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호

이재명 ‘3연속 재판 행운’…법관이 ‘정권 생사’ 결정하는 민주주의

[강준만의 회색지대]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③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입력2025-05-2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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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법 성과 연연해 법안 양산, 결국 법치가 기승”

    • 2021년 2월 판사 탄핵 사건, ‘사법의 정치화’ 단적인 예

    • 공정·정의 핵심 담론화→ 법조인 전성시대→ 대화·타협 실종

    • “법원이 정치 민원센터 되는 순간, 사회 다른 영역 위축”

    • 민형배 ‘꼼수 탈당’ 권한쟁의 기각…“헌재 아니라 정치재판소”

    • 벼랑 끝 이재명·친명 구한 법원의 3차례 중대 심판

    • 이재명 ‘3연속 행운’의 비밀, ‘사법의 정치화’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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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필요한 법안을 아껴서 발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비즈니스(사업)나 인더스트리(산업)처럼 입법을 대하고 ‘한 건 했다’ 하는 것이 문제다.” 국회 미래연구원 거버넌스그룹장 박상훈이 2021년 1월 6일 “21대 국회는 역대 최고의 입법 공장이 될 것”이라며 한 말이다.

    그가 작성한 ‘더 많은 입법이 우리 국회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보고서에 따르면 21대 국회 초기 4개월간 발의된 법안은 모두 4144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법안 2517건 대비 64.6% 증가한 수치이며, 김대중 정부 후반기와 노무현 정부 전반기를 함께했던 16대 국회에서 발의된 전체 법안(2507건)보다도 많은 수준이었다.

    박상훈은 “의원 개개인이 사사로운 입법 성과에 연연해 법안을 양산하면 정치가 사법화되거나 정치보다 법치가 기승을 부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은 상대를 법 처벌이나 규제 대상으로 보게 되고 사회를 법으로만 운영하려는 욕구를 심화시켜 (시민 간) 적대나 증오도 커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왜 국회가 법을 찍어내는 공장으로 전락했을까. 그런 일을 저지른 주범은 의원들이지만, 정당·언론·시민단체는 의도하지 않은 사실상의 공범 역할을 수행했다. 정당이 공천심사 시 양적 기준으로 법안 성과를 평가하고, 언론과 시민단체가 입법량으로 의원들을 평가해 줄 세우는 기존 관행이 문제였다. 이런 관행을 그대로 두고선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일이건 마다하지 않는 의원들이 달라지긴 어려운 일이었다. 

    의원의 법안 양산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정치의 사법화가 그 원인에서부터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이번 호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에 걸쳐 일어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사법의 정치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2021년 2월에 일어난 판사 탄핵 사건에서 시작해 보자.



    대법원장 김명수의 거짓말 논란

    2021년 2월 1일 범여권 의원 161명이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부산고법 부장판사 임성근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퇴직을 불과 20여 일 남겨두고 있던 임성근의 혐의는 ‘세월호 7시간’ 문제로 논란을 빚었던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 사건에 대한 재판 관여, 약식사건 공판절차회부(야구 선수 도박죄)에 대한 재판 관여, 쌍용차 집회 관련 민변 변호사들에 대한 체포치상 사건 재판 관여였다. 

    2월 4일 임성근의 국회 탄핵 표결일에 임성근의 변호인 측에서 대법원장 김명수와 임성근 간 대화 녹취 파일과 녹취록을 공개함으로써 김명수 거짓말 논란이 일어났다. 임성근은 2020년 5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김명수가 “곧 있으면 탄핵이 상정되는데 사표를 수리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며 사직서 수리를 거부했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녹취록 공개 전날 대법원이 국회에 공문을 보내 임성근의 주장을 부인했던 터라 많은 사람이 대법원장의 거짓말에 분노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김명수의 부적절한 발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오늘 그냥 (사표) 수리해 버리면 (국회가)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는 말, 또 “(정치권이) 탄핵하자고 설치는데,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길 듣겠냐”는 말이 문제가 됐다. 2021년 시무식에서 “부당한 외부 공격에 의연히 대처하라”고 판사들에게 당부했던 것과는 배치되는 발언이었다.

    이에 수원지법 부장판사 송승용은 2월 14일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글을 올려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은 어떤 경위에도 불문하고 신중하지 못하며 내용도 적절하지 못하다”며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적 고려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충격적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임 부장판사와 대화에서 ‘탄핵’ 언급이 없었다거나, (녹취 파일이 공개되자) 기억이 불분명해 거짓 해명에 이르게 됐다는 발언 역시 사법부 수장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힘든 것이었다”고 말했다. 

