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을 것이 없던 옛날, 뒷산에만 올라가도 지천으로 널려 있는 도토리(떡갈나무 열매)는 훌륭한 구황 식품이었다. 굶주림을 이기는 음식이던 도토리묵이 최근에는 더할 나위 없는 건강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도토리에 함유된 아콘산은 인체 내부의 중금속 및 유해물질을 흡수, 배출하는 작용을 한다.
유의원의 이런 태도는 가정생활로 연결된다. 유의원과 부인 김성수씨는 1994년 ‘여성신문’이 선정한 ‘평등부부상’을 받은 적이 있다. ‘평등부부상’은 민주적인 그의 가정 분위기를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민주적 가정에선 가족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가정 일에 참여하고 책임을 집니다. 구성원의 인격을 존중하고 재주와 취미를 인정하며 가족 공동체 의식을 갖는 가정이 민주 가정입니다. “
유재건 의원 부부의 평등 문화는 내력이 있다. 두 사람은 1968년 3월7일 서울 명동 YMCA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때 두 사람은 부부 동시 입장을 결행했다. 신랑은 주례를 맡았던 당시 연세대 총장 박대선 목사의 손을 잡고 옆문으로 입장했고, 신부는 친정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격인 이 결혼식에서 많은 하객들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유재건 의원은 가정에서 시작된 민주주의가 사회와 국가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대화와 토론,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행동, 타협 등 세 가지다. 따라서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가족의 계획을 서로 의논하고 토론하고 절충한다. 이렇게 살다보니 이 부부는 신혼시절부터 대화가 많아 새벽 3시, 4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유의원은 집안 일에서 어느 남편보다 솜씨가 좋다. 그의 주특기는 다림질. 집에 들어오면 TV를 켜놓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다림질을 한다. 자신의 와이셔츠는 물론이고 부인 블라우스까지 내놓으라고 성화를 낸다.
이 가사노동은 결혼 초기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미국 생활 20년이 큰 몫을 했다. 미국 가정에서는 진공청소기 돌리기가 남자 몫이다. 한국과는 사뭇 양상이 다른 미국에서 그는 요리와 설거지, 정원손질 등 집안 일이 몸에 배었다. 1990년 귀국했지만, 오랜 버릇 덕분에 부부는 집안 일을 나누어서 하고 있다. 집에 손님을 초청하면 유의원은 태연하게 앞치마를 맨다. 유의원 집은 최근 손님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고정 메뉴를 개발했다. 이름하여 도토리묵밥인데 누구라도 서울 성북구 돈암동 한신아파트 109동 1702호 유재건 의원집에 가면 이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도토리묵은 칼로리가 거의 없어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최고다. 또 도토리는 피로회복 및 숙취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장과 위를 강하게 하며 설사를 멎게 한다. 특히 아침만 되면 배가 쌀쌀 아프고 부글부글 끓어 금방이라도 설사가 나올 것 같은 사람에게는 도토리묵이 제격이다. 도토리에는 떫은 맛을 내는 타닌 성분이 있는데 이 성분이 설사를 멎게 한다.
도토리묵밥 만드는 요령은 이렇다. 먼저 육수를 만든다. 핏물을 뺀 국거리용 쇠고기를 덩어리째 넣고 물을 넉넉히 부은 뒤 대파, 마늘을 넣고 푹 삶는다. 이 국물을 거즈에 거른 후 국간장, 소금으로 간을 한다. 주재료인 도토리묵은 덩어리째 씻어 가로 1.5cm, 세로 7cm, 두께 1cm 크기로 썬다.
도토리묵은 시장에서 사도 좋으나, 만드는 법이 쉽기 때문에 도토리가루를 사서 집에서 직접 만들어도 된다. 요령은 도토리가루 1컵에 물 6컵을 붓고, 중불로 저어가며 끓인다. 갑자기 엉키기 시작하면 약한불로 줄여 젓다가 사각통에 넣어 식힌다. 6시간 정도 지나면 도토리묵이 완성된다. 다음에는 배추김치를 포기째 꺼내 속을 털어 내고 송송 썰어 물기를 가볍게 짠다. 이 김치에 다진 파와 마늘,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양념한다. 그런 다음 우묵한 그릇에 묵을 담고 김치 썬 것을 얹어 김가루를 뿌린 뒤 뜨거운 육수를 부으면 끝이다. 여기에 밥을 말아 먹어도 좋다. 육수는 맑은 쇠고기장국뿐만 아니라 사골 국물을 써도 좋다. 도토리맛은 담백해서 걸쭉하게 고은 사골 국물과 섞이면 맛궁합이 그만이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유재건 의원은 정치력이 뛰어난 정치인은 아니다. 당리당략을 위해 서로를 흠집 내고 물어뜯는 한국 정치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원칙에 따라 타협하고 조절하는 외교관이 그에게 제격이다. 노무현 후보의 외교특보라는 자리가 그래서 어울린다.
유의원은 최근 국회의원 273명에게 ‘좋은 책 보내기 운동’을 펴고 있다. 마음을 정리해서 깨끗한 정치를 펴도록 의원들에게 양서를 보내는 운동이다. 싸움질이 한창인 한국 국회에서 그가 내세우는 ‘원칙’과 ‘도덕성’이라는 깃발이 얼마나 먹혀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