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는 해체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

[심층분석] 국회로 옮겨간 스포츠 권력투쟁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4-10-2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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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육회장 3연임·축구협회장 4연임 반대, 여야 한목소리

    • 문체부 장관 “행정소송 불사, 연임 저지하겠다”

    • 건설업자 이기흥은 어떻게 ‘체육 대통령’이 됐나

    • “선수에게 쓸 돈을 체육회 선거에 쓴다” 비판도

    • ‘국위선양 프레임’과 ‘성적 지상주의’부터 버려야

    • 올림픽 메달 수보다 중요한 건 개인의 건강과 행복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 질의에 출석해 자리해 있다. [뉴스1]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 질의에 출석해 자리해 있다. [뉴스1]

    #장면1

    박정하 위원(국민의힘): 이기흥 회장님도 3연임 하려고 하시나요? 아니에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그것은 아직 확정된 게 없습니다.

    박정하: 확정되지 않았어요?

    이기흥: 예, 확정 안 했습니다.

    박정하: 대한체육회장님이 3연임이나 하실 때 아까 대한축구협회장님과 달리 스포츠공정위원회만 거치면 돼요, 아니면 정관도 바꿔야 돼요?

    이기흥: 정관은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박정하: 그냥 스포츠공정위원회만 거치면 되나요?

    이기흥: 예.

    #장면2

    강유정 위원(더불어민주당):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장관께 묻겠습니다. 아까 대한체육회와 스포츠공정위원회의 문제에 있어서 “행정소송을 불사하고서라도 구성과 운영의 불공정성을 시정하겠다”라고 각오를 보여주셨습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 예.

    강유정: 대한체육회처럼 대한축구협회 임원 문제에 있어서, 지금 회장(정몽규)이 본인 스스로 증인으로 출석해서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라고 얘기를 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똑같이 문체부가 대한축구협회를 감사하고 감사 결과에 따라 회장의 자격정지를 요구하고 임원 자격이 정지되면 4연임에 도전할 수 없는 규정이 있습니다. 의사 있으십니까?

    유인촌: 예, 그렇습니다.

    강유정: 행정소송을 불사하고라도 4연임을 저지할 수 있다는 문체부 장관의 약속을 받았다고 저는 생각을 하겠습니다.

    유인촌: 예.

    9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가장 논란이 된 사안은 체육단체장들의 ‘연임’이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3연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4연임 반대에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이날 회의록에는 ‘연임’이란 단어가 52회나 언급됐다.

    앞서 열린 8월 26일 회의에서도 연임은 민감한 주제였다. 민형배 위원(민주당)이 유 장관에게 “올가을이 지나고 나면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더 이상 볼 수 없겠지요?”라고 질의하자 장관은 “물론 (스포츠)공정위원회, 대한체육회가 정리를 할 건데요. 그전에 공정위원회 자체가 지금 공정을 의심받고 있기 때문에…”라며 여운을 남겼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공정위)는 포상과 징계뿐만 아니라 대한체육회와 회원단체 임원의 연임을 심사하는 기구다. 공정위의 승인 없이는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축구협회장의 연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공정위 구성 권한이 대한체육회장에게 있을 뿐 아니라 현 김병철 위원장은 2019년 5월 임명되기 전 이 회장의 특별보좌역으로 활동하며(2017년 1월~2019년 1월) 대한체육회로부터 월 300만 원씩 급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회장의 연임 심사가 “측근에게 받는 셀프 심의”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공정위로부터 3선 승인을 받은 뒤 김 위원장 등 8명을 초대해 현대산업개발 소유 골프장에서 골프 접대를 한 사실이 드러나 “공정위 자체가 공정을 의심받고 있다”는 유 장관의 말을 뒷받침했다.

