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이 난치성 질환이란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런 만큼 말 많고 탈 많은 게 암치료법이다. 암환자들에겐 비방(秘方)에 현혹되지 않을 권리도 없는 것인가. 한 암환자 단체의 폭로로 불거진 암치료법 논란의 전말을 추적했다.
이런 암사연의 ‘타깃’이 된 곳은 서울 강남의 K한의원. 해당환자들 사이에 말기암 등 난치병을 주로 치료한다고 널리 알려진 곳이다. 실제 수십차례 인터넷과 매스컴을 통해 치료효과가 좋다고 알려진 이 한의원엔 양방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정받거나 기존의 치료법에 회의를 느낀 말기암 환자들이 꾸준히 몰리고 있다. 8월 현재 이 한의원에서 치료중인 암환자는 70여 명 가량.
K한의원의 두드러진 특징은 양방병원은 물론 다른 한의원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치료법을 고수하는 데 있다. 바로 ‘면역약침요법’이란 시술이다. 이 요법은 K대 한의대 출신인 이 한의원 P원장(36)이 직접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P원장 등 4명의 한의사와 양의사 1명이 이 요법을 주축으로 암환자를 치료해오고 있다. 암환자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K한의원이 갑작스레 암사연의 ‘공격목표’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암사연의 대표회원은 조종환(41)씨. 모친을 후두 소세포암으로 잃은 그는 당초 또다른 암환자 단체인 ‘암사모(암환자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활동했지만, 암환자 모임을 NGO(비정부기구) 차원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전 단계로 별도의 조직인 암사연을 결성했다. 암사연은 장기적으로 소비자(환자) 중심의 암 전문병원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암사연과 K한의원 P원장과의 ‘불편한 관계’가 빚어진 때는 지난 4월. P원장의 저서 등을 통해 면역약침요법의 독특함에 관심을 갖게 된 암사연 조대표는 지난 2∼4월 P원장과 두 차례 면담을 갖고 그에게 암사연을 통한 폐암환자 공개치료를 제의했다. 객관적인 검증작업을 거치면 좀더 많은 암환자에게 치료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P원장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공개치료 성사에 임박해 P원장이 자신의 한의원에서 치료받은 일부 암환자에게 ‘암사연 회원으로 가입한 뒤 K한의원에 우호적인 투병일지를 암사연 사이트에 게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공개치료는 이내 무산됐다.
“공개치료가 무산된 후 P원장에게 말기암 완치 사례를 제시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많은 말기암 환자를 고쳤다던 그는 단 한 건의 완치 사례도 내놓지 못했다.”(조대표)
암사연이 제시한 말기암의 정의는 병기(病期) 4기로서 다른 장기에까지 암세포가 전이됐거나 암이 재발한 경우(통상 M1환자로 지칭)로, ‘완치’ 기준은 발병 후 5년 이상 생존한 때를 말한다. 이는 통상 양방에서 말하는 완치의 개념과 동일한 것이다. 암사연이 이같이 엄격한 ‘잣대’를 들고나온 건 말기암의 경우 증상이 다소 호전될 수는 있어도 완치는 지극히 어려운 치료현실 때문이다.
이후 K한의원에 대한 민원성 제보까지 잇따르자 면역약침요법의 치료효과에 의구심을 가진 암사연은 자체 조사에 나선 끝에 지난 7월18일 이 요법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호소문’을 자체 홈페이지(www.ilovecancer.org)에 공개했다. 이어 같은 달 20일과 22일 대검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에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진정서를 각각 접수시켰다.
이에 대해 조대표는 “암환자 치료에 전념하는 다른 한방의료기관이나 대체의학적 노력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다”며 “오직 근거가 박약한 치료법의 실상을 암환자들에게 알리고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자는 게 진정서를 낸 취지”라고 밝혔다.
암사연이 전격 공개한 호소문은 59쪽 분량의 장문. 초점은 P원장이 과연 말기암 환자를 완치시켰는지 여부에 맞춰져 있다. 즉 P원장이 진료한 환자 중 ‘5년 생존율’ 기간을 넘은 환자(완치 환자)는 전무하다, 이렇게 완치 사례가 없음에도 P원장은 면역약침요법을 세계 최고의 암치료법이라고 과장해 많은 말기암 환자들을 현혹하며 진료해왔다, 때문에 투병중인 암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마저 잃었다는 것 등이 핵심내용이다. 암사연은 그 근거로 자체 수집한 K한의원 관련제보들을 진정서에 첨부했다.
