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경영권 분쟁’ 고려아연의 심장, 울산 온산제련소를 가다

[Deep Dive] ‘고려아연 지키기’에 나선 지역사회 “먹고 사는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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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4-10-2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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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공장 곳곳에 나부끼는 MBK 규탄 현수막

    • 지역 정치권·재계·시민단체 “적대적 M&A 안 돼”

    • 산업단지 ‘1호 기업’에 대한 ‘애정’과 ‘의리’ 묻어나

    • 울산 전체가 나설 일인지 과하다는 반응도

    10월 7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온산오거리 풍경. [박해윤 기자]

    10월 7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온산오거리 풍경. [박해윤 기자]

    10월 7일 오전 11시께 울산 울주군 온산읍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이하 온산제련소). 2차선 도로에는 1t, 5t, 25t 다양한 크기의 트럭이 각각 1분에 10대씩은 오간다. 분주히 움직이는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들 모습에서 여기가 ‘공업도시’ 울산임을 깨닫는다.

    이곳은 고려아연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단일 제련소 기준 세계 최대 규모로 연간 약 640㏏의 아연을 생산해 낸다. 최근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이며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다. 1974년 세워진 고려아연은 영풍그룹 계열사다.

    영풍그룹은 1949년 장병희-최기호 두 창업주 간 동업을 통해 탄생했다. 고려아연 설립 후엔 장씨 가문이 영풍, 최씨 가문이 고려아연 경영을 맡아왔다. 독립 경영을 했으나 상대 일가의 계열사 주식을 각자 보유했다.

    고려아연도 설립 초기엔 양쪽 일가의 지분이 비슷했다. 점차 지분 매각 등 이유로 최씨 측의 지분율이 낮아지며 장씨 일가가 소유하고, 경영은 최씨 일가가 맡는 형태가 됐다. 이러한 원칙하에 동업을 이어왔지만 2021년 최윤범 회장이 실질적 경영을 맡고 2022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갈등이 본격화했다.

    배당 문제, 신사업 추진, 폐기물 처리 등의 문제로 불협화음이 발생하면서 결국 올해 9월 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다. 13일 영풍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이하 MBK) 연합이 주식 공개매수를 실시하며 선제공격을 가했다. 이에 맞서 최씨 일가도 주식 공개매수를 실시했고, 이후 양측 모두 공개매수가를 높이며 다툼이 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주식 매입 대금 마련을 위해 최씨 측에서 2조 원대 차입금을 동원하는 등 ‘출혈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고려아연 지키기’에 나선 지역사회

    특이한 것은 기업의 경영권 분쟁에 정치권은 물론 재계·시민단체까지 울산 지역사회가 나서 “영풍·MBK로부터 경영권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9월 16일 김두겸 울산시장은 성명을 통해 “영풍이 중국계 자본을 등에 업은 MBK와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다”며 “사모펀드의 약탈적 인수합병 시도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틀 뒤에는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20만 울산시민 고려아연 1인 1주 갖기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9월 20일엔 서범수 국민의힘(울산 울주군)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사모펀드의 고려아연 공개매수 이후 경영권 장악을 통한 핵심기술 유출 및 국가 기간산업 붕괴에 대해 경계”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지역 경제계와 시민·사회단체도 나섰다. 울산상공회의소는 9월 19일 “고려아연에 대한 사모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에 유감을 표한다.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한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성명을 발표했고, 울산범시민사회단체연합과 재울산연합향우회, 울산예술인총연합회, 문화원연합회 등의 시민단체는 “토종기업 고려아연이 ‘약탈’당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1인 1주 갖기 운동’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재계에선 이와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M&A가 빈번한 재계에서 경영권 분쟁 정도로 지역사회 전체가 들고일어나는 일은 흔하지 않다”며 “설령 경영권이 넘어간다 해도 요즘엔 대부분 고용승계가 이뤄져 회사·직원에 직접적 타격은 크지 않은 터라 고려아연 사례는 조금 의아하다”고 말했다.

