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호

잘 하면 ‘비빔밥’, 잘못하면 ‘따뜻한 아이스커피’

[심층 분석] 이재명式 실용 인사?

  • 이종훈 정치평론가

    입력2025-06-2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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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임 때 밝힌 ‘통합정부’ ‘실용정부’, 인사로 구체화해야

    • 김민석이 위기 극복·민생 회복 이끌 국무총리 적임자?

    • 오른쪽 깜빡이 켜고 왼쪽으로 꺾는 엇박자 우려

    • 겉으로는 ‘성장’ 중시, 실제로는 ‘기본사회’ 고수할지도

    이재명 대통령이 6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총리 후보자 등 인선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이 대통령, 강훈식 비서실장, 위성락 안보실장, 황인권 경호처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6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총리 후보자 등 인선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이 대통령, 강훈식 비서실장, 위성락 안보실장, 황인권 경호처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은 6월 4일 취임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이재명 정부는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가 될 것입니다. …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습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도 성장을 강조하는 우향우 행보로 승부수를 던졌다. 쥐만 잘 잡으면 까만 고양이면 어떻고 하얀 고양이면 어떠냐는 이른바 ‘흑묘백묘론’도 설파했다. 언제나 그랬듯 취임사는 언어의 성찬이다. 결국 핵심은 진정성과 실천력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외쳤지만 자유를 위협하는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역설로 자멸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첫 무대는 역시 인사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선언한 약속은 결국 사람을 통해 실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한다. 하지만 과거 대통령 중 이것을 잘 해낸 인물은 의외로 드물다. 오히려 인사가 망사(亡事)가 된 경우가 더 많았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아부형 인사를 기용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윤 전 대통령이 고교 선배로 충성을 마다하지 않던 측근 김용현 안보실장을 국방부 장관에 기용하지 않았더라면, 비상계엄을 감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6월 4일 국무총리 후보로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했다.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는 상징성이 크다. 보수-진보 이념 갈등과 영호남 지역 갈등이 극심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선거 구도가 기본적으로 51대 49로 나뉘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을 상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국민의 대통령이 돼야 통치의 정당성이 생긴다. 그래서 보수 대통령은 진보도 수용 가능한 인물을, 진보 대통령은 보수도 수용 가능한 인물을 국무총리로 임명하곤 했다.

    그런 점에서 김민석 의원은 의외의 선택이었다. 이 대통령의 설명은 이랬다. “김민석 의원은 풍부한 의정 활동 경험과 민생 정책 역량, 국제적 감각과 통합의 정치력을 갖춘 인사로 위기 극복과 민생경제 회복을 이끌 적임자다.” 



    통합 지향성도 고려했다는 자평이었다. 과연 그럴까. 중도 보수를 지향하는 천하람 개혁신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전부터 민주당의 최전방 공격수를 해온 분인데, 야당의 관점에서 이를 과연 통합형 인선이라고 할 수 있겠나?”

    국민의힘 쪽 반응은 훨씬 격렬하다. 김기현 전 대표는 과거 미국문화원 불법 점거와 금품 수수 같은 이유로 징역형까지 살았던 인물이라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나경원 의원도 전국학생총연합 1기 의장 출신으로 반미운동과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주도한 인물이라며, 외교안보 참사의 서막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이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번째 전화 통화가 전직 대통령보다 늦어지면서, 이런 우려와 논란이 한동안 이어졌다. 논란이 계속되자 김민석 의원은 6월 10일 총리 후보 지명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해명했다. “전임 총리와 같은 학교도 다녔고, 미국 헌법에 관심이 있어 미국 변호사 자격도 받았다. … 비교적 미국에 대해 이해가 깊고, 트럼프 정부의 핵심 인사들과도 꽤 오래 개인적인 교분이 있다.”

