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모를 사막을 걷는 듯하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방향은 맞게 잡았는지도 의심스럽다. 예서 주저앉을 수도 없다. 그러기엔 지금껏 쏟은 공력과 인내가 너무 아깝다. 종합주가지수 1059로 화려하게 출발한 2000년 증권시장이 벌써 몇 달째 지루한 바닥장을 헤매고 있다. 도처에 난무하는 낙관론과 비관론은 가뜩이나 지친 투자자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주식투자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언제 사야 하고, 만다면 언제 팔아야 하나. 올 하반기 증시 향방을 추적하기 위해 20명의 증권전문가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편집실> 》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현재 주가 수준이 바닥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SK투신운용 장동헌 주식운용본부장은 “지수가 5월에 625, 7월에 680까지 떨어진 것은 당분간 시장에서 악재로 작용할 만한 요인들이 모두 노출돼 주가에 미리 반영됐음을 뜻한다”며 “기업 실적과 금리, 경제성장률 등을 고려하면 하반기 지수는 1000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신증권 나민호 투자정보팀장도 “지금의 증시 침체는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자금 메커니즘의 일시적 이상으로 빚어진 것이기 때문에 지수 650선이면 바닥을 확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8월중 또 한번 650 부근까지 미끄러질 수도 있지만, 추석을 전후해 900선을 회복하고 11∼12월경에는 1000도 바라볼 만하다는 것.
미래에셋자산운용 김영일 이사는 “정부와 기업의 구조조정 계획이 립 서비스에 그친다면 시장의 신뢰가 급속도로 무너져 600선조차 위태로울 수 있지만, 이는 최악의 가정”이라며 “주가가 달리 더 떨어질 이유가 없으므로 그런 상황만 없다면 950까지는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중한 전망을 제시하는 이들도 800∼900대까지의 상승 가능성을 낙관했으며, 다시 조정장이 온다 해도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은 아니므로 전저점인 600∼650선이 위협받진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지수가 오른 후 상승세가 지속되기 보다는 100∼200포인트의 변동폭을 오가며 박스권을 형성할 것이라는 견해다. UBS워버그증권은 나름의 계산법을 적용, 하반기 지수를 ‘최저 667, 최고 899’로 정밀하게 추정했다.
환매사태 진정
지난해 말 주가지수가 98년 말에 비해 무려 83%나 상승했던 것은 주식을 사들이려는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투신사 주식형 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45조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연말 잔고는 50조 원을 넘어섰다. 자산운용사의 뮤추얼 펀드에도 5조7000억원의 신규 자금이 유입됐고, 은행의 단위금전신탁에도 15조 원의 돈이 몰렸다.
그러나 올들어 지난 7월말까지 투신사 주식형 펀드에선 12조 원이 빠져나갔다. 투신사들이 12조 원어치의 주식을 팔아 고객에게 돈으로 내줬다는 얘기다. 뮤추얼 펀드와 단위금전신탁에서도 각각 1조4000억 원과 8조7000억 원이 인출됐다. 증권사, 종금사를 포함한 제2금융권에서 빠져나간 돈은 모두 86조 원에 이른다.
외국인 투자자와 함께 우리 증시를 떠받치는 기둥인 기관투자가들이 이렇듯 줄곧 ‘실탄부족’에 시달리다 보니 주식을 사들일 엄두를 못내고 틈만 나면 팔아치우는 데 급급했다. 이는 증시 침체로 직결됐고, 증시 침체는 다시 투자자금 인출사태를 야기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증권사와 투신사를 빠져나간 돈 가운데 상당액은 은행, 보험사 등 ‘안전한(것으로 알려진)’ 금융기관의 단기 상품으로 흘러들어갔다. 현재 총유동성(M3·한국은행이 방출한 돈에 1, 2금융권 예금액을 합친 것)의 절반인 330조 원이 이렇게 단기 자금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과 보험사는 이처럼 엄청난 자금을 확보했지만, 주가가 불안한 데다 주식 자산을 많이 갖고 있으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금융권의 2차 구조조정을 앞둔 시점에 이 돈으로 주식을 사들일 처지가 못됐다.
주식 수요가 줄었다면 공급도 줄어야 시장에 충격이 없다. 하지만 지난해 상장기업들은 30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이중 현대 계열사 증자액이 13조 원)를 단행, 총 자본금 증가율이 29%(미국의 경우 0.6%)에 달했다. 기업들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 대신 손쉬운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 ‘큰손’ 매수세력이 떠난 시장에 매물을 무더기로 쌓아올렸다.
주가가 바닥을 치던 97년 말∼98년 초의 시가총액은 150조 원 정도였는데 지난해엔 500조 원으로 증가했다. 국민총생산(GDP) 성장률, 금융자산 증가율, 저축 증가율 등이 모두 10%대를 유지한 상황에 주식 시가총액이 300% 이상 늘어났으니 우리 경제가 이를 감당해낼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 후유증이 올해 증시를 강타했다.
전문가들이 올 하반기 증시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것은 무엇보다 이렇게 증시를 짓눌러온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머지 않아 제 자리를 찾게 되리라는 기대에서 비롯된다. 우선 공급측면에서는 주가 폭락으로 상장기업들의 증자가 급감했다. 상장사들이 상반기에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4조652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4%나 줄었다.