    2021년 2월 19일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법원 내부 통신망 코트넷에서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으로 시작하는 글을 통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과 관련한 거짓 해명을 공식 사과했다. 뉴스1

    2021년 2월 19일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법원 내부 통신망 코트넷에서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으로 시작하는 글을 통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과 관련한 거짓 해명을 공식 사과했다. 뉴스1

    송승용은 “지금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것은 바로 대법원장 본인”이라며 “대법원장은 이제라도 현 상황의 심각성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 전체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 사과에는 헌정사상 법관에 대한 첫 탄핵소추에 대한 반성과 유감 표시도 포함돼야 할 것”이라며 “전임 대법원장 시절 있었던 일로 나와는 무관하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승용은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돼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며 양승태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사법농단 연루 법관의 탄핵 필요성을 의결한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공보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 탄핵소추안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임성근은 재임용을 신청하지 않아 2월 28일 임기 만료로 퇴직했다. 10월 28일 탄핵심판 선고에서 헌법재판관 다수의 의견으로 ‘현직’이 아니기 때문에 탄핵심판의 실익이 없다고 각하됐으며, 그는 이후 변호사로 개업했다.)

    법원을 ‘민원센터’로 만든 ‘오징어게임’

    2021년 6월 28일 중앙일보는 ‘법대 나와야 명함 내민다? 내년 3·9대선 흥미로운 현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냐고 묻는 여론조사에서 법과대학 출신 정치인이 상위권을 싹쓸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이재명·이낙연·홍준표·추미애·최재형이 그러하며, 이외에도 정세균·이광재·원희룡·황교안 등 죄다 법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정치의 사법화’가 더욱 왕성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토양을 지적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11월 17일 파이낸셜뉴스에 실린 ‘누가 돼도 법조공화국’이라는 제목의 칼럼 내용도 비슷했다. 논설실장 노주석은 “여야의 대선 경선자 면면을 보고 놀랐다. 12명 가운데 법조인이 7명, 법대 출신까지 더하면 11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 중 4강에 든 후보자 8명 중 5명이 법조인이었다. ‘법조 카르텔’이라고 부를 만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22년 3·9대선 당시 대선후보 출사표를 던진 12명 가운데 법조인이 7명, 법대 출신까지 더하면 11명에 달했다. 사진은 그해 3월 8일 오후 중구 서울광장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유세하는 모습. 뉴스1

    2022년 3·9대선 당시 대선후보 출사표를 던진 12명 가운데 법조인이 7명, 법대 출신까지 더하면 11명에 달했다. 사진은 그해 3월 8일 오후 중구 서울광장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유세하는 모습. 뉴스1

    “공정과 정의가 우리 사회의 핵심 담론으로 떠오르면서 법조인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만큼 법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복합적으로 진행되면서 법률가 출신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법률가 출신이 국회와 정부마저 장악하면서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이 실종됐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법조인은 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 들고, 과거지향적이라는 직업적 한계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2022년 5월 10일에 출범한 윤석열 정권은 법조공화국의 부정적 측면을 극대화하면서 새로운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의 사법화’ 문제를 선보였다. ‘정당 내부 정치의 사법화’라고 해야 하나. 8월 10일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이 자신의 대표직을 박탈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려는 당의 결정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훗날 밝혀지듯이, 이는 윤석열의 권위주의적 정권 운영에서 비롯된 윤석열의 문제였지만, 정당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정당의 운명을 정치인들이 결정 못 하고 판사가 결정하는 한심한 정당이 될 수는 없다”(하태경 의원)는 내부 우려가 무색해진 ‘사건’인 건 분명했다. 이에 중앙일보(8월 12일)는 “이제 정치의 사법화는 본안 소송도 아닌 가처분 인용 여부에 집권 여당의 운명이 내맡겨지는 수준까지 전락했다”며 “물밀 듯 밀려오는 여의도발 갈등에 법원도, 검찰도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2022년 9월 28일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 사건 심문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2022년 9월 28일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 사건 심문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8월 26일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재판장 황정수)는 이준석이 낸 가처분 신청을 사실상 받아들이면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의 직무 집행을 본안판결 확정 때까지 정지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국민의힘 법률지원단장을 맡은 의원 유상범은 “사법부가 절차적 하자가 아닌 상임전국위원회의 내부적 유권해석에 대한 의사결정을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다른 판단을 한 것은 정당정치의 자유라는 헌법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장 홍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요즘 법원은 정치적 판단도 하네요. 대단합니다”라고 에둘러 재판부를 비판했다. 

