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호

이재명의 사이다는 ‘염산에 가까운 탄산’

[강준만의 회색지대] 이재명 ‘만독불침(萬毒不侵)’의 역사⑤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입력2026-01-07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朴 하야 최초 주장한 대권주자’라는 거짓 타이틀

    • ‘트럼프·두테르테와 비슷한 퀄리티’의 이재명

    • “박근혜 무덤을 파, 박정희 유해 곁으로 보내주자”라니…

    • 정치인이 내뱉을 리 없는, 염산에 가까운 탄산 발언

    • 탁월한 ‘이재명 화법’의 명암(明暗)

    2017년 2월 11일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동아DB

    2017년 2월 11일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동아DB

    2016년 7월 26일 TV조선은 ‘靑 안종범 수석, 500억 모금 개입 의혹’ 리포트를 내보냄으로써 곧 불거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열었다. TV조선은 7월 27일엔 “안 수석 말고도 미르재단에 영향력을 행사한 막후 실력자가 있었다. 현 정부 들어 문화계 황태자로 급부상한 CF감독 차은택”이라고 보도했으며, 8월 2일엔 “전경련이 중간에 나서 기업 돈을 모아준 곳은 미르뿐만이 아니었다. K스포츠라는 체육재단법인에도 380억 원 넘게 거둬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최순실이란 이름이 처음 언론에 등장한 것은 9월 20일이었다. 한겨레는 9월 20일 1면 기사에서 입소문으로 떠돌던 박근혜의 ‘비선 실세’ 최순실을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냈다. 이어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미르·K스포츠재단이 대기업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최순실과 청와대 인사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이제 곧 비상한 정치 상황이 전개되면서 이재명에게 비판적으로 제기되곤 했던 ‘포퓰리즘’이나 ‘증오 선동’ 혐의가 오히려 그의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 되는 일이 벌어진다.

    2016년 6월 7일 정부의 지방재정 개혁에 반발해 경기 지역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염태영 수원시장, 정찬민 용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채인석 화성시장. 동아DB

    2016년 6월 7일 정부의 지방재정 개혁에 반발해 경기 지역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염태영 수원시장, 정찬민 용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채인석 화성시장. 동아DB

    성남시장의 명분 없는 광화문 단식 농성

    2016년 10월 15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청래의 출판기념회에서 엉뚱한 발언이 터져 나왔다. 당시 TV조선 시사 토크 프로그램 ‘강적들’에 출연 중이던 진보적 강성 평론가 김갑수가 “정권이 바뀌면 국정원장을 이재명 성남시장이 맡아야 한다”며 “대선 승리 후 국가정보원장이 작살낼 놈을 작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김갑수는 왜 엉뚱하게도 이재명이 국정원장에 적격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대통령이 되면…작살을 좀 내야죠”(2015년 3월), “권력 행사는 잔인하게 해야 된다”(2016년 6월) 등과 같은 일련의 과격 발언으로 그는 이미 민주당 진영에선 ‘작살낼 놈을 작살내는 역할’에 최적화된 정치인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또한 이재명은 6월 7일에서 17일까지 11일 동안 박근혜 정권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대하는 광화문 단식 농성을 통해 ‘싸울 줄 아는 투사’라는 이미지까지 챙기지 않았던가. 

    훗날 중앙일보(2025년 6월 30일자)는 이 단식 농성에 대해 “그는 그 11일 동안 박근혜의 주적이었고, 대정권 투쟁의 선봉장이자 구심점이었다. 그리하여 이제 더는 ‘변방 사또’가 아니라, 유력 대선주자였다”며 큰 의미를 부여했지만, 성남시장이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을 한 건 보기에 좀 이상했다. 문제의 개편안이 실행되면 6개 지자체(수원·화성·용인·과천·고양·성남)는 손해를 보지만, 이익을 보게 될 농어촌 지자체는 환영했다는 점에서 무슨 ‘진보적’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비교적 재정 형편이 좋은 도시들은 불만이겠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대책이 잘하는 도시 예산 뺏어 거지 도시 만드는 것”이라는 이재명의 주장은 좀 심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 단식 농성을 통해 이재명이 ‘자기 홍보의 귀재’라는 걸 스스로 입증한 건 분명했다. 또한 팬덤을 동원하고 활용하는 능력도 이재명이 단연 최고 수준이었다. 10월 23일 이재명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손가락혁명군(손가혁)을 위한 ‘작당모의’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행사장에 몰려온 시민 약 3000명은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구호를 외치며 이재명을 향해 환호를 보냈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제는 이재명이다, 나라를 구할 이재명이다”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지금껏 SNS 공간에서 활동했던 손가락혁명군이 본격적으로 오프라인 세도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재명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는 우리의 동지들 손가락 혁명 동지들한테 큰절을 드리겠다. 제가 먼저 두려움을 뚫고 혁명적 변화, 국민 변화의 폭풍 속으로 뛰어들겠다”고 화답했다. 토크 콘서트에 참석했던 손가혁은 “지지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국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왔고 미국 뉴욕에서도 지지자들이 왔다”고 알렸다. 바로 다음 날인 10월 24일 JTBC는 최순실이 박근혜의 연설문을 미리 받아보고 첨삭했다는 내용의 ‘최순실 태블릿PC’ 특종 보도를 함으로써 이후 전개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본격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최초로 박근혜 하야 주장한 대권 주자’라는 거짓 타이틀