수요측면에서도 형편이 나아졌다. 주식형 수익증권과 뮤추얼 펀드로의 투자자금 유입은 지난해 7월까지 피크를 이뤘다. 때문에 1년 후인 지난 7월까지 집중적으로 만기가 도래했다.
한빛은행 조상호 투자분석부장은 “주식형 수익증권과 뮤추얼 펀드의 만기 물량이 7월에는 3조4086억 원에 달했으나 8월 9203억 원, 9월 3544억 원, 10월에는 2850억 원으로 감소해 환매사태가 진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하반기에는 기관들의 주식 매도물량이 크게 줄어 수급 개선이 기대된다는 것. 지난해 9260억 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인 투신사들은 올해 들어 7월말까지 6732억 원어치를 팔아 이젠 주식잔고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 형편이다. 또한 우리 주가가 대개 7∼8월에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9월부터 반등하는 계절리듬을 타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가을 이후 장세는 낙관할 만하다는 의견이다.
“주식을 살 수밖에 없다”
조상호 부장은 “현대사태가 해결 실마리를 찾는 등 시장 분위기가 반전될 모멘텀만 주어지면 최소한 100조 원의 단기 자금이 증시로 몰려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간 안전제일주의로 은행 등에 돈을 맡겨뒀던 투자자들도 연 7∼8% 수준의 금리를 더 이상 참아내기 어려운 시점에 왔다는 것. 증시가 좀 풀리면 하루에도 최고 15%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종목들이 속출할 텐데, 세금을 떼면 연 6%도 채 안 되는 이자를 보고 은행에 계속 돈을 묻어두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더욱이 내년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시행되면 매매차익에 대해 세금을 물지 않는 주식투자의 매력이 커진다.
금융기관들의 사정도 달라졌다. 지금까지 구조조정을 앞둔 금융기관들은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수익을 높이기보다는 자산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했고, 이 때문에 고객예탁금을 리스크가 낮은 국·공채에 주로 투자했다. 이들의 주식투자 비중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주식과 채권에 56대 44의 비율로 투자하고 있는 것과는 자못 대조적이다.
하지만 수신금리와 여신금리의 차이, 즉 예대마진으로 먹고 사는 금융기관들이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자금을 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 팍스넷의 김철상 이사는 “국·공채는 이미 값이 많이 오른데다 이율도 낮고, 채권시장은 내년 말까지 82조 원의 만기가 돌아오는 등 수급문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은행들이 마땅히 돈을 굴릴 데가 없다”며 “은행문을 닫지 않고 고객들에게 이자를 내주려면 이젠 증권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부동산 시장도 투자 메리트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주택보급률 향상으로 주택 수요가 준데다, 기업들이 군살을 빼기 위해 공장부지와 유휴 부동산을 대거 매물로 내놓는 바람에 공급초과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 따라서 많은 전문가들은 하반기중 금융권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 금융기관들이 다시 수익률 경쟁에 나서면서 주식투자 비중을 높여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의 내재가치는 주가 등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만, 주가는 매매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매매시장의 규모에 절대적으로 좌우된다. 금융시장에 돈이 많이 유입돼야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철상 이사가 조만간 주가가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수익 증가, 무역흑자, 외국인 투자자금 증가, 활발한 외자유치 등에 힘입어 금융시장에 돈이 넘치고 있다. 설비투자를 끝낸 우량기업들은 벌어들인 돈을 주체하지 못해 부채를 갚는 데 쓰고 있다. 이 돈은 다시 금융기관으로 들어간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면 증시는 폭발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자본 순유입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작은 계기 하나가 한 순간에 돈의 흐름을 바꾸면서 극적인 국면 전환을 이끌 수 있다.”조상호 부장은 “현대사태가 해결 실마리를 찾는 등 시장 분위기가 반전될 모멘텀만 주어지면 최소한 100조 원의 단기 자금이 증시로 몰려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간 안전제일주의로 은행 등에 돈을 맡겨뒀던 투자자들도 연 7∼8% 수준의 금리를 더 이상 참아내기 어려운 시점에 왔다는 것. 증시가 좀 풀리면 하루에도 최고 15%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종목들이 속출할 텐데, 세금을 떼면 연 6%도 채 안 되는 이자를 보고 은행에 계속 돈을 묻어두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더욱이 내년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시행되면 매매차익에 대해 세금을 물지 않는 주식투자의 매력이 커진다.
금융기관들의 사정도 달라졌다. 지금까지 구조조정을 앞둔 금융기관들은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수익을 높이기보다는 자산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했고, 이 때문에 고객예탁금을 리스크가 낮은 국·공채에 주로 투자했다. 이들의 주식투자 비중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주식과 채권에 56대 44의 비율로 투자하고 있는 것과는 자못 대조적이다.