    무차별 고소·고발로 결국 정치권이 사법부에 스스로 정국 주도권을 넘겨주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조선일보(9월 3일)는 국민의힘의 잇단 송사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는 “심화하고 있는 ‘정치의 사법화’의 단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장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이 기사에 인용된 명지대 교수(정치학) 김형준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상호 존중(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규범이 무너져서 이 같은 불안정이 배태되는 것”이라며 “정치 과정을 사법에 의존하면 정치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므로, 정치의 사법화는 곧 정치의 몰락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변호사 임재성은 ‘정치의 사법화, 사회의 사법화’라는 제목의 한겨레(9월 7일) 칼럼에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신들이 추진하는 절차가 법원에 의해 막힐 때면 정치의 사법화를 언급한다. 법원의 견제가 반대 세력을 향했을 때는? ‘사법의 독립’이라 칭송한다.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지 20년이나 된 정치의 사법화 개념이 이처럼 도구적으로만 활용되다 보니 엄밀한 분석도, 대안에 관한 논의도 척박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원이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민원센터가 되는 순간 생기는 수많은 문제 중 하나만 지적하면, 사회의 다른 영역이 위축되는 것이다. 법원은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을 뿐 피해자를 지원하고, 범죄로 파괴된 공동체를 복원하지 못한다. 사법화된 사회는 높은 처벌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갈등은 고소·고발로 이어지고, 검찰과 법원만이 정의의 심판자로 우뚝 선다. 이제 사회의 사법화를 어떻게 분석하고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9월 13일 CBS 논설위원 구용회는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유사 이래 우리나라가 이렇게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가 극심한 때가 지금까지 있었나 이런 생각이 든다”면서 “한국 정치가 오징어게임에 다다랐다”고 진단했다. 

    9월 15일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채진원은 승복의 정치가 사라지고 진영 논리와 팬덤 정치가 지배하는 여의도 문화가 정치 사법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야 모두 당론에 구속되지 않고 숙의와 자유토론을 보장해야 다양한 이해관계 조정과 문제해결 능력이 생긴다”며 “당론에 다른 뜻을 보였다고 문자 폭탄을 맞게 하거나 징계하거나 공천에서 배제하면 제대로 된 정치가 성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 헌법재판소 소장 박한철은 9월 26일 발간한 저서 ‘헌법의 자리’에서 “‘정치의 사법화’는 다시 사법을 특정 세력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거나 그의 숨겨진 정치 행위로 전락시키는 ‘사법의 정치화’로 나타나기도 한다”며 “그 결과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가 저하되고, 헌법 시스템의 약화와 훼손, 국가 공동체의 위기라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썼다.

    “과정은 잘못됐지만 결과는 정당하다”

    2023년 3월 23일 헌법재판소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으로 불리는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의 입법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지만 법안 통과 자체는 무효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또 법무부와 검찰이 검수완박법 입법을 무효로 해달라며 낸 권한쟁의심판에 대해서는 당사자 적격이 없고, 권한침해 가능성이 없어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권한쟁의심판은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 등과 달리 헌법재판관 9명 중 과반수인 5명 이상의 찬성으로 인용 또는 기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번에 헌재가 선고한 권한쟁의심판 사건 2건 모두 재판관 5대 4로 의견이 갈렸다.)

    이 ‘검수완박법’을 둘러싼 권한쟁의심판 청구 내용의 핵심은 당시 여당 민주당 소속이었던 의원 민형배가 꼼수 탈당해서 무소속 야당 의원 자격으로 안건조정위에 가담한 것이 국회법 제57조의2 규정에 적법하냐는 것이었다. 헌재는 법사위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 5대 4 인용 결정했다. 다른 4인의 재판관은 비교섭단체 무소속을 포함한 여야 동수 구성이라는 원칙을 지켰기에 적법하다고 봤다. 

    법사위의 의결 과정은 문제가 있다는 결정이 5인으로 다수였지만 1인의 재판관은 심의·표결권을 침해받기는 했으나 국회의 기능을 형해화할 정도는 아니었다며 ‘검수완박법’의 무효에는 반대해 4대 5로 기각된 것이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그 1인은 전 대통령 문재인이 임명한 재판관이었다. 온라인 댓글창엔 ‘커닝은 했지만 점수는 인정한다’ ‘새치기를 했지만 줄서기는 인정한다’ 등의 조롱이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국민적 신뢰를 잃은 검찰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보는 의견도 많았다.