    울산 지역사회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이렇게 적극 나서는 이유는 뭘까. ‘신동아’는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10월 7~8일 울산을 찾아 온산제련소와 제련소 인근 온산읍, 그리고 울산 시내를 다니며 민심을 살폈다. 이틀간 만난 울산 시민들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로 이러는 게 아니다. 힘을 모아 고려아연을 지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일부 시민은 “지역 전체의 문제로 삼기엔 과한 일”이라며 상반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터줏대감인데…자존심 상한다더라”

    10월 7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제2공장 전경(왼쪽). 10월 7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고려아연 전광판. [박해윤 기자]

    10월 7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제2공장 전경(왼쪽). 10월 7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고려아연 전광판. [박해윤 기자]

    온산제련소는 1공장부터 7공장까지 총 7개로 나뉘어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널리 퍼져 있다. 차를 타고 한 바퀴 도는 데 20여 분이 걸릴 정도로 규모가 크다. 각 공장 입구는 차단기 및 경비실이 설치돼 출입을 통제했다. 보안이 퍽 삼엄해 보였다.

    최근 경영권 다툼을 반영하듯 공장 외벽 곳곳엔 영풍·MBK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영풍·MBK의 반기업·반사회적 기업찬탈을 위한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강력히 반대한다!” “MBK는 고려아연 노동자와 그 가정의 생존권 위협 중단하라!”라고 쓰인 현수막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7공장 인근 식당가(산암로)로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만 고려아연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 식당 주인은 “고려아연은 회사 안에 식당이 잘돼 있어서 식당가로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고려아연 인근 화학회사에서 일하는 40대 박모 씨는 “친구가 온산제련소에서 일하는데, 요즘같이 어려운 때일수록 힘을 모아야 한다며 ‘다 같이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그래도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해서인지 담배가 늘었다고 하더라”며 안타까워했다. 비철금속 제련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 오모(47) 씨는 “동생이 고려아연 직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고려아연이 이 단지에서 잘나가는 회사 중 하나고, 터줏대감이라 직원들 자존심이 세다. 저만 해도 동생이 고려아연 다녀서 ‘동생보다 못한 형’ 소리를 들었다(웃음). 그런 회사가 다른 기업 손에 넘어간다고 하니 동생이 자존심 상한다고 화를 내더라. 회사 내부 직원 분위기도 비슷하다고 한다.”

    발길을 돌려 온산읍으로 향했다. 온산제련소에서 약 2㎞ 떨어진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고려아연 사원아파트가 있어 임직원 및 가족이 많이 사는 곳인데, 울산수협 온산지점 앞 온산오거리를 중심으로 생활권·상권이 형성돼 있다.

    온산오거리에 위치한 건물 곳곳에도 온산제련소 외벽 풍경과 같이 영풍·MBK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고려아연 지키기 1주식 갖기’라고 써 붙인 것도 눈에 띄었다. 현수막을 붙인 주체는 온산읍 권익협의회, 온산읍 새마을부녀회, 금란회, 남울주발전협의회 등으로 다양했다.

    “오갈 데 없는 우리 챙겨줬어예”

    10월 7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온덕1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 차계순 씨(왼쪽)와 김난자 씨. [박해윤 기자]

    10월 7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온덕1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 차계순 씨(왼쪽)와 김난자 씨. [박해윤 기자]

    온산오거리에서 수협 방향 골목길로 들어서니 온덕1리 마을회관이 나왔다. 경로당을 겸하는 곳이다. 안에는 노인 6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낯선 사람의 출현에 어색해하던 이들은 ‘고려아연’ 이야기를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우리’ 고려아연은 뺏기면 안 되예. 여기 모두 ‘1주식 갖기 운동’에 동참했어예.”

