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기와 부러움, 환멸과 동경, 무관심과 호기심. 서울 강남 부자들을 바라보는 눈은 극과 극을 오간다. 시선을 받는 처지에선 어느 쪽이든 부담스럽고 귀찮기는 매한가지. 그래서 강남 부자들은 그들만의 견고한 성채에 머물며 특별한 삶을 영위한다. 지금 그 성 안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부자들이 주머니를 닫았다고요?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죠. 투자에 한해서는. 국내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대다수가 해외로 눈길을 돌렸어요. 하지만 소비는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경기의 영향을 받는다면 부유층이라고 할 수 없죠.”((주)한국리츠에셋 박병호 대표감정평가사)
“강남 부자들은 대개 ‘뉴욕’을 경험했어요. 이들은 주거공간을 선택할 때 ‘어디에 입지하느냐’보다 ‘어디서 가장 좋은 전경을 볼 수 있느냐’를 따지는 사람들입니다. ‘뷰(view)’의 중요성을 아는 거죠. 그래서 주상복합아파트 단지에 입주할 때도 60층 이상의 고층을 선호해요. 강북의 부자들이 ‘고층은 불안하다, 어지럽다’며 기피하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죠.”(모 은행 PB센터 관계자)
“강남의 부유층은 국내 교육과정에 관심이 없어요. 입시제도에 대해 한번 물어보세요. ‘전혀 모른다’고 할 겁니다. 자녀를 국내 대학에 보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요즘 강남의 부유층 부모들은 자녀가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외국유학을 보냅니다.”((주)싸이더스스포츠 이원형 대표이사)
“외제 차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습니다. 매출의 80% 이상이 강남·서초구에서 생깁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베엠베(BMW)’는 ‘강남의 쏘나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일반화됐죠.”(명품잡지 ‘네이버’ VIP 마케팅부 이기훈 팀장)
“청담동엔 강남의 젊은 부자들, 특히 유학생들의 문화가 그대로 집약돼 있어요. 고급 백화점과 외제차, 명품매장이 대로변에 늘어서 있고 호텔급 레스토랑과 바, 갤러리가 많아 문화적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죠. 이곳에 있다 보면 굳이 다른 데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청담동 문화를 즐긴다는 30대 초반 젊은이)
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바로 부자다. 부자의 삶을 제대로 알려면 부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간접적으로나마 부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른바 1%의 상류층 고객을 겨냥한다는 ‘귀족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 즉 부자 마케터 또는 VIP 마케터일 것이다. 이들은 금융업계 PB(Private Banker), 주상복합아파트의 커뮤니티 관리자, 부유층 대상 부동산 컨설턴트, 명품잡지의 VIP 마케팅 담당자 등 부자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숨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부자들이 원하는 바를 재빨리 알아내고 이에 걸맞은 ‘상품’을 개발해낸다. 어떨 때는 부자들 스스로 깨닫지 못한 요구까지도 먼저 알아채고 앞선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들은 강남 부자들을 최고의 손님으로 꼽는다. 뚝배기 같은 강북 부자들에 비해 강남 부자들은 유행에도 민감하고 과시욕도 높아 좋은 ‘상품’을 내놓으면 구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해외 부동산·펀드에 투자
“모이면 재테크 이야기만 할 정도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사실 부자일수록 더 부자가 되고픈 욕구가 강하고, 돈을 벌어본 사람만이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거든요. 따라서 이들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재테크에 대해 해박합니다.”
문정훈 전 타워팰리스 생활지원센터 팀장은 강남 부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재테크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타워팰리스 거주자를 대상으로 세무관련 세미나가 네 차례 열렸는데, 다른 세미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지난 7월1일 신한은행 PB센터에서 마련한 ‘부동산컨설팅’에도 200명 가량 부자들이 모여들었다. 이중 강남지역 거주자가 50%를 넘었다. (주)한국리츠에셋 박병호 대표감정평가사는 “부동산과 현금자산을 합쳐 20억원이 넘는 부자들 중에서도 특히 강남 부자들은 시류를 잘 타 재테크에 특히 강하다”고 설명했다.
“강남 부자들의 거주지 변천사를 보면 일정한 흐름이 나타납니다. 논현동에서 시작해 삼성동, 대치동을 거쳐 지금은 대개 도곡동에 모여 살아요. 돈이 되는 건물만 찾아간 겁니다. 하지만 이제 건물은 이들의 관심거리가 아니에요. 사실상 임대업은 전성기가 지났어요. 지금 부자들은 땅에 투자합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정남(正南)축을 따라 움직이며 앞으로 뜰 지역을 선점하고 있죠. 지금 아무리 부동산 경기가 죽었다고 해도 이들은 여전히 부동산 투자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박 대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는 부자들도 많다”며 “중국의 경우 제조업보다 부동산에 더 많이 투자하고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도시인 상하이, 베이징, 톈진, 밴쿠버, 토론토, LA, 시드니, 멜버른 등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부유층의 해외 부동산 투자 열기는 대단하다. 강남에서 뭉칫돈 수천만달러가 중국 푸둥지구 어느 아파트단지로 유입됐다는 소문도 현지에 떠돈다. 상하이에만 한인 상대 부동산이 30여곳을 넘어섰다. 하지만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개인이 국외 부동산을 구입하려면 한국은행에 신고해야 한다. 그래서 현지 교민과 공모해 국내에 있는 제3자의 계좌에 돈을 넣은 뒤 현지에서 돈을 찾는 속칭 ‘환치기’가 성행하기도 한다.