하지만 수신금리와 여신금리의 차이, 즉 예대마진으로 먹고 사는 금융기관들이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자금을 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 팍스넷의 김철상 이사는 “국·공채는 이미 값이 많이 오른데다 이율도 낮고, 채권시장은 내년 말까지 82조 원의 만기가 돌아오는 등 수급문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은행들이 마땅히 돈을 굴릴 데가 없다”며 “은행문을 닫지 않고 고객들에게 이자를 내주려면 이젠 증권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부동산 시장도 투자 메리트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주택보급률 향상으로 주택 수요가 준데다, 기업들이 군살을 빼기 위해 공장부지와 유휴 부동산을 대거 매물로 내놓는 바람에 공급초과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 따라서 많은 전문가들은 하반기중 금융권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 금융기관들이 다시 수익률 경쟁에 나서면서 주식투자 비중을 높여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의 내재가치는 주가 등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만, 주가는 매매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매매시장의 규모에 절대적으로 좌우된다. 금융시장에 돈이 많이 유입돼야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철상 이사가 조만간 주가가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수익 증가, 무역흑자, 외국인 투자자금 증가, 활발한 외자유치 등에 힘입어 금융시장에 돈이 넘치고 있다. 설비투자를 끝낸 우량기업들은 벌어들인 돈을 주체하지 못해 부채를 갚는 데 쓰고 있다. 이 돈은 다시 금융기관으로 들어간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면 증시는 폭발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자본 순유입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작은 계기 하나가 한 순간에 돈의 흐름을 바꾸면서 극적인 국면 전환을 이끌 수 있다.”
주요 기관투자가인 투신권으로 자금이 유입될 통로가 늘고 있는 것도 희망적이다. 7월26일 금융감독원이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비과세 상품 약관을 승인함에 따라 이튿날부터 투신사들이 비과세 투자신탁 상품을 내놓았고, 재정경제부는 투신권에 주식형 사모펀드 설립을 허용한 데 이어 M·A 공모펀드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국내 투신권에 진출하는 외국 금융기관들이 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8월1일 푸르덴셜이 제일투신증권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은 것을 비롯, 스커드 쉬로더 템플턴 등이 속속 한국시장에 상륙했다. 이들이 선진 투자기법과 개방형 뮤추얼 펀드 등 다양한 상품을 무기로 공격적인 전략을 펼 경우 국내 투신사의 불투명한 자금운용과 저조한 수익률에 실망해 돈을 빼간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이들 때문에 국내 투신권이 공동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지만, 오히려 이들과 건전한 경쟁을 통해 고객 중심의 자금운용 원칙이 확립되고 투신권으로 자금이 몰리는 전기가 될 수도 있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대표는 “미국에선 1980년부터 뮤추얼 펀드가 본격화됐는데, 그후 20년간 주가가 10배 이상 올랐다. 우리도 간접투자가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장기적인 주가 상승기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며 “더욱이 우리 증시에서도 미국에서처럼 국민연금 같은 연·기금이 핵심적인 기관투자가로 나설 것으로 보여 이들이 주식투자 기반을 급격히 확대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기금 재원을 고갈시키지 않고 가입자에게 수익이 돌아가게 하려면 투자수익률이 높은 우량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게 장기적으로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투자자금 유입이 본격화돼 투신권이 우리 증시의 주요 매수세력으로 다시 떠오르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김종철 투자전략부장은 “은행권으로 들어간 단기 자금은 주식형 상품에서 빠져나간 게 아니라 주로 채권형 상품에 가입돼 있다가 대우채 환매 등을 통해 빠져나간 돈이다. 이 자금은 안전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증시가 좀 풀린다고 해서 당장 주식투자 자금으로 들어오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주식형 상품에 들어 있던 자금은 대개 주가하락 이후 적시에 발을 빼지 못하는 바람에 아직도 묶여 있으며, 여기에서 빠져나간 일부 자금은 주식투자를 포기, 손을 털고 나간 돈이라 다시 들어오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간의 시장 흐름을 보면 투신사에 주식투자 자금이 밀려들기 시작하는 것은 대개 증시가 활황세로 접어들고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기관들이 주가가 바닥일 때 주식을 사서 주가를 웬만큼 끌어올린 뒤에야 개인들이 투신사로 몰려들었기 때문. 김종철 부장은 “주가가 오르면 주식형 펀드에 돈이 몰렸다가 주가가 내리기 시작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 다시 들어오지 않는데, 개인들이 상승장에서도 높은 수익을 못내는 것은 이런 판단착오 때문이었다”며 “오히려 남들이 다 빠져나간 지금 펀드에 들어가 상승기회를 기다리는 게 유리하다”고 충고했다.
외국인들의 향방
증시의 수급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큰손’이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특히 올해엔 기관투자가들이 제 구실을 다 못하자 이들이 사실상 독자적인 매매 주도세력으로 장을 쥐락펴락했다. 7월19일부터 외국인들이 삼성전자를 순매도하면서 주가지수가 연일 폭락세를 보인 것도 이들의 파워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었다. 하반기 장세 또한 이들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들의 향방에 대한 전망에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나민호 팀장은 “최근의 외국인 매도세를 ‘Sell Korea’로 볼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Sell Korea’의 첫 징후는 원-달러 환율의 강세 반전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주식 판 돈을 빼가지 않고 그대로 들고 있기 때문에 환율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 중에서도 진짜 ‘큰손’들인 연·기금 투자가들은 적어도 5년 정도를 보고 장기 투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대한투자신탁 이기웅 투자전략팀장도 “최근 삼성전자를 매도하고 빠져나간 외국인들은 대개 단기 차익을 노린 영국, 홍콩 등지의 발빠른 헤지펀드들이었다”며 “외국인들은 우리 증시에 이미 너무 많이 투자했기 때문에 발을 빼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라는 견해. 외국인들은 올 들어 7월말까지 10조 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7월13일 현재 외국인들이 보유한 상장주식 시가총액은 90조4500억 원으로 증시 전체 시가총액의 30%에 육박한다.
