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호

조찬모임 통곡 사건, 승무원 성추행 사건…

역대 대통령 해외순방 秘스토리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입력2013-05-24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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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인은 여비서, 언론인은 승무원 추행
    • 경호원이 근접 취재하려는 기자 폭행
    • 대통령 해외순방 동행 청와대 경쟁률 15:1
    • 프리패스는 기본, 최상의 기내 서비스는 덤
    • “절제하지 않으면 ‘권력’에 취하기 십상”
    조찬모임 통곡 사건, 승무원 성추행 사건…

    박근혜 대통령이 5월 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등 4박 6일 동안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서울공항에서 전용기로 출국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외신 톱뉴스까지 장식한 ‘윤창중 사태’에 비할 순 없지만, 역대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 외국에서 일어난 일인데다, 제한된 인원만 사건을 알고 있어 전모가 알려진 경우는 거의 없다. ‘윤창중 사태’가 국민적 뉴스로 부상한 것을 계기로 역대 대통령 해외순방에 동행했던 이들이 속에 담아둔 비화를 털어놓았다.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에는 거의 예외 없이 순방에 동행한 경제인들과의 모임이 들어 있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처럼 대기업 총수들이 대거 동행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중소기업인들이 수행단을 꾸려 동행한다.

    여비서의 대성통곡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 신흥국가 가운데 한 나라를 순방했을 때, 순방에 동행한 중소기업인 A씨가 자신의 여비서를 성추행해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고 한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한 중견기업인은 “여비서가 대통령과 경제인의 조찬 행사 직전 행사장에서 대성통곡하는 바람에 기업인들과 청와대 직원이 여직원을 다독이느라 혼비백산했다”는 얘기를 들려 줬다. 그는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에 일이 벌어졌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대통령 참석 행사가 아수라장이 될 뻔했다”고 말했다. 한때 ‘세계 일류기업’에 선정되며 승승장구하던 A씨의 회사는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사세가 꺾였고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후반기, 한 선진국을 순방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만취한 기자 B씨가 여승무원의 몸을 더듬는 일이 벌어졌다. 주변 동료들이 만류했지만, 고주망태가 된 B씨는 막무가내였다. 승강이 끝에 동료들이 B씨를 비행기 뒷좌석으로 데려가 진정시킨 뒤에야 사태가 수습됐다. B씨의 행동에 격앙된 승무원은 “B씨를 고소하겠다”고 했으나 귀국 후 흐지부지됐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사는 “숨가쁜 해외 일정을 마치고 귀국 비행기에 오르면 해방감에 긴장이 풀려 술을 한잔씩 한다”며 “폭음한 B씨가 그런 실수를 하는 통에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기내 분위기가 싸늘했다”고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에는 경호원이 취재기자를 폭행했다. 김윤옥 여사를 근접 경호하던 C씨가 김 여사에게 가까이 다가가 취재하려는 기자를 제지하며 완력을 쓴 것. C씨는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외곽에서 지원했던 선진국민연대 출신으로 청와대 내부에서는 ‘연대 출신’으로 불렸다고 한다. 폭행당하는 광경을 본 다른 기자들이 거세게 항의했지만 C씨는 ‘내 할 일을 했다’는 투로 버티며 사과를 거부했다. 이에 기자단이 들고 일어나 ‘폭행사건’을 보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대변인실 K 행정관이 김 여사를 담당하는 제2부속실장에게 상황을 보고했고, 이후 C씨가 해당 기자에게 사과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됐다.

    전대미문의 ‘윤창중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대통령 해외순방 과정에는 이처럼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크게 보도된 적은 없다. 사안이 경미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고를 친 당사자가 공무를 수행 중인 공직자가 아니라는 점도 어느 정도 고려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알 만한’ 사람들이 대통령 해외순방길에 동행해서 사고를 치는 걸까.

    선택된 소수, 순방 수행원

    대통령 해외순방을 함께 한 이들은 “권력맛에 취해 자제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대통령 해외순방에 동행할 수 있는 인원은 소수에 국한되기 때문에 수행원이 되는 것 자체를 일종의 ‘특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청와대 직원 가운데 대통령 전용기에 탈 수 있는 이는 선택된 소수다. 300명 넘는 청와대 직원 중 해외순방에 동행하는 이는 20명 정도. 단순 경쟁률이 15대 1 수준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이 잡히면 청와대 직원들 사이에는 치열한 물밑경쟁이 벌어진다.