“호소문 내용에 거짓이 있다면 모든 법적·도덕적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할 만큼 자신감을 내비치는 암사연의 이런 충격적인 폭로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암사연 주장이 잘못됐다면 P원장에 대한 명예훼손 시비까지 불거질 수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사안이다.
이번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경찰이 현재 조사에 착수했고 보건복지부, 한의사협회 등 유관기관들이 모두 진상파악에 나선 상태다.
암사연 조대표는 “P원장이 좋다는 치료법이라면 모두 ‘입수’하려 했을 만큼 암치료에 열정이 컸고, 나름대로 자신의 치료법을 확신하는 의지만은 인정한다”면서도 “면역약침요법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 진실을 호도하는 암치료법에 대한 검증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예단할 수는 없지만 여러 제보와 지금까지 확보한 관련자료에 의하면 암환자들을 유인하는 여러 비방들 사이엔 커넥션이 있다는 정황이 파악되고 있다”며 “아직 공개하긴 이르지만, 조만간 하나하나씩 암치료 현실의 문제점들을 파헤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암사연은 지난 7월23일 ‘천지산’ 개발자 배모씨에게 천지산 제조비법 취득경로를 밝히라는 공개질의서를 띄운 바 있어 베일에 싸인 암치료법을 둘러싼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엔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 딜레마가 도사리고 있다. 암사연도 우려하는 터이지만,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 혹은 실제 효험이 있는 암치료법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시적(斜視的)으로 본다면 병원 문턱에서 내몰리고 있는 수많은 말기암 환자들이 과연 어떤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다. 자칫 잘못하면 한방이나 대체의학 차원에서의 새로운 암치료법에 대한 연구활동까지 위축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암관리과에 따르면 국내 암환자 수는 2000년 한 해 동안만 8만4000여 명. 이는 10년 전인 1990년의 5만여 명을 훨씬 웃도는 수치.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통계일 뿐이다. 훨씬 더 많은 암환자들이 완치를 기대하며 헤매는 현실을 감안할 때 복잡다기한 암치료법들의 옥석이 가려져야 함은 분명하다. 이는 민간단체 차원에 국한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암사연이 문제삼는 면역약침요법은 과연 어떤 치료법일까. 약침요법은 한방특수요법 중 하나로 순수 한약재에서 정제·추출한 극소량의 약물을 침 놓는 자리(경혈)에 주입함으로써 침과 한약의 작용을 병행해 치료효과를 극대화하는 치료법. 주로 염증성 질환이나 통증질환 등에 쓰인다. 곧잘 사용되는 봉독요법(꿀벌의 침에 묻은 액을 추출해 농축·정제한 뒤 경혈에 주입) 또한 약침요법의 일종이다.
그러나 P원장이 스스로 개발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암치료법이라 자평하는 면역약침요법은 통상적인 약침요법과는 다르다. 그에 따르면 면역약침요법은 인체의 면역기능을 강화하는 천연약재(주로 식물의 씨앗)에서 추출한 물질(기름성분)을 암이 있는 부위나 경혈에 주사해 종양 덩어리를 괴사시킨 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치료법이다. 이 요법엔 보통 쑥뜸과 탕약치료를 병행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을 ‘과격한 치료법’으로 평하는 이들도 적잖다. 한 양방 내과전문의는 “내원하는 암환자들 중 K한의원에서 면역약침요법을 시술받았다는 환자들이 꽤 있다”며 “치료받는 동안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놓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라고 말한다. 면역약침 주사를 맞은 부위에 쑥뜸을 뜨면 해당 부위가 곪아 피부에 구멍이 뚫리고 심한 악취를 내는 상당한 양의 고름이 흘러나오면서 엄청난 통증이 생기기 때문이다(P원장은 이를 장기에 있는 암의 독이 약침의 효력으로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이라 주장한다).
