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대선은 ‘국민 분노’가 ‘진영 결집’ 이긴 선거
국민의힘 패배는 尹 ‘내란 행위’에 대한 심판
김문수 패배 원인? 탄핵에 대한 ‘애매한’ 태도 때문
‘졌잘싸’ 정신 승리, 국민의힘 미래에 도움 안 돼
국민 분노 무시한 정치세력에 미래 없어
‘분노’가 ‘진영 결집’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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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창피함과 실망감을 무릅쓰고 투표장으로 향한 이유는 대선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대선은 근본적으로 진영 대결의 성격을 띠며, 각 진영이 절박하다고 생각할수록 결집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한국갤럽이 2025년 5월 실시한 조사(5월 20~22일, 전국 18세 이상 1002명 대상 전화 면접,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이하 모든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유권자의 주관적 이념 성향은 보수 32%, 중도 31%, 진보 26%였다. 보수가 진보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이념적 환경이었고, 상당수 보수 유권자가 결집했으면 국민의힘도 선거 승리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패배였다. 이런 패배의 원인은 중도층과 일부 합리적 보수층까지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갤럽이 6월 6일 발표한 대선 사후 여론조사(6월 4~5일, 전국 18세 이상 1003명 대상 전화 면접,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던진 핵심 동기는 ‘내란 종료와 계엄 심판’이었다. 선거에서 투표율을 올리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유권자의 분노다. 이번 대선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명확히 나타났고, 유권자들의 분노가 진영 결집을 누르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마디로 ‘분노’가 ‘진영 결집’을 이겼다.
이런 차원에서 김문수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가장 결정적 패인은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인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 “재판 중이므로 내란죄 성립 여부는 확정할 수 없다”라는 애매한 입장을 고수하며, 탄핵에 대해 불분명한 태도를 보인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치명적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이런 답변이 타당할 수 있지만, 정치인은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고, 민심과 적절히 호흡을 맞춰야 한다. 탄핵이 적절한 결정이라고 답한 국민이 69%에 이르는 상황(한국갤럽 4월 8~10일 조사, 전국 18세 이상 1005명 대상 전화 면접,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에서 김 후보는 탄핵이 부당한 결정이라고 본 25%만을 위한 정치를 한 셈이었다.
계엄령으로 충격을 받고, 계엄령의 여파로 심각한 경제 위축을 겪어야 했던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김 후보의 이런 모습에 실망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는 권력 현상이고 선거는 권력 획득의 과정인데, 김 후보의 탄핵에 대한 ‘애매한’ 태도는, 선거에서 이기려는 것인지 아니면 의리를 지키기 위해 출마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선거가 끝나기 직전에 사과하기는 했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 김 후보가 놓친 중요한 점은 보수층 중에서도 상황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김건희 여사가 수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고,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를 ‘내란 행위’, 즉 ‘친위 쿠데타’라고 본다. 그런데 김 후보는 이런 다수를 차지하는 합리적 보수들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결국 중도층도 끌어안지 못했고 합리적 보수층도 떠나보내는 실수를 한 것이다.
대선엔 관심 없고 당권에만 관심?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힘조차 핵심 지지층만 신경 쓴 것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중도·보수라고 주장하며 중도층 확보에 나섰는데, 국민의힘은 반대로 핵심 지지층만 의식했다. 이는 정당의 존재 목적을 스스로 거부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당시에는 탄핵에 반대해야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일단 확보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계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스탠스를 선거 종반까지 계속 유지했다는 점이다.만약 강성 지지 세력의 결속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라면,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때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들 대부분이 탄핵에 찬성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20대 대선에서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반대로 해석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는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고, 사과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윤 전 대통령 공관에 계속 몰려가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행동을 보이기까지 했다.
만약 당 차원에서 여의도연구원을 통해 제대로 된 여론조사를 했어도, 또 그런 여론조사 결과를 국민의힘 핵심 지도부나 후보가 냉정하게 받아들이기만 했어도, 지금 같은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도부부터 후보·의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탄핵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나왔으니, 국민의힘은 대선에는 관심이 없고 당권에만 관심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권을 고려한다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은 확실하다. 내란 사건 이후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의 당원 가입이 늘어났고, 또한 이들의 발언권이 크다 보니 이들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당권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국민의힘 내부 분열도 패배를 더욱 부채질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전광훈 목사 집회에 격려 메시지를 보낸 것에 대해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탄핵 반대 당론 폐기’를 시도하자, 윤상현 의원이 “당의 뿌리마저 흔들린다”고 반발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탄핵 반대를 고집한 것은 중도 유권자를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같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보수정당의 ‘뿌리’라고 부르는 것도 논리적 근거가 약하다. 정치 경력도 짧고, 계엄령 같은 극단적 행동을 벌인 인물은 보수를 궤멸시키려는 존재로 받아들여야지 뿌리 운운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 한동훈 전 대표가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막은 당이어야 한다”고 즉각 반박하면서 당의 위신을 지켰다. 만약 한 전 대표 같은 목소리가 없었다면 국민의힘은 더욱 비참한 결과를 맞았을 것이다.