    ‘자주파 대 동맹파’ 외교안보 라인 대결 구도 재현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첫날 발표한 국가정보원 인사도 논란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 노선이었던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장한 ‘자주파’의 핵심 인물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지명했기 때문이다. 취임 직후 국가정보원장을 국무총리와 함께 지명하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한 자리라서다. 국무총리에 이어 국가정보원장까지 과거 반미 노선을 걸었고, 진보 성향이 뚜렷한 인물로 기용한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 대통령의 설명처럼 통합 지향적 인사로 평가할 수 있을까. 미국 정부는 첫인사를 어떻게 평가 내리고 있을까. 혹시 부정적 기류가 있어 정상 간 통화를 일부러 늦춘 건 아닐까.

    이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국가정보원장 인선과 더불어 위성락 전 의원을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했다. 노무현 정부 북미국장으로 ‘동맹파’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자주파’를 대변하는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과 갈등을 빚어 한때 좌천을 당하기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취임 초 한미 정상 통화가 늦어지는 동안 대통령실은 위성락 안보실장을 중심으로 미국과 일정을 조율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나마 위성락 네트워크가 작동한 결과 정상 간 통화가 이뤄졌다면, 위성락 카드는 이재명 대통령의 묘수였던 셈이다. ‘자주파’와 ‘동맹파’의 동시 기용은 외견상 통합 지향적이고 실용 지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위 안보실장은 민주당 의원 출신으로 한솥밥을 먹던 사이라는 점에서 완전한 탕평 인사로 보기는 어렵다.

    민주당 내부에도 이념 정체성이 다른 인물들이 공존한다. 중도 진보도 적지 않다. 이낙연 전 총리가 새로운미래 당으로 갈라져 나오긴 전에는 중도 보수 성향 정치인도 적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김부겸 전 의원도 중도 보수로 봐야 한다. 내부적으로 중도 진보 또는 중도 보수 성향의 인물을 국회의장이나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하는 일도 비교적 흔한 사례였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내부 인사로서 성향이 다소 다른 인물을 기용하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다만 더 통합 지향적으로 나가려면 반대 진영의 인물도 과감하게 기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정도까지 나아갔느냐는 점에서는 아직까지 의문이 남는다.

    외교안보 라인에 내부적으로 성향이 갈리는 인물을 기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재정 라인에도 유사한 구성의 인선이 이뤄졌다는 평가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인사는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을 국정기획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공약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온 인물이다. 정치인 이재명을 유명하게 만든 ‘청년 배당’을 비롯해 ‘무상교육’과 ‘산후조리 지원’ 등 성남시 3대 무상복지 시리즈를 만들었고, 이 대통령의 핵심 정책 참모로 경기연구원장과 민주연구원장을 거치면서 기본사회론까지 완성했다. 그에게 이재명 정부 정책기획 총괄 역할을 맡긴 것이다. 향후 경제부총리나 사회부총리로 기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한주 위원장 같은 분배 우선주의자와 함께 성장 우선주의자도 함께 기용했는데, 그 대표적 인물은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기획재정부 출신 김용범 전 기재부 1차관이다. 경제성장 수석에도 합리적 성장론자로 알려진 하준경 한양대 교수를 임명했다. 특히 김용범 실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적 분식회계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 소속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과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김 부위원장이 삼성 봐주기를 한 것 아니냐며 민주당 의원들이 연판장을 작성해 정부에 송부하기도 했다. 진보정권에서 함께 국정 운영을 했지만 이념 정체성과 의견은 달랐던 인물의 기용이라는 점에서, 외교안보 라인의 위성락 기용과 닮은꼴이다.