다른 한의사들의 반응은 어떨까. 익명을 요구한 K대 한의대 출신의 한 한의사(41)는 “면역약침요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며 “약침주사를 놓고 쑥뜸까지 뜨면 피부가 화상을 입는데, 이때 이 부위를 소독하지 않으면 곪아서 당연히 고름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고름이 피부가 심하게 곪아서 생긴 것인지, 암 고름인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또다른 한 한의사는 “각종 잡지광고 등에서 K한의원의 치료법을 많이 접했다”며 “인삼 등 거의 모든 한약재엔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성분이 들어있다. K한의원에서 쓰는 면역약침제제의 성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성분이 반드시 암을 치유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좀 난센스가 아니겠느냐”며 조심스럽게 반문한다.
한의사들 사이에서 면역약침요법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정작 이 치료법을 시술받은 환자들의 반응도 극과 극으로 치닫는다. 실제 이 치료법이 암치료에 도움이 됐다고 주장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지난 2월부터 K한의원에서 진료받고 있는 장모(43·여)씨의 보호자(남편)는 “아내는 담낭암이 간과 췌장으로 전이된 케이스다. 종합병원에서 수술 불가 통보를 받았는데 심하면 두 달내로 사망한다고 들었다. 이후 곧장 P원장의 진료를 받았는데 손·발톱이 다시 돋아나고 통증이 사라지는 등 증상이 많이 호전됐다”고 밝힌다.
반면 또다른 환자들은 면역약침요법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낸다. 암사연에 제보한 환자 가족들의 경우 ‘P원장이 완치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3개월이면 5년 완치를 보장한다고 장담했다’ ‘여기(K한의원) 아니면 나을 수 없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하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다’는 등 P원장에 대한 부정적인 진술을 일관되게 하고 있다.
사실 이같이 엇갈리는 환자들의 반응이 아니더라도, 면역약침요법과 그 치료를 받은 환자간의 의학적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실제로 말기암을 고쳤는지 여부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이 치료법이 환자의 증상 개선에 도움을 준 부분이 있다면 전혀 엉터리라고 매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증상이 ‘호전’된 사례가 있다는 점에 대해선 암사연도 반박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P원장이 자신의 저서 등을 통해 말기암을 완치시켰다고 공언함으로써 환자들을 공공연히 현혹했다는 점이다. 실제 K한의원 곳곳엔 ‘세계 최고 수준의 말기암 치료 효율’이란 문구가 선명하다. 더욱이 P원장이 면역약침요법을 시술한 기간은 고작 3년에 불과하다. 그는 “대략 500여 명의 암환자를 치료했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P원장이 완치시킨 말기암 환자는 몇 명이나 될까. 이에 대해 P원장은 “면역약침요법으로 많은 환자들의 증상이 호전됐다. 설사 ‘5년 생존율’ 기준은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도 나 스스로는 완치에 준하는 ‘혁명적’이고 ‘획기적’인 치료결과라고 확신한다”고 해명했다. 이 말은 결국 그의 치료를 받은 후 5년 이상 생존한 암환자가 단 한 명도 없음을 시사한다.
P원장이 ‘완치’ 사례로 든 단 한 건은 비소세포성 폐암환자인 정모(57)씨의 경우다. 지난해 6월 폐암3기 판정을 받은 정씨는 같은해 11월 K한의원에 내원, 면역약침요법 대신 탕약과 뜸 치료만 받은 뒤 종양이 소멸됐다는 CT촬영 결과를 받았다고 그의 보호자는 밝혔다.
그러나 암사연은 정씨의 경우 아직 ‘5년 생존율’ 기간이 지나지 않았고, 통상 폐암3기는 말기암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완치’ 주장은 어불성설이란 입장이다. 면역약침요법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미완의 치료법’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P원장은 이런 면역약침요법을 어떻게 ‘입수’한 것일까.
