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가이드 노릇까지
옆에 있던 닐리 씨는 “예전엔 일본 화장품을 쓰다 한국 화장품으로 바꿨다. 한국 화장품을 써보니 아주 좋아 6개월마다 화장품을 사러 온다”고 말했다. 한국에 올 때 그는 “일본에 간다고 둘러댔다”고 고백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한국의 성형수술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인도네시아에도 소문나 있다. TV만 틀면 나오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으면 송혜교, 김태희처럼 예뻐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 성형수술 붐이 일 정도다. 한국에 간다고 하면 성형수술을 받으러 가는 줄 다 안다. 성형수술 받는 게 흉은 아니지만 자주 오니까 부끄러워서 거짓말이 나왔다.(웃음)”
쇼핑이나 식사를 할 때는 백 실장이 자주 동행했다. 와띠 씨는 “지난해 5월 한국에 왔을 때는 개인적으로 통역사를 일당 20만 원을 주고 고용했는데 지금은 백 실장이 통역해줘서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며 고마워했다.
사업을 하는 부모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10년을 보낸 백 실장은 현지인처럼 그 나라 말을 구사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 병원에 취직한 백 실장은 일주일에 5명 이상의 인도네시아 환자를 맞는다.
그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환자는 혼자 오는 법이 거의 없다고 한다. 대부분 무리지어 다니며 수학여행을 하듯 의료관광을 즐긴다. 인도네시아 부유층의 특징은 한국에서 명품 가방이나 신발을 사지 않는다는 것. 백 실장은 “와띠 씨와 닐리 씨도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서 돈에 얽매이지 않고 화장품을 샀지만 명품 매장엔 들르지 않았다. 명품 가방이나 신발은 유럽에 가서 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명품 쇼핑은 원산지에서 즐긴다는 것이다.
백 실장의 주된 업무는 비자 발급에 필요한 초청장 작성부터 공항 픽업 담당자 투입, 진료상담, 숙소 예약, 통역서비스 제공. 환자가 출국한 후에도 그는 한국의 카카오톡과 같은 기능을 하는 블랙베리 앱 BDM으로 수술 경과를 점검한다. 이 병원에는 그런 일을 하는 외국인 환자 상담실장이 수십 명에 달한다. 홈페이지에 나온 8개국 언어를 구사하는 상담실장 이외에도 최근 러시아 상담실장이 보강됐다. 러시아 환자 방문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어와 영어를 쓰는 환자가 많아 이 나라 말을 하는 상담실장은 각각 10명이 넘는다.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외국인환자 상담실장의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초임도 저마다 다르다. 백 실장은 “경력과 능력을 고려해 연봉이 책정된다”며 “구체적인 액수는 비밀이지만 일반 직장에 취직한 친구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간 근무하며 힘든 점은 없었는지 묻자 그는 “일이 힘든 건 참겠는데 환자들이 괴로워하는 건 못 보겠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성형수술만 받으면 바로 드라마틱한 결과가 나오는 줄 아는 환자가 많은데, 상태가 원하는 만큼 좋아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처음 얼마간은 수술 부위가 붓거나 멍이 드는데 그걸 보고 걱정하는 환자를 볼 때 안쓰럽다.”
병원 내에서 간호사 가운을 입고 바삐 움직이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시 산하 서부여성발전센터에서 운영하는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교육과정을 수료한 결혼이주여성들이었다. 이들은 하루 4시간씩 닷새간 진행되는 실습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실습은 환자를 직접 응대하지 않고 코디네이터의 업무를 옆에서 보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백 실장은 실습생 가운데 한국말을 가장 잘하는 중국교포 전춘매(32) 씨를 소개했다. 전씨는 지난해 11월 여성가족부 취업성공패키지 직업훈련과목으로 의료관광을 선택해 올 1월 강남 A학원에서 의료관광코디네이터과정을 수강했다고 한다. 또한 이론교육과 실습을 병행하는 서부여성발전센터의 의료관광코디네이터 양성과정을 거쳐 7월 1일부터 서울 서초구에서 서울시에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을 의료관광 활성화에 기여하는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고자 만든 글로벌헬스케어(의료관광) 코디네이터 인턴십에도 참여하게 됐다고.
외국인 상담실장 효과
그의 업무는 서초구보건소가 운영하는 글로벌헬스케어 인터넷사이트에서 방문자를 상담하는 일. 인턴십에 참여하는 기간은 4개월. 주당 15시간 이내로 주5일을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렇게 해서 그가 받는 시급은 5210원. 이를 일당으로 치면 1만563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31만2600원이다. 여기서 차비와 밥값을 제하면 무료봉사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전씨는 불만을 갖기는커녕 “한국에 처음 와서 한 호프집 서빙은 시급이 4600원이었다”며 의료관광 실무 경험을 쌓을 소중한 기회로 여겼다. 그는 인턴십을 마치면 취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병원에 취직해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씨처럼 외국어와 한국어가 모두 가능한 결혼이주여성이나 유학생 가운데 병원이나 등록업체에서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이가 최근 부쩍 늘었다. 의료관광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모 성형외과병원의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도 대부분 외국인이다. 이 병원의 K원장은 “8개국 상담실장 중 절반 이상이 그 나라 사람”이라며 “상담 과정에서부터 환자와 정서적으로 통하고 환자가 원하는 걸 충분히 이해하니까 수술 결과도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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