외국인들은 7월14일부터 28일까지 삼성전자 주식 213만 주를 순매도했다. 이 기간에 종합주가지수는 150포인트나 하락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무려 9000만 주가 넘기 때문에 외국인 지분율은 57%대에서 55%대로 낮아지는 데 그쳤다.
한편 신영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올들어 순매수한 10조 원어치의 주식 가운데 6조 원어치를 종합주가지수 800∼900 사이에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손절매를 각오하지 않는 이상 지수 700대 장에서 더 이상 대량 매물을 내놓진 못하리라는 것.
그러나 외국인들이 우리 주식을 이렇게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살 만큼 샀기 때문에 이젠 기회 봐서 팔고 떠나는 일만 남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40년 넘게 외국인에게 개방된 일본 증시에서는 외국인 시가총액 비중이 19%를 넘은 적이 없다고 한다. 굿모닝증권 이근모 전무는 최근 3주간 미국과 유럽 아시아 투자자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 우리 시장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도 목까지 찬 ‘오버웨이트’ 상태라 주식을 더 살 여력이 없다고 했다. 한국 증시는 펀더멘털보다 수급이 주도하는데, 국내 기관들이 맥을 못추고 있어 자기들이 덜렁 주식을 샀다가는 나중에 팔고 싶어도 사줄 세력이 없을 거라고 우려했다. 이들의 투자가 몇몇 우량종목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7월말까지 외국인들이 사들인 10조 원어치의 주식중 70%가 넘는 7조 원 남짓이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주식이었다. 한국 경제를 높이 평가했다기보다는 반도체 업종의 수익성을 확신해 ‘Buy Korea’가 아니라 ‘Buy Semiconductor’를 했다는 얘기다. 이전무는 “이들은 반도체 등 세계적인 하이테크 주식만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운용하는 ‘글로벌 테크 펀드’이기 때문에 가령 미국 반도체산업 분위기가 안 좋다 싶으면 개별기업의 실적에 상관없이 그때그때 보유주식을 내다 판다. 삼성전자 같은 우량기업도 예외가 못된다”고 지적했다. 국내 기관들에 매수여력이 있으면 이들이 파는 주식을 받아 살 텐데 사정이 그렇지가 못하니 불안을 느낀 매물이 더 쏟아져 증시 침체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UBS워버그증권 이승훈 이사는 “일본을 제외하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아시아에서 한국만큼 안정된 나라가 드물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한국시장을 어지간하면 낙관적으로 보려 한다”며 “하지만 구조조정이나 부실처리 과정에 양파껍질 벗겨내듯 끊임없이 의혹이 드러날 때마다 투자의견이 극에서 극으로 오가며 불안해 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들은 앞으로도 구조조정을 위한 공적자금 조성이나 부실채권 정리 및 손실 분담 양상 등을 눈여겨 보며 매매전략을 손질하리라는 것.
ROE, 금리 추월
상장기업들의 실적이나 유동성 등 펀더멘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장인환 대표는 “지금까지 상장사들의 평균 ROE(Return on Equity·자기자본 이익률)가 금리수준을 웃돈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지난해 평균 ROE가 처음으로 금리수준과 같은 9%를 기록했고, 올해 추정치는 12%에 이른다”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ROE는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을 이용해 어느 정도 수익을 올렸는가를 나타내는 지표. 가령 ROE가 10%라면 주주가 연초에 100원을 투자했더니 기업이 연말에 10원의 이익을 냈다는 뜻이다. 따라서 ROE가 금리를 밑돈다면 주주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할 경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국 기업의 평균 ROE는 15% 안팎으로 금리의 두 배 수준이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들의 PER(Price Earnings Ratio·주가수익률)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PER는 주가가 주당 순이익의 몇배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현재의 주가가 수익의 몇배인지를 의미한다. PER가 10이라면 주식이 주당 순이익보다 10배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얘기다. 장인환 대표는 “한국 기업의 평균 PER가 12쯤인데, 이는 미국의 25, 일본의 40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했다. 우리 기업들이 실적에 비해 터무니없이 저평가돼 있다는 것은 향후 주가가 상승할 여지가 그만큼 많다는 뜻.
한국과 미국의 대표적 반도체 회사인 삼성전자와 마이크론테크놀로지를 비교해보자. 지난 상반기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16조4093억 원으로 마이크론(3조7582억 원)보다 4.4배 많았다. 순이익도 삼성전자가 3조1829억 원으로 마이크론(6864억 원)보다 4.6배 많았다. 그러나 주식 시가총액은 마이크론이 51조4267억 원으로 삼성전자(49조1000억 원)보다 많았다. PER도 마이크론이 37.46인데 비해 삼성전자는 7.72에 불과, 현저하게 저평가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자료·신영증권).
