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김치 된장 타령은 그만! 햄버거 먹고 영어로 말하세요”

지상중계-세계화된 두 한국인의 종횡무진 열혈대담

  • 대담·임길진(KDI 국제정책대학원장) 이윤기 (작가 ·번역문학가) / 정리·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9-04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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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부턴가 우리는 전방위적 세계화를 강요받았다. 영어 열풍이 불어닥쳤고 에티켓 캠페인이 벌어졌다. 인터넷의 바다로도 내몰렸다. 그래서 과연 우리는 세계화됐는가. 우리는 진정 세계화된 지구시민으로 인정받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면 왜일까. 도대체 세계화가 뭐기에? 그 답을 얻기 위해 두 사람의 ‘세계화된 한국인’을 초대했다. <편집자>》
    이윤기 임선생께서는 우리나라에서 ‘세계화’라는 말이 나오기 훨씬 전인 90년대 초 미국 미시간주립대학 국제대학장으로 계실 때 이미 세계화 바람을 일으키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세계화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임길진 91년에 미시간대에서 세계화 프로그램을 내걸고 여러 나라 사람들과 교육과 연구, 문화 부문의 교류를 본격화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다양한 국제 문화교류 행사를 벌였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세계화(globalization) 얘기가 나오기 전에는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라는 말을 많이들 썼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시간대에 가자마자 의도적으로 ‘인터내셔널‘이라는 말을 ‘글러벌‘로 바꿨습니다. 미시간대는 그 10여년 전부터 ‘인터내셔널 페스티벌‘행사를 가져왔어요.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대학 주변의 주민 수천 명이 자기 네 나라의 고유한 민속과 음식을 소개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전시회도 여는데, 그 이름을 ‘글로벌 페스티벌‘로 바꾼 겁니다.

    국제화라는 것은 달랑 두 나라만 서로 교류해도 붙일 수 있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국제화는 까딱 잘못하면 편파적인 의미로 변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몇 나라가 모여 끼리끼리 국제화 그룹 같은 것을 만들면 국제적인 지역주의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이윤기 그렇겠군요. 영국에선 웨일스 지방팀과 스코틀랜드 지방팀이 축구경기를 해도 ‘인터내셔널 풋볼 게임’이라고 부른다니 그럴 수가 있겠네요.

    국제화와 세계화



    임길진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즐겁게 살면서 하나가 될 때 진정한 의미의 인류평화와 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세계화라는 말이 국제화라는 말보다 훨씬 더 좋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시간대의 문화행사를 국제 페스티벌에서 세계 페스티벌로 바꿨고, 교수와 학생들이 학문적 능력을 세계화하도록 고무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교수가 외국에 가서 논문을 발표한다거나 또 누군가가 외국 학교와 자매결연을 통해 세계적인 능력을 함양하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해외여행을 지원해줬습니다. 학생들도 외국에서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초청장을 받은 경우 무조건 지원했습니다. 그때 저희가 강조했던 게 ‘세계적인 역량(Global Competence)’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국제 감각’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것만 가지고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국제’에서 ‘세계’로, ‘감각’에서 ‘역량’으로 한 단계씩 뛰어올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윤기 문인께서 하고 계신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선생님은 창조적인 작가인 동시에 번역문학가로서도 대단한 역량을 발휘하셨기 때문입니다. 모국어로만 창작활동을 하시는 분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도 그런 문화적 역량이 한 나라에만 구속되고 말 수 있습니다. 물론 모국어로만 글을 쓰더라도 많은 책을 읽고 여행도 하고 세계의 석학, 문인들과 교류할 수 있겠지만, 번역문학에 몸 담은 분들은 외국의 문화와 언어까지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이선생님처럼 창작과 번역이라는 두 개의 기둥을 함께 갖추고 있다는 것은 빼어난 강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윤기 과찬이십니다. 저는 번역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만 번역은 수입(輸入)입니다. 제가 뒤늦게 다시 창작활동의 불을 당기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제가 주로 해온 일로 ‘무역적자’가 많이 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제 작품을 쓰겠다고 마음먹어 왔는데, 문학이라는 것이 어머니로부터 배운 언어로 하는 것이지, 다른 나라 말을 새로 배워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의 언어로가 아니면 진정성을 담기 어렵겠다고 느꼈습니다. 여기에서 출발한 제 문학이 세계화되고, 나아가 제 모국어의 정서가 그쪽으로도 옮겨지면 그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죠.

    우리가 세계화를 하겠다면 거창한 목표부터 설정할 게 아니라 우리의 삶부터 세계화돼야 한다고 봅니다. 가령 외국을 여행하면서도 김치며 된장, 간장과 고추장 단지까지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얼마 전 미국에서 친구와 함께 차를 몰고 1만2000마일쯤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넓은 땅에서는 판소리 ‘심청가’에 나오는 ‘새복질(새벽길)친다’는 말처럼 새벽 무렵에 일찌감치 출발해야 마음먹은 거리만큼 갈 수 있어요. 그런데 함께 여행하던 친구가 아침에 꼭 김치찌개나 북어국을 차려놓고 먹어야지 밥을 먹은 것 같다는 겁니다. 미국의 모텔에서는 아침식사 하라고 도너츠와 커피를 주니까 아침 6시쯤 그걸 받아들고 나서서 자동차를 몰고 가며 먹으면 모텔방에 쭈그리고 앉아 북어국 끓여 먹는 시간에 300∼400리는 너끈히 갈 수 있거든요. 그 친구 때문에 일정대로 여행을 제대로 못하고 지체된 적이 많았어요. 언젠가 시인 고은 선생에게 비슷한 연배의 지인이 미국에 가서도 소주를 찾아내 마시고 왔다고 자랑을 하더래요. 그래서 고은 선생이 “야, 이 자식아. 미국에 갔으면 미국 술을 먹고 와야지, 미국까지 가서 소주 먹고 온 게 무슨 자랑이냐”고 쏘아붙였답니다.

