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산인 이중환(靑華山人 李重煥·1690∼1752)의 ‘택리지’에도 “단양은 모두 첩첩한 산중에 있다. 10리 되는 들녘조차 없으나 강과 시내, 바위와 골짜기마다 절승”이라는 내용이 있다. 그러면서도 “단양은 험하고 궁벽해서 살 만한 데가 못 된다”는 촌평을 덧붙였다. 농경사회의 관점에서 단양 땅에 대한 이중환의 시각은 정확한 편이다.
지금도 단양군의 경지 면적은 전체 면적의 10%인 78㎢에 불과하다. 그나마 벼농사를 지을 만한 논은 강이나 하천 유역에만 소규모로 산재해 있고, 나머지 대부분은 가파른 산비탈과 골짜기에 들어선 밭이 차지한다. 오늘날 단양군의 특산물로 마늘, 고추, 사과, 수박, 대추, 약초, 느타리버섯, 영지버섯, 감자, 산나물 등의 밭작물이나 자생식물이 주종을 이루는 것도 이같은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굴뚝 없는 공장’의 모범답안
이처럼 단양군은 농경지가 턱없이 부족하고 농업 생산성도 별로 높지 않은 편이지만, 오늘날에는 여러모로 살기 좋은 고장이다. 최근 가장 크게 개선된 분야는 교통로다. 특히 지난해 말 중앙고속도로 전구간이 개통되면서 교통사정이 좋아졌다. 단양 읍내에서 서울까지 소요시간이 2시간 안팎으로 줄었고, 대구까지는 1시간대에 주파할 수 있다. 서울을 기점으로 하면 동해안 제일의 관광도시인 강릉이나 서해안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변산반도보다 가깝다. 단양군민들의 숙원이던 ‘중부내륙지방의 관광거점도시’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단양군이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환경 때문이다. 천혜의 수려한 산천은 정서적 안정감과 여유를 갖게 하고,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는 사람들의 신체를 건강하게 만든다. 그러니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도 부쩍 늘게 마련이다. 그리되면 당연히 지역경제도 활기를 띨 것이다. 사실 이렇듯 모범답안 같은 생활여건은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들이 꿈꾸는 미래다.
단양군의 가장 큰 재산은 뭐니뭐니해도 풍부한 관광자원이다. 단양에는 전국 매장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석회석과 전국 생산량의 절반 가량을 점유하는 굴지의 시멘트공장도 세 군데나 있다. 하지만 이들 공장의 지역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굴뚝 없는 공장’이라 일컫는 관광산업에 미치질 못한다.
먼저, 단양군에는 남한강 상류의 맑고 깨끗한 물길이 지난다. 강원도 정선과 영월을 거쳐 단양땅에 들어선 남한강 물길은 영춘면 상리에 북벽(北壁)을 세우고, 단양읍 도담리에는 그 유명한 도담삼봉의 절경을 빚었다. 도담삼봉을 지나 충주호에 안긴 강물은 먼 길을 달려오느라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세월을 잊은 듯이 느긋하게 흘러간다. 기묘한 암벽과 울창한 노송숲, 그리고 명경지수(明鏡止水)가 한데 어우러진 충주호반에는 구담봉과 옥순봉이 우뚝하다.
백두대간의 주맥이 지나는 단양군에는 소백산, 월악산, 금수산, 도락산, 황정산, 제비봉, 태화산 등의 명산 또한 즐비하다. 그중 소백산과 월악산은 국립공원으로도 지정된 명산 중의 명산이다. 그리고 소백산 자락에는 남천계곡, 새밭계곡, 천동계곡이 펼쳐지고, 월악산 기슭에는 선암계곡과 사인암계곡이 있다. 선암계곡엔 단양팔경에 속하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 있다.
단양군에는 천연동굴도 한둘이 아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만도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수도했다는 온달동굴(제261호), 동양 최대의 석순이 있는 고수동굴(제256호), 동양 최대의 수직동굴로 알려진 노동동굴(제262호) 등 세 곳에 이른다. 이들 동굴과 단양읍 천동리의 천동동굴은 현재 관광동굴로 개발돼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밖에도 단양군에는 선사시대 유적지로 밝혀진 금굴(단양읍 도담리)과 구낭굴(가곡면 여천리)이 있다.
‘푸른 관광단양’
이런 자연관광지뿐만 아니라 수양개 선사유적(사적 제398호), 적성산성(사적 제265호), 적성비(국보 제198호), 온달산성(사적 제264호), 향산리 삼층석탑(보물 제405호), 단성향교 등의 문화유적도 단양군의 귀중한 관광자원이다.
온달산성은 고구려 평강공주의 남편이자 ‘바보온달’로 유명한 온달장군과 관련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고구려 영양왕 원년(590)에 실지(失地) 회복에 나선 온달장군이 아단성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었는데, 그 아단성이 바로 온달산성이라는 것이다. 관광이나 여행을 목적으로 단양땅을 밟는다면 다른 곳은 몰라도 온달산성만큼은 꼭 한번 들러봐야 한다.
온달산성은 영춘면 하리의 남한강변에 솟은 산 위에 있다. 산 아래에서 보면 지척인 듯싶은데도, 성벽에 닿으려면 비탈진 산길을 30분 가량 올라가야 한다. 산비탈의 경사가 어찌나 급한지, 올라가는 도중에는 주변 풍경을 감상할 여유조차 없다. 그러나 일단 성벽에 당도하면 가쁜 숨을 고르기도 전에 “우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나온다. 영춘면 상리와 하리 일대의 올망졸망한 민가들, 상리와 하리를 ‘S’자 형태로 굽이도는 남한강, 강물과 나란히 달리는 찻길, 눈이 시리도록 푸른 녹음에 뒤덮인 산자락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육신의 고단함은 물론, 해묵은 시름조차도 일순간에 날려버릴 만큼 장엄하고도 상쾌하다.