    10월 29일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사이에 있는 청계광장에 2만 명이 모여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 촛불집회의 주인공은 단연 이재명이었다. 그는 이 집회에서 한 연설로 ‘최초로 박근혜 하야를 주장한 대권주자’라는 타이틀을 얻으면서 대선후보로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는 이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근혜는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의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주고 말았습니다.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잃었습니다. 박근혜는 이미 이 나라를 지도할 기본적인 소양과 자질조차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국민 앞에 스스로 자백했습니다.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이 아닙니다. 즉각 형식적 권력을 버리고 하야해야 합니다. 아니 사퇴해야 합니다. 탄핵이 아니라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십시오.”(이재명은 ‘저잣거리 아녀자’라는 성차별적 표현에 대해선 나중에 사과했다)

    현장에서 이 연설에 깊은 감명을 받은 백승대는 훗날 ‘이재명, 한다면 한다’(2021)라는 책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촛불광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을 때 문재인 당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 떼라’ 팻말을 들고 앉아 있던 모습은 지금까지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 내가 본 문재인 모습 중 가장 비루했던 모습이었다.”

    사실 그간 많은 사람이 이재명을 ‘최초로 박근혜 하야를 주장한 대권주자’로 알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앞서 소개한 중앙일보 기사(2025년 6월 30일자)도 이재명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들’을 거론하면서 이재명은 다른 대선후보들과는 달리 “시종일관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고 썼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나 역시 한동안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2022년 2월에 출간된 ‘이재명, 허구의 신화: 이재명의 대표적인 ‘업적’을 검증한다’라는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재명은 위 발언을 하기 보름 전인 10월 14일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박근혜 탄핵 불가론’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의결될 가능성 제로. 거기다 역량을 소진할 순 없어요. 그러면 이게 헌법재판소에서 가결됐다고 통과되냐? 제로. 현실성이 없잖아요.…실현 불가능한 탄핵 얘기만 하면 기분만…기분이나 좋을까? 나중에 되도 않는 거 했다고 성질만 나겠지.”

    ‘이재명, 허구의 신화’는 박근혜의 ‘하야’를 가장 먼저 말한 정치인은 정의당의 이정미, ‘탄핵’을 가장 먼저 말한 정치인은 박원순이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다음인데, 이재명 지지자들 사이에선 이상한 ‘허구의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이재명은 “분위기가 바뀌자 잽싸게 여론에 숟가락 얹기에 나선 것”일 뿐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시 이재명의 입장을 정리하면, 10월 14일부터 11월 2일까지 불과 3주도 안 되는 동안 ‘탄핵 불가→즉시 하야하고 탄핵 절차 돌입→탄핵보다는 즉시 하야→하야 요구가 아니라 탄핵하고 구속할 때’로 어지러울 정도로 변화무쌍하게 바뀐다.”

    2017년 1월 15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부인 김혜경 씨가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지지자 모임 ‘손가락혁명군 출정식’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2017년 1월 15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부인 김혜경 씨가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지지자 모임 ‘손가락혁명군 출정식’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트럼프·두테르테와 비슷한 퀄리티’의 이재명

    2016년 11월 12일 3차 촛불집회엔 처음으로 100만 명(주최 측 추산)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성남 지역 손가혁의 한 밴드 모임은 광화문 촛불집회 공지를 올렸다. 공지는 “이 시장이 태극기를 가져오라고 했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를 태극기로 가득 채우자”고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이렇듯 ‘이재명과 손가락혁명군 사령부’ 등 각종 밴드 모임은 손가혁의 오프라인 모임을 주도하고 있었다. 