기자는 8월8일 K한의원에서 P원장을 만났다. 그는 1998년 평소 알고 지내던 토종약초 연구가 C(43)씨를 통해 스페인에 거주하는 한모(67)씨가 개발했다는 암치료법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한씨는 의료인은 아니지만 오랜 투병생활 끝에 일명 ‘B-17주사요법’이라 불리는 암치료법을 스스로 개발해 스페인 현지에서 암환자 진료에 나서고 있는 재외동포. 그는 1999년 1월 한국에서 자신의 치료법을 소개한 저서 ‘대통령 각하! 암을 정복했습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P원장이 본격적으로 암치료에 뛰어든 것도 한씨의 치료법을 접하고 나서부터다. P원장은 바로 이 한씨에게서 치료법의 기술이전을 받는 대가로 무려 80억원의 로열티를 주기로 계약하고 치료법을 전수한 것. 그러나 로열티는 기술이전 초기에 일부만 지급됐고, 이후 계속된 적자로 계약 자체가 흐지부지됐다는 게 P원장의 답변이다. P원장은 “한씨와 연락이 끊긴 지 오래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씨의 치료법을 전수받은 이유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말기암 치료법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P원장은 기술이전을 받기 전 스페인 현지에서 말기암 환자의 완치 사례를 직접 확인한 것일까. 지금까지는 P원장이 스페인 현지에 갔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답은 ‘그렇지 않다’다. P원장은 “스페인에 간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자신은 진료로 바빠 부득이 ‘대리인’을 스페인으로 보냈고, 전수받은 치료법에 쓸 약침제제 또한 그 대리인이 개인 휴대품으로 한국에 들여왔다는 것이다. 한씨를 소개해준 C씨 역시 “P원장이 스페인에 갔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P원장이 그처럼 한씨의 치료법을 신뢰한 까닭은 뭘까. P원장은 그 근거로 한씨의 치료법의 원리에 공감했고, 그의 치료를 받고 완치된 암환자의 임상 사진을 본 데다 그의 치료법이 스페인 내무성이 발행한 ‘암의 대체치료에 대한 인증서’를 받은 사실을 알게 돼 신뢰하게 됐다고 밝힌다. 하지만 육안으로 확인해보지도 않고 거액의 로열티 지급계약을 맺으면서까지 무리하게 기술이전을 받기로 결정했다는 전후 사정은 무엇보다도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시해야 할 의료인의 자세로선 경솔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어쨌든 P원장은 자신이 지난해 10월 펴낸 저서 ‘말기암을 다스리는 면역약침 이야기’에서 전수한 치료법을 버젓이 독자개발한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P원장은 이에 대해서도 항변한다.
“물론 초기엔 약침제제(B-17주사 원액)를 한씨로부터 들여왔다. 하지만 직접 내 몸에 주입해보는 등 실험을 거치는 과정에서 독성이 심한 것을 알았다. 심한 부작용으로 응급실로 실려간 적까지 있다. 그후론 토종약초들을 수집해 실험과 연구를 거쳐 내가 직접 개발한 약침제제를 사용해오고 있다. 그러니 독자개발한 것 아닌가.”
하지만 P원장은 자신이 개발했다는 약침제제의 조제방법과 성분에 대해선 “K한의원에서 직접 조제한다. 독성이 거의 없는 약재로 만든 것이지만 정확한 성분은 밝힐 수 없다”며 철저히 함구했다.
그러나 학회 차원에선 P원장의 면역약침제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 대한약침학회에 따르면 현재 한방 약침요법에 사용되는 약침제제는 50여 종으로 정식 품목허가를 받을 법적 근거가 없어 수입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대신 학회 건물내에 ‘우수의약품제조 및 품질관리기준(KGMP)’에 맞도록 공기정화시설을 갖춘 자체 클린룸을 갖고 있어 회원들은 모두 그곳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약침제제를 직접 만들어 환자에게 처방하고 있다.
약침학회 강대인 총무는 “물론 회원이 아닌 한의사의 경우 자기 한의원에서 개별적으로 만들어 써도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면 그것은 ‘약화(藥禍)사고’이므로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해당 한의사 본인이 지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P원장은 그동안 K한의원 홈페이지(8월11일 현재 폐쇄중)에도 ‘B-17 약침요법’이란 용어로 면역약침요법을 소개해왔다. 묘하게도 B-17요법이란 명칭은 외국의 대체의학계에서 쓰이고 있는 비타민 B17요법과 유사하다. 이에 대해 P원장은 “기술을 이전해준 한씨가 비타민 B17요법의 명성을 빌려 B-17로 차명한 것일 뿐 내 치료법의 명칭과는 사실상 무관하다”고 밝혔다.
‘레트릴’ 또는 ‘아미그달린’으로 불리는 비타민 B17은 살구씨나 복숭아씨 등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물질로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맹독성이 있다는 논란이 분분하자 임상적용을 금지시킨 바 있다. 어쨌든 P원장의 치료법에 B-17이란 접두어가 붙을 아무런 이유도 없는 셈이다.