    “4200억 원 못 줘” vs “국정농단 세력의 부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 질의에 출석해 자리해 있다. [뉴스1]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 질의에 출석해 자리해 있다. [뉴스1]

    국민은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싼 대한축구협회의 무원칙과 정몽규 협회장의 무능력에 분노하지만, 체육계의 관심은 2025년 1월 치러질 제42대 체육회장 선거에 쏠려 있다. 3선에 도전하는 이기흥 회장과 이를 저지하려는 문체부의 갈등은 이미 전쟁 수준으로 격화된 상태. 2023년 10월 유 장관 취임 이후 양측은 사안마다 충돌하고 있는데 기저에는 이 회장의 연임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말 스포츠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민관합동 기구인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자신들이 추천한 민간위원 후보가 한 명도 위촉되지 않은 점을 들어 불참을 선언했다. 유 장관은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대한체육회에서 분리할 필요성을 언급하며 대한체육회를 압박했다. 2009년 KOC가 대한체육회에 통합된 후 대한체육회장은 KOC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갈등은 4월 총선과 파리 올림픽(7월 26일~8월 11일)을 치르며 잠시 휴전에 들어가는 듯했으나,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인 안세영 선수가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재점화했다. 이 회장은 대한배드민턴협회를 두둔했고, 문체부는 협회의 횡령·배임 의혹에 대해 고강도 조사를 실시했다. 대한배드민턴협회로 전초전을 치른 뒤 문체부의 칼끝은 대한체육회를 향했다.

    특히 예산 집행 방식을 놓고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정면충돌했다. 대한체육회는 매년 정부로부터 4000억 원가량의 예산을 받아 각 종목단체와 17개 시·도체육회, 228개 시·군·구체육회에 배분해 왔다. 그러나 유 장관이 대한체육회의 낡은 시스템을 지적하며 예산을 각 종목단체와 지역 체육회에 직접 지원할 의사를 밝혔다. 실제 8월에 생활체육 예산 중 일부인 416억 원을 대한체육회를 거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직접 집행하겠다고 하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당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특정 단체를 억압하던 방식”이자 “국민체육진흥법 위배”라고 반발했다. 유 장관은 “자기 마음대로 할 거라면 4200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받으면 안 된다”고 공박했다. 이 회장은 이후로도 ‘직권남용’ ‘국정농단 세력의 부활’ 등 문체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며 공세를 이어갔다.

    문체부는 본격적으로 이기흥 회장과 정몽규 협회장의 연임 저지에 나섰다. 먼저 대한체육회와 회원단체 임원의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공정위의 구성과 운영의 불공정성에 대해 시정을 권고하는 형태로 단체장 연임에 제동을 걸자 양측은 돌이킬 수 없는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9월 12일 문체부는 대한체육회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사실을 밝히며 “대한체육회는 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기관 운영 전반에 걸쳐 많은 논란과 문제점을 언론과 국회 등을 통해 지적받았다”고 청구 취지를 설명했다. 이와 별개로 10월 8일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대한체육회에 조사관들을 파견해 정부 지원 예산 사용 내역과 대한체육회장 선거인단 관리 등 비위 의혹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단체장 ‘셀프 연임’ 반대, 정부와 국회도 한목소리

    정부와 국회의 전방위 압박에 체육계도 대응에 나섰다. 이 회장은 9~10월에 걸쳐 전국 지방 체육회를 순회하며 간담회를 열고 체육계 발전을 저해하는 문체부와 이에 동조하는 정치권을 성토했다. 그 와중에 9월 23일 강원도 간담회에서 정부와 국회를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이 회장의 발언이 공개돼 논란이 커졌다.

    이 회장은 “문체부가 괴물이고 정치집단” “속 썩이는 양반들이(국회의원들) 여기(강원도) 다 있어. 이모, 권모, 유모, 속초의 이모” “박정하 위원, 진종오 위원, 이게 필이 잘못 꽂힌 것 같아. 내가 볼 때는 망조로 가는 길” 등 특정인을 거론하며 비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진태 (강원도)지사한테도 (강원)도의회 의장한테도 경고를 여러 차례 했다.” “우리 (지방 체육회) 회장님들이 너무 조용히 있어요. 의원들한테 가 설명을 하세요. 나만 보지 말고” 등 정치 선동에 가까운 발언을 거듭했다. 이 회장이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으나 체육계를 결집하려다 국회를 적으로 돌리는 역효과만 냈다.

