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총리실 원충현 수첩’ 블랙코미디 사찰행태

청와대 내 엉뚱한 간부에 보고 수첩에 오른 이완구 “이 정권이 망나니짓 한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0-12-21 18: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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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첩 “청와대 사회수석실엔 왜 보냈나?”
    • “이완구 여권과 결별수순…비리 채증”
    • “사무관 승진, 7…, 5…”
    • 이완구 “충남홀대론 폈다고 뒤집어씌워”
    ‘총리실 원충현 수첩’ 블랙코미디 사찰행태

    이완구 전 충남지사(왼쪽) 사찰 내용이 담긴 ‘원충현 수첩’

    민주당은 최근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2008년경 정치인과 민간인을 사찰해 청와대 등에 보고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원충현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장의 수첩을 폭로했다.

    민주당은 사찰 문제의 파장을 길게 가져가려는 듯 여러 번에 걸쳐 공개했다. 2010년 10월21일 박영선 의원은 ‘BH 지시사항’이 적힌 수첩 내용을 제시했다. BH는 청와대(Blue House)의 약자라고 한다. 12월7일 이석현 의원은 ‘2B’라고 적힌 수첩 쪽지를 내놓으면서 “2B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인 것 같다”고 했다.

    ‘신동아’가 입수한 50여 쪽의 이 수첩 메모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이혜훈 의원, 서상기 의원, 이완구 전 충남지사, 이세웅 전 한국적십자 총재, 김광식 전 한국조폐공사 감사, 신필견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이철 전 코레일 사장,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 경북대병원의 동향정보를 조사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전파효과 : 몰랐다

    수첩에는 “7. 31. 동향보고 수신자”라면서 “경찰청 - 이OO, 국정원 - 양OO, 사회수석실 최OO, 인사수석실 장OO, 국정원 가OO”이라고 쓰여 있었다.



    수첩에 기록된 “인사수석실”과 “사회수석실”은 청와대 부서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수첩이 작성될 무렵인 2008년 청와대 직제 표에 따르면 인사수석비서관 대신 인사비서관이, 사회수석비서관 대신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이 있었다.

    수첩의 인사수석실과 사회수석실은 청와대 인사비서관실과 사회정책수석실의 오기(誤記)일 수 있었다. 아니면 적힌 내용이 현실과 다른 엉터리일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청와대 직제 표에 따르면 청와대 인사비서관실과 사회수석실엔 수첩에서 동향보고 수신자로 지목된 장OO과 최OO라는 공직자가 실제로 근무하고 있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수집한 동향정보가 청와대로 보내져 공유되어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최OO씨는 보건복지부에서 청와대로 파견된 공직자였다.

    수첩의 다음 장 쪽지에는 최OO씨에게 동향정보를 보고한 것은 청와대 내 엉뚱한 간부에게 보고한 것이고 이로 인해 전파효과(보안누설)가 우려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수첩에는 최OO씨에게 보내라고 한 지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놓고 내부적으로 옥신각신한 정황도 담겨 있었다. 정권의 블랙코미디 같은 행태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관련된 쪽지 내용 중 일부다.

    “최OO 국장에게까지 보낸 이유” “청와대 보고여부 → 국장이 지시” “판단” “전파효과 : 몰랐다” “보고 지시” “보고서를 작성하란 지시는 하지 않았다”

    당 지도부와 고성 오가

    수첩에는 또한 2008년 이완구 당시 충남지사가 ‘충남홀대론’을 펴고 있다는 이유로 이 지사의 비리를 채증(採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다음은 쪽지의 관련 내용이다.

    “「시·도지사」” “이완구 충남지사” “「충남 홀대론」” “민생관련 치안협의회” “고함…결별 수순” “사무관 승진 7… 5…” “비리채증” “김우근(충남)”

    이완구 전 지사는 자신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비리 채증 대상에 지목된 것에 대해 “이 정권이 망나니 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은 이 전 지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총리실 원충현 수첩’ 블랙코미디 사찰행태

    민간인 사찰로 물의를 일으킨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 요즘 문제되는 원충현 수첩에 지사 이름이 언급되어 있는데요.