    제가 미시간대학에 있을 때 자그마치 107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임선생께서 어떤 학회에선가 “북한이여, 우리에게 108개국째 학생을 보내주오”하고 촉구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때 국제대학에 와 있던 외국 객원교수들만 해도 얼마나 많고 다양했습니까. 그러니 이들과 어울리시다 보면 임선생도 벼라별 음식을 다 잡숴보셨겠죠. 그중에는 입맛에 도무지 맞지 않는 흉측한 음식도 많았을텐데, 국제대학장 자리에 계시니 그런 저녁식사를 두세 차례씩 하면서도 얼굴을 찌푸릴 수가 없으셨을 겁니다.

    변형·변성·변역

    임길진 음식을 먹는 것은 갖가지 문화현상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요.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요. 다른 나라 음식을 함께 즐기다 보면 서로 다른 민족성을 이해하고 나아가 다양한 채널의 교류와 외교의 물꼬가 트일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는 함께 밥을 먹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거든요.

    외국에 나가 살면서도 “김치를 매일 먹지 않으면 속이 느글거린다”며 이런 것을 무슨 애국인 양 착각하는 소아병적인 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세계 무대에서 우리 민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을 하고 인류에도 공헌하려면 무엇보다 어느 나라에 떨어뜨려 놓아도 그 나라 사람들의 음식을 먹성좋게 먹으면서 속 편하게 살 수 있는 위장부터 길러야 될 겁니다.

    우리의 고유한 음식이나 음악, 미술 같은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새롭게 발전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김치의 종주국인 한국에서 새로운 김치를 개발한다든가, 김치 박물관을 만든다든가, 김치에 대한 대백과사전을 펴내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죠. 하지만 바깥에 나가 살면서 매일 김치를 못 먹으면 속이 어떻다고 하는 것은 이것과는 따로 떼놓고 봐야 될 문제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소연하는 유학생들에게 “이런 한심한 사람아, 자네는 애국자가 아니라 우물 안 올챙이일세”라며 혀를 찹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면 뛰어볼 준비라도 돼 있다는 얘긴데, 올챙이는 아직 채 자라지도 않았다는 뜻이에요.

    언젠가 이문인께서 음식을 먹는 3가지 단계를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음식을 날로 먹는 것, 구워 먹는 것, 익혀 먹는 것을 문화의 변형과 관련지으셨던가요?

    이윤기 음식뿐 아니라 남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첫 번째 단계가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인데, 이건 글자 그대로 폼만 변하는(變形) 것이죠. 여기에다 기초적인 물리적 변화를 가하면, 가령 포도를 으깨 포도즙을 만들면 트랜스포메이션이 되고, 그것을 발효시켜 술을 만들면 트랜스뮤테이션(transmutation)이 돼서 한 단계 더 높은 변화(變性)가 생깁니다. 그보다 더 높은 단계가 트랜서브스탠시에이션(transubstantiation)인데, 여기에선 초월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컨대 포도주를 마시고 싸움질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을 변역(變易)이라고 부릅니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문화는 어느 한 동아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자기네 나름대로 만들어낸 실존적 습관인데, 이 실존적 습관은 어떤 천재라도 하루 아침에 뒤집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김치와 된장이 훌륭한 우리 문화인 것은 틀림없는데, 한국인들은 세계화를 부르짖으면서 다른 나라에도 김치와 된장에 상응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너무도 인색합니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서도 고추장 단지를 끼고 도는 것 같아요.

    저는 솔직한 얘기로 다른 나라에 가면 음식에 관한 한 행복합니다. 미국에 가도, 그리스에 가도, 터키에 가도 그래요. 그리스의 수블락이나 터키의 케밥 같은 양고기 요리는 이 나라들이 생기면서부터 발전해온 음식 아닙니까. 대단한 전통과 지혜가 깃들인 문화유산이죠. 햄버거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땅덩어리가 하도 커서 7첩 놋 반상기 차려진 행자반 앞에 놓고 밥 먹다간 옮겨다닐 시간이 없다보니 생겨난 음식이죠.

    이걸 먹으면 우월하고 저걸 먹으면 열등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저는 오히려 우리나라에 오면 음식 때문에 얻는 행복감이 좀 덜합니다. 우리 음식은 정량화가 잘 안 돼 있어서 표준이 되는 조리법(recipe)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가령 곰탕을 끓인다면 몇g의 뼈를 몇시간 동안 고아야 기본적인 곰탕이 만들어진다는 원칙이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뿌연 색을 내기 위해 육수에 커피 프림까지 집어넣는다면서요? 그런데 LA나 뉴욕에 오면 진짜 곰탕을 먹을 수 있어요. 이곳에선 정량화가 돼 있는데다 질좋고 값싼 재료를 구할 수 있어 양을 속일 까닭도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임길진 트랜스포메이션, 트랜스뮤테이션, 트랜서브스탠시에이션은 특히 외국의 지식이나 학문을 받아들일 때도 적용됩니다. 우리나라에선 외국의 것을 많이 받아들이긴 하는데, 그걸 갖다가 날로 먹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만다는 얘기죠. 이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외국 문물이 우리의 힘으로 변할 수 있어요.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물질문명과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행태는 걱정스럽기까지 합니다. 일각에서 일본문화 개방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도 우리 문화가 트랜서브스탠시에이션을 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간 바탕이 흔들리게 되죠. 따라서 교육이나 문화사업, 공공정책은 우리의 문화적 변성, 변역능력을 강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이윤기 어느 여성 번역가가 저더러 “어떻게 하면 번역을 잘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분을 만나기 전에 그분이 번역한 작품을 읽어보고는 절망했어요. 그야 말로 ‘날로 먹는’ 번역이었습니다. ‘boy’란 단어가 나와서 사전을 찾아보면 맨 앞에 ‘소년’이라고 나와 있으니 언제나 ‘소년’이라고만 옮겨놨어요. ‘society’는 무조건 ‘사회’이고, ‘school’은 ‘학교’밖에 안 되는 거예요.