외국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이 부동산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금융권에서도 해외 펀드가 강세다. 신한은행 강남PB센터 이상수 팀장은 “해외 펀드와 달러를 사는 것이 요즘 부자들의 투자 추세”라고 말했다.
“국내 지수변동이 너무 심하니까 해외, 그중에서도 일본 쪽 펀드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니케이지수 연동 펀드의 인기가 엄청났죠. 또 외화정기예금 등의 형식으로 달러를 사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기가 불안할 때 부자들의 가장 ‘확실한’ 재테크 수단은 바로 종신보험 가입이다. 종신보험은 사람이 죽으면 사망원인에 관계없이 보험금이 지급되는데, 지급액도 기존 보험보다 훨씬 많다. 이상수 팀장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돈이 많을수록 더 크다”며 “고객들에게 총자산의 10%를 보험에 투자하라 권유하고 있고, 고객들도 상당수 그렇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총자산이 100억이면 10억을 보험에 투자한다는 얘기다.
‘특별한 대우’ 비용, 120만원
지난 4월초 오페라 ‘나비부인’이 공연되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VIP석은 ‘특별한’ 사람들만 앉을 수 있었다. VIP석은 시중에서 티켓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세종문화회관측이 초청한 관객에 한해서만 제공되는 좌석. 그런데 세종문화회관과 타워팰리스 생활지원센터가 함께 타워팰리스 입주민을 대상으로 티켓을 판매했다.
“타워팰리스 홈페이지에 ‘티켓 판매’ 게시물을 올려놨더니 리플(댓글)이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몰라요. 대다수가 ‘이런 티켓을 구할 수 있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게 자랑스럽다’는 내용이었죠.”
문정훈 팀장의 얘기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들 중 씨티은행 PB센터 고객인 사람들은 훨씬 더 특별한 서비스를 받았다.
“씨티은행 PB센터에서 타워팰리스 입주자 가운데 고객들을 파악한 후 은행 차원에서 티켓을 구매해 고객들에게 선사했죠. 공연이 끝난 후엔 고객들을 위한 와인파티를 진행했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 씨티그룹 아시아태평양본부장을 비롯한 임원 7명이 직접 파티장에 나타난 겁니다. 고객 한 명 한 명을 VIP로 모시더군요. 고객들이 얼마나 감동했겠어요?”
부자 마케터들이 공통적으로 들려주는 부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남들이 할 수 없는, 단순히 돈으로만 구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것을 원한다는 것. 앞서 말한 시티은행의 경우 이런 부자들의 욕구를 200% 채워줬다고 할 만하다.
서울 압구정동 뷰티·스파센터와 잠실의 피부과를 운영하는 의사 주종호씨는 두 병원을 운영하다 보니 부유층과 일반인의 차이를 확실히 느끼게 됐다고 털어놨다.
“잠실 병원에 오는 분들은 대개 월급이 200만원 안팎인 평범한 직장여성들입니다. 이들은 대개 치료 목적으로 병원을 찾습니다. 그래서 피부가 빨리 좋아지지 않으면 지불한 돈을 생각하며 무척 불안해하죠. 하지만 압구정동 뷰티·스파센터엔 고소득층 여성이나 집안에 돈이 많은 여성들이 주로 옵니다. 이들은 치료가 아닌 관리와 휴식을 위해 센터를 찾죠.”
압구정동 센터는 관리실이 7개의 독립된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관리실마다 스파가 마련돼 있고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음악이 흐른다. 특별관리실의 경우 1개층 전부를 차지하며 담당 관리사도 2명이다. 이곳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쉬는 데 드는 비용은 1회에 60만원, 여기에 피부관리가 포함되면 120만원으로 뛴다. 꽤 고가이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최고급 시설에서 특별대우를 받으며 쉴 수 있다는 게 이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다. 명품잡지 네이버 VIP 마케팅부 이기훈 팀장은 “부자들은 ‘구별짓기’를 하고 워너비(wannabe·추종자)들은 ‘따라하기’를 한다”며 “여행을 하더라도 부자들은 구별짓기 위해 워너비들도 갈 수 있는 발리보다는 쉽게 가기 어려운 몰디브나 마케도니아를 선호한다”고 귀띔한다.
‘그들의 문화’가 된 할로윈데이
(주)파티앤프로모의 이선영 대표이사(파티플래너) 역시 “여행과 결합된 파티를 기획해달라는 요청이 꽤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초 홍콩 하얏트호텔 연회장에서 여는 파티를 기획했다. 3박4일에 1인당 참가비용은 400만원선. 이 대표는 “일상적인 파티나 여행을 즐기는 게 아니라, 외국의 최고급 호텔에서 파티를 열면서 서로 친분도 쌓고 동시에 여행도 할 수 있다는 독특함이 부유층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파티문화만 놓고 봐도 부유층은 일반인과 구별된다”고 덧붙였다.
