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개헌 국민투표 반대하는 국힘에 쓴소리
개헌 필요하나 현행 개헌안엔 논란의 여지
한국 헌법, 프랑스보다 계엄 통제 수준↑
계엄령, 남용돼선 안 되지만 유명무실도 위험
지방자치·분권 논의 거치지 않고 넣어선 안 돼
부마민주항쟁, 5·18 전에 6·25부터 헌법 전문 수록해야
우원식 국회의장이 4월 27일 국회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6·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연계’를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는 국민의힘을 향해 한 말이다. 앞서 4월 3일 국민의힘을 제외한 여야 의원 187명은 헌법 전문에 4·19 혁명과 함께 '부마 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의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이견을 표출할 정치인은 많지 않다. 현행 헌법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산물로 지금 우리의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또한 이전 헌법이 지니고 있던 모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대목도 존재하며, 2026년 현재의 시대상을 담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4월 27일 국회에서 개헌과 관련해 국민의힘의 참여를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개헌론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부마 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반영하고, 계엄요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며,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4월 6일 국무회의에서 “명시적으로 모든 정치 세력들이 동의했던 사안들”이므로, “이런 사안들에 대해서는 이번 지방선거에 즈음해서 개헌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헌법을 이런 식으로 성급하게 고쳐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느리고 꼼꼼한, 그러면서도 한국의 미래를 담아낼 수 있는 확실한 개헌론이다.
프랑스보다 높은 수준의 한국 헌법 계엄 통제
일단 사실관계부터 확인해 보자. “모든 국민”이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4월 10일까지 수행된 개헌 관련 여론조사를 종합해 보면 약 50~60%의 국민이 이번 지방선거에 맞춰서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는 제안에 찬성하고 있다. 적지 않은 숫자지만 ‘모든 국민’은 결코 아니며, 절반을 넘기는 정도다.
개헌안의 내용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첫째, 헌법 전문에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을 넣자. 둘째, 지방자치를 확대하자. 셋째, 계엄 재발 방지를 위해 계엄 발동 조건 등을 더 어렵게 만든다. 얼핏 보면 모두 맞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개헌안의 내용을 역순으로 검토해 보자. 계엄 재발 방지를 위해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리는 ‘계엄 이후’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은 현행 헌법에 의해 선포됐지만, 바로 동일한 현행 헌법에 의해 몇 시간 만에 국회에서 해제됐다.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경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됐다. 뉴스1
프랑스 헌법 제16조에 따르면 대통령의 비상조치 선포 후 30일 후 헌법위원회가 국회의장이나 국회의원의 요청에 따라 비상사태 유지 여부를 심사한다. 60일 경과 후에는 헌법위원회가 직권으로 유지 필요성을 심사하며,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즉시 해제하도록 돼 있다.
얼핏 보면 강력한 제지 조항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이 비상조치를 한번 선포하면 30일간은 비상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계엄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헌법 제36조에 따르면 계엄령 선포는 각료회의에서 결정되며 12일이 지나면 의회의 연장 승인이 있어야만 효력이 유지된다. 즉 11일까지는 의회 승인 없이도 계엄 상태가 지속된다.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첫발을 뗀, 흔히 ‘왕의 목을 친 나라’로 불리는 나라다. 그런 프랑스조차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포와 계엄에서는 대한민국 헌법보다 훨씬 느슨한 통제 조항을 마련하고 있다.
대통령의 계엄이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지만, 때로는 국가체제를 지키기 위해 동원돼야 할 ‘양날의 칼’이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칼을 무디게 만들면 그 칼을 쓸 수 없다. 계엄령은 남용돼서는 안 되지만, 유명무실해져서도 안 된다. 국가가 비상사태에 놓였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 발의된 개헌안대로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의하기 위해 국회의 ‘동의’를 요하도록 한다고 가정해 보자. 대통령이 부산에 있을 때 북한이 미사일로 서울을 공격해 국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비상사태가 벌어져도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없다. 치안 유지가 안 되고 전시 대응이 늦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에게로 돌아온다. 계엄령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식으로 잘못 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헌법적 최후 수단이다.
