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호

김종인 “이재명, G7회의 관찰만 하고 오라. 말 많으면…”

[인터뷰]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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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5-06-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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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신경 쓰는 건 중국, 독일 총리를 보라

    • 우리는 입장 정립 후 정상회담 통해 전해야

    • 지역화폐로 경제 회생? 불가능 … 재정 투입 신중해야

    • 내란 특검? 신속하게 끝내야 … 길어지면 국민 짜증 낼 것

    • 국가적 과제 우선순위 잘 정하고 해결하는 게 통치 능력

    • 오늘날 정치 사법화 심각, 정치 문제는 정치로 풀어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박해윤 기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박해윤 기자

    21대 대선에 대한민국 주권자 국민의 최종 선택은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여러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다수 국민이 그를 선택한 까닭은 뭘까. 이 대통령은 국정 운영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여야를 넘나들며 한국 정치의 균형추 구실을 해온 ‘정치 9단’ 김종인(85)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6·3대선의 의미와 이제 막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주일가량 지난 6월 12일 만난 김종인 전 위원장은 “이 대통령이 박근혜·문재인·윤석열보다 국정 운영을 잘하는 것 같다”고 호평했다. 그 까닭을 묻자 “국무회의를 6시간 가까이 했다는데,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우리나라 자살률이 왜 그렇게 높은지 물었다고 하는데, 이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전 위원장은 “이 대통령이 ‘대한민국 발전 전략’을 잘 수립해서 국정을 이끌어야 우리나라에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침 김 전 위원장 개인 사무실 이름도 ‘대한발전전략연구원’이다.

    국민 절반 이상이 대통령 반대편에 있다

    6·3대선에 국민의 선택은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이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할 것 같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판단하나.



    “국무회의하는 거 봐라. 보통 사람 같으면 그렇게 6시간씩 국무회의 못한다. 성남시장 때부터 (이 대통령을) 만나봤는데, 머리가 굉장히 총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매우 열성적인 사람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소년공으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못 온다.”

    이 대통령이 당선은 했지만, 득표율 50%를 넘기지는 못했다.

    “계엄과 탄핵이란 좋은 환경에서도 절반을 못 넘긴 것은 이 대통령의 한계다. 최소한 51%까지 득표할 줄 알았는데 49% 선에서 머물렀다. 그러니 국민 절반이 반대편에 있다는 것을 대통령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여러 인사를 단행했다.

    “대통령실 인선은 잘됐다고 본다. 강훈식 비서실장, 우상호 정무수석은 아주 잘된 인사다.”

    오광수 민정수석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다.

    “그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고 임명한 거다. 본인이 그런 문제가 있었으면 스스로 사양했어야지….”

    오광수 전 수석은 논란 끝에 결국 6월 13일 자진 사퇴했다.

    김용범 전 기재부 차관을 대통령 정책실장에 임명했다.

    “경제에 대한 포괄적이고 전반적 인식이 괜찮은 사람이다. 잘된 인사다.”

    정책실장과 호흡을 맞출 경제 사령탑인 부총리 인선이 남았다. 누가 적임자라고 보나.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진단을 정확히 할 수 있다. 진단이 정확해야 알맞은 처방도 내놓을 수 있다.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간단치가 않다. 초기 내각은 능력 위주로 하되, 무엇보다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인사여야 한다.”

    김 전 위원장은 “제일 중요한 게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이라며 “미래가 예측 가능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인적 구성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년 후 내다보고 경제정책 수립해야

    김 전 위원장은 “새 정부에서 경제팀을 맡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 경제 구조적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를 단순히 경기순환의 한 국면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재정을 투입해 그걸 마중물 삼아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얘기가 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역화폐를 발행해 소비를 진작시킨다고 하는데, 그것은 옛날 일본 오부치 내각이 국민에게 상품권을 나눠줘 경기를 진작하겠다는 발상하고 비슷하다. 그런데 그게 아주 전형적으로 실패한 정책이다. 그런 정책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회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어떤 대안이 있나.

    “산업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석유화학, 철강, 심지어 자동차까지 중국에 밀리는 추세다. 석유화학의 경우 기업들이 중국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하고 생산시설을 늘렸는데, 중국이 자체 생산하면서 팔 데가 없어 고민에 빠져 있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세 정부가 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 경쟁력이 중국에 비해 엄청나게 뒤처지게 됐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의 경제전문가인 김종인 박사는 지금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10년 후를 내다보고 지금 경제정책을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나라는 저출산에 초고령사회다. 초고령이라는 것은 ‘돈 들어갈 일만 있다’는 얘기다. 저출산도 따지고 보면 경제 문제다. 양극화 현상이 심화해 저출산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시대 변화에 맞게 경제구조, 산업구조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에 대한 처방이 지금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마치 일본이 1990년대 초 경기가 나빠지니까 일시적 침체인 줄 알고 재정을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섰다가 경제도 못 살리고 잃어버린 30년에 빠진 상황과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비슷하다. 까딱 잘못하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재정을 마중물로 잘못 건드리면 빚만 늘고 효과는 보지 못하는 ‘재정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재정을 투입할 때는 굉장히 신중하게 해야 한다.”