    “그렇습니까?”

    ▼ 2008년경 ‘민생관련 치안협의회’라는 모임에서 충남홀대론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게 아니고. 내 기억으로는 2008년 8월 쯤 한나라당의 박희태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 박순자 최고위원 등 고위당직자들이 지방순회를 다닐 때가 있었어요.”

    ▼ 네.

    “그때 그분들이 도청에 와서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았죠. 내가 세종시와 함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와 박순자 최고위원 간에 언성이 높아졌어요. 고함소리도 나고. 내가 화를 좀 냈죠. 그때 홀대론이라는 표현은 안 썼습니다만.”

    ▼ 수첩에 적힌 대로 그 무렵 고성이 있었고 충남홀대론이라는 취지로 말이 오가긴 했군요.

    “‘대통령 공약사항인데 지켜야 하지 않느냐. 과학벨트 충청권에 주겠다고 했으면 줘야 하지 않느냐’는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좀 격앙이 됐죠.”

    수첩 내용에 이 전 지사의 설명을 대입하면 이 전 지사가 한나라당 지도부에 고성으로 충남홀대론을 편 것을 두고 수첩의 작성자는 한나라당 소속인 이 전 지사가 탈당 등 결별수순을 밟는 것으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 이어 수첩 작성자는 결별 수순을 밟고 있으니 이 전 지사에 대한 비리채증이라고 적은 것이 된다. 이어지는 이 전 지사와의 대화내용이다.

    ▼ 수첩에 ‘사무관 승진 7… 5…’라고 되어 있는데 이건 무슨 뜻이죠?

    “사무관 승진? 나는 충남지사 할 때 공무원 인사에는 관여 안했으니까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내 손으로 인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취임해서 사퇴할 때까지 지사는 관여하지 않고 도청 실·국장들 협의회로 인사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니까 도지사가 인사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죠.”

    ▼ 사무관 승진과 같은 일에 개입한 적도 없으니 그와 관련된 의문의 소지도 전혀 없다는 말씀이시네요.

    “나는 인사를 안 했으니까 아예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이죠. 내가 그렇게 쭉 해와서 후임 지사도 바꿀 수 없어요. 안희정 지사도 실·국장들에게 맡겨놓는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그 시스템을 일부 보완해서 다면평가, 직원들끼리 상호 평가하는 항목 정도만 더 집어넣었다고 들었어요. 수행비서한테도 알리지 않고 아들 비밀장가 보냈어요. 경조사 때 일절 외부에 연락 안했습니다. 충남도청 옮기는 데 이전 예정지에 1934년 증조할아버지가 사놓은 땅이 있더라고요. 내가 그 땅을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았으니 보상을 받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러나 그걸 포기했어요. 국고에 귀속시켰습니다. 2700만원 정도로 큰돈은 아니지만요. 지사가 보상 받으면 사업 투명성에 문제가 있을까 봐서 그랬던 거죠.”

    ▼ 실·국장들 협의로 승진시키면 투명성이 제고되는 것인가요?

    “함께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해 결정하니까 도지사는 물론 실국장도 마음대로 못하죠. 그래서 정착이 된 거예요. 이 제도를 폐지하면 공무원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3년간 비리나 잡음 없이 잘 운영되고 있으므로 되돌아 갈 수 없는 거죠.”

    “기분이 나쁘네요”

    ▼ 공직윤리지원관실 수첩에 적혀 있는 게 기분은 어떠한가요?

    “내용대로 본다면 그 사람들이 망나니짓을 한 거죠.”

    ▼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정략적으로 업무를 봤다고 보나요?

    “나는 민선 도지사로서 충남도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홀대론을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고성이 오간 것인데 거기에다 사무관 승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용어를 갖다 붙여서…그렇게 쓰는 건 기분이 나쁘네요.”

    ‘총리실 원충현 수첩’ 블랙코미디 사찰행태

    이인규(54·구속)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이 전 지사는 화가 나는 듯 잠시 말을 끊은 뒤 “개인적 명예가 실추되지 않게 해 달라. 내가 그런 일로 구설에 오르기 싫다”고 했다.