그러나 P원장의 면역약침요법은 시술 초기부터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실제 P원장은 법원으로부터 선고유예를 받은 적이 있다. P원장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한씨는 1998년 말 당시 국내에 들어와 P원장이 한의원 부설로 차린 암연구소에서 기술이전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P원장은 한씨의 전수를 받아 20여 명의 말기암 환자들을 치료했으나 당시 치료를 받던 환자 대다수가 사망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 일로 인해 P원장과 한씨는 환자 가족에 의해 대한한의사협회에 고발됐고, 한의사협회 윤리위원회는 자체 회의를 거쳐 이들을 다시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한의사협회 정책기획국이 작성한 한 자료에 따르면 ‘말기암 완치될 수 있다며 환자를 유인·시술한 무자격자 및 관련 한의사를 서울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이중 ‘무자격자’는 한씨를 지칭하며 관련 한의사는 P원장 등 2명을 지칭한다.
한씨는 본래 의료인이 아니어서 그의 진료행위는 국내법상 마땅히 불법. 그는 스페인으로 도피했으나 P원장은 재판에서 ‘한씨의 불법진료를 수시로 만류했다’는 부분이 정상참작돼 선고유예(범정(犯情)이 경미한 범인에 대하여 일정 기간 형(刑)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사고 없이 지내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함)로 그쳤다. 선고유예 기간중의 진료행위는 불법이 아니어서 치료행위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의사협회 김동채 이사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협회 차원에서 한 식구나 다름없는 회원(한의사)을 검찰에 고발한 것은 당시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며 “암사연의 민원이 협회에도 접수된 만큼 조만간 윤리위원회를 소집해 지금의 P원장 관련 논란들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드러나는 범법행위들
면역약침요법의 치료효과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P원장은 그를 둘러싼 일련의 위법적 행위들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우선 P원장은 중학교 동창인 채모(38)씨를 고용해 1년 전부터 1회당 2만∼3만원을 받고 일명 ‘과사’란 시술을 행해왔다. P원장에 따르면 과사란 환자의 환부에 올리브 기름을 바른 뒤 그 부위를 긁듯이 주물러주는 일종의 마사지. 환부의 통증 완화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채씨는 의사면허가 없는 비의료인으로 확인됐다. 안마사 자격증 역시 갖고 있지 않다. 이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한 의료법 25조 위반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P원장은 상당수 환자들의 진료기록부마저 임의로 폐기했다. P원장은 1998년 이후 자신이 실질적인 원장으로 있는 한의원과 한방병원을 3차례 개설했다. K한의원(1998년 개설), O한방병원(1999), 현재의 K한의원(2001)의 순서대로 병원 명칭을 변경하며 장소도 이전했다. 이 과정에서 P원장은 O한방병원에서 진료한 환자들의 진료기록부를 “마땅히 보관할 장소가 없다”는 이유로 폐기한 것으로 취재 결과 드러났다. 이 역시 의료법 위반행위다. 의료법 시행규칙 18조는 의료기관 개설자나 관리자가 환자 명부의 경우 5년, 진료기록부는 10년간 보존토록 하고 있다.
P원장은 또 암사연으로부터 탈세를 위한 차명계좌를 개설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암사연이 확보한 계좌는 3개로 김○○, 안○○ 등 P원장의 지인(知人)들 명의로 돼 있다. 그러나 한의사협회는 한의사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진료비를 받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린다. 다만 탈세를 위한 것인지 여부는 세무조사를 통해 확인해야 할 사안이란 것이다.
하지만 암사연은 P원장이 암환자들로부터 한달 300만∼500만원 가량, 많게는 1000만원 이상의 치료비를 받아왔다며 이들 계좌가 탈세 목적으로 운용됐을 가능성이 짙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한약담당관실 박상표 서기관은 “암사연의 진정 사실을 접하고 진상을 조사중”이라며 “탈세 여부는 세무조사로 가려질 일이지만, 과사 시술과 진료기록부 폐기 등은 두말할 것 없는 범법행위로서 그에 합당한 행정처분을 내릴 방침”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제는 이쯤에서 그치지 않는다. P원장의 저서 ‘말기암을 다스리는 면역약침 이야기’에도 대작(代作) 의혹이 일고 있다. P원장은 이 책의 전반부에서 면역약침요법의 방법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이 치료법을 한씨로부터 기술이전받았다는 대목은 단 한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책은 또 전반부에선 화자(話者)가 ‘우리는’이지만 약초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룬 후반부에 가서는 ‘나’로 시작한다. 한 필자의 저작이라고 보기엔 일관성이 없는 대목이다. 때문에 암사연은 C씨가 P원장의 저서를 대작해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P원장과 C씨는 한결같이 “대작이 아니며 일부 가필과 윤문 정도만 있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과연 그럴까?