    법무부 장관 한동훈은 “위헌, 위법이지만 유효하다는 결론에 공감하기는 어렵다”며 “(다수 의견인) 다섯 분의 취지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회기 쪼개기, 위장 탈당 입법을 해도 괜찮은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 유상범은 “과정은 잘못됐지만 결과는 정당하다는 헌재 결정, 이런 식이면 절차는 누가 왜 지키나”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대표 김기현은 “황당 궤변의 극치라 생각한다”며 “음주하고 운전했는데 음주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괴망측한 (결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거짓말을 했는데 허위사실유포는 아니라고 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옮겨온 듯 (하다)”며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정치재판소 같다”고 비판했다.

    세계일보 수석논설위원 채희창은 칼럼(3월 28일)에서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며 “법리보다 진영 논리에 따라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 결정은 두고두고 화근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사회부 차장 황형준은 ‘‘사법의 정치화’ 속에 존재감 잃어가는 헌재’라는 제목의 칼럼(5월 26일)에서 “지금 헌재를 두고 지적되는 사법의 정치화는 문재인 정부에서 심화됐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인 유남석 소장 등 이념적 지향성이 같은 재판관을 대거 충원했기 때문이다. 재판관이 인사권자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오면 결과적으로 국민 신뢰를 갉아먹게 된다.”

    2023년 9월 27일 백현동 개발 특혜와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을 받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등 혐의를 받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뉴스1

    2023년 9월 27일 백현동 개발 특혜와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을 받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등 혐의를 받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뉴스1

    이재명의 정치적 생명을 결정한 판사 유창훈

    2023년 9월 27일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 부장판사 유창훈이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른바 ‘9·27사건’이 일어났다. 유창훈은 이례적으로 긴 분량인 총 892자의 기각 사유를 제시했다. 이걸 요약하면, ‘위증교사 혐의’만 소명됐다고 봤고, “공당의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의 대상임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대장동 사건, 백현동 아파트 개발 특혜 사건, 쌍방울 대북 불법 송금 사건과 관련해 구속 기소된 사람은 최소 24명 정도인 데다, 이들 사건에서 최종 결재권을 가진 사람은 이재명이었는데, 공적 감시 대상이라서 증거 인멸의 염려가 없다는 건 난센스가 아닌가. 오히려 정반대로 당대표의 지위가 범죄 유관자의 증언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다고 보는 게 상식이 아닐까.

    우문(愚問)이다. 진정한 쟁점 또는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서울경제 여론독자부장 이재용이 10월 15일자 칼럼에서 잘 지적했듯이, “정치의 사법화의 진정한 문제는 정치·정책 이슈의 해법이 판사 개인의 판단에 좌우된다는 점”이었다. “이번에 영장 전담 판사가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이 대표와 민주당 내 ‘친명 세력’은 기사회생했다. 만약 다른 판사가 사건을 맡아 이 대표의 구속으로 결정이 났다면 민주당의 세력 구도는 뒤집어졌을 것이다. 판사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하는 정치의 사법화는 일반 상식에 어긋나는 결정이 내려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재판을 질질 끄는 것도 비슷한 문제였다. 헌법 27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그건 사문화된 것으로 사실상 거짓말이다. 현행법은 민사소송은 1심, 항소심 각각 5개월 이내에, 형사소송은 1심 6개월, 항소심 4개월 이내에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공직선거법 270조는 “선거범 재판의 선고는 1심은 공소제기 후 6개월, 2심 및 3심은 전심 선고 후 각 3개월 (합계 1년) 이내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잘 지켜지지 않는,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이다. 한국의 사법부 신뢰도가 바닥을 기고 있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늑장 재판임에도 사법부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천하태평이었다. 

    재판 지연은 사법 민주화라면서 법원장을 판사 투표로 뽑는 제도를 도입하고 판사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애쓴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2017년 9월~2023년 9월)에 악화되었다. 그의 대법원장 취임 이후 1심에서 1년 넘게 처리되지 못한 재판이 급증했으며, 민사는 65%, 형사는 68% 늘어났다. 민사합의 사건 1심 평균 처리기간은 2017년 293.3일에서 2023년 473.4일이었다. 민사합의 사건 1심 평균 처리기간은 2017년 293.3일에서 2023년 473.4일이었다. 김명수의 재임 기간 중 2년 내에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민사소송은 3배로, 형사소송은 2배로 늘었다. 2022년 대한변호사협회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변호사의 약 90%가 최근 5년간 재판 지연을 경험했다. 