    국민추천제? 그들만의 잔치 될 가능성↑

    현재까지 이뤄진 인사와 관련해서는 국민의힘이 외교안보 라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제외하면, 보수언론조차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약속처럼 ‘실용’에 방점을 찍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앞서 지적했듯이 아직 인선 범위가 찻잔 밖으로 벗어나진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도 보수를 자처했다. 그렇다면 통합 지향적 인사는 중도 보수를 넘어 일부 전통 보수에까지 미쳐야 한다. 아직 남은 인사가 많다. 각 부처 장관 후보자 지명과 임기를 마칠 주요 위원장 임명이 그것이다. 이들 인선 과정에 광폭 전문성 위주 탕평 인사를 선보인다면, 윤석열 초기와 같은 인사 참사 논란은 없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추천제를 다시 들고나왔다. ‘국민주권정부’다운 선택 같긴 하다. 그런데 함정이 있다. 그들만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다. 진보층, 그중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을 맹렬하게 지지해 온 팬덤,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 세력이 주로 참여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민추천제는 코드 인사를 국민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진보 인사 일색으로 하고 싶은데 통합을 지향한다고 했으니 국민 추천이라는 방식을 활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사실 이 제도는 참여정부, 곧 노무현 정부 시절에 시작했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운영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에는 인수위원회 단계에서 16일 동안 국민제안센터에서 장관 추천을 받았다. 이번 정부에서는 6월 10일부터 일주일 동안만 국민추천제 홈페이지나 이재명 대통령의 공식 SNS 계정 또는 e메일로 받았다. 기간도 더 짧아져서 국민이 미처 인지할 새도 없이 끝났다. 결국 정치 고관여층만 참여했을 것으로 봐야 한다.

    폭넓게 추천을 받는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상시 추천을 받는 편이 더 나을 수 있지만, 인물 검증에 더 많은 노고와 비용을 들여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이 제도가 과거에도 이벤트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핵심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검증 문제였다. 무엇보다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 이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 추천으로 임명한 인물이 사고를 치거나 미처 검증하지 못한 비리로 중도 탈락한다면, 누구의 책임이냐는 것이다. 국민의 책임일까 아니면 대통령 책임일까. 

    앞서 핵심은 진정성과 실천력이라고 지적했다. 실용 인사였느냐 아니냐의 판단 기준도 결국은 이 두 가지가 기준일 수밖에 없다. 진정성이란 외견상으로는 실용으로 포장한 인사를 한 뒤, 실제 국정 운영은 그들을 들러리로 만든 채 소수 측근 중심으로 하는 경우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김동연 경기지사는 3월 14일 한 방송에 출연해 이런 지적을 내놓았다. “표를 얻기 위해서 한다고 하는 그 실용적인 접근 측면에서는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말 바꾸기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기간 우향우 행보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우려다.

    김동연 지사는 문재인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였다. 당시 J노믹스라고도 불린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장한 장하성 대통령 정책실장과 갈등을 빚은 끝에 경질되는 아픔을 겪었다. 김 지사는 혁신성장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펼치면서 최저임금 급속 인상에도 속도조절론을 주장했다. 긴 갈등 끝에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론의 포장을 일반명사 ‘포용적 성장’으로 바꿨다. 혁신성장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차마 받아들일 수 없어 포용적 성장으로 슬쩍 도망간 형국이었다. 이후 실제 경제정책은 어떻게 변했을까. 변한 것이 없었다. 소득주도성장을 고수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민생 지원금 등으로 소득을 보전해 주면 경제가 성장할 것이란 믿음은 코로나19 시기에도 굳건했고, 그 결과 국가채무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400조 원이나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성장률은 재정 투입 결과 일시 상승했다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 현재 0%대에 도달한 상황이다. 그사이 시장 물가는 적어도 2배는 올랐다. 김 지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같은 선택을 이재명 대통령이 할지 모른다고 우려한 것이다. 성장으로 정책 기조를 바꾼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기본사회론을 끝까지 고수할 가능성이다. 김 지사는 경제부총리로 문재인 대통령과 진보 정치인을 체험한 중도 보수 성향 인물이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안다면 좀 아는 인물이다.

    대선 기간 성장을 강조하던 이 대통령이 대선 선거운동 말미인 5월 22일에 갑자기 중앙선관위 공약집에도 없던 기본사회 공약을 자신의 SNS에 올려 유권자, 특히 중도층을 의아하게 만든 적이 있다. 안 그래도 이재명 당시 후보의 우향우 행보에 반신반의하고 있던 터에 이런 일이 벌어지자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증폭되기도 했다. 김동연 지사가 지목한 부분이 바로 이런 점이다. 이와 관련해 자주 소환되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바로 “존경하는 박근혜라고 했더니 진짜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는 것이다. 갑자기 뒤집고 본래 정체성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어쩌면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왼쪽으로 핸들을 트는 일이 자주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는 ‘억강부약’은 그냥 해보는 흰소리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엇박자에 따른 국정 지체 가능성 우려