    이재명이 11월 16일 “이재명 지지율 10.9%, 빅3 첫 진입했다”는 기사를 인용한 순간 손가혁은 너도나도 기사를 ‘리트윗’했다. 손가혁의 한 회원은 “대권주자들이 시장을 따라 하고 있다. 시장님은 소신껏 의사를 펼치는 반면 다른 야권 주자들은 관망하고 있다. 축하할 일이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다른 회원은 “우리는 이재명호, 청와대로 가고 있다고 전해라”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재명은 11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6년 대한민국 최고경영자 대상”을 받았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손가락혁명군들은 “손가락혁명군 다 모여라, #이재명 기사가 뜨면 링크 열고 들어가서 공감 누르고 댓글달기 운동” 캠페인 배너와 함께 이재명의 강연 동영상 링크를 댓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이재명의 수상에 대해 뉴스세상(11월 16일자)이 다음과 같이 논평한 게 흥미롭다. “대선주자로 도약한 이재명 성남시장이 보수 3대 매체인 조중동의 하나인 조선일보 계열 디지틀 조선일보에서 주최하고 조선일보와 전경련이 후원하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 세상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일요신문(11월 17일자)은 ‘이재명 급부상 뒤엔 ‘손가락혁명군’ 지원사격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재명의 페이스북 팔로어 18만2717명, 트위터 팔로어 30만5237명이 손가락혁명군을 자처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100만 촛불집회 이후 그의 상승세는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이 시장의 SNS 지지 세력이자 팬클럽인 ‘손가락혁명군’도 이목을 끌고 있다. 제2의 노사모를 꿈꾸는 이들이 이 시장을 막후에서 지원하고 있다.”

    11월 25일 미국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가 이재명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존중하고 버니 샌더스와 비교되는 것을 즐긴다”고 묘사하면서 ‘한국의 트럼프’라고 소개했다. 이재명은 블룸버그와 한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선출해 기득권층을 탄핵했다”며 “우리나라 선거도 미 대선을 그대로 반영할 것”이라고 했다. 

    블룸버그는 “이 시장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조건 없이 만나고, 박근혜 대통령을 감옥에 던져버리길 원한다”며 그를 포퓰리스트로 규정했다. 블룸버그는 이재명이 트럼프와 닮은 점으로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는 것도 지적했다. 기사에 인용된 조선대 정치학 교수 스티븐 워드는 “현재 정치권에 불만족한 사람들은 포퓰리스트를 정권에 진출하게 할 수 있다”며 “그렇다면 이 시장이 가장 적당한 인물”이라고 내다봤다.

    2018년 8월 24일 국정농단 당사자 최순실 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동아DB

    2018년 8월 24일 국정농단 당사자 최순실 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동아DB

    이재명은 11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 경제주간지 블룸버그 기사’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면서 “‘성공한 샌더스’라 해달랬더니 ‘한국의 트럼프’ 같다고”라며 자신을 트럼프에 비유한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어 “정치 기득권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하는 점은 둘이 닮았지만 지향과 기반은 천지 차이”라며 “이재명의 지향은 트럼프가 아닌 ‘민주사회주의자’ 자처하는 샌더스입니다. 여러분 의견은요?”라며 네티즌의 의견을 물었다.

    이에 한겨레 기자 김도훈은 “하지만 그가 인터뷰에서 트럼프에 대해 놀랄 정도의 동의를 표하며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선출해 기득권층을 탄핵했다’고 칭찬한 것도 사실이다. 정말? 지금 트럼프는 내각을 월스트리트 갑부들로 채우고 있으며 비윤리적 기업 중 하나인 엑손모빌의 렉스 틸러슨 회장을 국무장관으로 지명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건 이재명 시장이 필리핀 대통령 두테르테를 예로 들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기득권 카르텔’을 제거하겠다고 말한 부분이다. 조금 섬뜩하다. 두테르테는 마약사범들에 대한 초법적 처형을 주장해 대통령이 됐고 취임 이후 지금까지 필리핀에서는 5882명이 경찰과 자경단원에게 살해됐다. 물론 이재명이 트럼프나 두테르테가 되진 않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완벽하게 동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재명은 자신의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는 현상의 이면에 트럼프·두테르테와 비슷한 퀄리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은 것 뿐일 것이다.”