    김 전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만든 비상경제대응TF 활동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옛날 김영삼 정부에서 ‘신경제 100일 계획’을 추진하다가 잘못해서 IMF 외환위기가 왔다. 지금은 성급하게 자신만만하게 나설 때가 아니다. 신중하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김 전 위원장이 도움을 줄 수는 없나.

    “내가 지금 자연인인데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나. (대통령을) 만나게 되면 설명을 좀 하려고 한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이 대통령 들으라는 듯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쏟아냈다.

    “저출산 원인은 젊은 사람들이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택 가격만 해도 서울 강남과 강북 가격 차가 10배 가까이 난다. 그 문제를 어떻게 풀 거냐. 소위 ‘강남공화국’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 그 문제는 교육제도와 연결돼 있다. 국민의 컨센서스를 얻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가 없다. 옛날 5공 출발 직전에 전두환 대통령이 ‘과외 금지’를 단행했다. 과외 금지는 당시 일반 국민에게 칭송받은 정책이었다. 효과도 상당했다. 나중에 과외가 다시 살아난 후부터 강남으로 모이는 현상이 생겼다. 지금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 옛날처럼 강제로 과외를 금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국민의 컨센서스를 받아야 된다. 나는 국민투표라도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장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지금은 부모 능력에 의해 자식의 미래가 결정되는 시대 아닌가. 그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앞으로 이재명 대통령 같은 사람은 나올 수가 없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금 개천이 다 말라버려서 용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지금 우리 사회 구조가 그렇게 돼 있다.”

    개천이 다 말라 용이 나올 수 없는 구조

    그러면서 그는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조언했다.

    “이 대통령이 복지부 장관한테 ‘왜 우리나라 자살률이 높으냐’고 물었다고 하지 않나. 우리나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다. OECD 평균 2배다. 얼마 전에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 국민 55%가 장기적 울분 속에 살고 있다고 한다. 70%에 달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은 불공정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성장도 안 된다. 최소한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줘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한다. 이 대통령이 그것만 잘해도 대성공이다. 지금 국제적 여건도 고약하고, 국내적으로도 어려움이 많다. 우리 경제가 피크(정점)를 찍고 피크 아웃하기 직전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거기에다 절반 가까운 국민이 ‘어디 두고 보자’ 하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봐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까.

    “우선순위를 정하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대통령의 통치 능력이다. 윤 전 대통령이 실패한 이유가 통치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이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 대통령 스스로 판단해야 할 문제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를 선순환구조로 바꿔야 성장 동력이 생긴다. 다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평상시 임무 중 90%는 국민 생활과 관련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야기한 대로 이념과 아무 관계없다. 국민은 정부 정책이 일상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에 관심이 있다. 당장 무슨 금전적 혜택이 없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신뢰가 있으면 국민은 움직인다. 그러지 않으면 불만만 쌓인다.”

    김 전 위원장은 “계엄과 탄핵 이후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을 돌이켜 보면 우리 국민이 얼마나 성숙한 국민인지 잘 알 수 있다”며 “성숙하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드는 게 계몽주의인데, 우리 국민은 이미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에서 미국보다 더 성숙한 국민이 됐다”고 강조했다.

    “우리 국민은 자유민주주의 의식에서 굉장히 성숙한 국민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통치 능력을 발휘해 어떻게 하면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지 고심해야 한다. 그러려면 포괄적 국가전략 개념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하나의 이슈를 점검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서로 연관돼 있는 문제를 정밀하게 진단하고, 지금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 우선순위를 잘 정하고 선택과 집중해서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박해윤 기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박해윤 기자