    제가 그분에게 “옷을 어디서 사 입느냐”고 물었어요. “롯데백화점에서 살 때도 있고, 남대문시장에서 살 때도 있고, 동대문시장에서 살 때도 있다”기에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하니까 “컬러가 내 컬러가 아니면 어색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말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일러줬습니다. 당신이 빨간색 옷을 좋아한다고 누군가가 무작정 빨간색 스웨터를 사다주면 다 입을 수가 있느냐, 빨강이라도 당신이 좋아하는 빨강이 아니면 못 입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습니다. 언어라고 해서 ‘레드’는 ‘빨강’, ‘블루’는 ‘파랑’만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이런 날탕 번역의 부작용이 우리 국어 생활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말엔 ‘분위기가 호젓한 술집’이란 말이 있지, ‘호젓한 분위기의 술집’이란 말은 없어요. 이것은 일본말을 날탕으로 풀어놨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선 ‘나의 동생의 부인의 사촌’ 같은 표현을 못 쓰지만 일본어에선 ‘노(の)’를 얼마든지 붙여서 말을 이어갈 수 있거든요.

    임길진 언어는 문화를 이끌어가기도 하고 따라가기도 합니다. 영어는 직선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문법을 봐도 그렇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쓴 글을 보면 서론 본론 결론이 논리적으로 질서있게 전개됩니다.

    그런데 중동지역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쓴 글은 논리가 갈짓자로 왔다 갔다 합니다. 제가 가르친 이집트 학생의 논문을 보면 서론에서 자기 얘기를 하다가, 2장에서는 할아버지 얘기를 하고, 3장에 가면 아저씨 얘기를 하다가 4장에서는 느닷없이 어머니 얘기를 합니다. 만약 미국 학생이 같은 주제로 논문을 쓴다면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나→동생 하는 식으로 가겠죠. 그래서 미국 교수들이 이 학생의 논문을 읽으면 혼란스러워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논문을 통과시켜주지 않아요. 그러면 이 학생은 “내 글 속에는 내 나름의 논리가 있다”고 반박합니다.

    한편 동양인이 쓴 글은 결론을 유보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종의 나선형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한참 동안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끝에 가서야 결론을 내립니다. 정치적 협상에서도 처음부터 논리적인 단계를 밟아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이 얘기 저 얘기로 대립하다가 막판에 가서 ‘극적 타결’에 이르곤 하죠.

    이에 비해 스페인이나 프랑스 같은 로망스어 계통의 말은, 속으로는 논리가 깔려있지만 거기에다 재미있는 얘기를 곁들여 옆길로 샜다 돌아왔다 하면서 갈짓자형과 직선형을 합친 형태로 전개됩니다. 프랑스 영화를 보면 좀 걷잡기 어려운 면이 있잖습니까.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가 나중에 보면 결론이 드러나기도 하거든요.

    이렇듯 영어권의 직선형, 중동지역의 갈짓자형, 동양의 나선형, 로망스 언어권의 갈짓자형+직선형 문화패턴 중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까 음식 얘기에서도 나왔지만, 우리 모두가 진정한 의미에서 지구촌의 한 백성이 되려면 내 것만 옳다는 태도를 버려야 됩니다.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되 일치점을 함께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만의 독특함을 지켜나가는 동시에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하자는 것이죠. 가령 모든 종교에서 귀중한 덕목으로 여기는 사랑과 자비, 어떤 교육이념에서든 지상의 목표로 삼는 지식의 함양과 진리의 추구, 어느 나라의 헌법에나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정의와 평등 같은 것들이 그런 가치 아닐까요.

    우리의 지역감정이라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영남과 호남이 공유하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같은 조상에게서 났고, 생긴 것도 똑같은 사람들이 음식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고 노랫가락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요. 왜 더 큰 공유점을 깨닫지 못합니까. 변형과 변성, 변역의 지혜는 여기에서도 필요합니다.

    ‘틀림’에서 ‘다름’으로

    이윤기 술집에 가보면 접대부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욕지거리까지 해요. 이렇게 생각해볼 순 없을까요. ‘저 아가씨는 아마도 집에서 무지무지 귀한 딸일 거야, 아가씨의 어머니는 딸 생각만 하면 눈물을 글썽일거야, 어쩌면 저 아가씨는 누군가에게 너무나 사랑스런 연인일 거야…’ 하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누구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죠.

