는 상당한 오류다. 청구인 적격 개념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헌법소원이 폭주할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자신의 기본권을 직접 침해당하지 않은 사람도 국민투표권을 내세워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건국대 임지봉 교수

“법리적 논증이 잘못됐다. 논증만 제대로 됐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결정문에서 불문·관습헌법을 들먹인 탓에 불문헌법으로 어떻게 성문헌법을 바꾸느냐는 시비가 발생한 것이다.”-허영 명지대 초빙교수

법조인 재판관 구성의 한계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결정(10월21일) 후폭풍이 거세다. 겉보기엔 헌재 결정이 정당했고 그 위상도 높아진 듯하다. 결정과 동시에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된 정부의 모든 일정은 중단됐다. 여권은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비록 충청권의 반발이 거세긴 하지만 국민여론도 헌재에 우호적인 것으로 보인다. 설문조사 결과 6 대 4 또는 7 대 3의 비율로 헌재 결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 까닭이다.

학계에서도 헌재 결정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결정에 대한 정서적 지지와 논리에 대한 비판은 별개다. 취재 결과, 이번 결정이 헌재의 신뢰성을 크게 훼손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뷰에 응한 헌법학자와 변호사 중 상당수는 헌재 결정에 대한 찬반을 떠나 그 결정을 뒷받침한 논리가 매우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정치논리에 치우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글머리에 언급한 일부 학자들의 의견은 그중 일부다. 최고법인 헌법을 해석하는 기관으로서 어떤 국가기관보다 법논리에 충실해야 할 헌재로서는 듣기 민망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젊은층이 주축인 네티즌 사이에서도 비판적인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헌재 결정을 격렬히 비난한 김용옥 전 교수의 ‘오마이뉴스’ 특별기고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오마이뉴스에는 ‘좋은 기사’에 대해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제도가 있다. ‘가련하다 헌재여! 당신들은 성문헌법 수호자였거늘…’이라는 제목의 김씨의 글에 대한 독자 원고료는 이틀 만에 1000만원을 돌파해 이 부문 신기록을 세웠다. 원고료는 11월 중순 현재 300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는 10월28일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헌법재판소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학자들과 변호사들은 한 목소리로 이번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헌재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한나라당은 헌재 결정에 대해 적극지지 견해를 밝힌 반면, 열린우리당은 ‘사법쿠데타’로 규정하며 “입법권이 훼손됐다”고 반발했다. 우리당은 ‘분풀이라도 하듯’ 헌재 재판관 전원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토록 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대흐름, 사회 다양성 반영 못해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결정을 계기로 불거졌지만, 헌재 개조론은 사실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헌법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헌재의 조직과 운영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문제점은 재판관 구성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헌재법에 따르면 헌법재판관 자격은 15년 이상의 법조 경력을 가진 40세 이상의 법관자격자로 한정돼 있다. 따라서 판검사나 변호사 외에는 재판관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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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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