기자는 P원장의 저서를 면밀히 검토해본 결과 부분적인 대작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냈다. 이 책엔 ‘나는 20세 때 혈압이 높아 군대에 갈 수 없었다’는 부분이 나온다. P원장이 군복무를 면제받은 건 사실이다. 그는 덕분에 27세에 한의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면제사유는 체중미달. 그는 기자에게 “체중이 미달돼 네 차례나 신검을 받은 끝에 결국 면제됐으나 혈압 등엔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자신이 면제를 받은 시점은 1990년이라고 말했다. P원장의 당시 나이는 24세. 그렇다면 책 속의 ‘나’는 누구인가?
‘나’는 대작 의혹을 받고 있는 C씨의 경우와 일치한다. C씨 역시 병역면제를 받았다. 그 사유는 혈압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 기자가 찾아낸 모 잡지에 실린 C씨의 관련기사엔 그가 혈압 때문에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돼 있다. 게다가 화자가 ‘나’로 시작하는 부분은 공교롭게도 C씨의 ‘전공’이랄 수 있는 약초와 식품에 관한 부분. C씨가 약초 연구가인 점을 감안한다면 ‘나’는 결국 C씨 본인인 셈이다.
남을 대신해 작품을 만드는 행위를 일컫는 대작은 글씨를 잘 못 쓰거나 쓸 줄 모르거나 그밖에 쓰지 못할 입장에 있는 사람을 위해 대신 적어주는 대필(代筆), 내용을 보태 글을 고치는 가필(加筆), 글을 매끄럽게 다듬는 윤문(潤文) 등과는 분명히 다르다.
물론 대작 자체가 위법인지 아닌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의료인의 저서에 대한 이같은 대작행위가 절박한 심리 상태에 있는 암환자들이 K한의원으로 몰려들게 하는 유인(誘因)을 제공했다는 비윤리적 측면만은 부인할 수 없다.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P원장의 환자 개인정보 유출 문제다. C씨가 지난 4월 펴낸 ‘약초연구가 ○○○가 쓴 기적의 향토명의’(이하 ‘기적의 향토명의’)란 책을 보자. C씨가 이 책에서 ‘현대의학이 포기한 불치병을 통쾌하게 치유’했다며 이른바 ‘명의’로 소개한 14명 중 한 명이 바로 P원장이다. 문제는 P원장에 관한 소개글에 첨부된 ‘면역약침요법 치료사례.’ 여기엔 모두 26명의 암환자 사례가 나온다.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이 책의 원본(原本)이랄 수 있는 책자 사본을 입수했다. ‘말기암 고칠 수 있다’란 제목의 이 사본은 ‘치료환자 사례 모음’이란 소제목으로 P원장의 면역약침 치료를 받고 말기암이 치유되거나 상태가 크게 호전됐다는 암환자 66명의 사례를 들며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하나하나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놀라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기적이 아니라 면역약침요법을 사용하여 얻은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라고 적고 있다. P원장과 C씨의 공저로 돼 있는 이 책자는 지난해 4월 제작돼 10여 명의 암환자 가족들에게 배포됐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기적의 향토명의’에 소개된 완치사례들이 본래는 이 책자에 실려있던 것이란 점. 두 책자의 제작 사이엔 약 1년간의 ‘공백’이 있다. 그렇다면 사례로 든 환자들은 모두 생존해 있는 것일까. 암사연은 책자 사본에 인용된 66명 중 말기암으로 분류할 수 있는 암환자 50명의 명단을 추려 경찰에 별도로 제출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중 지금까지 생존한 사람은 15명에 불과하다. 사례로 언급된 암환자 50명의 70%가 이미 사망한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백기간중 사망한 암환자들의 생사 여부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채 버젓이 완치사례로 실린 것이다. 이 점을 의식한 듯 C씨는 책 서두에서 ‘개인적인 병력이나 효과 또는 신상변화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란 주의사항까지 친절히(?) 달아놓았다. 사망자를 생존자로 둔갑시킨 것은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이므로 경우에 따라선 형법상 사자(死者)의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P원장의 해명은 이렇다. “먼저 제작된 책자는 C씨 저서의 출간을 위한 중간인쇄물로서 비매품일 뿐 공식 발간된 것은 아니다. C씨가 저서를 출간한다고 해서 환자 사례를 건네줬는데, 책이 1년 뒤에야 출간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해명의 설득력은 약하다. P원장은 C씨에게 사례를 제공할 당시 환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는 물론 병력까지 소상히 제공했고, 이는 앞서 찍어낸 ‘중간인쇄물’에 고스란히 게재돼 일부 환자들에게 알려졌다. 명백히 개인정보 유출행위다.