    “박근혜의 무덤을 파, 박정희의 유해 곁으로 보내주자”라니…

    2016년 12월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는 주최 측 추산 232만 명, 경찰 추산 42만 명으로 사상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이 집회에서 이재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률상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미 대통령이 아닙니다”라며 박근혜를 ‘전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이건 정치 집회에서 나올 수 있는 말로 볼 수 있겠지만, 다음 말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여러분의 손으로 박근혜의 무덤을 파, 우리 손으로 역사 속으로, 박정희의 유해 곁으로 보내줍시다.” 그럼에도 군중은 이 발언에 열광했다. 

    이날 종로구 내자동의 카페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던 300여 명의 촛불시민이 입을 모아 한 정치인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재명!” “사이다!” “한마디 해주세요!” 집회 뒤 늦은 저녁 식사를 하던 이재명은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거리에서 30여 분간 즉흥 연설을 펼쳤다. 이재명은 “재벌체제 해체하고 재벌총수 구속하라!”고 외치기도 했는데, 이게 또 지지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재명은 나중에 자신은 ‘재벌체제 해체’를 주장했을 뿐, ‘재벌 해체’를 주장하진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대로 믿긴 어렵거니와 감동을 받은 청중에겐 그 차이도 무의미했다. 예컨대, 백승대는 ‘이재명, 한다면 한다’에 다음과 같이 썼다.

    “그 어떤 정치인도 감히 재벌을 해체하라고 외친 정치인은 없었다. 재벌을 해체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공포 마케팅에 정치인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노예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재명은 이날 재벌총수 구속하라고 외쳤다. 이재용 구속하라고 외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촛불집회에 모인 민심 그대로 이재용은 구속되었다.”

    12월 4일 이재명은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자신의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를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이라고 했다. “종전에는 정치가 주(主)고, 대중은 종(從)적인 존재였지만 요즘은 네트워크가 발달하고 집단지성이 발휘되면서 대중이 정치권과 대등한 존재가 됐다. 나는 대중 속에서 대중을 서포트하는 게 정치라고 생각하고 대중의 언어로 대중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것이 이번 기회에 평가받게 된 것이라고 본다.”

    이재명은 “나는 대중을 기만하거나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우아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적극 검토, 긍정 검토, 장기적 검토, 함께 갑시다, 뭐 이런 말들 진짜 싫어한다. 대중은 그런 말을 들으면 ‘가능하다’고 받아들이지만 결국 안 된다는 뜻 아닌가. 일종의 정치적 기만행위”라고 했다. 그는 ‘과격한 좌파’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나는 철저하게 야전에서 살아왔다. 어느 편 이런 것 없다. 무슨 주의자로 나를 규정하려 하지 말아달라. 나는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면 우파, 좌파 정책 다 갖다 쓸 수 있는 실용주의자”라고도 했다.

    12월 9일 오후 3시.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섰다.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상정됐다. 4시 10분. 국회의장 정세균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299명의 국회의원 중 234명이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표결에 참여한 야당 의원 172명이 모두 찬성했다고 가정해도 새누리당 의원 중 최소한 62명이 찬성표를 던진 셈이었다. 박근혜는 2016년 12월 9일 오후 7시 3분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모든 권한 행사가 공식 중단되면서 언제 끝날지 모를 관저 생활을 시작했다. 

    인기가 치솟던 이재명이 12월 11일 페이스북에 사과글을 올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 달 전 발언이 뒤늦게 문제가 돼 벌어진 일이었다. 이재명은 11월 4일 민족문제연구소·부산대 총학생회 등이 주최한 부산 강연회에서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해 언급하면서 “저는 중앙대를 졸업했고 사법시험을 합격한 변호사인데, 제가 어디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의 석사학위가 필요하겠습니까. 필요 없잖아요”라고 했다. 그는 경원대(현 가천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석사논문을 제출했는데, 당시 벌어진 표절 논란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실언이었다.

    이재명의 발언이 알려지자 가천대 학생들의 반발과 사과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다. ‘가천대학교 대나무숲’이란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가천대 성남시에 있지 않나요? 당신이 시장 맡은 지역에 있는 대학인데 이름도 없다고요?”라고 항의하는 글이 게시됐다. 이 글에는 “강의 와서 입발림한 소리할 땐 언제고 본인이 잘못해서 학위 박탈당하니 바로 태세변환하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논란이 확산하자 이재명은 11일 밤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다.

