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명‧김이 무너뜨린 건 보수 권위와 신뢰”

[추적] ‘기술자’인가 ‘협잡꾼’인가…명태균‧김대남의 입

  •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입력2024-10-1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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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론 호도, 정치 후퇴시키는 ‘明 여론조사 기술’

    • 숨은 목적, 배후와 결합해 발휘

    • 김 여사 적대적 유튜버와 내밀한 대화한 김대남

    • 최소한의 ‘로열티’ ‘기강’도 없어

    • ‘실력 있다’ 여겼던 보수 정치 오라(aura) 사라져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논란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왼쪽).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명태균·뉴스1]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논란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왼쪽).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명태균·뉴스1]

    2년 반 후 대선이 어떻게 진행돼 누가 승자가 될지, 그전에 별일이 생기지 않아 예정대로 대선이 치러질 수 있을지, 2024년 10월 현재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서울시장을 만들고, 당대표를 만들고, 대선후보를 만들고, 반(反)민주당 후보단일화를 시키고,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는 다 안다. 내 말대로 하면 된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은 여럿 있다. 심지어 그런 사람 중 절반은 최종 결과를 맞힌다. “이쪽이 무조건 이긴다”는 사람이 절반이고, “저쪽이 무조건 진다”는 사람이 절반이니 전자나 후자 중 한쪽은 맞히게 되는 것이다.

    10월 중순 이후 11월까지 한 달은 상당히 중요한 정치적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정치적 일정이 많다. 10월 16일 전남 곡성과 영광, 부산 금정, 인천 강화 등 4개 지역 기초단체장과 서울교육감 재보선이, 11월 5일(현지 시간)에는 미국 대선이 있다. 11월 9일이면 윤석열 대통령 임기 반환점이다. 11월 15일과 25일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공판이 열린다. 한국 정치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정치 일정이 빼곡하다.

    주요 정치 일정을 앞두고 터진 ‘김대남-명태균’ 파동을 먼저 짚어보자. 김대남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을 지낸 인사로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서울의 소리’ 기자에게 “한동훈을 공격하면 김건희 여사가 좋아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이 공개돼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다. SGI서울보증보험 상임감사로 있던 그는 자신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사퇴했다.

    명태균, 스스로 리스크 키우다

    공직에 잠시 발을 들였던 김대남은 “내 말은 다 과장이거나, 어디서 들은 소리를 옮겼을 뿐”이라며 그 나름대로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에 비해 명태균은 자신의 이슈가 수면으로 올라온 이후 스스로의 입으로 판과 리스크를 키웠다. 경남에서 주로 활동해 온 명 씨는 김건희 여사의 선거 공천 개입 논란 속 핵심 인물이다. 그는 윤 대통령 내외,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의원,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보수 진영 거물들과의 교분을 과시하며 “나를 구속시키면 한 달 안에 (윤 대통령) 탄핵이 될 텐데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명 씨가 언급한 인사 대부분은 명 씨와의 교분 자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명 씨 발언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고 2021년 4·7재보선,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민의힘 대선 경선 등 큰 선거판을 자기가 다 짰다는 명 씨 발언의 신빙성 여부나 명 씨 행보 속의 불법성 여부를 이 지면에서 논할 순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권, 보수 진영 입장에선 큰 악재라는 점이다. 돼지 내장과 피, 각종 부산물이 튀는 소시지 만드는 과정이나 정치의 이면이 비슷하기 때문에 안 보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김대남과 명태균은 정치 이면의 현실을 드러내 거부감을 강화한 측면이 있다. 게다가 정치 일반의 모습이 아니라 보수 정치권 이면에서 벌어진 부정적 일들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 부패, 측근 비리 등은 어찌 보면 정치의 일반적 문제다. 하지만 김대남-명태균 파동은 상당히 다르다.

    명 씨가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땐 통화 녹음 파일 혹은 텔레그램 메시지 형태로 그의 휴대전화에 담겨 있다는 내용에 대한 ‘카더라’가 횡행했다. 녹음 파일을 들은 사람에게 전해 들었다는 사람, 텔레그램 캡처 파일을 찍은 사진을 봤다는 사람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통상적으로 이런 ‘카더라’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명태균 본인이 본격적으로 입을 연 후엔 상황이 달라졌다. 보수 진영 지도급 인사들이 하나같이 “한두 번 만났을 뿐이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하고 가깝다. 나는 그냥 아는 사이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그를 ‘안다’는 정치권 인사 상당수는 “여론조사에 밝고 능한 사람” “판을 잘 본다”고 평가했다. 김철근 개혁신당 사무총장은 “여론조사 기법에 능하다. 인사이트가 있다. 휴일을 끼워 조사하는 것이 누구에게 유리하고…”라고 말했다.