    외국의 어떤 마을에 한국 관광객들을 내려놓으면 “야, 여기는 볼 게 없으니 가자”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 마을이 어느 누구엔가는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도는 고향일 테지요. 그렇게 생각하자는 겁니다. 내가 우연하게 밟은 낯선 땅이 그 누구인가의 소중한 고향이라고. 내 고향만 너무 사랑하고, 내 고향만 너무 자랑하지 말자고. 우리는 ‘틀리다’와 ‘다르다’의 의미를 자주 혼동합니다. 정치인이 “우리 당은 틀려요” 할 때의 의미는 ‘different’이지 ‘wrong’이 아니거든요.

    이집트에서 온 학자가 “당신네 한국인들은 백인보다 더 심하게 유색인종을 차별한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어요. 한국에서 외국인을 차별하는 일이 정말 있나 의심스러웠어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미국인 아니면 일본인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은 힘센 사람들이고, 일본인들은 돈 많은 사람들이니 어떻게 차별할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보다 좀 없이 산다고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 연변 같은 곳에서 온 사람들을 차별한다니 이런 촌스러운 짓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우리보다 잘 산다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귀었지만, 나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차별한다는 인상을 받은 일은 없습니다.

    임길진 코소보나 동티모르 사태에서 보듯 세계 도처에서 인종차별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인종간의 갈등이 그 원인이죠. 그런데 이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우리보다 잘 살고 힘센 사람들에게는 인종과 관계없이 잘 대해주고, 우리보다 못 살고 힘 없는 사람들에게는 인종과 관계없이 차별하는 태도입니다. 그런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으면서 평등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우리가 어느 정도로 차별이 심한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화교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창피해요.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들의 법적 지위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고,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해 거품을 물고 얘기하지만, 한국에 사는 화교들처럼 차별대우를 받는 경우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한국인이 미국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 시민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를 잡고 사는 것은 그 사회가 그만큼 개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국제 무대에서 제 위상을 확보하려면 무엇보다 인종·민족적 편견에서 벗어나 완전한 평등주의를 체화해야 됩니다.

    이윤기 우리는 대대로 유목민의 삶이 아니라 농경 정주민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오순도순 모여 살다보니 좋은 점도 많았지만, 이런 배경에서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는 의식이 싹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살았는데, 그곳에서는 외지에서 온 사람이 풋고추를 먹을 때 꼭지를 따고 된장에 푹 찍어 먹어야지 꼭지를 쥐고 찍어 먹으면 상놈이라며 하대했어요. 밥상을 받으면 간장 뚜껑부터 열어놓고 수저를 들어야 양반이라고 했어요. 말도 안 되는 관습을 정해놓고는 자신과 ‘다르게’ 행동한다며 ‘틀렸다’고 한 겁니다.

    몇 년 전부터 사람을 만나면 좀 당황하게 되는 때가 있어요. 저와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은 대개 서너 번을 미치더군요. 우선 내 나이가 궁금해서 미쳐요. 두 번째로는 고향이 어딘지 궁금해서 미치고, 그 다음엔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궁금해 미칩니다. 그 얘기가 다 끝나면 이번엔 내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지 민주당을 지지하는지 궁금해서 또 미쳐요. 빨리 대답해주지 않으면 조바심치기까지 해요. 짓궂게도 저는 일부러 모순된 태도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해놓고는 “그런데 신문은 한겨레를 좋아한다”고 툭 던져요. 그러면 상대방이 안절부절 못해요. 제가 그의 논리적 일관성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죠.

    결국 그는 저를 희미한 회색분자쯤으로 분류해놓고 자신의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지요. 조선일보를 좋아하는지 한겨레신문을 좋아하는지 빨리 말해라! 황석영을 지지하는지 이문열을 지지하는지 빨리 밝혀라!… 이 얼마나 촌스러운 일입니까. ‘둘 중 하나’가 아니면 회색분자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면 회색분자들이 많아져야 좋겠어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임길진 사상적 획일주의죠. 사상의 독재이고 이데올로기의 전횡이에요.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하나 하나마다 적절한 기준을 갖고 선택하게 해야 시민사회의 진정한 복수주의가 실현되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기 나름의 문화적 가치를 가질 수 있고 정치적 주장을 소신껏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교육입니다. 올바른 교육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사회 전반의 획일주의와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아직 ‘변형’ 단계에 머물러 있어요. 이걸 변성과 변역으로 이끌어야 해요.

    이윤기 어린 시절 저는 학교에서 참으로 이상한 이유로 상처를 많이 받아 그 후 학교와는 몇십년째 불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때 저는 영어공부를 좋아해서 영어를 꽤 잘했고 국어도 잘했어요. 그런데 주산을 못한다고 주산선생이 제 빡빡 깎은 머리를 주판으로 사정없이 긁어버렸어요. 마침 새로 산 주판이라 주판알 끝이 날카로웠고 알이 여섯 줄이나 됐어요. 그걸로 맨머리를 긁으니 여섯 개의 핏줄이 쫙 그려지더군요. 그때부터 도대체 내가 왜 여기 앉아서 이런 짓을 하고 있나 생각하게 됐어요.

    그후 30년 세월이 흘러 제가 미국에 연구원으로 가기 직전이었는데, 중학교 1학년이던 제 아들이 수학선생한테 매를 맞고 멍투성이가 돼서 집엘 왔어요. 걔도 날 닮았는지 영어는 잘했는데 수학은 못했나봐요. 얼마나 맞았는지 미국에 간 후에도 한동안 멍이 없어지지 않았어요. 영어 잘하는 학생이 수학 못한다고 매를 맞아야 된다? 문득 미국 생각이 나더군요. 미국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아이가 다른 과목 성적이 좀 나쁘다고 수업시간에 상처를 입는 경우는 없어요.