현행 헌법의 계엄령 관련 통제와 제어는 부족하지 않다. 프랑스의 사례와 비교해 보더라도 그렇다. 한국은 현행 헌법으로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을 막아냈다. 이미 ‘성능’이 입증된 셈이다. 잘 돌아가는 부품은 굳이 교체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한국 최초의 민주항쟁, 6·25전쟁
지방자치 확대에 대한 논의도 너무 성급한 측면이 있다. 현재 제시된 개헌안은 대한민국을 “지방분권 국가”로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그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지방자치와 분권, 국토 균형 발전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조선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8도 체제를 유지하는 게 옳을까, 아니면 현재의 생활권에 맞는 새로운 행정구역 설정을 해야 할까. 특히 지금처럼 지역별 격차가 점점 더 커지는 현실 속에서 ‘가난한 지자체’와 ‘부유한 지자체’의 형평성 등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할 지점이 많다.
이런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 “지방분권 국가”를 명시하는 개헌안을 6·4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은 성급한 발상일 수 있다.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의 헌법 전문 수록 역시 ‘정치권의 합의’를 근거로 급하게 추진할 일이 아니다. 두 사건의 역사적 중요성을 도외시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되짚기 위해, 우리는 헌법 전문의 역사학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2월 25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정신 헌법전문수록 개헌 촉구 국민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아DB
저 속에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이 들어가는 것에 이견을 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한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을 세우고 지켜나가는 데 가장 중요했던 ‘결정적 순간’이 빠져 있는 반쪽짜리 역사 서술이기 때문이다. 빠져 있는 결정적 순간은 6·25전쟁이다.
6·25전쟁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세력과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정권을 세우고 권력을 휘두르던 세력이 한반도라는 전장에서 맞붙은 사건이다. 이 성격을 좀 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6·25전쟁은 민주국가 한국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한국 최초의 민주항쟁이라고 볼 수도 있다. 3·1운동으로 대한국민이 각성한들 6·25전쟁에서 나라를 잃었다면 한국은 없었다. 한국이 없었다면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었다. 5·18도 부마항쟁도 있을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개인적으로는 헌법 전문이 ‘공식 역사관’ 노릇을 하는 것이 썩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란 학계와 시민의 해석에 맡겨져야지 국가가 권력을 동원해 규정할 일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헌법에는 전문이 있고, 그 속에 역사에 대한 서술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개헌 과정에서 더욱 공정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도모해야 한다. ‘일단 넣고 보자’는 식으로 헌법에 손을 대는 대신, 좀 더 전체적이고 신중한 논의가 사회 전반에서 이뤄져야 한다.
헌법 수정하되 치열한 논의 거쳐야
헌법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율법처럼 한 획도 고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맥락과 필요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 내일의 대한민국을 고민하는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 무턱대고 개헌 반대만을 외치고 있는 국민의힘은 태도를 바꾸어 개헌 논의 테이블에 앉는 것이 바람직하다.하지만 지금까지 논의된 개헌안의 내용에 수긍할 수는 없다. 한국의 국토 크기와 교통·통신 수단 발전에 맞춰 지방에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하고 어떤 책임을 지게 할 것인지, 대통령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예방하되 북한이나 제3국이 초래할 수 있는 안보 위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한국이라는 나라의 탄생과 정체성은 어떻게 규정돼야 하는지 등에 대해 너무도 성급하게 답을 내리고, 그것을 헌법에 못 박아두려 하고 있다.
2026년의 한국은 1987년의 한국과 다르다. 그때는 군사독재에 신음하던 중진국이었지만 지금은 정상 작동하는 민주국가다. 그때는 다른 나라들이 갔던 길을 따르면 되는 후발 주자였지만 지금은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길을 스스로 탐색해야 한다. 지방선거에 맞춰 졸속 개헌을 하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의 일원일 수는 없다. 앞으로의 100년을 고민하는 새 헌법 논의가 지금부터 치열하게 전개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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