    통계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평일에는 노년층 여론이 잘 잡히고, 휴일에는 젊은 층 여론이 좀 더 잘 잡힌다는 여론조사 현장의 통념이 있긴 하다. 혹여 그런 편향이 생길까 봐 정상적 여론조사 기관은 성별·연령별 할당이나 보정과 별개로 평일과 휴일 혹은 일과 시간과 퇴근 이후 시간으로 나눠 조사를 진행한다.

    여론조사에 밝고 능하다?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경우엔 가장 먼저 제시하는 선택지를 더 많이 고르는 경향인 ‘초두효과’를 막기 위해 여론조사 기관에 ‘선택지 로테이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을 고르는 조사의 경우 무슨 이력을 제시하는지에 따라, 현안에 대한 조사에선 해설 문구를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응답 결과가 출렁거리기 마련이다. 통칭 ‘비표본오차’라 하는 사안이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여론조사에 밝고 능하다’는 것은 민심을 잘 읽기 위해 좋은 여론조사를 설계하고 진행하는 능력을 갖췄거나, 여론조사 결과의 판별 분석에 능해 숫자 너머를 예측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국갤럽이 2012년부터 매주 발표하는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이나 엠브레인퍼블릭과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2020년 7월부터 매주 발표하는 전국지표조사(NBS)가 전자다. 후자들이 포진한 정당들이 진짜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하는 비공개 조사는 여러 오차를 줄이기 위해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명 씨가 주도한 여러 여론조사가 특정한 결과를 유도하기 위한 ‘마사지’ 작업을 거쳤다면? 여론조사에 능하고 잘 만진다는 사람들, 여론조사를 잘 뽑아낸다는 ‘떳다방’식 회사들이 정치권 주변에 적지 않다. 노무현과 정몽준 두 사람의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이 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된 2002년 이후 정당의 각급 후보 경선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지역에서 진행되는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경선은 ‘기술자’들의 주무대였다. 전화번호부에 기반한 유선전화 방식의 여론조사가 진행되던 시절에는 특정 지역의 전화 회선을 대량으로 확보해 착신을 전환시켜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하는 방식이 유행했다.

    휴대전화 자동응답(ARS) 방식이 확산되던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곤 여론조사 업체와 짜고 연령대별 여론조사 진행 상황 정보를 입수한 다음 당원들에게 연령·성별 등을 허위로 응답할 것을 독려하는 문자메시지를 대량 발송한 통합진보당 간부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제는 감시와 규제가 촘촘해졌지만 여전히 정치권에선, 주로 지역에서 제도와 규제의 맹점을 활용해 ‘기술’을 잘 쓴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들린다.

    스펙과 경력 불분명한 인사들

    좁은 지역에서 짧은 시간에 반복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해 인지도를 끌어올린다든지, 소지역 인구분포에 따라 조사에 힘을 싣거나 빼서 원하는 결과를 유도하는 것, 결과가 잘 나올 시점을 족집게처럼 고르는 것, 호재가 나올 때 즉각 반영되도록 여론조사를 시행하는 준비성과 순발력 등이 그 기술의 요체다.

    그 여론조사를 자기들이 의뢰했다고 발표할 언론사를 섭외할 능력도 필요하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편법의 영역이다. 명태균이라는 인물도 지역 무대에서 기술을 갈고닦아 몇 년 전부터 중앙으로 진출한 기술자일지 모른다. ‘드루킹’식의 댓글 공작이 아니라면 이런 기술은 여론을 호도하고 정치를 후퇴시킨다. 그렇지만 그 자체로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기술은 숨은 목적이나 배후와 결합해서 발휘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만약 표본 자체에도 손을 댔다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명 씨와 정치인들의 교분, 그가 행한 여러 일이 합법의 범위일 수도 있고 편법을 넘나들거나 여론조사에 대한 여러 규정과 제도를 위반한, 크지 않은 위법행위에 속할 수도 있다. 이는 앞으로 선관위나 경찰과 검찰이 밝힐 일이다. 이미 김영선 전 의원과 금전거래에 대해선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권위와 신뢰의 심각한 훼손이다. 선거나 경선을 앞두고 주요 정치인들이 당 밖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략과 관련해 컨설팅을 받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책사’라는 사람도 등장한다. 인사이트가 있는 학자, 사회적으로 검증된 전문가나 원로, 각 영역에서 업력이 입증됐고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전문가들과 함께한다는 자체가 플러스 요인이 된다.