    물론 전인교육이라고 해서 한 인간이 홀로서기를 하고 주체성을 가지려면 국어 영어 수학 음악 미술 가릴 것 없이 다 잘하면 좋겠죠. 옛날 선비들은 경서에도 통달하고, 활도 잘 쏘고, 시며 음악에도 소양이 있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우리 교육은 여기에 너무 매달리다 보니 지나치게 힘을 낭비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미국 학교에선 미술시간에 삼원색이니, 중간색이니 하는 걸 가르쳐주지 않아요. 음악시간에도 높은음자리표, 낮은음자리표, 장3도, 단3도를 가르치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그저 악보를 보고 바이올린을 삑삑 긁어대게 하면서 2년쯤 지나면 그런 걸 모르고도 연주를 하고 있어요. 제가 한창 암기력이 좋을 때는 미당(未堂)의 시를 몇 번 읽으면 그 자리에서 외워버렸어요. 그렇게 머리 잘 돌아갈 때 제가 뭘 했는지 아세요? 검정고시 준비하느라 미술 음악 실과 농업책 갖다놓고 달달 외고 있었지요. 올림바장조는 샤프가 몇 개, 뭐 이런 것 외우고 있었어요. 이건 에너지 낭비가 아닐까요.

    임길진 교육의 목표를 세 단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암기 위주의 지식을 획득하는 것, 두 번째는 그렇게 해서 얻은 지식을 현실에 응용하는 것, 세 번째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 즉 창조죠. 그런데 우리 교육은 첫 단계인 암기만 강조하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입시제도 자체가 많이 외우는 학생에게 유리하게 돼 있으니까 이런 문제가 좀체 해결되지 않고 있어요. 따라서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한편 미국식 교육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미국 학교가 우리와는 딴판으로 학생들에게 교육의 첫 단계인 암기를 너무 안 시켜서 기초가 부실하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응용과 창조만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대학원 학생들이 기본적인 수학공식도 몰라 기초 수학이나 과학 수업을 어려워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이 한때 우주경쟁에서 소련에 뒤지자 학교 교육을 재정비해야 된다며 기초적인 과학교육을 강화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 교육은 우리대로, 미국 교육은 미국대로 강점을 키우고 약점을 보완해야겠죠. 그런 점에서 외국 것을 일방적으로 배우기만 할 게 아니라 교류를 통한 상호학습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윤기 교육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미시간대 국제대학에서 한국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라운지에 ‘Speak English, or die’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어요. ‘영어로 말하세요, 안 되면 죽어버리세요’라는 얘긴데, 언젠가 임선생님께서 한국사람들 앞에서 이런 내용의 도발적인 연설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들 딸 거느리고 온 유학생이나 이민자들로부터 ‘자식한테 영어만 가르쳐야 하느냐, 한국어도 가르쳐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다 가르치세요, 왜 한 가지만 가르칩니까? 이젠 한 가지만 가르쳐서는 안 되는 시대가 옵니다. 그러니 둘 다 가르치세요. 힘이 남으면 일본어와 중국어도 가르치세요. 프랑스어도 가르치고 독일어도 가르치세요. 여러분도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다 말하세요. 하나만 갖곤 안돼요. 그래야 우리가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이곳은 미국이니까 영어로 말하세요. 안되면 죽으세요. 컴퓨터도 배우세요. 컴퓨터 모르고는 반미도 못합니다. 배우세요. 안되면 죽어버리세요….”

    보들레르는 시인인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국 처녀의 눈동자라고 했습니다. 소설가인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사투리’로 말하는 여자, 달리 말하면 외국어로 말하는 여자, 내가 알아듣는 외국어로 말하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소설가 중에는 학교 다닐 때 영어 못하고 수학 못한 걸 자랑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수학은 철학의 사촌이에요. 수학은 논리적인 사고와 직결됩니다. 수학에서 보면 점이 이동해 선이 되고, 선이 움직여 면이 되고, 면이 움직여 입체가 됩니다. 입체가 만들어낸 것이 공간이거든요. 이렇게 차원이 넓혀지면 생각도 진화하게 되죠. 공부하지 않은 걸 자랑으로 여기는 풍토엔 문제가 있어요.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 ‘내 조국을 사랑한다’는 뜻이 되는 게 결코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의 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도쿄 제1고보를 나왔지만 영어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기모노 차려입고 정좌해서 철필로 글 쓰는 사람이에요. 일본적 진정성의 극한까지 간 사람이죠. 그걸 사이덴스티커라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에 미친 사람이 영어로 번역해내니까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겁니다. ‘가장 일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었던 셈이죠.

    이에 비해 오에 겐자부로는 영어로 말하고 쓸 수 있고, 불어를 들을 수 있고, 독일어로 꿈도 꿀 수 있는 작가입니다. 기모노 입고 철필로 글쓰는 사람이 아니에요. 완전히 세계화된 일본인이란 말이에요.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준 것은 세계가 겐자부로라고 하는 세계화된 일본인을 인정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의 진정성을 극한까지 밀고 가는 일을 하지 않았어요. 예컨대 우리 한복 중에 한 벌에 2000만원 하는 게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일본에는 한 벌에 수천만원씩 하는 기모노가 있거든요. 그건 자기네 미의 극한까지 갔다는 뜻이죠. 우리는 아직 야스나리처럼 깊게 가보지도 않았고, 겐자부로처럼 넓게 가보지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우리 문화가 이런 것을 극복해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겐 공포를 혐오로 위장하는 일면이 있어요.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공부를 더 할 생각은 않고 “영어는 미국놈들이 쓰는 말인데, 내가 왜 그걸 배워?” 하면서 혐오를 드러내는 겁니다.