    이 가운데 김난자(87) 씨와 차계순(81) 씨는 온산읍 토박이다. 1974년 온산국가산업단지 착공 과정과 1978년 고려아연의 ‘1호 입주’를 모두 지켜봤다고 한다. 특히 차 씨의 아들은 고려아연에 취직해 줄곧 온산제련소에서 일하고 있고, 5년 뒤 퇴직한다고 했다.

    이들은 고려아연이 “지역경제에 이바지하는 바를 생각하면 꼭 지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 씨는 “고려아연이 지역을 위해 정말 봉사를 많이 한다”며 “매년 기부도 하고, 노인 목욕 봉사도 하고, 경로당에 반찬도 챙기는 등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써주는지 모른다”며 “이런 든든한 기업이 지역에 있어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차씨는 “고려아연이 있어서 이곳에 젊은 사람이 모인다”며 “고려아연 사원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젊은 사람이 많다. 그들로 인해 지역이 죽지 않고 사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단순히 먹고살기 힘들어질까 봐 고려아연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1호 기업’과 오랜 기간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한 ‘애정’과 ‘의리’ 때문이었다.

    고려아연은 1978년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첫 기업이다. 이후 성장을 거듭해 2021년에는 매출 9조9768억 원에 영업이익 1조961억 원, 2022년엔 매출 11조2194억 원에 영업이익 9192억 원을 기록하는 등 ‘매출 10조 원, 영업이익 1조 원’ 기업 반열에 올랐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온산국가산업단지 입주 기업 중 에쓰오일(S-OIL)과 함께 ‘투 톱’으로 꼽힌다. 다만 에쓰오일은 외국(사우디아라비아)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고려아연은 ‘향토기업’이어서 지역민들의 애정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유는 또 있다. 산업단지가 생기며 이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철거민 신세가 됐을 때 이들을 보듬어준 것도 고려아연이었다. 고려아연은 이들의 땅을 당시 1평(3.3㎡)당 5000원씩 좋은 값에 사줬고, 직원 채용에서도 우선순위를 보장해 주기도 했다. 김 씨의 말이다.

    “집이 다 부서져 갈 곳이 없는 우리를 고려아연이 받아주고, 챙겨줬어예. 우리 자식들도 그때 취업시켜 줘서 지금까지 먹고살았거든예. 사람이 의리가 있지, 어떻게 다른 회사에 여기가 넘어가게 놔둡니꺼. (고려아연 주식을 사고 지지 캠페인을 벌이는 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보답하려고 하는 거라예.”

    마을회관을 나와 오른쪽을 보니 멀찍이 고려아연 사원아파트가 보였다. 단지 내로 들어가니 신축(1~5동), 구축(6~17동)을 합쳐 총 17개 동이 있었다. 700가구쯤 돼 보였다. 놀이터, 어린이집, 운동장, 유치원 버스 전용 정류장 등도 갖췄다. 맞은편 덕신초등학교 운동장엔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분노하는 직원들, 걱정하는 상인들

    10월 7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대덕산 방향에서 바라본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박해윤 기자]

    10월 7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대덕산 방향에서 바라본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박해윤 기자]

    인근 학원가에서 고려아연 직원인 40대 김모 씨 부부를 만났다. 휴가여서 부부끼리 식사를 하러 나왔다고 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대해 말을 꺼내자 김 씨는 “영풍 가들(그 사람들)이 뭘 안다꼬…”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영풍·MBK가 경영권을 가져가면 퇴사할 것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9월 24일 이제중 고려아연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핵심기술 인력 20명은 “고려아연이 영풍·MBK에 넘어가면 결국 중국으로 핵심기술이 유출될 것”이라며 “고려아연 모든 임직원들은 절대로 영풍·MBK와 함께하지 않겠다. 다 퇴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맞서 영풍·MBK 측은 같은 날 즉각 성명을 내고 ‘억측이자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지난해 기준 영풍은 매출 3조7617억 원에 영업이익은 1698억 원 적자를 본 반면 고려아연은 매출은 9조7045억 원, 영업이익 6599억 원을 기록했다. 김 씨는 “경영도 잘하고 있고 직원들도 열심히 일하는 상황에서 경영권 분쟁이 터지니 헛웃음이 났다”며 “매출 실적이 낫거나 더 좋은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이렇게 나오니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학원가 인근 거리에선 상권 쇠락을 걱정하는 상인도 만날 수 있었다.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37) 씨는 “인근 고려아연 사원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때문에 먹고산다”며 “고려아연이 대기업이라 직원들 구매력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솔직히 영풍·MBK가 회사를 인수해도 가게 운영에 피해가 안 오면 상관없는데, 주인 바뀌면 대체로 다 바뀌니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최 씨 측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MBK·영풍 연합 38.47% vs 최 회장 측 36.55%

