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별로 곱지 않아서, 골프를 즐기면서도 늘 죄의식에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이쯤 되면 때로는 반감도 생기기 마련. 걸프전 당시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골프장에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던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쾌재를 불렀던 마음은, 골프 마니아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정서일 게다.
과연 우리나라 대통령이 국가적 대사를 치르면서 골프장에 나가있다면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외국원수가 방한해 정상회담을 갖기 전날 골프라운드를 제안하자 달리기나 하자고 대응했던 대통령을 모시고 살았던 국민들로서는 조지 부시의 처신이 생소하면서도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골프에서는 기량보다 매너와 에티켓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는 이제 지겨울 만큼 들었다. 규칙보다 에티켓이 먼저 나오는 규칙설명집을 펴들고 앉아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 예절 하면 역시 유교일 텐데, 혹시 2600여 년 전 세상에 왔다 가신 공자님이 골프에 입문했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궁하면 통한다고 엉뚱한 생각이라도 계속 하다보니 답이 보였다. 공자님의 어록인 논어(論語)가 있지 않은가. 공자님이 제자들과 나눈 많은 대화 중에서 ‘모범적인 골퍼’의 자세를 제시한 듯한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에 몇 가지 소개한다.
1. 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군자는 남의 아름다움은 이루도록 해주고 남의 좋지 않은 점은 이루지 못하도록 하는데 소인은 이와 반대다).
무릇 골퍼들이여, 동반자의 장점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 반대로 동반자의 실수를 보고도 ‘상대방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면 그 어찌 군자다운 태도라 할 수 있겠는가.
2. 躬自厚 薄責於人 遠怨矣(자신에게는 엄격하게 추궁하고 남에게는 너그럽게 그 책임을 묻는다면 원한을 멀리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운드를 하다보면 늘 논쟁은 볼 판정 때문에 불거진다. 볼이 OB선 상에 놓여 있으면 되도록 자기에게 유리한 판정을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 그러나 많은 동반자들로부터 환영받는 골퍼가 되려면 그래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처음 골프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무리 공이 좋은 상태에 있어도 터치플레이를 일삼는 매너 나쁜 동반자가 있는 게 아닌가. 계속 쫓아다니며 어필하는 나를 지켜보던 한 선배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저 사람은 당신보다 미숙하니 터치플레이를 해도 모른 체 해주는 대신 조금 기량이 나은 당신은 절대로 노터치플레이를 하면 어떻겠소. 그러면 당신도 저 분을 능히 이길 수 있으니 좋고, 저 분은 골프를 편하게 즐길 수 있으니 좋고. 어차피 골프란 서로 어울려 즐기려고 하는 게 아니겠소?”
그 순간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고, 이후 어떤 동반자가 아무리 느슨하게 룰을 적용해도 지나쳐버리는 ‘대범 골퍼‘가 되었다. 내 마음의 평정을 얻었음은 물론,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나는 그 선배의 충고를 들을 수 있었던 내가 더 없는 행운아라 생각하고 있다.
3.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子而從之 其不善子而改之(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 중에 내 스승이 있다. 좋은 점이 있으면 택해서 이를 따르고, 좋지 않은 점은 참고로 삼아 내 나쁜 점을 고친다).
이 얼마나 골프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말씀인가. 네 사람이 한 팀이 되어 경기를 하다보면 기본자세에서 매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동반자를 만나게 되는데, 매사에 모범을 보이는 골퍼도 있지만 동반자를 불쾌하게 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말로만 듣던 분을 골프장에서 만나면 그 품성이나 인격까지 파악할 수 있다지 않은가.
배울 점이 있는 분은 내게 긍정적인 의미의 스승이요, 버려야 할 게 많은 사람은 반면교사가 될 터이니 어찌 모든 동반자가 스승이 아닐 수 있으랴.
흔히 골프 매니지먼트가 성공적인 인생경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이런 ‘벤치마킹 효과‘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서나 배울 만한 부분을 찾아내는 자세야말로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덕목이 아닌가. 골프야말로 기업경영자에게 필수과목이 되어야 마땅한 이유가 이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고 보면 공자님이 골프를 치셨다면 실력은 몰라도 매너만큼은 끝내주셨을 것임에 분명하다. 아마 너도나도 선호하는 동반자가 아니었을까. 모든 골퍼가 공자님 수준의 에티켓을 갖춘다면, 나아가 그 자세가 일상생활에까지 확산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한층 더 밝아질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