이승훈 이사는 기업들이 부채를 지속적으로 줄여 재무구조를 개선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조선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등 전통적인 과잉설비 업종들이 부도위기를 맞으면서 설비투자를 미룬 덕분에 자칫 이렇다 할 부가가치도 창출하지 못하고 증발할 뻔했던 막대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 기업부채 총잔액은 98년 1%, 99년 0.7%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97년 이전에 해마다 20%씩 증가한 데 비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였다. 뿐만 아니라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기업들의 금융비용 부담도 훨씬 줄었다.
동원경제연구소 온기선 이사는 “당장 수익이 얼마 늘었다는 것보다는 기업들의 경영마인드가 오너 중심에서 주주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게 더 의미있는 장기 호재”라고 말한다. 몇년 전만 해도 기업들이 애널리스트의 탐방 요청을 거절하기 일쑤였고, 어렵사리 찾아가도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자신들이 먼저 장부를 펴 보일 만큼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주주의 이익에 무관심하고, 투명한 경영에 의지를 보이지 않는 기업은 생존을 위협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현재 주가가 기업의 실적을 받쳐주지 못하는 것은 우리 증시가 현재의 이익보다는 미래의 성장을 중요시하는 성장주 중심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졌다지만, 그 내용을 보면 영업이익보다 비용감소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이런 부류라면 주가는 저평가된 게 아니라 시장으로부터 ‘안정성이 떨어지는 실적’이라는 날카로운 판정을 받은 것이다”는 의견(대우증권 이종우 투자전략팀장)도 있다.
기업 및 금융권 구조조정의 성패가 증시 활황, 나아가 한국경제의 신뢰 회복을 향한 최대 변수임은 공지의 사실. 대우문제가 ‘뚜껑만 열어보고 다시 덮은’ 상황에 현대사태까지 잇따르자 증시는 좀체 활력을 찾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기업 부실의 상당 부분이 아직도 베일에 가려 있다보니 금융권에 대한 구조조정도 아직은 순조로워 보이지 않아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는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들 중 그래도 우리의 구조조정 성적이 제일 낫다”며 “결합재무제표에 따른 부채 재조정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나, 앞으로 할 일보다는 이미 해낸 일이 더 많고, 할 일보다는 한 일이 더 어려운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현대 부실도 대우 부실을 처리하는 데 드는 돈의 5분의 1 정도면 해결 가능하고, 중견기업 전체의 부실규모가 대우 부실규모보다 작은 수준이기 때문에 시장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분위기가 좋을 때 더 좋은 뉴스가 안 나오면 주가는 내림세로 접어들고, 시장 분위기가 나빠도 더 나쁜 뉴스가 안 나오면 주가는 올라간다”는 게 이상무의 경험법칙이다. 이미 나쁜 뉴스가 다 나왔고, 그것들이 주가에 다 반영된 현시점은 본격적인 상승을 준비하는 바닥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에 비해 이근모 전무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추가 공적자금 조성문제를 일러야 9월 국회에서 논의한다는데, 그렇다며 10월 이후에나 구조조정이 시작된다는 얘기다. 그때까지 또 몇 개나 되는 회사가 무너질지 모른다. 12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중 투자적격인 BBB등급 이하의 채권이 12조 원이나 된다. 이런 채권은 만기 연장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기업 연쇄부도에 따른 주가 대폭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의 한계기업은 과감히 퇴출시키고, 부실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해 2차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마땅히 도태시켜야 할 기업을 어정쩡하게 워크아웃시킬 경우 멀쩡한 기업까지 피해를 본다. 특정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부채가 동결돼 금융비용 부담이 없어지므로 덤핑공세를 펴면서 현금 확보에 나서기 때문. 이렇게 되면 같은 업종의 건전한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채산성이 악화돼 산업 전체가 슬럼화할 위험에 빠진다. 현대건설이 위기를 맞은 배경에도 워크아웃 건설업체의 저가 수주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 가중이 한 이유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경기논쟁과 주가
경기는 주가의 중요 변수 가운데 하나이고, 주가는 경기의 선행지표다. 92년 8월 주가가 바닥을 친 후 93년 1월 경기도 뒤따라 저점을 형성했다. 94년 1월 주가가 지수 1000을 돌파하며 상투를 잡자 95년 가을부터 96년 1월까지 이른바 ‘고원(高原)경기’가 펼쳐졌다. 97년 외환위기를 겪고 98년 6월 주가지수가 280으로 바닥을 치자 98년 11월에 경기 저점이 찾아왔다.
연초 전문가들은 그 동안의 경기사이클로 봐서 2001년 6월경에 경기가 고점에 닿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KDI가 “지난 2/4분기에 경기가 이미 고점을 지났을 수도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고, 이에 대해 통계청이 “지표로 볼 때 아직 고점에 이르지 않았다”고 반박하면서 경기논쟁이 불붙었다. 리젠트증권 김경신 이사는 “예상대로 2001년 6월이 경기 고점이라면 주가는 올 하반기에 지수 1000 정도의 마지막 고점을 기록할 것이고, 경기가 이미 꺾였다면 하반기 주가지수는 800선이 고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장동헌 본부장은 “외환위기 후 경제활동과 경제통계가 정상화되고 경기가 상승세로 전환한 지 1년 남짓밖에 안 된 시점에 ‘경기 고점’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고점은 내년 이후에나 찍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우리 경기가 과열성장했다고 하지만, 비교시점의 성장률이 워낙 낮아 경제통계의 연속성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완만한 상승세로 봐야 한다는 것.