    우리 입장 제대로 정립한 후 한미 정상회담 해야

    김 전 위원장은 이 대통령이 6월 15일 캐나다에서 사흘간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큰 준비 없이 G7 정상회의에 갔는데, 이번에 이 대통령이 성과를 내려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가서 조용히 관찰만 하고 오는 게 좋다. G7 회의 후 공동성명도 발표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나.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도록 내버려두고, 이 대통령은 짤막한 코멘트만 하는 게 좋다. 트럼프를 만난 독일 총리 메르츠가 성공적 면담을 했다고 하는 이유가 뭔가. 메르츠는 트럼프가 혼자 얘기하도록 자신은 4분밖에 얘기를 안 했다고 하지 않나. 그랬더니 오히려 성공적인 정상회담이 됐다고 평가받는다. 우리는 지금 미국에 대해 불리한 입장이 아니다. 미국이 지금 가장 신경 쓰는 건 대중국 정책이다. 미국이 대중 정책을 펴는 데 한국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 입장을 제대로 정립한 후 정상회담을 해야 우리 주장을 어느 정도 관철할 수가 있다. 지금 세계질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정립한 질서가 아니다. 유럽과 미국, 러시아, 중국,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로 다변화하고 있다. 미국의 위상과 파워가 2차 대전 직후에 비해 많이 줄었다. 그런 세계질서 변화에 미국이 적응해야 하는데, 미국 사람들이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마찰이 생겨나는 거다. 경제만 해도 2차 대전 직후 미국이 세계 GDP의 65% 가까이 차지했다. 지금은 25%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면 줄어든 만큼만 영향력을 축소해서 행사해야 하는데, 옛날이랑 똑같은 권한을 행사하려고 하니 자꾸 반발이 나오는 것이다.”

    미국 일극 체제의 국제질서가 다극 체제로 변화하더라도 우리는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삼아야 하지 않나.

    “우리와 미국의 관계는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관계다. 대한민국은 미국 도움 없었으면 1950년 7~8월에 없어질 뻔한 나라다. 미국 덕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미국과 우리와의 관계는 절대 끊어질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맹목적으로 미국 일변도로 가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옛날에 서독은 미국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도 동시에 소련과 관계를 이어가서 결국 나라의 통일을 이뤄냈다. 우리도 그런 식의 외교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우리가 한러 수교, 한·중 수교한 지가 벌써 30년이 더 됐다. 그때 우리가 세계질서 변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덕에 빨리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우리 수출 시장으로 확대했기에 IMF 외환위기도 빨리 극복할 수 있었고, 선진국도 빨리 될 수 있었다. 지금은 국내 문제든 해외 문제든 옛날식 사고방식을 갖고는 안 된다. 새로운 변화에 적극 적응해야 한다. 우리나라 과거 대통령이 실패한 것은 시대는 변했는데 그런 상황 인식을 못 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K-컬처 같은 소리는 그만해야 한다. 1980년대 일본이 딱 지금의 한국 같았다.”

    지금 한국 상황이 1980년대 일본 상황과 비슷하다는 건가.

    “1980년대 일본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21세기가 되면 미국을 능가해서 세계를 지배한다는 망상을 했다. 그때 일본은 자신들의 현실과 능력을 깨달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인구나 영토, 여러 가능성 측면에서 현실 인식을 잘했어야 한다. 우리도 5000만 명가량 되는 인구를 가진 나라다. 그런데도 세계 5위 국가가 된다는 소리를 한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 생각을 해야 한다. 부풀려 얘기해 봐야 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김 전 위원장은 국내외 지도자들이 실패한 이유가 ‘국민 의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 의식이 1970년대 후반에 크게 변했는데도 1960년대와 70년대 초 사고방식으로 통치하려다 실패했다. 프랑스 샤를 드골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처음 등장했을 때 생각으로 10년이 지난 후에도 똑같이 통치하려다 실패한 거다. 시대가 변하고 국민 의식이 변하면 정치가 거기에 맞춰 변해야 한다. 경제 상황이 변하면 사회구조가 바뀌고, 사회구조가 바뀌면 국민 의식도 변한다. 그러면 정부도 변화된 국민 의식에 맞게 적응해야 정치가 안정된다. 거기에 역행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민 의식 변화 못 따라간 지도자는 실패해

    성숙한 국민 의식과 동떨어진 모습 중 하나가 정치의 사법화 아닌가.

    “정치 문제를 정치로 풀려 하지 않고 법원을 쫓아다니는 것처럼 우둔한 일도 없다. 자기들이 풀어야 할 일을 자꾸만 법원에서 판단받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다.”

    김 전 위원장은 5공 시절 경험담 하나를 들려줬다.

    “5공 때 당시 집권 여당 민정당이 일방적으로 휴게실에서 예산안을 통과시킨 일이 있었다. 그때 의총장에 야당 의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예결 위원장 멱살을 잡았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고발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들은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끼리 싸움한 걸 갖고 무슨 형사고발을 하느냐’라며 취하하라고 해서 취하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나경원 의원이 원내대표 시절 당시 여당의 법안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에서 몸싸움한 사건을 내부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으로 가져가서 지금까지 처리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거대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집권한 지금이야말로 대화와 타협이란 정치를 복원해야 되는 것 아닌가.

