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금융당국 정책에 대출시장 '대혼란'

[금융 인사이드] 이복현 말 한마디에 30여 개 정책 쏟아져...

  • 손희정 이투데이 기자 sonhj1220@etoday.co.kr

    입력2024-10-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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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복현 금감원장 ‘입’에 은행권 혼비백산

    • 5대 은행, 두 달간 22회 금리인상 + 대출 축소 정책 30개

    • 은행마다 규정 제각각… 창구 직원·차주 모두 혼란

    • 진화 나선 당국… “구체적 대안 차차 논의”

    • 국정감사에서도 가계부채 부실 관리 도마에…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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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입’에 은행권이 혼비백산이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기 위해 이 원장의 지침대로 대책을 쏟아냈지만 돌아온 것은 ‘질책’뿐이기 때문이다. 대출을 조이래서 금리를 올렸더니 “실수요자를 외면했다”며 은행권에 책임을 떠넘겼다. 오락가락한 대출 규제에 차주들의 피해가 속출했고, 은행 창구엔 민원이 빗발쳤다.

    이 원장이 혼란에 대해 사과하고 가계대출을 은행권 자율 관리에 맡기는 것으로 정리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두 달여 동안 수시로 대책을 쏟아내는 과정에서 대출 시장 혼란이 증폭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출 줄이라고 한 지 10일 만에 “실수요자는 보호해라”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시화되던 7월 2일 이 원장은 금융감독원 임원회의에서 “성급한 금리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 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첫 메시지를 냈다. 그러자 금융감독원은 다음 날 17개 국내은행 부행장과 은행권 가계부채 간담회를 열고 “가계대출 현장 점검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은행권은 연이어 금리를 인상했다. 손쉽게 대출 수요를 누를 방안이 금리이기 때문이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이 7~8월 두 달간 금리를 인상한 횟수는 총 22회다. 신한은행이 7회로 금리인상 횟수가 가장 많았고, 우리은행 6회, KB국민은행 5회,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은 각각 2회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이 기간 은행들이 끌어올린 누적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는 최대 1.4%포인트에 달한다.

    그러자 금융감독원이 은행들 ‘이자 장사’에 판을 깔아주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생겨났다. 이를 의식한 듯 이 원장은 8월 25일 “금리인상은 정부가 원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고, 이틀 뒤인 27일 금융감독원은 긴급 브리핑을 열고는 “대출 심사를 강화해 투기 수요를 잡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무렵 일주일 동안 5대 은행은 총 30여 개의 대출 축소 정책을 줄줄이 내놨다. 주담대를 포함해 전세대출, 신용대출 한도·대상을 축소했다. 일부 은행은 무주택자에게만 전세대출을 해주는 ‘초강수’ 조치를 꺼냈고, 모기지신용보험(MCI)·모기지신용보증(MCG) 상품 취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본 상품에 가입하지 못하면 소액의 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이 가능해 대출한도 축소 효과가 난다.

    대출이 조여지자 실수요자 부담이 늘어났다. 그러자 이 원장은 또 한 번 제동을 걸었다. 9월 4일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에서 “갭투자 등 투기 수요 대출에 대한 관리 강화는 바람직하지만 대출 실수요까지 제약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간담회에서 “은행권의 반응이 과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당국과의 공감대 없이 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더니 6일 만인 9월 10일엔 은행 대출 정책과 관련한 발언으로 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했다. 18개 국내은행장과 함께한 ‘가계대출 관련 간담회’ 이후 취재진에게 “가계대출 급증세와 관련해 세밀하게 입장·메시지를 내지 못한 부분, 그로 인해 국민이나 은행 창구 직원에게 불편과 어려움을 드린 점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계대출에 대해 은행의 ‘자율’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감독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는 기본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며, 은행이 각자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의 메시지에 은행권에선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인상, 대출 축소 등 은행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는데도 비판만 받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자율 관리라고는 하지만 결국 은행 간 규제 수준을 맞추게 될 것”이라면서 “실수요자 보호 측면에서는 결혼이나 이사, 장례 등 예외 사례에 대한 특별 대출 한도가 부여되는 방향으로 가게 되리라 본다”고 내다봤다.

    은행 창구·차주 모두 혼란… “은행마다 말 달라”

    8월 20일 경기 수원시의 한 은행에 대출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8월 20일 경기 수원시의 한 은행에 대출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혼란은 은행 창구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5대 은행 가운데 한 곳의 창구 직원 A씨는 “대출 정책이 단기간에 급변하다 보니 상담할 때 보편적 얘기조차 못 한다”며 “부동산 대출의 경우 상담과 대출 시행일 사이에 3~6개월 정도 시차가 있는데, 그사이 새로운 대출 규제가 생길 수 있어서 적합한 상품을 추천하기 조심스럽다”고 토로했다.