    “대통령 해외순방은 한 해 평균 4회 정도 있다. 여러 나라를 한꺼번에 도는 순방은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다. 가려는 사람은 많은데 갈 수 있는 인원은 제한돼 있어 5년을 청와대에 근무해도 해외순방에 한 번도 동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대변인실 행정관을 지낸 D씨의 얘기다. 치열한 수행 경쟁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번 첫 해외순방을 앞두고 윤창중-김행 대변인은 서로 대통령을 수행하려고 신경전을 벌여 구설에 올랐다. D씨는 “그 어느 때보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대통령 해외순방에 대변인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라며 “첫 해외순방인데다 방문국이 미국이었기 때문에 더 욕심을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대변인의 수행 경쟁은 결국 윤창중 전 대변인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윤 전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행 비행기에 함께 오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이라는 초유의 파문을 일으켜 ‘나홀로 귀국’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다.

    청와대 직원들이 해외순방을 선호하는 데에는 평소 청와대 생활과는 ‘질적으로’ 다른 권력의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D씨의 회고다.

    “대통령 해외순방은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격무에 시달려온 청와대 근무자에게는 상쾌한 청량제 구실을 한다. 닭장처럼 옹기종기 모여 일하는 좁은 사무실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낀다.”

    대통령 해외순방에 동행한 이들은 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청와대를 출발하는 순간부터 ‘권력’을 실감한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서울공항까지 논스톱으로 달려간 뒤 ‘프리패스’ 수준의 출국수속을 거쳐 비행기에 오른다. 해당국에 도착해서도 프리패스 수준의 입국수속을 밟고, 준비된 차량에 올라 막힘없이 행사장이나 숙소로 향한다. 대통령 전용기에서 받는 대통령급 기내 서비스는 덤. 비서관급 이상 수행원에게는 3~4명당 1명꼴로 승무원이 배치돼 출발부터 도착 때까지 최상의 기내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청와대 생활의 청량제

    몇 해 전까지는 미국이나 유럽 등 장거리 순방을 떠날 때에는 청와대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에서 대통령 전용기를 임차해 이용했다. 그러다보니 당시에는 두 항공사 사이에 서비스 경쟁이 치열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비서관을 지낸 E씨는 “한번은 승무원들이 수행원과 팔짱을 끼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자필 편지를 써서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F씨는 “대통령 해외순방에 동행해보면 마치 자신이 대통령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며 “스스로 절제하지 않으면 권력맛에 취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창중 전 대변인의 경우 술이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 주원인이겠지만 본질적으로 권력에 취해 ‘내가 어떻게 행동해도 괜찮겠지’ 하는 착각에 빠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해외 일정은 대부분 정상회담과 오찬, 만찬 등 행사 위주로 짜여 있다. 빡빡한 일정이긴 하지만 회담 의제와 행사가 사전 조율돼 있어 막상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한다.

    대통령 해외순방 중에 가장 바쁜 사람들은 기자단을 지원하는 대변인실 직원들. 역대 정부에서 해외순방에 동행했던 대변인실 근무자들은 그래서 하나같이 윤창중 전 대변인이 인턴과 술자리를 갖고 성추행까지 저지른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실 행정관을 지낸 D씨는 “대변인은 대통령 순방 성과의 보도 방향을 수시로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기자들과 가장 빈번히 접촉하는 게 정상인데, 윤 전 대변인은 예외였던 것 같다”며 혀를 찼다.

    “해외순방을 가면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대통령 이상으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곳이 프레스센터다. 조간과 석간, 방송과 인터넷이 서로 다른 시간대에 기사를 작성하기 때문에 프레스센터는 24시간 풀로 운영된다. 그렇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일하는 기자단을 위해 팩소주에 안줏거리까지 장만해 간다. 이번 미국 방문 때도 프레스센터를 지원한 홍보수석실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을 텐데, 칭찬을 받기는커녕 윤 전 대변인 때문에 욕만 먹게 돼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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