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신고전학파라는 머리표가 붙은 주류 경제학은 마거릿 대처(85), 로널드 레이건(1911~2004) 시대를 겪으면서 이념으로 격상했다. 사상도 정상에 오르면 공격받게 마련이다. 하이에크보단 카를 폴라니(1886~1964)를 닮은 제도학파가 숫자를 무기 삼아 주류에 맹공을 퍼붓는다. 장하준(47)이 젊은 공격수다.
공산주의, 자유주의 같은 이념은 강하면서도 무섭다. 항공모함 무게로 사람을 짓누르며 세상을 견인한다. 주체사상이라는 참혹한 이념에 매몰된 북한이 그렇다. 사상 덕분에 기득권을 누리는 집단은 다른 생각은 틀렸다고 고집 부린다. 이념을 바꾸면 변절자로 낙인찍는다. 옛 동지가 입에 칼을 문다.
탁자, 책의 주인은 홍진표(47) 시대정신 이사. 사상을 바꾼 전향자면서 동지를 배신한 변절자다. 청춘을 바친 이념을 버렸다. 한나라당이 차관급인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그를 추천했다. 좌파 언론 헤드라인은 거칠었다. “인권위 문 닫자는 얘기”(오마이뉴스), “홍진표가 인권위원이라니”(프레시안)
상임위원으로 추천받은 뒤로, 그는 언론인을 만나지 않았다. 좌파가 휘두르는 매를 맞기만 했다. 거칠 게 없어 보이던 달변이 사라졌다. 설화(舌禍)로 낙마할까 걱정하는 듯하다. 국회 인준 절차가 남아서다. 비겁하단 생각이다. 공격적으로 물으려 애썼다. 입에 칼을 물진 않았지만.
서울大 두 번 합격
사무실이 춥다. 난방이 엉망이라고 입을 뗐다. 바람이 살을 엔다고 덧붙였다. 어색한 분위기를 녹이는 데 날씨 얘기만한 것도 없다. 그가 소설가와 맺은 인연을 아이스브레이커로 꺼내놓는다. 전기난로라도 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석영 선생 기사 썼대요.”
“아, 네. 황 선생 소설을 좋아합니다. 새해 인사 물으면서 볕 좋은 날 막걸리 들이켜기로 했어요.”
‘신동아’는 2010년 11·12월호, 2011년 1월호를 통해 표절 시비를 가리면서 황 작가를 몰아세운 일이 있다.
“황석영 선생 배포 하나는 대단해요. 범민련 활동할 때 황 선생이 북한에 있었거든요. 북한에서 우리와 상의 없이 황 선생을 범민련 대변인으로 임명해서 발표해버렸어요.”
“남측본부 대변인요?”
“아뇨. 전체 대변인. 남측 범민련에선 황당했죠.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황 선생 북한에서 행적 잘 모르죠. 김일성이 늙어서 판단력 흐릴 땐데, 미국에 조총련 같은 친북 교포 단체를 만들려고 했어요. 김일성이 황 선생한테 그 일을 맡겼죠. 황 선생은 알았다, 하겠다, 해놓곤 각국을 떠돌다 한국으로 들어와버렸습니다. 김일성 상대로 장난 친 거죠. 아무튼 배짱 하나는 최고예요.”
‘시대정신’은 자유주의를 표방한 시민단체면서 두뇌집단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규제완화에 방점을 찍는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데올로그 격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보다 하이에크를 믿고, 장하준보다 프리드먼을 신뢰한다. 자유기업원은 벗이고, 참여연대는 맞수다.
“서울대 83학번이죠?”
“아뇨. 82학번. 경제학과로 입학했다 시험 다시 봐 83학번으로 정치학과에 들어갔어요.”
“고향에 현수막이 두 번 붙었겠네요.”
“1학년 1학기 때부터 운동권이었죠. 수업을 아예 안 들어갔어요. 광주 비극 2년 뒨데, 일종의 반발이었죠. 시험도 안 봤어요. 학점이 0.87이 나왔더군요. 졸업정원제 시절인데, 선배들이 졸업 못한다, 그러대요. 그래서 자퇴하고 학력고사를 봤는데,성적이 나쁘지 않았어요. 정치학과를 골랐죠.”
“어차피 졸업 못했는데, 쓸데없는 짓 했네요.”
“제적 몇 번 당하고 재입학하고 그랬죠. 1990년대 말에 마지막으로 복학했는데, 학교 분위기가 수업 안 들으면 학점 안 주는 걸로 바뀌었더군요. 4학기를 더 다녀야 했는데, 졸업장 받으려고 사회생활을 포기할 순 없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