많은 전문가들은 과거처럼 경기 변동이 주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장인환 대표는 “주식을 사는 것은 경제(macro)를 사는 게 아니라 기업(micro)을 사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가와 경기가 밀접하게 순환했으나 자본시장이 성숙하면 주가가 경기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며 “투자자의 입장에서 경기 수축기는 오히려 주식 매수기회가 될 수 있다. 예상되는 경기둔화 재료가 이미 현재 주가에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처럼 정보통신기술에 기반을 둔, 이른바 ‘신경제(New Economy)’에서는 중후장대형 굴뚝산업이 주류를 이루던 산업경제시대에 비해 기업의 의사결정이 신속, 정확하게 이뤄져 비용이 절감되고 투자의 과부족 정도가 개선돼 경기사이클에 따라 주가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상황은 좀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
이남우 상무는 “경기가 상반기에 고점을 찍었다고 보지만, 사상 처음으로 경기 정점 후에도 기업들의 EPS(Earnings Per Share·주당 순이익)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경기 고점을 지난 후엔 과도한 설비투자 등으로 금리가 오르고 거품이 형성돼 주가가 하락했으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가 고점을 지났든 안 지났든 고점 얘기가 나왔다는 것은 상승의 끝이 보인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증시 압박이 지속되리라는 반론도 있다. 이종우 팀장은 “국내 투자자들은 아직도 과거의 순환 경기에 익숙해 경기 하강에 불안을 느끼는데다 외환위기 당시 초(超)위축경기를 경험한 바 있어 하반기 장에서 과민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주식은 위험할 때 사라
미국 경기의 하강국면 진입도 수출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끼칠 수 있다. 특히 미국 반도체 경기의 향방은 반도체가 수출과 주가지수를 주도하는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의 연착륙을 확신했다. 김영일 이사는 “미국 경기가 둔화된다 해도 무역부문은 다소 위축될지 모르지만 소비부문이 급격하게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 씽크풀의 김동진 대표는 “미국 경기는 본격적인 하강세로 꺾이는 게 아니라 재상승을 위한 숨 고르기 차원의 연착륙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더욱이 ‘신경제’ 사이클은 아직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적정 성장률을 따져보기도 어렵다. 미국이 10년에 걸친 장기 호황을 누린 것도 신경제시대엔 경기사이클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몇몇 전문가들은 미국 반도체 경기의 둔화세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이견을 제시한다. LG증권 황창중 투자전략팀장은 “휴대전화 단말기나 디지털 카메라 등에 쓰이는 플래시 메모리 경기는 하향세를 보이고 있으나, 우리 업체들의 주력품목인 D램의 경우 2002년까지 수요초과 상태를 지속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이남우 상무는 “내년 상반기 이후에는 외국인들이 반도체 주식을 본격적으로 빼내갈 것으로 보이지만, 그 무렵이면 금융권 구조조정이 어지간히 끝나 기관들이 외국인 매물을 웬만큼 소화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증시하락의 가장 큰 요인은 금리인상이었다.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지난해 6월 이후 일곱 차례에 걸쳐 4.75%이던 금리를 6.75%까지 끌어올렸다. FRB는 금리가 7%를 넘어가면 고금리 부담을 느낀다. 때문에 8월 공개시장위원회에서 다시 0.25%포인트를 올려 7%가 되면 금리인상 드라이브도 멈출 전망이다. 증시에 이만한 호재가 없다. 이에 따라 미국 기관투자가들이 주식비중을 늘리게 되면 우리 증시에도 활황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주식에 투자하겠다면 지금 당장 주식을 사서 잊어버리고 기다려라”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일치된 조언이다. 현재 주가수준이 바닥이라는 얘기다. 김종철 부장에 따르면 “주가는 지금처럼 경기논쟁이 이뤄지는 시점에 가장 많이 빠진다. 정작 하반기로 들어가면 실제 하락지표가 드러나면서 주가 하락세가 진정된다”는 것이다. 불투명하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주식 매입에 호기라는 주장. 시장 전체가 빠지면 사고, 시장 전체가 달아오르면 파는 게 주식투자의 상식인데, 이를 실천에 옮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처럼 유동성이 풍부한 장에서는 개인들도 지수 관련주를 사면 거의 다 수익을 냈다. 그러나 올해 장은 제한된 돈으로 운용해야 하므로 주식 하나를 사려면 갖고 있는 주식 하나를 팔아야 한다. 때문에 종목에 따른 주가 차별화가 극심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개인이 오르는 종목을 따라 사면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실적 좋은 기업 중에 가격이 많이 빠졌다고 판단되는 종목을 골라 산 뒤 오를 조짐이 보이면 크게 먹을 생각하지 말고 팔아라.”(이기웅 팀장)
다음은 지금의 장 분위기를 감안, 전문가들이 개인투자자들에게 권하는 몇 가지 투자전략이다. 서로 모순되는 대목도 있으나 다양한 시각을 담기 위해 함께 소개한다.