    재판 지연 가운데 악명 높은 사건 중 하나는 “재판 지연의 결정판”이란 평가를 받은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이었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부장판사 김미리는 2020년 1월 기소된 이 사건의 1심 재판에서 공판 준비 기일로만 15개월을 보냈다. 그러면서 2023년 11월 29일 이 사건 1심 판결이 선고되는 데 46개월이 걸렸다.

    이재명의 ‘3연속 행운’과 대법원의 5·1파기환송

    2023년 12월 5일 새 대법원장 후보자 조희대는 국회 인사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국민이 사법부에 절실히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보면,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 분쟁의 신속한 해결을 강구해야만 한다”며 “사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신속한 재판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12월 11일 취임사에선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도 법원이 지키지 못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2024년부터는 획기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그러나 정파성이 강했던 김명수 체제에서 6년간 길들여지거나 적응해 온 판사들에겐 재판 지연이 ‘정상’이었고, 신속한 재판은 ‘비정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특히 어떤 판결을 내리건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던 ‘진영 전쟁’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 분야의 재판은 기약 없이 지연됐고, 이는 사실상 ‘사법의 정치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특정 진영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를 잘 보여준 게 민주당 대표 이재명과 관련된 재판이었다. 

    이재명은 재판 지연으로 엄청난 ‘행운’을 누린 셈이었고, 이후에도 두 번의 큰 법적 ‘행운’을 더 누리게 된다. 미리 말하자면 2024년 11월 25일 이재명의 위증교사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무죄판결과 2025년 3월 26일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2심의 무죄판결이다. 적어도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이재명이 누린 이 3번의 큰 사법적 행운은 그의 정적(政敵)인 윤석열의 불운(不運)이었다. 그것도 치명적 불운이었다. 

    이재명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9·27사건’과 더불어 2024년의 11·25판결과 2025년의 3·26판결은 이재명뿐만 아니라 정권의 명운과도 관련된 ‘중대 사건’이었다. 이재명이 구속됐다면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2024년의 4·10총선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고, 윤석열은 계엄에 눈을 돌리는 미친 광기에 휘말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이 11·25판결에서 유죄를 받았다면, 윤석열은 1주일 후에 계엄을 선포하는 자폭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이 3·26판결에서 유죄를 받았다면 윤석열의 파면과는 무관하게 정국은 요동을 치면서 대선 전망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여야가 합동으로 이끄는 망국의 길

    법관이 정권의 생사마저 결정하는 민주주의! 이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쟁점은 이재명의 행운과 윤석열의 불운을 법적으로 또는 사회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다. 이재명의 행운은 행운이 아니라 하늘 우러러 한 점의 의혹도 있을 수 없는 공명정대한 법적 판단이었나. 이재명 측에서 세 번 연달아 외쳐댄 ‘사필귀정(事必歸正)’이었나. 피가 뜨거운 강성 지지자가 아니라면 그렇게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도올 김용옥의 주장처럼 이재명은 “하늘이 내린 사람”으로 믿는 게 더 나을 게다. 이재명이 누린 3연속 행운의 비밀을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 호에서 하기로 하고, 최근 대법원의 ‘5·1파기환송’에 대한 촌평으로 이야기를 끝맺도록 하자.

    5월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한 사건을 파기환송 결정하자 민주당이 반발하며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 및 탄핵 등의 조치를 예고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5월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한 사건을 파기환송 결정하자 민주당이 반발하며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 및 탄핵 등의 조치를 예고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2025년 5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사건은 이재명이 누린 ‘3연속 행운’의 반전이었다. 민주당은 ‘사법 쿠데타’라는 음모론을 외치며 유혈혁명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흥분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4월 22일 대법원이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본격적인 심리에 착수했을 때 민주당이 보인 반응이다. 거의 대부분 무죄를 낙관하면서 느긋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조희대는 국회 인사청문회 때부터 재판 지연을 사법부 불신의 주요 이유로 보면서 ‘신속한 재판’을 강조해 온 인물이었는데, 그를 ‘내란 공범’으로 모독하는 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민주당이 내세운 음모론의 주요 논거는 대법원의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전’이었는데, 그게 문제라면 적어도 일주일 전부터 문제 제기를 했어야 했다. 자신들의 예상과 다른 판결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식으로 표변해도 괜찮은 걸까. 그간, 특히 12·3계엄 이후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훨씬 더 나쁘고 한심한 모습을 보였기에 민주당의 ‘사법 쿠데타’ 공세는 여론전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망정, 이렇게 여야 합동으로 나라를 망국의 길로 끌고 가는 건지, 기가 막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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