    다른 정치인이 내뱉을 리 없는, 염산에 가까운 탄산 발언

    “박근혜는 청와대를 나오는 순간 수갑을 채워야 합니다.” “머슴(정치인)들이 간이 부었어요.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주인(국민) 알기를 개떡으로 알게 됐어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한 이들), 그거 미친 인간들 아닙니까.” 

    2016년 12월 14일 한겨레 기자 엄지원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직설이 필요한 계절이 찾아오면서 이재명의 직설은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정치인 소수에게 국한됐던 팬덤이 확산됐다”며 소개한 이재명의 사이다 발언들이다. 이렇듯 여과 없이 내놓은 언어들은 대권주자의 ‘품격’은 없지만 분노한 시민들의 갈증을 달래주기엔 충분했다는 것이다.

    엄지원은 “갈등 국면을 이용해 성장한 정치인이 한 나라를 아우르는 대통령이 되기에 충분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한 민주당 의원의 답을 소개했다. “대통령이 되면 이재명이 제일 잘할 거라고 확신한다. 이재명한테는 우리 진영이 갖고 있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없다. 우리가 참여정부 때 왜 구태를 청산하지 못했느냐면 나쁜 놈들을 착한 방식으로 바꿔보려 해서 그런 거다. 평검사와의 대화로 검찰개혁을 할 수 있나.”

    당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이재명의 대표적 4대 사이다’라는 동영상에서 많은 사람이 가장 좋아한 그의 사이다 발언은 상대 진영에서 볼 때엔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넘어서 섬뜩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배운 게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착해서 상대 진영도 나처럼 인간이겠거니 하며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어설픈 관용과 용서는 참극을 부른다.”

    이 발언에 대해 한겨레 기자 김도훈은 “거침없이 강한 사이다다. 다른 정치인들이라면 절대 입 밖으로 내뱉을 리 없는, 거의 염산에 가까운 탄산이다”며 옥스퍼드 사전이 2016년을 대표하는 단어로 ‘포스트-트루스(Post-Truth)’를 선정한 걸 언급했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탈진실’ 정도가 될 이 단어는 ‘객관적인 팩트가 감정에의 호소나 개인적 신념보다 여론을 형성하는 데 힘을 덜 미치는 상황’을 의미한다. 

    청량음료 중독자였던 김도훈은 치과의사로부터 사이다를 끊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는 “그러나 시도는 실패했다. 선물 받은 감자를 잔뜩 쪄먹던 어느 날 밤 절망적으로 속이 답답해졌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도무지 속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느낌이 없었다. 마트로 뛰어내려가 1.5리터짜리 사이다를 산 다음 벌컥벌컥 들이켰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이다는 나의 막힌 속을 진정으로 뚫어주는 소화제 역할을 조금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내 위장을 약하게 만들고 이빨을 마모시켰을 것이다. 놀랍게도 그런 팩트는 내 뇌의 판단력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며 상해가는 치아와 장기는 탄산이 없는 깨끗한 생수를 원했겠지만 뇌는 모든 건강적 팩트를 부인한 채 너무나도 간절하게 그 순간의 기분만을 뚫어주는 사이다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입은 만족스럽게 내뱉었다. 캬.”

    이재명의 거침없이 강한 사이다는 문재인에게도 강한 발언 상승 효과를 일으키는 듯 보였다. 이른바 ‘사이다 경쟁’이었다. 문재인은 ”가짜 보수 정치세력을 거대한 횃불로 모두 불태워 버리자”(11.26) 발언에 이어 12월 11일엔 “국가 대청소가 필요하다”고 했고, 12월 16일 언론 인터뷰에선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 그다음은 혁명밖에 없다”고 했다. 

    세상에! ‘답답한 고구마’로만 알았던 문재인의 입에서 저렇게 과격한 말이 쏟아져 나오다니. 이에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문 전 대표 주장은 헌법 불복 선동이다”라며 “문 전 대표가 연일 강성으로 나서는 것은 이재명 성남시장과의 경쟁 때문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대선을 자극적 주장이 아닌 정책 대결의 무대로 만들어주기 바란다”고 했다.