대선 패배가 확정된 6월 4일 김문수 전 대선후보가 철봉에서 턱걸이를 하고 있다. 김재원 전 최고위원 페이스북 캡처
김문수 전 후보는 대선 바로 다음 날 자신의 SNS에 철봉 운동과 훌라후프 운동을 하는 모습을 올리고, 현충원을 방문하는 등 당권 도전을 암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캠프 해산식에서 “대통령은 차량도 지원되고, 경호원도 배치되지만 당대표는 아무것도 없고 욕심낼 이유가 없다”며 출마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일련의 행보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김문수 전 후보는 나경원 의원과 안철수 의원을 연달아 만났다. 이런 만남의 공식적 이유는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운동을 열심히 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권 인사 다수는 이것 또한 당 대표직 도전을 위한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 전 후보 관점에서 보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40%를 상회하는 지지를 얻었으니, 자신이 당대표에 도전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친윤 세력이 강제적으로 한덕수 전 총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려던 시도를 당원들이 나서서 저지했으니, 본인이 출마한다면 당원들의 지원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친윤 그룹은 당내에서 누려온 기존 권력구조를 포기하려 하지 않고 있고, 이들은 김문수 전 후보를 선호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밀었던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깬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친윤계는 계파 내부 인사 중에서 후보를 선택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레 한동훈 전 대표의 존재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한동훈 전 대표는 잠재적 당권 도전자 중 ‘유일무이’하게 계엄령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탄핵에 적극적으로 찬성 의사를 밝힌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민의와 괴리된 발언과 행동을 한 여타 후보들과는 뚜렷한 대조를 보일 수 있는 인물은 한동훈 전 대표뿐이라는 말이다.

6월 11일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헌법 파괴 저지를 위한 현장 의원총회’에 참석해 나란히 서 있다. 뉴스1
尹 옹호 세력과 단절 필요
국민의힘 내에서는 비상대책위 체제를 유지한 채 내년 지방선거에 임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나, 이는 현실을 도외시한 안일한 사고다. 6월 말 임기 만료를 앞둔 김용태 위원장의 후계자로, 새롭게 선출되는 원내대표가 새로운 비상대책위원장을 임명하고, 그가 지방선거를 치르게 하자는 것이 해당 주장의 요지인데, 이런 논리는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이미 국민의힘은 상당한 위기에 직면해 있고, 또한 내란 특검과 김건희 특검 등이 본격적으로 가동하게 되면 당 관계자들도 수사선상에 오를 개연성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지방선거까지 진행하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이런 상황적 조건을 모두 고려할 때, 8월 전당대회 설이 가장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는 김용태 비대위원장의 주장이기도 한데, 이뿐만이 아니라 김 위원장의 주장처럼 탄핵 반대 당론 철회와 후보 교체 과정에 대한 감사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세력과 단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치열한 ‘투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보수로는 전망이 없다는 인식하에 이런 투쟁은 ‘보수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변증법적’ 과정일 수 있다.
새롭게 탄생할 보수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여야 한다. 첫째, 국민 여론과 적정한 선에서 소통하는 보수여야 한다. 둘째, 이성적 보수여야 한다.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면서도 공정성을 항시 확보하는 보수를 의미한다. 셋째, 획일성을 배제하고 다양성을 지향하는 보수여야 한다. ‘차이’를 ‘이해’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경직된 정치세력, 한 인물만 바라보는 정치집단과 경쟁하면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조성되면, 이제 보수도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선은 ‘분노의 분출’이 선명히 나타난 선거였다. 유권자의 분노가 진영 논리를 넘어섰으며, 이는 한국 정치에서 새로운 변화의 출발점이 됐다. 국민의힘의 대패는 윤석열의 내란 행위에 대한 분명한 심판이었다. 이제 국민의힘은 진실된 반성과 혁신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40%대 득표율에 만족하거나, 핵심 지지층만을 고려하는 과거의 정치로는 전망이 없다. 이번 대선 결과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국민의 분노를 무시하고 기성 권력 보호에만 매달린 정치세력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는 국민과 동행하는 것이지, 특정 인물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진실로 보수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자 한다면, 이제라도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선택은 국민의힘이 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