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막상 인사발표가 있었던 9월14일, 김 사령관의 이름은 명단에 없었다. 애초에 잘못된 명단이 돌았던 것인지, 그 사이 진급대상이 바뀐 것인지는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설명이 엇갈린다. 분명한 것은 이 ‘잘못된 명단’ 건과 관련해 국회와 정보기관 등에서 연락업무를 담당하는 군 관계자 상당수가 기무사령부의 보안조사를 받았고 일부는 징계처분을 당했다는 것. ‘인사 관련 유언비어 유포자 처벌’이라는 게 국방부의 공식입장이지만, 군 관계자들 사이에서 기무사의 행보를 두고 뒷말이 나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장면2. 10월 중순 이른바 ‘대통령 측근’으로 불리는 한 인사는 ‘국방개혁 결실방안’이라는 의견서를 김태영 장관에게 건넸다. 국방예산 합리화 문제와 관련해 여러 차례 ‘소신’을 피력한 바 있는 이 인사의 의견서에 국방부 고위관계자들이 긴장했던 것은 불문가지.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인사와 예산, 조직 등 다양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이 의견서가 공격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기무사의 최근 행보였다. ‘사령관이 대통령을 독대한다’는 소문이 퍼진 데다 민간인 사찰 의혹이 제기되는 등 기무사의 움직임이 군과 정치권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는 게 그 요지였다. 이 문제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정권에 만만찮은 부담과 후유증으로 남을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면 3.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남북 해군 간 교전 사태가 벌어진 직후인 11월 중순 국방부 회의. 이날 장수만 국방부 차관은 참석한 국방부와 합참의 고위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전한다. 교전과 관련한 주요 상황정보가 자신에게 실시간으로 올라오지 않았다는 것이 그 골자. “차관이 이렇게 중요한 사건에 관한 정보를 신문을 보고 알아야 하느냐”고 일갈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 차관은 보안정보의 언론 유출 문제를 격한 어조로 비난했다고 알려져 있다.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이에 대한 군 고위관계자들의 반응. “국방부 차관은 다른 부처와 달리 장관부터 따질 경우 서열 10위에 해당하는 자리인데, 경제관료 출신인 장 차관이 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거나 “장 차관 역시 지난 여름 예산문제와 관련해 장관을 건너뛰고 청와대와 직접 논의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이야기였다. 8월 이상희 전 장관의 ‘항명성 서신 파동’ 이후 국방부 내부의 정서를 보여주는 반응이었다.
세 개의 힘
앞서 살펴본 세 가지 에피소드는 최근까지 국방부와 군 주변에서 세 종류의 파워그룹이 어떻게 서로 얽히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각각 군 고위관계자들을 포함한 국방부 내부인사들, 새 정부 들어 국방부에 입성한 이들을 비롯한 이른바 대통령 측근 그룹, 그리고 김종태 사령관을 필두로 한 기무사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국방부와 기무사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면, 두 번째는 측근그룹과 기무사 사이의 이상기류, 세 번째는 외부출신 인사들과 내부출신 인사들 사이의 길항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지난해 이후 이들 세 가지 힘은 꾸준히 긴장관계에 있었고, 당분간 비슷한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의 흐름과 국면 변화에 따라 얽히고설킨 힘의 균형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대체적인 구도는 여전히 뚜렷하다. 특히 국방개혁과 군사 분야 합리화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이들 힘과 힘의 충돌이 어떤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낼지도 쉽게 점칠 수 없는 형국이다.
이들이 새 정부 출범 이후 군과 국방부 주변에서 어떻게 얽혀왔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앞으로 전개될 그림은 또 무엇인지, 지금부터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