    10월 10일 대한체육회는 문체부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애초 전국체육대회(10월 11~17일)가 끝난 뒤 제출한다고 알려졌으나 정부와 국회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이 회장이 공익감사 청구서 제출 일정을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17개 시·도체육회 및 228개 시·군·구체육회, 대한육상연맹 등 60여 개 회원 종목단체, 대한체육회경기단체연합회, (사)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회장 박노준), 한국올림픽성화회(회장 조규청), 대한민국국가대표지도자협의회(회장 강호석)가 공동청구인으로 이 회장과 대한체육회를 엄호했다.

    대한체육회가 제기한 문체부의 위법·부당한 업무는 △2016년 체육단체 통합 및 국민체육진흥법의 취지에 반하는 생활체육 예산의 지방자치단체 이관 △국회에서 확정된 사업 예산 집행 과정에서의 과도한 개입 및 부당하고 고의적인 사업 승인 지연 △체육계 분열을 일으키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강제 분리 추진 △빈번한 정관 개정 승인 지연 △부당한 선거 개입 등이다.

    주택공사에 골재 납품하다 체육계 수장으로

    9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여당 의원들은 3연임을 노리는 이 회장에게 “시중에서 ‘체육 대통령’이라는 부르는 데 동의하느냐” “체육계의 힘을 가지고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체육 대통령’이란 말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던 김종 문체부 제2차관 이후 8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195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이기흥 회장은 1985년 서른 살에 이민우 신한민주당 총재 비서관으로 일하다 1989년 골재 생산업체인 우성산업개발을 창업했다. 선수 생활을 한 적도 없고, 체육 관련 분야를 전공한 적도 없으며, 재벌 기업인도 아니었던 그가 체육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바로 ‘골재(건설공사 시 기초 재료로 쓰이는 모래나 자갈)’ 덕분이었다. 1990년대 우성산업개발은 신도시 건설 붐과 인천국제공항 등 건설 경기 호조로 큰돈을 벌었고, 이 돈으로 매입한 땅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수천억 원대 자산가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기 하남시 미사리에서 채취한 모래를 대한주택공사(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합병)에 납품한 것을 인연으로 2000년 대한근대5종연맹 부회장이 됐다. 대한주택공사는 1985년부터 대한근대5종연맹을 지원하는 당연직 회장사로 지금도 LH공사 사장이 연맹 회장을 겸하고 있다.

    이후 이 회장은 2004년 대한카누연맹 회장, 아테네올림픽 한국선수지원단 홍보·의전담당 임원,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이 됐다. 2007년 아시아카누연맹 부회장, 2008년 대한체육회 조직·재정 특별위원회 위원, 2010년 대한수영연맹 회장과 광저우 아시안게임 선수단장 등을 지냈다. 특히 2013년 김정행 용인대 총장이 3표 차로 이에리사 의원을 누르고 제38대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될 때 김 회장을 도운 공로로 대한체육회 수석부회장이 됐다. 2015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을 지휘한 그는 2016년 드디어 제40대 대한체육회 회장에 선출됐다.

    통합 초대 회장으로서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을 아우르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그는 화려한 정관계 네트워크를 자랑하며 ‘체육 대통령’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2007년 체육인불자연합회 회장, 2012년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을 지내는 등 종교적 배경도 체육계에서 입지를 넓혀가는 데 큰 힘이 됐다.

    이 회장은 2017년 대한체육회 이사회로부터 IOC 위원 후보 추천 권한을 위임받아 자신을 후보로 추천하는 이른바 ‘셀프 추천’ 논란에 휩싸였지만, 2019년 IOC 총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당선되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우리나라 역대 11번째 IOC 위원이자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자격으로 당선한 대한민국 최초 IOC 위원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그리고 2021년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46.4%의 높은 득표율로 재임에 성공했다.