    “당연하다. 자꾸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정치는 법조문에 얽매이면 안 된다. 세상은 늘 변하는데, 법은 과거에 만들어놓은 것 아닌가. 세상이 바뀌면 법 해석 자체도 좀 달라져야 된다. 세상이 바뀐 것을 법이 잘 따라가야 하는데 세상은 바뀌고 국민 의식은 달라졌는데 옛날 법조문만 갖고 ‘옳네, 그르네’ 논하려고 하니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집권당이자 다수당인 민주당이 먼저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연하다.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해야지,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건 안 된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우상호 정무수석이 그런 역할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국민의힘 등 야당에서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집권 여당이 제일 먼저 통과시켜 공포된 법안이 3개 특검 법안이란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이번에 선거를 빨리 치른 이유가 뭔가. 계엄 때문 아닌가. 그게 내란이라는 게 민주당 주장 아닌가. 그러니 특검을 해서 오래 끌지 말고 빨리 처리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오래 끌면 국민이 짜증 내고 반발한다. 그러니 짧은 기간 내에 신속하게 끝내야 된다.”

    특검으로 묵은 숙제를 해결하는 동안 정부와 여당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나.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 다수당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지금까지 국회 의석수 부족에 막혀 못했던 일들을 깨끗하게 해결해 줘야 한다.”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

    “노동법, 노란봉투법 같은 것을 제대로 고쳐야 한다.”

    노란봉투법의 경우 노조 파업이 활성화돼 기업 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고 재계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업 쪽은 항상 그렇게 얘기한다. 노조가 파업했다고 손해배상 청구하는 게 무슨 실효성이 있나. 그 사람들이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배상을 하지. 이제 민주당이 집권 여당이 됐으니 어느 한쪽 얘기만 듣지 말고 양쪽 얘기를 모두 잘 듣고 현실에 맞게 조화를 이뤄 처리하면 된다. 상법 개정도 마찬가지다. 주주 가치를 높여줘야 하는데, 그것도 기업은 반대한다. 우리나라 증권시장 밸류업이 안 된 이유가 주주들에 대한 대우를 제대로 안 해주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주주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상법이 잘 정비돼 있다. 민주당이 이제 여당이 됐으니 야당 때처럼 막무가내로 입법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균형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내가 보기에 이 대통령은 현실감각이 뛰어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현실을 제대로 보면서 국정 운영을 잘 해나갈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사법개혁한다고 민주당이 대법관 숫자 늘리는 법을 추진하려고 하니 대통령 지시로 미루지 않았나. 사법부는 삼권분립의 보루다. 그거 한번 잘못 건드려놓으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니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김 전 위원장은 “지금 정부 여당이 집중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 정부 여당이 1차적으로 해야 할 제일 큰 과제다. 국민을 안심시키려면 미래가 희망적으로 보여야 될 것 아닌가. 미래가 희망적으로 보이게 하려면 양극화 문제와 저출산 문제, 자살 문제를 대통령이 어느 정도 해결해 줘야 한다. 그래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정부 여당, 국민 안심시키는 데 집중해야

    교육개혁도 중요한 문제 아닌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교육개혁은 지금 이 대통령이 무엇보다 빨리 추진해야 할 문제다.”

    김 전 위원장은 다시 과외를 금지했던 전두환 정권 때 예를 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과외 금지하고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들 부모 직업이 전국적으로 다양해졌다. 부모 직업, 부모 재력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서 머리 좋은 사람들이 서울대에 들어간 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저렇게 빨리 기술 발전을 시킨 원동력도 교육에 있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대학 입시제도를 확 바꿨다. 그전까지 공산당 간부 아들이 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것을 다 없애고 중국 전체에서 우수한 사람을 뽑은 거다. 그게 지금 오늘날 중국의 경쟁력이 된 거다. 여하튼 부모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녀의 미래 운명이 결정되는 사회는 나라가 발전할 수 없다.”

    김 전 위원장은 ‘한국 사회를 환골탈태시킬 대안’을 오랫동안 구상해 온 듯하다. 그의 이 같은 뜻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돼 국정 운영에 반영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인터뷰 말미에 김 전 위원장은 다시 이렇게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실패하면 한국 경제에 희망이 없다. 여야를 떠나 이 대통령이 잘되도록 정치권이 협조해 줘야 한다. 지금 우리가 앞으로 10년 동안 제대로 못하면 나라에 희망이 없다. 자칫하면 우리가 일본처럼 될 수 있다. 50% 이상 되는 국민이 정부와 여당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인식을 대통령부터 철두철미하게 해야 한다. 윤석열이 망한 게 과반수도 못 얻고 0.73% 차이밖에 안 났는데 그것을 망각하고 무슨 놈의 반국가 세력 이딴 소리만 하니까 성숙한 국민이 등 돌려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민주사회 지도자에게 필요한 중요한 덕목이 ‘국민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를 잘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을 잘해야 지도자로서 자질이 있는 거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한마디로 ‘so far so good(지금까지는 좋다)’이다.” 



    구자홍 기자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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