    그는 수첩의 표현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어 있느냐며 다시 물은 뒤 “‘결별수순’이라는 게 뭐냐면 ‘당 떠나려고 정면으로 대든 것’이라는 의미다. 그런 얕은 생각을 갖고 그런 짓을 하다니….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다. 정말 결별 생각 있었으면 2009년 12월 세종시 수정에 반발해 도지사 사퇴할 때 탈당해버렸지”라고 했다. 이 전 지사는 현재 한나라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메모 내용 중 ‘김우근(충남)’의 경우 충남도에 따르면 그런 이름의 공무원은 없었다.

    ▼ 메모에 ‘김우근(충남)’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는 사람인가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메모를 쓴 사람이 아는 사람인 모양이죠.”

    ▼ 메모에 ‘비리 채증’으로 되어 있는데 이 대목은 어떻습니까?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공직자를 대상으로 비리 첩보를 수집하는 건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봐요. 민간인이 아닌 공직자에 대해선 상관없어요.”

    ▼ 충남도지사도 공직자 아닌가요?

    “그러나 내 케이스는 그 사찰동기가 정치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죠. 더구나 임명직도 아닌 민선 도지사인데…. 광역단체장은 정치적 판단, 소신, 배경, 위상을 갖고 활동합니다. 그런 사람이 한 발언이나 행동을 가지고 그것 때문에 비리 채증을 하라 이러는 것이니 망나니 같은 짓이죠.”

    ▼ 정치적 사찰이라고 보는 건가요?

    “다분히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에 대한 손봐주기인데 웃음만 나오죠. 이런 행동은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어요. 사후에라도 반드시 이런 것은 고쳐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 전 지사는 자신의 결백을 재차 강조하면서 “김태호 낙마한 게 김두관이 몇 트럭으로 보낸 자료 때문”이라고 했다. “김두관이 민주당에 보내준 거다. 후임 지사가 다 알게 된다. 권력이라는 게 그렇다. 당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면 후임 지사가 다 공개한다”는 것이다.

    ▼ 안희정 지사는 어떠할 것 같나요?

    “내게 문제 있다면 나는 살아남을 수가 없는 거죠. 안희정이한테서도 살아남지 못하고 공직윤리지원관실한테서도 살아남지 못해요.”

    ▼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실제로 뒷조사를 했다고 보나요?

    “그 수첩에 2008년부터 내 비리를 채증한다고 써놨다면서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뒤졌겠어요. 많이 뒤졌지 않았겠어요? 만약 비리가 있었다면 내가 살아남았겠어요? 터뜨렸을 거 아녜요? 세종시 갖고 내가 한창 정운찬이 하고 MB에게 각을 세울 때 내 비리를 터뜨렸을 것 아닙니까? 뻔한 일 아니에요? 비리가 있었으면 가버리는 거지. 나도 웬만큼 깔끔하게 했다는 거죠.”

    “거 말이야, 이완구 한번 캐봐”

    ▼ 그때 고성이 오간 일은 나중에 잘 풀렸습니까?

    “잘 풀렸으면 사찰을 하겠어요? 이 사람들(2008년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이 대구를 갔어요. 김관용 경북지사가 친절하게 대해주었나 보죠? 그러자 ‘아이고 이런 도지사도 계신데 어느 도지사는 너무 뻣뻣해서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기 힘들어요’라고 말했다지 뭡니까. 그 발언에 우리가 한참 분개하고 그랬어요. 여권 내에서 ‘이완구가 상당히 거만하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이게 돌고 돌아 누가 오더를 내린 건지는 모르지만 ‘거 말이야. 충남홀대론 이야기하고 고함치고 하는 이완구. 비리 없나 한번 캐봐.’ 이랬지 않나 싶네요.”

    이 전 지사는 수첩내용으로 인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게 해달라고 다시 당부했다. 그러면서 “같은 당이고 같은 입장이어서 그나마 점잖게 망나니짓 정도로만 표현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다. 엄청난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공직자 출신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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