    문체부 갑질에 맞선 ‘체육 대통령’

    체육계가 전폭적으로 이 회장을 지지해 온 데에는 박근혜 정부 시절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와 김종 전 차관의 국정농단 사건의 영향이 컸다. 김 차관이 최순실 씨를 등에 업고 모든 인사와 정책을 좌지우지하며 ‘스포츠 황태자’ ‘체육 대통령’으로 불리던 시기. 문체부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으로 생활 스포츠를 이관하고 대한체육회는 껍데기만 남기려 한다는 의혹, 김종 전 차관이 재단 사무총장에 자기 사람을 앉혀 대한체육회를 사유화하려 한다는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갈등이 시작됐다. 이 시기 이기흥 수석부회장 겸 대한수영연맹 회장은 대한체육회를 대변하며 문체부의 갑질에 맞서 싸우는 인물로 떠올랐다. 김 전 차관이 통합 초대 회장 선거에서 특정인을 민다는 소문이 퍼지자 체육인들은 똘똘 뭉쳐 이 회장을 당선시켰다.

    이후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해도 체육계는 이 회장 편에 섰다. 대표적으로 2019년 1월 쇼트트랙 선수 심석희가 국가대표 코치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온 국민이 경악했지만 정작 체육회는 선수 보호보다 이 회장 보호를 우선했다.

    2020년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박정 의원(민주당)이 공개한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A이사는 “이런 일을 계기로 해서 이 회장님이나 대한체육회를 흔들려는 부류가 있다. 거기에 절대 흔들리지 말고 당당하게 임해 달라”고 했다. B이사는 “지금 사태 해결을 위해 언론, 국회, 시민단체 등에서 이 회장님과 대한체육회에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회장님께 힘을 실어주고 싶다”며 이 회장을 적극 옹호했다.

    ‘심석희 미투 사건’은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갈등에 새로운 불씨를 던졌다. 미투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문재인 정부는 2019년 민관합동의 스포츠혁신위원회(혁신위)를 꾸리고 한국 스포츠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그때 혁신위가 권고한 것이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올림픽위)의 분리였다. 정권교체로 혁신위의 활동은 잊혔지만 지금도 문체부는 대한체육회 압박용으로 분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한체육회 사유화, 칼 빼든 문체부

    한국 체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IOC 위원을 겸하고 있는 이 회장에게 3선 연임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과, 8년간 장기 집권한 이 회장이 대한체육회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 회장은 차근차근 연임 작업에 들어갔다.

    7월 대한체육회는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어 ‘단체장 연임 제한 규정 삭제’ 등을 담은 정관 개정안을 가결했다. 이 회장의 3선을 위한 포석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총회에서 현 체육회장은 정관 적용에서 제외한다고 수정 의결하면서 한발 물러섰으나 문체부는 정관 개정 자체를 불허했다. 개정안대로라면 축구협회장에게 4선의 길을 열어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현안 질의에 출석했다. [동아DB]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현안 질의에 출석했다. [동아DB]

    ‌이 회장이 대한체육회 임원 수를 늘리고 각종 특보, 자문, 위원, 참관단 자리를 만들어 자기 사람을 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9월 24일 문화체육관광위 현안 질의에서 진종오 위원(국민의힘)은 “대한체육회가 25명이었던 임원을 50명으로 200% 증원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추궁했고, 유 장관은 “통합 전 14개였던 위원회가 31개로 늘어났고 체육과 관련 없는 사람들 400명 이상이 위원으로 들어가 있다. 여기에 쓴 돈이 엄청나다. 선수와 감독들을 위해서 써야 할 예산”이라고 했다. 박정하 의원은 “31개 위원회에 소속 위원만 471명이다. 최근 3년간 연평균 회의는 1.9회이고 연간 한 번도 개최하지 않은 위원회가 2021년 3곳, 2022년 2곳, 2023년에 1곳이다. 딱 한 번 열린 위원회가 절반 이상이다. 참석률은 70%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지난 3년간 회의비만 4억4000만 원을 썼다. 특보 인건비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문체부 장관 패싱’ 논란이 있었던 2024 파리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 해단식(8월 13일)에 대해서도 이 회장이 문체부와 대척점에 서서 체육인들을 결집하기 위한 의도적 해프닝이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럴수록 문체부는 이참에 정치화된 대한체육회를 바로잡고 단체장의 무분별한 연임과 체육단체 사유화를 막겠다고 벼르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헤게모니 싸움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답답하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 13개를 포함해 총 32개의 메달을 따며 종합 8위를 차지했음에도 우리는 뭔지 모를 불편함을 넘어 불쾌감을 느낀다. 안세영 선수의 폭로가 메달리스트들이 축하받아야 할 자리를 망쳤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은 스포츠의 가치를 ‘개인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두는데, 체육계 지도자들은 여전히 메달 수에 집착하는 시대착오가 불편한 것이다. 대한체육회 수장이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예상 메달 수를 축소 발표한 의도나,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오자 ‘해병대 캠프’ 덕분이라 자랑하는 것에 실소하지 않을 국민이 있을까.