    이해하고 전달하고 설득하라

    임길진 이제 영어는 과거처럼 사치품이 아닙니다. 필수적인 생존도구죠. 세계 어디에서나 대부분의 업무가 영어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만 영어를 쓰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 특히 유럽인들은 미국인들 못지않게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지역 사람들과 함께 일하거나 문화교류를 할 때도 영어를 못하면 안돼요.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무슨 영어냐”며 빈정거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말 잘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고, 영어를 배우는 것은 우리말 잘하고 못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저는 영어의 수준을 세 단계로 봅니다. 첫 단계는 영어를 읽고 듣는 수준입니다. 책을 읽고 TV나 영화를 보면서 이해하는 단계인데 이것은 한국사람들도 웬만큼 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대화입니다.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죠. 여기에는 문자 혹은 구두로 전달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한국사람들은 구두 전달기술이 상당히 약합니다. 세 번째는 내 뜻을 그저 전달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바꿔놓을 수 있는 협상과 설득의 차원입니다. 칵테일 파티나 국제회의장 같은 데서 처음 만난 외국인과 단 몇분간이라도 대화를 나누면 이 외국인이 나중에 자리를 뜨면서 속으로 ‘아, 이 사람에겐 무언가 있구나’ ‘이 사람한테 좋은 걸 배웠어’ ‘이 사람과 얘기하다 보니 내가 평소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 사라졌어’ 하고 뇌까리는 단계지요. 이 수준에 도달해야 외국에 나가서 돈벌이도 할 수 있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우리의 위상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이 단계까지 이른 한국인은 극히 드물죠. 그래서 언어능력을 많이 키워야 된다는 겁니다.

    요즘 한국에서 조기 유학 붐이 불고 있는데, 언어는 일찍 배워야 된다는 것, 그리고 어릴 때부터 두 가지 언어를 가르쳐도 절대로 나쁘지 않다는 게 분명한 사실입니다. 초등학교 때 한 시간 영어 가르치는 것이 나중에 대학 가서 세 시간 가르치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조기 영어교육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조기 유학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영어의 기초는 문법과 어휘, 그리고 이를 통한 작문능력이거든요. 이것만 갖추면 영어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기초를 굳이 미국까지 가서 배울 필요는 없어요.

    제가 대학 1학년 때 교양영어 성적이 D였습니다. 영어공부를 워낙 안 했으니까. 그 후 군복무를 마치고 오니 머리는 더 비었는데, 마땅히 취직할 곳도 없고 해서 친구들과 유학이나 가보자고 했어요. 유학을 가려면 영어를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 날부터 석 달 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하루에 16시간씩 영어만 공부했어요. 무슨 신통한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워드파워’라는 단어책 한 권, 문법책 한 권, 영어 교과서 한 권, 이렇게 책 3권을 달달 외워서 토플을 봤더니 642점인가가 나왔어요. 그 당시엔 아주 높은 점수였죠. 언어는 이렇듯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게 아주 중요하거든요. 유학을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영어 기초를 다질 수 있다는 얘깁니다. 유럽에 가보면 3개 국어를 멋있게 하는 할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네덜란드나 덴마크, 독일사람들의 영어도 유창해요. 그 사람들이 다 미국 유학 가서 영어를 배웠겠습니까.

    도올 증후군

    이윤기 아까 나온 얘기와 관련해서 우리 사회의 못된 풍토 하나를 예로 들어보죠. 우리 사회에는 어떤 사람이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면, 그래서 그 사람이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알려지면 미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다시 말해 열등감이나 불안감을 혐오감으로 가장하는 것이죠. 가령 운전을 잘 하지 못하면 ‘나는 운전하는 게 싫어’ ‘자동차문명은 나쁜 거야’ 하는 식으로 갖다붙이는 겁니다.

    지식인 사회에도 이런 분위기가 있어요. 특정인을 거론해 뭣합니다만, 우리 지식인 사회에서 도올 김용옥이라고 하면 그의 학문적, 인간적 깊이를 재보지도 않고 “그 잘난 체하는 자식…” 어쩌고 한단 말입니다. 그 양반은 많은 한국 지식인들이 정복하지 못한 봉우리를 세 개나 정복한 기록을 갖고 있어요. 대학교수라면 누구나 ‘논어’나 ‘중용’쯤은 막힘없이 읽어내겠거니 하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논어’ ‘중용’을 펴놓고 “거 참 재미있는 책이군” 하면서 읽을 수 있는 분이 교수사회에서 몇 %나 될까요? 그러니 어쭙잖은 한문실력 가진 분이 ‘노자’ ‘장자’를 줄줄 읽어내리는, 대만대 출신의 도올 가까이에 갔다간 ‘박살’이 나겠죠. 그는 한문에 관한 한 확실하게 고봉을 정복한 사람이니까요.

    또한 미국 갔다 오고 반평생 영어 공부한 사람 중에 도올처럼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 따온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사정이 그러니 영어를 좀 하는 사람들은 도올을 기피하게 돼 있어요. 도올이 제대로 된 영어를 들고 쳐들어오면 무너질 게 뻔하니까.

    세 번째로, 지금은 우리가 학문을 미국에서 직수입하고 있지만, 일제시대 이후 상당기간은 일본을 거쳐서 들여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일본어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일본어를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아직 제대로 안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이 도쿄대에서 석사를 받은 도올과 일본어로 맞닥뜨리면 당장 밑천이 드러나겠죠. 공개 스파링을 하자면 겁이 날 수밖에요. 겁이 나면 존경해버리면 되는데, 존경하는 게 아니라 싫어해버리거든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체제를 구축하는 겁니다.