분할매수, 분할매도하라 아무리 매력적인 종목을 찾았어도 ‘한 방’에 다 투자하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투자자산의 30%는 현금으로 지니고 있어야 정말 좋은 종목이 나왔을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야지, 뼈까지 발라 먹으려 하지 마라(김경신 이사).
손절매는 아름답다 주가가 큰 폭으로 출렁일 때는 수익을 많이 내는 것 못지 않게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식을 살 때 어느 선까지 내려가면 팔 것인가를 미리 정하라. 손절매를 잘 하려면 주식에 들어간 돈과 실물화폐로서의 돈을 구분해야 한다. 300만 원을 손해 보고 팔아야 할 때 ‘그 돈이면 냉장고를 대형으로 바꿀 수 있는데…’하고 고민하다 보면 결국 실기(失機)한다(김경신 이사).
선물시장에 관심가져라 주가 변동이 심한 장세에선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선물 옵션 등의 파생상품 투자를 고려할 만하다. 외국인들은 현물시장에서는 소극적이지만, 선물시장에서는 액티브하게 매매를 지속하고 있다(페타포투자자문 하태형 대표). 선물은 현물의 그림자다. 현물에만 투자하더라도 선물 최근월물 베이시스에 늘 관심을 갖고 선물이 현물보다 저평가인지 고평가인지 여부를 체크하라(나민호 팀장).
박스권 장세에선 간접투자를 활용하라 박스권 장세는 개인투자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주식형 펀드 중 신뢰할 만한 상품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 상반기엔 펀드매니저들이 지난해의 경우를 생각해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운용하다 보니 손실이 컸다. 하반기엔 냉정하게 운용할 것이고 투신권의 컴플라이언스(고객자산 감시)팀이 강화돼 펀드 관리가 투명해졌다(미래에셋투자운용 구재상 대표).
직접투자가 간접투자보다 낫다 간접투자의 경우 펀드매니저들이 주가지수를 쫓아다니다 보니 대형주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짠다. 그러나 대형주는 주가상승 탄력이 떨어지는데다, 하반기에는 주가가 반등해도 유동성 장세가 아니므로 대형주 중심의 장이 전개되지 않아 간접투자가 직접투자보다 불리하다(이종우 팀장).
직접투자 하다 간접투자 기회 보라 간접투자는 주가 조절능력이 있는, 기관이라는 큰손에 의지하므로 시장이 안정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러나 투신권 상품은 가입후 6개월간 환매가 제한되므로 금융권 구조조정의 고비인 9월경까지는 순발력있게 직접투자를 하다가 자금시장이 안정돼 투신권에 자금이 유입되면 4/4분기쯤 간접투자를 고려하라(황창중 팀장).
투신권 신상품은 1호에 가입하라 지난해 투신권에서 무더기로 신상품을 만든 게 올해 폭락장의 화근이 됐다. 정부가 신상품을 허용하면 여러 투신사에서 한꺼번에 펀드를 만들기 때문에 주식을 살 때도 비슷한 시기에 함께 사고 팔 때도 함께 판다. 살 때는 물량이 부족해 비싸게 사고, 팔 때는 물량이 남아도니 싸게 판다. 따라서 신상품 펀드는 초기 상품인 1∼2호에 가입하라(김철상 이사).
블루칩이냐, 옐로칩이냐
“▲시가총액 상위 우량기업 5∼10개를 ▲값이 빠졌을 때 분할매수해서 ▲6개월∼1년 정도 장기 보유하라.”
증권전문가들이 ‘개미’들에게 흔히 추천하는 ‘안전제일’ 포트폴리오다. 이대로만 따라 하면 아무리 못돼도 은행금리 보다는 높은 수익률이 보장된다는 것.
김종철 부장은 “중·소형주 중에는 대형주보다 주가 상승률이 높은 성장주들이 분명히 있지만, 이런 종목들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며 ‘그래도 대형주’론(論)을 폈다. 대형주는 기관 등 여러 세력이 매매에 참여하기 때문에 가격대가 공정하게 결정될 뿐 아니라, 한번 상승세를 타면 몇배씩 오르는 경우도 많다는 것. 삼성전자는 올 여름 외국인 매도 공세로 연초에 비해 주가가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1년 전에 비하면 3배 이상 오른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조상호 부장은 “반등세가 오면 초반엔 블루칩이 탄력을 받지만 얼마 안 가 상승세에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블루칩들은 폭락장에서도 상대적으로 주가가 덜 빠졌기 때문에 중·소형주보다 상승여력이 덜할 뿐 아니라, 기관과 외국인들의 포트폴리오에 워낙 많은 양이 편입돼 있어 주식형 수익증권으로 신규 자금이 유입되지 않는 한 새로운 대형 매수세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부장은 실적이 좋고 주가가 저평가된 종목으로 중소형 개별주의 경우 한국쉘석유 코오롱유화 코리아써키트 부산스틸 대덕지디에스 콤텍시스템 팬택 신흥 삼성공조 경동도시가스 등을, 저가 우량주로 호남석유 제일모직 풍산 인천제철 LG전선 등을 추천했다. 이종우 팀장은 실적과 주가 사이의 괴리가 큰 중·소형주로 대덕전자 삼화콘덴서 SJM 유성기업 한섬 대한해운 이수화학 등을 추천했다.