    국가주의와 승리 지상주의에 매몰된 스포츠

    홍덕기 경상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스포츠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대한체육회와 올림픽위의 분리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국가주의와 승리 지상주의 스포츠 패러다임은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이다. 올림픽 금메달 같은 대회 성적 향상과 국위선양 등을 명분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승리 지상주의에 매달렸지만 이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 방편으로 제시한 것이 대한체육회와 올림픽위의 분리다. 체육회가 펄쩍 뛰는 이유는 국가대표를 선발해 국제 대회에 내보내고 성적에 따른 보상을 집행할 권한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 체육회에 기대하는 것은 메달 수가 아니다. 국민 모두의 스포츠권을 보장해 주고 스포츠를 통해서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 저변을 마련하고 프로그램과 지도자와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대한체육회 예산의 70%가 엘리트 체육에 쓰인다. 아예 올림픽위를 떼어내면 체육회는 본연의 업무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혁신위의 분리 권고안의 핵심 내용이었다.”

    홍 교수와 함께 스포츠혁신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대택 국민대 스포츠건강재활학과 교수는 정반대 해법을 내놓는다. 차라리 대한체육회에 국가대표 선발권 등 올림픽위 기능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관장할 국가스포츠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자는 것이다.

    “흔히 체육의 3개 기둥을 생활체육, 엘리트 체육, 학교체육이라 하는데 한국의 체육 정책은 IOC 모델을 그대로 가져와서 만들다 보니 모든 게 엘리트 체육 중심이다. 하지만 올림픽 종목과 아시안게임 종목을 다 합쳐봤자 50~70개인데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종목은 스포츠가 아닌가? 거리에서 뛰는 사람들은 스포츠인이 아닌가? 태생적으로 운동을 잘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운동을 하지 말아야 하나? 스포츠는 기본권이다. 문체부도 대한체육회와 이런 식으로 아웅다웅할 게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스포츠 정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는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 체육계 리더들의 후진성을 이렇게 꼬집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탁구선수 신유빈이 가장 박수 받은 장면이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이었다. 신유빈은 자신을 이긴 일본 선수를 포옹하며 오히려 위로했다. 과거 올림픽을 떠올려보라. 일본에 지면 ‘현해탄(대한해협)에 빠져죽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던 시절이었다. 은메달을 딴 선수가 기뻐하기는커녕 ‘국민께 죄송하다’며 시상대에서 웃지도 못했다. 웃으면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비난받았다. 반대로 금메달을 따면 온 국민이 울었다. 금메달을 통해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심을 회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금메달 말고도 자랑거리가 너무 많은 나라가 됐다. 물론 스포츠에서 승리라는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선수들은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금메달만이 절대적 가치는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과정에 집중하고 공정과 상식을 중시하는 시대가 됐다. 체육계는 ‘국위선양 프레임’과 ‘성적 지상주의’부터 버려야 한다. 체육계는 해체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

    국민은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관심이 없다. 스포츠를 통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가 제공해 줄 것이냐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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