대작 의혹을 받고 있는 C씨 역시 이번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약초연구가로 신문과 잡지에 한국 토종약초에 관한 글을 많이 썼고, TV 등 방송매체에도 출연해 상당히 알려진 그는 약초와 민간요법에 관한 저서만 10여 권을 집필한 바 있다.
또 1997년 한국토종약초연구학회를 설립해 지난해 개설한 자체 홈페이지(암사연의 호소문 공개 이후 폐쇄)를 통해 말기암 등 난치병 환자 및 보호자와 의학적 상담을 하고, 각종 질환에 효험이 있다며 자신이 개발했다는 ‘신수’ 등의 물질과 약초를 판매해왔다. 다음은 C씨가 인터넷 상담에서 환자들에게 한 답변의 일부다.
*등록일 2002-06-20 제목 대답: 자궁경부암에는 신수를 복용하는 한편 신수를 깨끗한 천에 적셔서 자궁 깊숙이 넣도록 하면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꾸지뽕나무 추출액을 복용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꾸지뽕나무와 신수에 대해서는 토종약초연구학회를 방문하여 상담을 하십시오
*등록일 2001-10-15 제목 답변: 꾸지뽕나무는 위암이나 폐암에 효과가 있는데 담도암에도 좋은 효능이 있습니다. 특히 꾸지뽕나무 기름은 효능이 더 뛰어납니다. 구입은 저희 학회 02-720 XX20으로 문의하시면 자세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등록일 2002-01-14 제목 대답: 간질환은 어느 것이든지 산청목이라고 하는 약초가 가장 효과가 좋습니다. 40∼50g을 물로 12시간 이상 달여서 하루 3∼7번 나누어 마시도록 하십시오. 산청목으로 간암, 간경화증 등이 나은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산청목은 토종약초연구학회에서 구할 수 있고 값은 1kg에 15만원입니다
*등록일 2002-01-24 제목 대답: 신수는 액체, 또는 고체, 덩어리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액체 상태에서는 투명하고 연한 황색, 또는 흰 빛이 납니다. 맛은 쌉쌀하고 독은 전혀 없습니다. 모든 염증과 화상, 종기, 암, 피부병 등에 먹거나 발라서 치료합니다. 이것은 제가 개발한 신물질이며 주된 원료는 나무의 진과 식물성 약초들입니다
*등록일 2002-02-04 제목 대답: 토종약초연구학회 720-XX20로 문의하십시오. 신수는 100mg 한 병에 10만원입니다
암사연은 이같은 C씨의 상담내용을 인터넷상에서 캡처해 경찰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상태다. 이에 대해 C씨는 “원하는 이들에게 건강자문을 해주고 약초를 판 것은 단순한 상행위이지 의료행위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견해는 다르다. 식약청 의약품관리과 곽병태 사무관은 “의사나 약사가 아닌 비의료인이 환자에게 의료상담을 해주고 물품을 팔아 환자가 이를 치료목적으로 사용했을 때는 무면허 진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앞서 P원장이 스페인의 한씨로부터 기술이전을 받기 전 한씨를 만나기 위해 스페인에 갔던 사람은 P원장이 아니라 그의 대리인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대리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P원장에 따르면 C씨가 바로 그 대리인이다. P원장은 “초기 3개월 동안 사용했던 한씨의 약침제제도 C씨를 통해 국내로 들여왔다”고 털어놨다. 때문에 암사연은 P원장과 C씨, 스페인의 한씨간 커넥션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