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지지율 10% 진입 땐 보수 내 불신임 대두
연이은 선거 패배로 脫노무현 못한 열린우리당
尹 영향력 유지 위한 자기 정치 폭주가 최악
‘질서 있는 재정비’ 위한 차기 주자 공동 행동 필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뉴스1]
여의도 안팎에서 가장 촉각을 세우는 건 대통령 긍정 평가가 바닥을 뚫고 더 내려가 10%대에 진입할지 여부다. 지지율이 그 정도로 하락하면 부정 평가 비율도 70%를 넘는다. 콘크리트 보수 지지층까지 반(反)윤석열이 됐다는 의미다. 부정 평가가 50%를 넘어가는, 중도층이 등돌린 상황은 야당과 극단적 대치 국면이 이어지는 한, 현 상태(status quo)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보수 고정 지지층이 이탈하면 윤 대통령은 여당 내에서조차 공공연한 불신임에 직면할 수 있다.
뭘 해도 이길 수 없는 당
1987년 이후 권력 이동이 가시화된 임기 말을 제외한 상황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진 경우는 노무현, 이명박, 윤석열 3명이다. 임기 중반 이후 쭉 10% 지지율로 떨어진 건 노무현과 윤석열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3년차인 2005년 20%대에서 2006년 10%대로 지지율이 하락(갤럽 분기별 집계 기준)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2004년 탄핵 역풍을 타고 152석 거대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2005년 이후 선거에서 모두 패배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이후 왜 열린우리당이 2년 만에 ‘뭘 해도 이길 수 없는 당’이 됐는지 책임 소재를 놓고 갈등이 불거졌다. 핵심은 노 전 대통령이 얼마나 책임이 있고, 그와 열린우리당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지지연합이 붕괴한 상황에서 2008년 대선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국면에서 당내 분파 간의 갈등이 조율되기 어려웠다. 그 결과 당정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노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정동영·김근태 등 핵심 정치인들이 공공연히 대립할 정도로 당정 관계는 무너졌다. 계파 간 내홍도 심각해졌다. ‘노무현당’을 해체하고 새로 당을 만드는 것으로 정리가 됐지만 갈등은 수습되지 않았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쪼개진 노사모는 각각 정동영 지지파에겐 ‘배노(背盧·노무현을 배신했다는 의미)’, 이해찬 지지파에겐 ‘활노(活盧·노무현을 이용해 먹었다는 의미)’라는 딱지를 붙이고 격렬하게 대립했다. 2008년 대선의 참패는 중도 유권자가 모두 등을 돌린 것에 더해 민주당과 전통적 지지 집단이 사오분열돼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005년 7월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편지를 올리면서 시작된 대연정 논의는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아니라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뒤흔들었다. [동아DB]
이러한 구조적 원인 때문에 열린우리당은 대통령과 당내 계파 수장이나 잠재적 대선주자, 당내 각 계파 간 갈등이 적절한 수준에서 봉합되지 못하고 분출했다. 지금의 국민의힘이 처한 상황과 똑같다. 열린우리당은 선거 승리 가능성이 작고, 충분한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나 집단이 없다 보니 당은 사분오열되고 사실상 해체되는 국면을 맞이했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당대표 간의 갈등을 비롯해 여권이 안고 있는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오면서 보수 공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한 것은, 단순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아서가 아니라 여권 내 권력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반등에 성공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지지연합을 스스로 무너뜨린 상황에서 부정 평가로 돌아선 유권자의 마음을 돌려세울 방법도 없다.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 이해당사자들과의 타협 없이 진행되는 의대 정원 확대, 물가와 주택 가격 상승을 비롯한 실물 경제지표 악화 등 켜켜이 악재만 쌓여 있다.
따라서 어떻게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이 갈라설지, 탈(脫)윤석열 경로를 어떻게 원만하게 밟아나갈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 보수 진영이 열린우리당 해체 과정을 면밀히 살피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 공백 메울 여권 내 구심력 확보가 관건
탈윤석열은 무질서한 패주(敗走)와 ‘헤쳐 모여’가 아니라 질서 있는 퇴각 내지 재정비가 돼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주는 첫 번째 교훈은 대통령 지지율이 극히 낮은 상황에서는 여당 차기 대선주자의 경쟁력도 덩달아 낮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만고만한 인물과 조직들이 이합집산하면서 정당 내 갈등만 심화할 수 있다. 여권 내 갈등이 제대로 조정되지 못하면 다음 선거 경쟁력이 약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의제와 이를 중심으로 결집한 당내 세력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의제가 중요한 이유는 ‘대통령당’일 수밖에 없는 여당이 대통령의 영향력에 벗어나면 권력 공백이 뒤따르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사람들이 결집할 수 있는 의제가 있어야만 한다. 차기 대선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어떻게 지지연합을 복원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 당내에서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한다.