    반면 덕신1차 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고려아연 1인 1주 갖기 운동을 잘 모른다”며 “일부 주민들이 강경하게 나가는 것 같다”고 했고, 또 다른 상인은 “고려아연 직원·가족들과 그와 관련된 단체가 나서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엔 시큰둥하게 보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남구 신정동, 삼산동, 중구 성남동 등 울산 중심부에서 만난 시민들 중에는 “울산 기업은 울산이 지켜야 한다”며 ‘고려아연 1인 1주 갖기’에 관심을 보이는 시민도 있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갈 길을 재촉하는 시민도 많았다. 성남동 주민 박모(38) 씨는 “울산에는 현대차, HD현대중공업, 롯데케미칼 등 큰 기업이 한두 개가 아닌데 고려아연 분쟁으로 이렇게 플래카드가 나붙고 하니 의아했다”며 “10월 1일에 김영길 중구청장이 거리에 나와 ‘고려아연 1인 1주 갖기’ 캠페인을 했는데, 기업 일을 가지고 단체장이 나설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엇갈린 민심을 뒤로한 채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고려아연 경영권 다툼은 누가 웃는 결과를 낳을까. 싸움은 장기전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10월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영풍·MBK는 공개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5.34%를 확보했다. 이로써 MBK·영풍 연합의 고려아연 지분은 기존 33.13%에서 38.47%로 늘었다. 최 회장 측의 지분은 우호 지분을 합쳐 36.55%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장씨·MBK가 우위를 점하게 됐으나 7~14.6% 지분 확보라는 목표와 주주총회 의결권이 있는 주식 기준 과반 달성에는 실패했다”며 “주총 이사회 구성, 우호 지분 향방 등 변수가 많아 싸움이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 1인 1주 갖기’ 3호 이순걸 울주군수
    “22만 울주군민과 함께 반드시 고려아연 지킬 것”

    9월 20일 이순걸 울주군수가 ‘고려아연 1인 1주 갖기’ 운동 동참을 알리며 공개한 인증 사진. [울주군]

    9월 20일 이순걸 울주군수가 ‘고려아연 1인 1주 갖기’ 운동 동참을 알리며 공개한 인증 사진. [울주군]

    이순걸(63) 울주군수는 “영풍·MBK로부터 고려아연 경영권을 지켜야 한다”는 ‘고려아연 지키기’ 캠페인의 최전선에 선 인물이다. 김두겸 울산시장, 이윤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에 이어 20일 ‘고려아연 1인 1주 갖기’ 운동에 세 번째 참여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울주군에서 태어나 온양초, 남창중을 나온 토박이다. 정계 입문도 울주군에서 했다. 2003년 10월 재·보궐선거를 통해 울주군 의원이 됐고, 이후 3연임에 성공했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울주군수에 당선했다.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울주군에서 보낸 만큼 고려아연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그는 10월 11일 ‘신동아’와 전화로 인터뷰하면서 “‘1인 1주 갖기’ 운동에 동참한 이유도 울주군, 나아가 울산시를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영풍·MBK에 고려아연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며 “울주군민과 힘을 합쳐 고려아연을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려아연 사주? 그런 것 전혀 없다”

    ‘고려아연 1인 1주 갖기’ 운동에 참여한 배경이 뭔가.

