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과 다른 길 선택한 삼성전자, 도착지까지 다를까

[Focus] ‘파운드리 분리’ 인텔 vs ‘정면 돌파’ 삼성전자

  • 유수진 연합인포맥스 기자 sjyoo@yna.co.kr

    입력2024-10-2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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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사 56주년에 무너진 ‘반도체 제국’ 인텔

    • AI·파운드리 사업 오판… “혁신 역량 부족했다”

    • 인텔이 겪었고, 삼성전자도 겪을 ‘IDM’ 한계

    •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 올해 2조5000억 원 적자 예상

    • 삼성의 대응 전략, IDM 장점 극대화 ‘턴키’

    7월 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4(Samsung Foundry Forum 2024)’에서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장(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삼성전자]

    7월 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4(Samsung Foundry Forum 2024)’에서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장(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삼성전자]

    2024년 9월 16일은 세계 반도체 역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날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반세기 가까이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장악하며 전 세계 반도체업계를 호령한 인텔이 대대적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잘나가던’ 왕년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이날 국내외 언론은 일제히 ‘반도체 제국의 몰락’을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구조조정안의 핵심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분사다. 이미 인텔은 올해 초부터 파운드리 사업의 회계를 분리해 별도 실적을 발표해 왔는데, 아예 사업부를 따로 떼어내 자회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향후 기업공개(IPO)를 통한 외부 자금조달도 추진한다. 더는 파운드리를 ‘품 안의 자식’처럼 끼고 있지 않겠다는 공개 선언인 셈이다.

    이는 인텔의 올해 2분기 대규모 적자의 주범으로 파운드리가 지목된 데 따른 결과다. 종합 성적표에 영업손실 16억 달러가 찍혔는데, 파운드리에서만 영업손실 28억 달러(약 3조6953억 원)가 발생했다. 적자 규모가 지난해 같은 기간(19억 달러)은 물론 1분기(25억 달러)보다 더 커졌다. 처참한 성적에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실망스럽다(disappointing)”고 말했다.

    ‌주가도 폭락했다. 올해 첫 영업일(1월 2일) 주당 47.80달러였던 인텔 주가는 9월 6일 기준 18.89달러까지 떨어졌다. 8개월 새 60%가 넘게 빠진 것.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한 인텔 경영진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장고 끝에 내놓은 고육지책이 바로 파운드리 분사다.

    인텔의 추락을 지켜본 시장 관계자들의 눈이 돌연 삼성전자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개별 기업의 경영 실패가 아닌 종합반도체기업(IDM·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든 생산공정을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사례로 봐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면서다.

    삼성전자는 인텔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전 공정을 아우르는 대표적 IDM이다. 인텔이 겪은 문제가 IDM의 구조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면 삼성전자도 인텔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삼성전자도 반도체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분사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예견된 인텔 몰락… “시대 변화 못 읽어”

    인텔의 구조조정 발표는 사실상 예고된 수순이었다. 최근 더 심각해지긴 했지만 ‘인텔 위기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각에선 인텔이 아예 파운드리 사업부를 매각할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투자자들이 인텔에 파운드리를 분리·매각하는 방안을 권장했지만 (발표가) 그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보도했다.

    대신 독일과 폴란드에서 진행하던 공장 건설을 중단하고 말레이시아 제조 프로젝트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전체의 15% 수준인 직원 1만5000명 감원도 추진한다. 사업과 인력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셈이다. 이 밖에 배당금 지급 중단 등 고강도 비용 절감 계획을 실행하고 향후 파운드리 사업부 IPO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겔싱어 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이번 결정의 긍정적 측면을 이렇게 설명했다.

    “파운드리를 자회사로 두면 독립적으로 외부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각 사업의 재무구조 최적화로 성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 또 주주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인텔의 몰락 원인으로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전략적 실책’을 꼽는다. 반도체 제왕으로 군림하던 과거 PC시대의 영광에 취해 모바일·인공지능(AI)칩 시장 선점에 실패했고, 기존 CPU·파운드리 사업에서도 경쟁사에 치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게 됐다는 것.

    무엇보다 ‘AI 붐’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치명적 실책이었다고 평가된다. 뒤늦게 AI칩 가우디 시리즈를 잇달아 출시하긴 했지만 이미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의 점유율을 뺏어 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앤젤로 지노 CFRA 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지난 2~3년간 반도체산업에서 벌어진 AI 전환은 인텔에 큰 타격”이라며 “인텔은 AI 전환에 적합한 역량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오판이 있었다.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경쟁하듯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들여와 미세회로 공정 개발에 집중할 때 홀로 다른 길을 갔다. 자체 기술력으로 10나노미터(㎚·10억분의 1m) 첨단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해 장비 도입을 포기한 것이다. 뒤늦게 전략을 수정해 장비 확보에 나섰지만 이미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가 한참 벌어져 있었다. 한계를 느낀 인텔은 결국 2018년 파운드리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

    美 정부 뒷배로 재참전했음에도…

    2021년 2월 인텔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겔싱어 CEO가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하며 인텔은 3년 만에 파운드리 사업을 재개했다. 늦은 출발이더라도 공격적 투자로 경쟁사를 추격해 반도체 제국을 재건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실제 이때부터 인텔이 2년간 쏟아부은 돈은 250억 달러 이상이다.