    임길진 우리 자연과학, 사회과학 학자들 중에 외국에 나가서 학문적으로 대단한 업적을 남긴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런 분들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아요. 반면에 이런 학자들보다 실력이 못한 미국 교수들은 받들어 모시더군요. 걸핏하면 초청해서 대대적인 공개강연을 하기도 하고. ‘학문적 사대주의’라고나 할까요. 개인적인 호오를 떠나 인정할 것은 기꺼이 인정하는 자세가 아쉽습니다. 아마 중국 학자가 도올선생처럼 책을 내고 강연을 한다면 이 대학, 저 대학에서 모셔가려고 줄을 설지도 모르죠.

    학문의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서도 이런 사대주의를 버려야 되고, 우리끼리 서로 돕고 키워주는 학우의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학문적으로 날카롭게 비판하고 분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누군가가 가능성과 창조성을 보인다면 지원과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윤기 서울 신촌에 ‘서서갈비집’이라는 곳이 있어요. 그 집에 가면 갈비를 서서 구워 먹어야 돼요. 드럼통에 불 피우고 둘러서서 구워 먹습니다. 이렇다 할 서비스도 없어요. 소주도 갖다주는 대로 마셔야 되고, 채소라곤 고추장에 찍어먹는 마늘밖에 없어요. 그런데 워낙 싸고 맛이 좋아 손님이 끊이지 않으니까 주변에 비슷한 집들이 자꾸 생겼어요. 제가 그집 20년 단골인데, 하루는 주인 할아버지한테 “아저씨, 이웃에 이런 집들이 자꾸 생겨서 기분 상하시겠어요” 그랬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손사래를 치면서 이래요. “아이구, 그 사람들이 어디 내 적인가요? 그 사람들 덕분에 우리집이 점점 더 많이 알려지는데요”라고. 맞수는 절대로 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에겐 맞수 꼴을 못보고 곧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관습이 있잖습니까.

    메이저리그 야구경기를 보면 가끔 선수들이 상대편 선수들과 시비가 붙어 패싸움을 합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표정만 험상궂게 짓고 있지, 실제로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아요. 쇼를 하는 거죠. 우리나라 프로야구 선수들도 초기에 그걸 배워서 써먹었어요. 이만수랑 누구랑 싸움질을 하는데, 멱살을 잡고 밀어붙이고 난리예요. 겉으로는 그렇게 툭탁거리면서 입으로는 이러는 겁니다. “형, 어제 어디서 마셨어?” “강남인데, 야, 그집 죽이더라…”.

    임길진 상대방이 커지면 나에게 해가 된다고 믿는 것은 신뢰가 없기 때문이죠. 가령 직장에서 자신과 비슷한 자리에 누군가를 앉힐 때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오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 사람이 옆에 와서 일을 잘 하면 자기를 잡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능력 있는 사람이 와서 일하면 그 사람으로부터 뭔가를 배울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자기도 같이 클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20∼30년 전에 비하면 우리네 살림살이가 아주 풍족해졌는데도, 이렇듯 신뢰가 없으니 미래에 대해 큰 희망을 갖지 못합니다.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뭔가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남을 도와주는 자세, 하루하루 수지 계산을 해가며 사는 게 아니라 좀더 길게 내다보며 행동하는 마음가짐이 아쉽습니다.

    이윤기 저는 그저께 전북 무주에서 열리는 시인학교에 초청받아 갔다가 인상적인 두 부모를 만났어요. 한 부모는 대학생들이 주로 참가하는 시인학교에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들을 데리고 왔어요. 아이와 함께 산길을 걸으면서 시를 읽어주거나 더러 걸음을 멈추고는 “이 나무가 물푸레나무란다” 하고 가르쳐주더군요. 제가 아이 아버지에게 “초등학생에겐 너무 어렵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이런 기회를 자주 갖게 하면 어린아이도 부지불식간에 ‘아, 이런 것이 좋은 거구나’ 하는 느낌을 갖겠죠” 하더군요.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자꾸 좋은 분위기에 젖다보면 잘 하게 되고, 잘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점점 더 잘 해서 전문가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려고 전주역에 나갔다가 이 분들과는 극적으로 대조되는 또 한 부모를 만났습니다. 제 승차권은 ‘5호차 자유권’이었어요. 좌석이 정해진 게 아니라 5호차에서 먼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그 자리 주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까딱하면 서울까지 서서 가겠구나 싶어서 떨떠름해 있는데, 옆에서 한 부모가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쯤 되는 아들과 딸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더군요. “기차가 1, 2, 3, 4, 5호차 순서로 올 테니까 너희들은 여기쯤 서 있다가 기차가 보이면 1등으로 뛰어 올라가서 자리를 잡아”라고. 그런데 위치를 잘못 찍었어요. 기차가 6, 5, 4, 3호차 순서로 왔거든요. 순간 아이들이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니까 부모들이 냅다 소리를 질러대지 뭡니까. “빨리 뛰어!” “빨리 뛰라니까 저 새끼 뭐하는 거야!”…. 네 식구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를 치더군요. 나중에 기차를 타고 보니 네 사람이 다 자리를 잡긴 했는데, 각각 떨어진 자리에 한 명씩 앉아 있었습니다. 그 젊은 아버지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더군요. ‘당신은 자식들을 죽이고 있다’고.