그러나 관광자원이 풍부한 고장이라 해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하면 지역경제에는 아무런 보탬이 되질 않는다. 실제로 5∼6년 전까지만 해도 단양을 찾는 외지 관광객의 수는 별로 많지 않았다. 그나마 하룻밤 이상 묵기보다는 지나는 길에 잠시 들러가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워낙 교통이 불편한 데다 숙박시설도 마땅치 않았던 탓이다. 게다가 단양팔경에 속하는 몇몇 절경말고는 외부에 널리 알려진 관광명소가 드물었고, 가장 효과적인 홍보수단이자 관광상품인 향토축제도 변변한 게 없었다.
그래서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단양군의 역대 민선군수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점시책으로 추진한 것도 다양한 관광자원 개발과 관광기반시설 확충이었다. 특히 민선 2기부터 군정을 총괄해온 이건표(李建杓·57) 군수는 군정의 목표를 ‘푸른 관광단양’으로 정하고,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과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각종 개발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성과물로는 온달관광지를 꼽을 수 있다.
온달동굴과 온달산성은 고구려 장수 온달에 관한 역사와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게다가 온달장군 하면 평강공주를 빼놓을 수 없다. 온달산성에서 전사한 온달의 관을 여러 명의 장정이 들어 옮기려 해도 꿈쩍하지 않았는데,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길이 이미 정해졌으니 마음놓고 돌아가시오”라고 하니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온달과 평강공주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단양군은 그간 일반인의 관람이 불가능했던 온달동굴을 대규모 관광동굴로 변모시켰다. 온달산성을 말끔하게 정비하고 성 아래 남한강변에는 온달전시관과 온달테마공원을 조성해 관광객의 발길을 자연스레 유인하고 있다. 온달관광지가 널리 알려지면서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캐릭터가 단양군의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사시사철 이어지는 축제
단양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도담삼봉 주변도 새롭게 단장됐다. 도담삼봉은 한때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이 들렀다가 “산에는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선계의 뗏목을 취벽(翠壁)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 아래로 금빛 파도 너울지더라”라는 시 한 수를 남겼을 만큼 풍광이 빼어나다.
하지만 도담삼봉 이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볼거리가 없는 데다 그동안에는 편의시설도 부족해서, 큰맘 먹고 찾아온 관광객들조차 금세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도담삼봉 근처의 언덕에 제법 큰 규모의 도담휴게소가 세워지고, 다양한 음악에 맞춰 춤추듯이 물을 쏘아 올리는 음악분수가 설치된 뒤로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수와 체류시간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렇긴 해도 단순히 구경만 하는 관광자원만으로는 날로 다양하고 독특해지는 관광객의 취향을 쫓아갈 수 없다. 그래서 민선 이후 단양군은 체험형 관광자원을 중점 육성·개발하고 있다. 먼저 이색 레포츠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현실을 고려해 영춘면 일대의 남한강에는 래프팅 코스를 개발하고, 단양읍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양방산 정상에 국내 최고 수준의 활공장을 조성했다.
그밖에도 단양읍 별곡리의 대성산 기슭에 서바이벌 게임장과 삼림욕장을 개장했다. 올 여름에는 고수동굴, 천동동굴, 노동동굴 등의 관광동굴과 인접한 단양읍 천동리에 전체면적 1658평의 대규모 물놀이장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장작가마만 고집하는 11개의 도요업체가 모여 있는 방곡도예촌(대강면 방곡리)에는 누구나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볼 수 있는 방곡 도자공예교육원(옛 방곡분교터)과 관내업체에서 생산된 도자기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곡도예전시관을 설립했다.
사시사철 계속되는 문화관광축제도 ‘푸른 관광단양’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외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큰 힘이 된다. 단양군에서는 정초의 소백산 해맞이축제를 시작으로 전통연날리기대회(2월 말), 단양팔경축제(4월 중순), 소백산철쭉제(5월 말), 단양마늘축제(7월 중순), 방곡장작가마예술제(7월 말~8월 초), 어상천수박축제(8월 초), 고운골두산감자축제(9월 말), 온달문화축제(10월 초), 죽령사과축제(10월 중순), 금수산감골단풍축제(10월 중순) 등이 펼쳐진다.
축제가 너무 많다보니 얼마쯤의 부작용도 발생하지만, 축제기간 중에 관광객의 수가 크게 늘어 지역경제에 적잖은 보탬을 준다고 한다. 더욱이 단양마늘축제, 어상천수박축제, 고운골두산감자축제, 죽령사과축제 등 지역 특산물을 테마로 삼은 축제들은 농가소득을 증대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게 단양군 관계자의 말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1998년에 400만명이던 관광객 수가 2000년에는 500만명을 돌파했다. 올해에는 6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단양군의 관광산업은, 적어도 양적으로는, 중부내륙의 관광거점임을 자부해도 될 만큼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셈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질적인 성장이다. 다행스럽게도 단양군의 관광인프라는 나날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내실 있게 관광산업을 발전시킨 단양군의 지혜와 역량이다. 언제나 한결같으면서도 늘 새로워지는 ‘관광단양’의 미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