인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모이는 경향이 강해질수록, 기존 유력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헤쳐 모여가 진행될수록 당내 분열은 심화할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2006년 심각한 내홍을 겪다, 2007년 집단 탈당이 시작됐다. 한번 시작된 집단 탈당은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각 계파가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든 범민주 진영 내부에서 ‘새판 짜기’가 이뤄질 상황에서 당을 뛰쳐나간 뒤 세 규합을 하는 게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대선주자로 옹립해 정동영 전 장관에 대항한 386들처럼 계파 내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으면 외부 인사를 꾸어 올 수도 있다.
주요 대선주자 참여하는 脫尹이 대안
열린우리당 사례가 주는 두 번째 교훈은 당내 주요 인사들의 동의와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 직후부터 파벌 간 갈등 요인이 산재했다. 이념, 정책, 배경 등에서 공통된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 조직과 경선 방식 등 정당 개혁 의제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 탄핵을 발의한 새천년민주당과의 관계 설정 등 권력구조를 둘러싼 이슈는 갈등 격화에 불을 붙였다.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과거사 진상 규명법 제정, 언론 관계법 제정 등 4대 개혁 법안을 비롯한 정책 이슈도 문제였다. 김근태 계열의 민주평화국민연대, 정동영 계열의 바른정치모임, 친노 직계라 할 수 있는 참여정치연구회나 의정연구센터를 비롯해서 여러 파벌이 각축전을 벌였다. 결과는 열린우리당 해체라는 극단적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계파별로 각자도생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한동훈 당대표를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원희룡 전 장관, 나경원 의원 등 잠재적 대선주자이거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 다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가급적 많은 인물이 탈윤에 동참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의제와 로드맵도 마련해야 한다.
공동 행동이 필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현직 대통령과 대립하는 행위는 상당한 대가가 따르지만, 그 이득은 공유될 수 있다. 두 번째는 대통령이 사라진 당내 권력 공백을 원활하게 메우기 위해서는 주요 인물들이 참여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사라진 뒤 특정 정치인이 주도권을 쥔다면 그와 경쟁 관계에 놓인 인사들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당내 주요 인물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비공식적으로 당 안팎 사안을 논의하는 라운드 테이블이나 아예 당 최고위원회에 광역단체장이 참여하는 등 여러 형태가 가능하다. 이들의 참여가 한동훈 대표의 지도력을 약화시키고, 대선주자 사이에 경쟁이 오히려 치열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잠재적 대선주자들의 광범위한 동의 없이는 매끄러운 탈윤은 불가능하다. 성공적으로 국민의힘의 체질을 바꿔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에 대비하도록 하는 것은 한 대표뿐 아니라 다른 대선주자들에게도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 해체 과정을 되돌아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끊임없이 자기 정치를 시도한 것이 도리어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독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부터 탈당을 빈번하게 시사하면서 ‘대통령 없는 여당이 가능하겠느냐’는 메시지를 열린우리당에 던졌다. 2005년 7월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편지를 올리면서 시작된 대연정 논의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아니라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뒤흔들었다. 9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공식적으로 거절당하기까지 두 달간 여당은 노 대통령이 던진 핵폭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끌려다녔다. 정치력 없는 대통령이 비현실적 의제로 당내 분란만 일으키는 과정은 지지자들의 이탈을 불렀다.
윤 대통령 자기 정치, 자멸만 부른다
한때 밀월관계였던 정동영 전 장관과는 2006년 지방선거 참패 직후 치러진 10월 재보선 서울 성북을에 정 전 장관 출마를 청와대가 종용하면서 갈라졌다. 재야 세력의 적자나 다름없던 김근태 전 장관과는 이전부터 있었던 긴장 관계를 해소하지 못하고 양측의 골이 깊어졌다. 2007년 5월 정동영계와 김근태계가 각각 집단 탈당 움직임을 보이자 노 대통령이 직접 “정말 당을 해체해야 할 정도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깨끗하게 정치를 그만두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며 “구태정치”라고 말하는 등 청와대와 비노계 정치인은 전면전에 접어들었다.
여당의 ‘탈윤’이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윤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국민의힘을 뒤흔들었다. 2022년에는 이준석 당시 대표를 축출했고, 2023년에는 나경원 의원을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김기현 당대표를 만들어냈으며, 총선 패배 이후 치러진 당대표 경선에서도 개입은 계속됐다.
4월에는 대통령실이 박영선 전 민주당 의원을 국무총리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비서실장으로 각각 검토한다는 보도가 관계자발(發)로 나오는 등 정치 구도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도 모색됐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나 채 해병 특검 등에서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틈은 더욱 벌어졌다. 의대 정원 확대 등 무리하게 정책 의제를 밀어붙이는 행태도 결국 정치적 자본이 빈약한 대통령실이 주도권을 잃기 싫기 때문일 것이다. 윤 대통령의 자멸적 자기 정치 행보를 얼마나 자제시킬 수 있느냐에 여권의 질서 있는 퇴각이 가능한지 성패가 달렸다.
신동아 11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