    다른 은행의 창구 직원 B씨도 “당국이 가계대출 관리를 은행 자율에 맡기겠다는 건 앞으로도 은행별로 대출 정책을 달리 가져가겠다는 거 아니겠나”며 “지금도 타 은행의 정책을 즉각적으로 알 수 없어서 상품 비교를 못 해주는 상황이다. 고객에게 ‘타 은행에서 직접 상담을 받아봐야 한다’는 답밖에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의 “실수요까지 제약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 달라”는 말에 은행들이 실수요자를 위한 예외 규정을 속속 발표한 것이 혼선을 더했다. 신한은행은 1주택 소유자에 대해 ‘처분 조건부 신규 구입 목적’의 주담대 취급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생활안정자금 주담대도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이라면 1억 원을 초과할 수 있다고 예외를 뒀다. 신용대출도 결혼 및 가족 사망·출산·의료비 등에서는 연 소득 내 취급에서 연 소득의 150%(최대 1억 원)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결혼 예정자 및 상속의 경우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을 내주는 등 실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출 취급 예외 조건을 제시했다. 수도권 직장 변경 및 자녀의 수도권 진학, 치료 목적이나 부모 봉양 등도 증빙 자료를 제출하면 유주택자의 전세대출도 가능하도록 했다.

    KB국민은행은 1주택 소유자라도 처분 조건부 및 결혼 예정, 상속 대출 등에 대해선 신규 구매 목적의 주담대를 허용하기로 했다. 생활안정자금 주담대 역시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이라면 연 1억 원의 한도를 초과해 취급할 수 있도록 했고, 소유권 이전 등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은 10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제한했다.

    속속 바뀌는 대출 규정과 예외 조항에 차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차주 C씨는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대출 규제에 너무 혼란스럽다”고 말했고, 차주 D씨는 “대출이 막힐까 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매일 은행 창구를 돌고 있다”며 “은행원마다 조언이 달라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도입으로 주담대 한도가 줄고, 고금리가 이어지는 것도 차주들의 셈법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하반기 금리인하를 앞두고 변동·고정금리 대출상품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한지 가늠하기 어려워서다.

    10월 1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차주들은 금리 하락을 체감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출금리를 내렸다가 자칫 가계대출과 수도권 집값 상승세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기 때문이다.

    9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4년 반 만에 통화정책회의에서 ‘빅 컷(한 번에 0.5%포인트 인하)’을 단행했지만 대출금리에 큰 변동은 없었다. 은행들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기 위해 가산금리를 올리는 등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면서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말까지는 대출 증가세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대출금리가 큰 폭으로 내리려면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복현 말 강조되다 보니 혼선”

    은행권은 가계대출 급증세를 막음과 동시에 실수요자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은행권의 깊어진 혼란·고심에 금융당국도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9월 6일 금융감독원이 개최한 ‘가계부채 관리 실무협의회’에선 이에 대한 대안 마련을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다.

    회의에는 박충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은행 담당)와 17개 은행의 가계대출 주관부서 임원들이 참석했으며, 박 부원장보는 각 은행의 가계대출 관리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그러면서 “하반기 기준 금리인하와 이사철 대출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사전 관리를 잘 해달라”는 당부도 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은행 관계자는 “본 회의는 ‘킥오프 미팅’으로서 방향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고객들이 은행 이곳저곳 찾아다니지 않도록 가능한 범위에서 비슷한 기준을 맞춰가자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라며 “경영계획 관리 한도를 초과한 은행이 있지만, 여유가 있는 곳도 있어 각 은행의 처지가 다르다. 앞으로 이에 대한 견해 차이를 좁혀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차후 지속적 조율을 통해 대책을 강구해 나갈 전망이다. 현재 금융당국과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들은 한 달에 한 번 가계부채 현황 점검 회의를 하고 있다. 실무자급들이 참여하는 가계부채 관리 실무협의회도 진행하며, 여기서 실수요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가계부채 정책에 대한 혼선은 없을 것이라는 태도다. 10월 10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금융 컨트롤타워가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 중에) 누구냐는 얘기까지 나온다”는 지적에 “저는 제가 그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가계부채 관리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메시지가 혼선을 빚은 것과 관련한 질책엔 “가계부채와 관련해서는 취임 당시부터 엄정하게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혔고, 그 과정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그때그때 상황에 강조하는 점이 언론에 부각되다 보니 혼선이 있었던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이고 있다며 총량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가 도입된 9월은, 8월보다는 (가계부채) 증가 폭이 상당히 줄었다”면서 “총량적으로 (가계부채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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