    “고려아연은 지난 약 50년간 울주군과 함께한 향토기업이다. 또 국가 기간산업인 비철금속 제조 분야에서 세계 1위 점유율을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울주군의 자랑이기도 하다. 지역사회와 상생·발전해 고려아연이 적대적 M&A 위기에 처했는데, 지자체장으로서 가만있을 수가 없어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하게 됐다.”

    고려아연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공헌도는 어떤가.

    “막대하다. 고려아연은 지역 주민을 위해서 다양한 지원을 펼치고 있고, 지역사회에 기여도가 높은 기업 가운데 하나다. 또 현재 분쟁 중인 당사자들은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오늘날의 이 고려아연이 성공을 이룬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지만 그동안 주민들과 중소기업들의 희생·양보가 없었더라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만큼 고려아연에 대한 우리 울주군민의 관심과 애정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기업 내 경영권 분쟁에 지역사회가 나서는 것을 이례적으로 보는데.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만약 고려아연이 사모펀드로 넘어가서 무분별한 사업 재편, 인력 구조조정, 신사업 투자 축소 등이 이뤄진다면 그간에 쌓아온 기업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 고려아연 직원, 가족, 고려아연 관련 기업 모두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이는 지역사회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에 크게 우려되는 일이다.”

    고려아연 측이 지역사회에 도와줄 것을 요청 혹은 사주한 것은 아닌가.

    “전혀 아니다. 고려아연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 많은 자금을 동원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고려아연 1인 1주 갖기 운동’은 지역 주민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우리 울산시민은 2003년 SK그룹이 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벌일 때도 ‘SK 1인 1주 갖기’ 운동을 펼쳐 SK그룹을 지킨 바 있다. 이런 경험이 있다 보니 비슷한 상황에 처한 고려아연에 대해서도 주식 갖기 운동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 본다.”

    “정부의 적극 개입 필요”

    ‌영풍·MBK로 고려아연이 넘어가면 중국 등으로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영풍·MBK 측은 이에 대해 “억측이자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말하는데.

    “아무리 영풍·MBK가 그렇게 말한다 해도 사모펀드의 본질적 목표는 단기간에 고수익을 달성하는 것이다. 당장의 성과를 위해서 연구·개발 투자 축소, 핵심 인력 유출, 해외 매각 등이 시도될 가능성이 당연히 있다고 본다. 중국 자본이 유입된 MBK로 경영권이 넘어간다면 고려아연의 경쟁력이 떨어져 울산 산업 생태계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설령 ‘억측’이 맞다고 하더라도 고려아연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비롯한 핵심 인력이 MBK로 경영권이 넘어갈 경우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회사 운영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이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 고려아연의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가 2차전지 소재 사업이다. 이것이 지장을 받으면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인 2차전지 사업 전체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양측 간 공개매수가를 올리며 경영권 분쟁이 심화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나.

    “좋지 않다고 본다. 경영권 분쟁이 생기면 정상적 기업 운영이 어렵다. 또 그 과정에서 대규모 차입금을 들여오는 등 심한 출혈경쟁을 벌였는데, 이는 결국 기업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 처음부터 영풍·MBK가 이러한 M&A를 추진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저 최대한 빨리, 좋은 방향으로 일이 해결됐으면 한다.”

    경영권 다툼이 장기화 양상이다.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이 말만은 하고 싶다. 고려아연이 영풍·MBK로 넘어가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다. 고려아연은 매출 10조 원, 영업이익 1조 원을 내는 알짜 기업이다. 이런 기업이 투기자본 손에 들어간다면 울산 지역뿐 아니라 한국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이는 국가경제와 직결된 문제다. 따라서 울산시민, 울주군민은 이를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막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22만 울주군민과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반드시 고려아연을 지켜나갈 것이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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