    2030년까지 파운드리 ‘세계 2위’가 되겠다는 야심만만한 목표도 밝혔다. 사실상 삼성전자를 향해 선전포고한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파운드리 점유율 1위는 TSMC(62.3%)고, 2위가 삼성전자(11.5%)다. 그 뒤를 SMIC(5.7%)와 UMC(5.3%), 글로벌파운드리(4.9%)가 따르고 있다. 인텔의 점유율은 1% 미만으로 추정된다. 10위권 내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인텔의 자신감은 든든한 뒷배에서 나온다. 미국 정부다.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미국 정부는 반도체지원법을 제정해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인텔에 가장 많은 지원금을 제공했다. 올해 3월 지급을 약속한 보조금(85억 달러)과 대출(110억 달러)을 합하면 약 195억 달러(약 25조7458억 원)에 달한다. 심지어 9월 미국 국방부의 군사용 반도체 개발 프로젝트를 위탁한다는 명분으로 30억 달러를 더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영업실적과 점유율에서 드러나듯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대형 고객사는 인텔 설계사업부가 유일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익성·재무 악화를 감수하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지만 정작 외부 고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쟁사가 고객인 IDM의 한계

    이러한 난관은 업계 선두 TSMC와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는 2위 삼성전자가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IDM은 반도체 설계·제조를 모두 하는 사업 구조 특성상 파운드리 고객 확보가 만만치 않다는 단점이 있다.

    사업 부문이 다르긴 하지만 반도체 설계 기업(팹리스) 처지에선 경쟁사와 핵심 영업비밀인 설계도를 공유해야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꼼꼼하게 기술 유출 방지 계약서를 쓴다고 해도 100% 안심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팹리스로선 다른 조건들이 유사하다면 굳이 불필요한 리스크를 감당할 이유가 없다.

    한때 삼성에도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맡기던 애플이 이젠 TSMC에만 주문을 넣는 게 단적인 예다.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를 모토로 위탁생산에만 집중할 뿐 설계 관련 사업을 일절 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고객과의 신뢰 구축에 훨씬 유리하다고 평가된다. TSMC의 주요 고객 리스트엔 엔비디아와 AMD, 퀄컴,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가 빽빽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IDM이 가격·기술력 측면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갖추면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별개다. 업계 관계자들은 IDM의 경우 수직계열화를 이룬 모든 사업을 다 챙겨야 해 특정 부문에만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 파운드리가 수율 개선 및 ‘큰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이 많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메모리로 벌어들인 돈을 비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로 까먹는 형국이다. 반도체의 경우 사업부별 실적을 별도로 구분해 공개하지 않지만, 증권가에선 올해 2분기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사업에서 4000억 원대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올해 연간 기준으로는 2조5000억 원대 안팎의 적자를 예상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텔의 파운드리 분사를 계기로 삼성전자 안팎에서 파운드리 사업부나 시스템LSI 사업부를 분사하자는 얘기가 급부상했다. 증권가에서도 적극 검토를 부채질하고 나섰다. 법인을 분리하면 독자 경영·회계가 가능해져서 각자의 사업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게 이유다.

    인텔과 다른 선택한 삼성전자, 결말도 다를까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사 계획이 전혀 없다”며 완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IDM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 이를 통해 고객사 확보에 나서겠단 태도다. 전면에 내세우는 건 ‘턴키(Turn Key·일괄 생산) 서비스’다.

    이는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파운드리와 메모리, 어드밴스드 패키지 사업을 바탕으로 고객 요구에 맞춰 전(全) 공정을 일괄적으로 수행하는 ‘커스텀 솔루션’ 제공을 뜻한다. 3개 사업 간 협력을 통해 고성능·저전력·고대역폭 강점을 갖춘 통합 AI 솔루션을 선보이겠다는 것.

    이러한 공급망 단순화는 고객 편의를 제고하는 것은 물론 제품의 시장 출시를 가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삼성의 턴키 서비스를 이용하는 팹리스 고객은 파운드리·메모리·패키지 업체를 각각 사용할 때보다 칩 개발부터 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을 약 20% 더 줄일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27년께 광학 소자 기술까지 통합한다는 계획이다. AI 시대에 고객들에게 필요한 ‘원스톱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장(사장)은 7월 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4(Samsung Foundry Forum 2024)’에서 “고성능, 저전력 AI 솔루션을 완전히 통합해 제공하는 기업은 전 세계에 하나뿐”이라며 “삼성 파운드리의 확실한 경쟁력”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최대한 효율적이고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인텔과 다른 길을 선택한 삼성전자가 도착지까지 인텔과 다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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