    임길진 어릴 때 무엇을 가르치느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가정교육, 정규교육, 사회교육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이게 깨져버렸어요. 우리 정규교육에 문제가 많긴 하지만, 적어도 정규교육이 ‘남을 배반하라’ ‘신뢰하지 마라’ ‘악착같이 남을 제치고 너만 잘 살아라’고 가르치진 않거든요. 다 좋은 것만 가르칩니다. 그런데 가정교육이 이걸 흔들어댑니다. 집에서 ‘약삭빠르게 살아라’ ‘밖에 나가서 절대로 남을 위해 봉사하지 말아라’고 공공연하게 가르치진 않지만, 은연중 그런 삶의 태도로 오도하고 있어요. 사회교육도 많이 약해졌어요. 우리가 자랄 때는 길거리를 가다가도 잘못된 행동을 하면 어른들한테 꾸지람을 들었어요. 그래서 주위에 연세든 분이 계시면 눈치를 봤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오히려 어른들이 밖에서 젊은이들 눈치를 보는 세상이 됐어요.

    교육정책에 문제가 많다고들 하고, 그래서 교육부총리 자리를 만든다고도 하지만 우리의 교육문제는 교육부만 잘못해서 생긴 게 아닙니다. 교실파괴니 교권침해니 하는 문제가 교육정책이 잘못돼서 빚어진 게 아니에요. 사회가 혼란스러워졌고, 사회의 기본이 없어졌고, 무엇보다 가정교육이 중심을 잃었기 때문에 교육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가정교육이야말로 진정한 세계화의 출발점입니다.

    ‘말안장의 철학’

    이윤기 인터넷에 기반을 둔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임선생께서도 어린이 인터넷 보급운동을 하셨죠. 인터넷 시대의 교육은 어떤 양상으로 그려질 것인지 궁금합니다. 가정과 학교, 교육당국의 생각은 또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임길진 제가 4∼5년 전에 인터넷 보급운동을 할 때만 해도 인터넷이 뭐 하는 것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요즘 벤처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 무렵에 인터넷을 쓰지 않았던 이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불과 몇년 만에 인터넷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났어요.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젠 누구라도 정보통신 기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됐으니까요. 인터넷과 컴퓨터 없이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거든요.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인터넷과 컴퓨터를 다룰 때도 편리와 효율만을 추구해선 안된다는 것 말입니다. 편리하게 사용하되, 아름답게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해요. 예를 들어 인터넷에 들어가면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몇초 안에 띄워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인터넷에서 읽지 않아요.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한 은사께서 생일선물로 셰익스피어 전집을 한 권 주셨는데, 요즘도 셰익스피어가 생각나면 누렇게 빛이 바랜 그 책을 꺼내 읽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책으로 읽어야 읽는 맛이 납니다. 여름날 나무그늘 아래서 수박 한 쪽 베어 먹으면서 ‘오셀로’나 ‘햄릿’을 읽어보세요. 그리고는 극장에 가서 직접 연극을 보세요. 이런 것들은 인터넷으로 읽어선 실감이 나지 않아요. 우렁우렁한 인간의 목소리로 들어야 됩니다.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오밤중에 셰익스피어의 글을 인용하려면 인터넷만큼 편리한 것이 없죠. 하지만 그게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원본을 읽고 나서 극장에 가서 대사를 듣는 겁니다.

    직접 눈과 눈을 마주 보며 나누는 대화와 관계, 그리고 첨단기술이 제공하는 편의성이 균형을 이뤄야 문명과 문화는 이상적인 조화를 이뤄냅니다. 어떻게 보면 상반된 가치처럼 보이죠. 그래서 최신의 정보통신 기술이 모든 기존 가치를 허물어뜨리는 걸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할 것 없이 모든 면에서 이들 두 요소를 조화시켜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말안장의 철학’이라고 부릅니다. 말안장을 잘 보세요. 말안장은 두 개의 포물선 형태를 하고 있어요. 하나는 말의 등을 덮는 모양의 포물선입니다. 그런데 이것만 있으면 말을 탄 사람이 앞뒤로 흔들려 제대로 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람의 몸에 맞도록 또 하나의 포물선 모양을 옆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하나는 말을 잘 덮는 포물선이고, 하나는 사람의 몸을 잘 받치는 포물선이죠. 두 개의 포물선이 다 잘 만들어졌을 때 사람과 말이 모두 편하고 보기에도 멋진 안장이 됩니다.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함께 얻을 수 있는 거죠. 앞으로 남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남한의 가치와 북한의 가치를 이렇듯 편하고 아름답게 조화시켜야 되겠죠.

    이윤기 ‘말안장의 철학’이라…그거 아주 멋진 표현이네요. 말 얘기가 나왔으니 저는 ‘경주마 눈가리개 신드롬’ 얘기를 해볼까요? 경주마는 달릴 때 옆을 보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앞만 볼 수 있게 눈가리개를 씌웁니다. 중세 이후 마차를 끄는 말은 모두 눈가리개를 씌웠죠. 뉴욕 센트럴 파크에 가면 마차를 태워주는 곳이 있는데, 여기 말들도 옆을 못 보게 해놨어요. 우리는 철학을 하든 문학을 하든 자기 분야 하나씩만 꿰차고는 바로 옆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몰라요. 관심도 없어요. 그러다 어느 날 이 ‘눈가리개’를 풀면 몹시 당황하거든요. 임선생 말씀처럼 편하고 아름다우려면 우선 우리의 눈가리개부터 벗어던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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