    2016년 11월 26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 수십만 인파가 몰렸다. 박해윤 기자

    2016년 11월 26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 수십만 인파가 몰렸다. 박해윤 기자

    탁월한 ‘이재명 화법’의 명암(明暗)

    문재인의 ‘이재명 흉내 내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즈음 이재명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였다. 여론조사 회사 리얼미터가 12월 12~1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은 1.3%포인트 하락한 14.9%를 기록했다. 이는 10주 만의 하락이었다. 이재명 측은 이같은 지지율 변화의 한 원인으로 문재인 지지자들의 견제 운동을 지목했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트위터 등 SNS에서 이재명이 형수에게 욕설한 내용 등 이재명에게 부정적인 게시 글을 퍼뜨리고 있었다.

    이재명은 12월 17일 페이스북에 “적진에서 날아온 화살은 여러 번 맞았지만, 처음 겪어보는 등 뒤(야당 지지자들)에 내리꽂히는 비수. 아프다. 정말 아프다”고 했다. 그는 이날 경기도 구리의 한 영화관에서 강연을 하기에 앞서 트위터에 “이미 확정된 강연 장소가 갑자기 취소돼 장소를 여기로 바꿨다”고도 했다. 당초 강연은 구리도시공사 행정복지센터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재명 측은 “대관료까지 입금했는데 갑작스럽게 대관 취소를 통보해 온 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손가혁이 가만있을 리 만무했다. 손가혁은 이재명을 위한 앱을 출시했다. ‘손가혁 앱’에선 이재명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와 블로그에 올린 게시 글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2월 29일 손가혁 관계자는 앱 출시 직후 “촛불혁명을 완성하기 위한 손가혁 앱(안드로이드용)이 출시됐다. 손가혁 회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통합 플랫폼에 함께해 주길 바란다”고 홍보했다. 

    손가혁 앱은 독특한 방식의 승급 기준으로 눈길을 끌었다. 앱 관리자는 “회원들이 이 시장의 트위터, 페이스북의 게시 글을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누르고 주요 뉴스에 댓글을 달면 이병부터 4성 장군까지 승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손가혁 앱 회원은 가입 즉시 ‘전사’ 계급을 받고 백인장(손가혁 앱 설치 추천인 10명 또는 공유 100회)부터 대장(손가혁 앱 설치 추천인 1000명 또는 공유 1만 회)까지 8개의 계급으로 승급할 수 있었다. 회원이 SNS에 이재명이 올린 글을 공유한 횟수에 따라 1점씩 점수가 쌓이는 방식이었다. 점수가 올라가면 승급이 가능했다. 

    하지만 손가혁 앱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에선 “십알단이 하던 짓과 뭐가 다르냐. 좌표를 찍고 여론을 조작하는 것을 곱게 보기는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십알단은 지난 대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는 SNS 활동을 조직적으로 펴왔던 이들을 뜻하는 은어다). 손가혁 내에서도 한 회원은 “무슨 군대도 아니고….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에서 이 시장의 정치철학을 SNS상에서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승급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만날 수록 싹튼 의문

    2016년 어느 날 조선일보 기자 배성규는 이재명을 만났다. 그는 “기초단체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는 게 무척 생경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눈 후 생각이 달라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말은 재치 있고 시원시원했다.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를 넘나들면서도 막힘이 없었다. 자기주장을 펴는 논리력과 디테일 또한 놀라웠다. 그는 반드시 근거 수치를 댔다. 다 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똑똑하고 유능해 보였고 수완도 있었다. ‘행사장에서 한번 봤는데 다음 날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말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놀랐다고 전하는 각계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이어 배성규는 “하지만 이 후보를 수차례 만나면서 의문이 싹텄다”며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정책과 공약을 설명하면서 내세운 수치도 때론 정확한지 의심스러웠다. 대화가 길어지면 이전 발언과 다르거나 모순되는 말이 튀어나왔다. (중략) 잘못이나 오류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 생각에 반대하면 가차 없이 몰아쳤다.”(조선일보 2021년 11월 17일자)

    그간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았던 이재명의 화법에 명암(明暗)이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과연 그런 건지 앞으로 계속 검증해 보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2016년에 기초단체장 이재명이 대선후보로 부상한 데엔 그 자신의 유능함과 영민함이 토대 역할을 했다는 점일 게다. 물론 손가혁을 직접 이끌면서 그들을 정치투쟁의 최전선에 동원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의 능력에 속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 그는 이런 능력으로 본격적인 대선 도전에 나서게 된다.(다음 호에 계속) 

    강준만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