    하지만 풍수나 관상, 역술인 등이 등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른바 스펙과 경력, 배경이 불분명한 인사도 마찬가지다. 조폭, 이단으로 불리는 신흥종교 단체도 비슷한 경우다. 대중은 실망감을 갖게 되고 이런 인사들과 교분을 쌓은 사실이 드러난 정치인은 권위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지지율은 출렁거릴 수 있지만 권위와 오라(aura)에 대한 타격은 회복이 참으로 어렵다.

    드루킹 사건이 그랬고 최순실 스캔들이 그랬다. 두 사건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대중은 “어떻게 저런 인물들과…”라며 혀를 찼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경우 성남시장 시절부터 오래 함께한 측근 참모들의 이력이 불분명하고 국민 눈높이보다 한참 떨어진다는 평가가 오랜 핸디캡이다. 대장동 사건과 관련된 이 대표 원조 참모들이나 이 대표의 민주당 장악 과정에서 거칠게 움직여 신실세로 불리던 한총련 간부 출신 참모들은 요즘 잘 안 보인다. 아마도 다음 대선 때까지 그들은 안 보이는 데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대남 사태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참모가 여야 상황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언론과 접촉해 이런저런 일을 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다. 정치 문화가 바뀌면서 잣대가 엄정해지고 제약이 강해졌지만 모든 정권에서 대통령실의 개입 시비는 있었다. 그중 일부는 논란으로 종결되고, 그중 일부는 사법적으로 단죄를 받았다. 단죄를 받은 사람 중 상당수도 ‘지지층에게는 총대를 멘 사람’으로 평가받고 추후 정치적 보상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대남 사태는 전혀 다르다. 김건희 여사에게 적대적이고 불법적인 함정을 파 곤경에 빠뜨리고 법적 절차까지 진행되고 있는 인물, 유튜브 언론 종사자와 내밀한 대화를 스스럼없이 나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공격 사주도 심각한 문제지만, 정치적 이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대통령 내외에 대한 폄하와 비하에서는 최소한의 ‘로열티’나 ‘기강’도 묻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에서 이력과 경력이 불분명하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현 여권 계열보다는 야권 계열에서 많이 등장했다. 보수 진영이 주류를 형성해 오면서 상대적으로 엘리트주의와 권위의식이 강하고 주요 구성원들의 학벌이나 스펙도 화려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진보 진영에선 이력이 부족하더라도 물불을 안 가리는 저돌적 행동력을 인정받는 인물이 꽤 있었다.

    그래서 보수 진영은 명문 학교 출신이나 고시 카르텔, 재벌들과 인적·경제적 유착 등이 주로 탈을 일으켰다. 이런 이유로 “보수는 부패하긴 하지만 실력은 있다”는 통념이 오랫동안 유지됐다. 명문대 교수 아들로 태어나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도 정치 입문 당시에는 엘리트주의자의 한계를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다.

    그런데 3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재벌과 유착이 아닌 ‘21그램’ 같은 영세기업에 대한 공사 밀어주기 논란, 작전세력과 주가조작 연루 의혹, 메이저 보수 언론과의 유착이 아니라 보수 유튜버와의 밀착, 전통 있는 진보언론의 탐사보도로 인한 곤욕이 아니라 ‘서울의 소리’의 잇단 폭로와 특종 등. ‘조선일보’가 “용산, 서울의 소리에 네 번 당했다”는 기사로 한탄했을 정도다.

    정권 악재 도드라질 가능성 커져

    게다가 명태균 사태에는 대통령 내외뿐 아니라 이준석, 오세훈, 홍준표, 나경원, 원희룡, 안철수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현 정권의 권위 타격이 보수 진영 전체로 전이되고 있는 셈이다. 한동훈만 빼고.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으로 권위에 타격을 입힐 만한 인물이나 유튜브 매체, 녹음 파일이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런 사태를 미리 막으려면 일단 알아야 한다. 민정수석실이 됐건 누가 됐건 간에 대통령 부인을 포함해 누구든 만나 문제 소지를 사전에 파악해 정치적인 것과 법적인 것 각각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 가능할까?

    이런 상황에서 10월 16일 재보선에 이어 11월 5일 미 대선, 11월 9일 윤석열 대통령 임기 반환점, 11월 15일과 25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1심 선고 레이스가 펼쳐진다. 여권과 야권의 악재와 호재가 엇갈리는 한 달이 예고된 것이다. 지금 분위기라면 여권 입장의 호재가 등장하더라도 그냥 흘러가고, 악재는 크게 도드라질 가능성이 크다. 야권 입장에선 그 반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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