김경신 이사는 “정부가 M·A 관련 펀드를 허용하는 등 하반기 이후 M·A를 적극 추진하면서 M·A 재료가 빛을 볼 것”이라며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등 자산가치가 높고 주가가 저평가된 종목 가운데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기업을 골라봄직하다”고 했다.
예컨대 K사의 경우 자본금 80억 원에 주가는 2만2000원 수준인데, 최근 자산재평가를 해보니 부동산 등의 자산가치가 4400억 원에 이르렀다(부채 1500억 원). 자본금이 80억 원이니 40억 원 상당의 지분만 끌어오면 회사를 인수할 수 있다는 얘긴데,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을 주당 2만5000원에 사들인다고 해도 200억 원이면 인수작업이 끝난다. 이론적으로는 200억 원으로 4400억 원짜리 회사를 살 수 있는 것. 그후 부채를 다 갚아도 2900억 원이 고스란히 떨어지는 셈이다.
다만 M·A 관련 정보는 일부 투자자들이 독점하고 있는 수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삼성증권 김경중 코스닥팀장은 “개인에게 특정기업의 M·A 정보가 알려질 정도면 이미 알 만한 투자자는 다 알고 주식을 매집한 뒤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다 할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지 않는데도 M·A 소문만으로 주가가 급등할 경우 추격매수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업종별 추천종목으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정보통신 분야의 우량기업들을 첫손에 꼽았다. 원래 경기 하강기에는 제약 음식료 정유 등 경기에 덜 민감한 내수중심 업종이 힘을 얻는데, 정보통신 업종 또한 경기와 관련없이 성장이 지속될 분야로 꼽혔다. 삼성전자 SK텔레콤 한국통신 현대전자 LG정보 등이 단골 추천멤버. IMT-2000 사업이 본격화되면 막대한 초기 투자자금이 필요한 서비스사업자보다 삼성전기, 성미전자 같은 관련 부품업체들의 수익·성장성이 더 기대된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 밖에 은행(주택 국민 신한), 제약(유한양행 동아제약), 방송(SBS), 건설, 비금속 등도 유망업종으로 꼽혔다. 앞으로는 개별기업의 펀더멘털이 주가를 결정하는 주요소가 될 것이므로 특정 업종이 유망하다고 해서 그 업종에 속하는 전체 기업의 전망이 밝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투자를 결정할 때는 종목별로 저평가 우량주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코스닥 진주’ 찾아라
거품이 많이 빠졌다곤 하지만, 코스닥을 보는 시각은 아직도 불안스럽다. 수익모델이 확실치 않아 투자 리스크가 크고, 기업정보가 잘 공개되지 않는 업체가 많기 때문이다. 이근모 전무는 “좋은 회사의 주가가 오르지 않고, 오를 까닭이 없는 회사의 주가가 폭등하는 등 코스닥은 아직도 투기장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해 외국인들이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터가 부족하다보니 증권전문가들도 회사 분석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는 것. “코스닥이 미워서 투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몰라서 투자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코스닥이 ‘못하면 폭락세, 잘해야 횡보세’를 거듭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수급문제. 올들어 신규등록과 유무상증자로 4조 원이 넘는 물량이 늘어났지만, 외국인과 기관들이 좀체 시장을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코스닥 투자자의 95%가 개인이다. 개인투자자들은 대개 매매차익을 챙기면 말을 갈아타는 단기 투자자들.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세력이 없으니 주가가 상승세를 탈 리 없다. 더욱이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개 시가총액이 5억 달러가 안되는 주식은 매매하기 꺼린다. 외국인들은 주식을 대량으로 매매하는데 시가총액이 적은 종목을 팔 경우 매물을 받아줄 세력이 없어 현금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경중 팀장은 “삼성증권 수익예상종목의 향후 3년간 PEG(Price Earnings to Growth Ratio·PER를 주당 순이익 증가율로 나눈 것)를 산출한 결과 코스닥 기업이 0.2로, 거래소 기업의 대형주(0.24)나 중·소형주(0.35)보다 저평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코스닥의 대형 포털주들이 과대 평가돼 있어 코스닥 지수가 급등하진 않겠지만, 실적이 좋으면서도 주가 하락폭이 큰 종목을 중심으로 주가 차별화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팀장은 “인터넷 서비스업체의 경우 성장성은 좋으나 진입장벽이 낮아 수익성 저하가 예상되지만, 인터넷 장비·부품업체는 정부와 기업의 인터넷 관련 설비투자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어서 수익성과 성장성이 다 좋다”고 했다. 특히 공공기관과 기업의 설비투자 프로젝트는 예산문제 때문에 하반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이들 업체의 하반기 수익전망을 더욱 밝게 한다는 것. 다음은 김팀장이 추천하는 코스닥 유망종목들이다.
*통신장비업체:웰링크 자네트시스템 세원텔레콤
*부품업체:에이스테크놀로지 KMW 서두인칩 쎄라텍
*소프트웨어업체:나모인터렉티브 한국정보공학 이네트 휴먼컴 피코소프트
*전자상거래:옥션 비트컴퓨터
*방송:CJ삼구쇼핑 LG홈쇼핑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