    실천력과 관련해서는 엇박자에 따른 국정 지체가 가장 우려되는 점이다. 친명계 박지원 의원은 6월 9일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라인 인선을 이렇게 평가했다. “굉장히 환상적이다. 그래서 외교안보 라인이 잘 짜여 있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역할 분담론이다. 한미 관계는 친미 위성락 안보실장이 담당하고, 한중·한러 관계는 이종석 국정원장이 담당하는 그림이다. 박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처럼 주류 ‘자주파’와 비주류 ‘동맹파’ 간에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때론 충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갈등의 수준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위성락 북미국장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겨냥해 다음과 같은 직격 발언까지 내놓았다. “안에서는 민족 자주를 대변하는 사람처럼 떠들면서 미국 사람들만 만나면 빌어서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다.”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미국 조야에서 확산하자 한 번도 미국을 가본 적이 없던 이 장관은 결국 미국으로 날아가 두루 해명해야만 했다. 그때의 인식 차와 감정적 앙금이 모두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대선 캠프에서 양측은 한차례 충돌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문 내용을 놓고 자주파 이종석이 주도한 선대위 평화번영위원회와 동맹파 위성락이 주도한 실용외교위원회가 이견을 보인 것이다. 그 결과 기고문 게재 시점까지 늦춰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격하게 다퉜던 사이기 때문에 이재명 정부에서는 서로 극한 대결을 피하면서 협조적으로 서로를 대할 것이란 기대로 두 사람을 기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 더욱이 한미 관계는 당시보다 더 위태롭고 복잡해졌다. 한마디로 싸울 의제가 넘쳐난다.

    박지원 의원은 앞선 인터뷰에서 ‘자주파 6인회’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본인을 비롯해 임동원·정세현·문정인·이종석·서훈 등 진보정권 시절 외교안보 라인에서 일했던 자주파 인사들이 모임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2명이 국가정보원장을 했거나 할 예정이라면, 이들이 진보진영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결국 자주파가 주류, 동맹파가 비주류라는 뜻이기도 하다. 주류가 드라이브를 거는 속에 비주류가 어쩔 수 없이 따라가다 폭발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실용 인사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또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다 아예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 실리를 하나도 못 챙기는 경우다.

    이제 막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경제재정 라인의 경우 아직까지 경제부총리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예상하기 어렵지만, 문재인 정부 시즌2가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기본사회론과 성장론이 충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학습효과 때문에 경제부총리는 분배론자로 임명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가야 경제부총리가 대통령에 맞서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분배론자가 주류, 성장론자가 비주류인 구도는 좀 더 명확해진다. 다만 이런 구도에서 주류가 과도하게 드라이브를 걸 경우 김동연 같은 인물이 또다시 나올 수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주주 이익을 제고하는 상법 개정으로 코스피지수 5000을 달성하겠다고 말해 왔다. 물론 재계는 반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라면값 2000원 발언으로 가공식품 업체들을 긴장시켰다. 주 4.5일제도 실행할 움직임이고, 노란봉투법도 대기 상태다. 이런 속에 20조 추경안도 신속하게 처리할 조짐이다. 전반적 흐름을 보면, 이재명 대통령의 ‘억강부약’ 철학 그대로다. 대기업은 누르고 영세 자영업자는 보호하는 기조다. 재정 측면에서만 말하자면, 추가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가 적자 국채 발행을 강요한 사실을 신재민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폭로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국가부채 비율을 인위적으로 40% 아래, 곧 39.4%로 유지하기 위해 벌였던 일이 드러난 사건이다. 그렇게 억제하고 싶어 했던 국가채무 비율은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4년에 47.4%로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이번에 20조 추경안을 실행하면 48%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다. 소득주도성장 고수의 여파는 이렇게 길고도 깊다. 

    정말 실용 인사였는지 여부는 결국 결과로 드러난다. 실제로 목표로 한 국정 성과를 낸다면 실용 아니면 실패다. 잘하면 비빔밥, 잘못하면 따뜻한 아이스커피다. 후자가 되지 않으려면 역시 믹스 앤드 매치(mix and match)의 묘를 잘 살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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