최첨단 시설과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타워팰리스는 ‘강남의 부’를 상징한다.
이런 부유층 파티의 경우 1인당 참가비용이 50만원을 훌쩍 넘는다. 제주도에서 진행된 한 파티에서는 참가자 10명이 5000만원을 쓴 적도 있다. 하지만 꼭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다. 명품브랜드 등에서 협찬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 소수 멤버십 파티의 경우 비용과 상관 없이 초청장이 없으면 참여할 수 없다.
또 과거엔 파티 장소로 호텔을 선호했는데, 지금은 그들의 삶과 밀접한 장소를 찾는다. 예를 들어 도곡동에 있는 벤츠타워에는 고객들이 사용할 수 있는 대규모 파티 플레이스가 따로 마련돼 있다. 벤츠동호회라든가 벤츠 소유자가 많은 모임의 경우 이곳에서 파티를 한다. 청담동 등지의 고급 카페들도 좋은 파티장소다. ‘이브닝드레스나 포멀 슈트를 입고 참가해야 한다’는 등 파티의 드레스코드가 확실한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이분들이 파티에 참가하는 건 인적 네트워크 형성과 사교가 목적이에요. 비즈니스 성격이 강한 거죠. 따라서 외형적인 디스플레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반면 대중화된 파티는 유희적 성격이 강합니다. 즉 볼거리가 많아야 해요. ‘섹시’ ‘힙합’ ‘레이브’ ‘파자마’ 파티 등 톡톡 튀는 기발한 테마는 대중을 위한 파티입니다. 연예인이 나오는 파티 역시 대중 파티라 할 수 있죠. 반면 부유층의 파티는 매우 포멀하고 문화적인 체험을 중시해요. 재미있는 건 이분들의 파티에서는 음식이 거의 다 남는다는 거죠. 한번은 벤츠동호회 50명이 참여한 파티에 핑거푸드(손으로 집어먹는 간단한 음식)와 음료수만 준비했는데도 음식이 다 남았어요. 파티를 먹는 곳이 아니라 사교하는 곳으로 여긴다는 뜻이죠. 또 파티에서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품위를 손상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선영 대표는 부자라 해도 파티문화를 즐기는 방식에 있어 강남과 강북 간에 다소 차이가 있다고 했다. 강북 부자들은 집에서 파티를 여는 경우가 많고 궁중음식 같은 최고급 한국 전통음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강남의 경우 주로 바(bar)나 호텔의 멤버십클럽 등에서 파티를 즐기고 음식 역시 와인이나 핑거푸드를 선호한다. 또 강남 부자의 경우 대다수가 외국유학을 다녀온 만큼 ‘할로윈 파티’와 같이 외국의 명절이나 문화가 중요한 파티 아이템으로 등장한다. 다음은 문정훈 팀장의 설명.
“조금 과장해 말하면 타워팰리스의 모든 입주자가 할로윈데이 파티를 연다고 보면 됩니다. 할로윈데이 몇 달 전부터 타워팰리스내 연회장은 예약이 끝납니다. 엄마들은 할로윈데이 때 자녀에게 어떤 옷을 입힐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화려한 옷에 가면을 쓰고 집집마다 찾아가 노래를 부릅니다. 설에 세배하고 추석 때 송편을 먹으며 가족들과 윷놀이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할로윈데이를 즐기는 거죠.”
이웃간 친밀도 높아
그런데 이런 모습은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 속에서만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 즉 부유층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이너서클(Inner Circle)을 만들어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 문정훈 팀장 역시 “타워팰리스 입주자들 사이에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것 중 하나가 동호회 활동”이라고 말한다.
“특히 골프동호회가 가장 활발합니다. 동호회 수만 30개가 넘는데, 규모가 가장 큰 것은 회원수가 176명이나 되죠. 대학 동문회 활동도 활발해요. 특히 연세대 동문회가 가장 크고 외국대학 동문회도 꽤 있습니다. 취미 관련 동호회도 많고요.
사실 보통 아파트에선 이웃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잖아요. 하지만 고급 주상복합아파트는 달라요. 편의시설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목욕탕에서도 만나고, 헬스클럽 또는 골프연습장에서도 계속 마주치게 되죠. 그래서 이웃간 친밀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언젠가 한 가족이 새로 입주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로비에 직접 만든 케이크를 갖다놨더라고요. ‘앞으로 잘 지내면 좋겠어요. 제가 직접 만든 케이크니 가지고 가서 드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이런 분위기이니 타워팰리스내 클럽활동이 활발한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1961년산 와인 1600만원에 팔려
부자들을 규정짓는 또 다른 키워드로 무엇이 있을까. 부자 마케터들은 ‘마니아’를 꼽는다. 타워팰리스 1차에 거주하는 50대 중반의 변호사 이모씨. 그는 최고급으로 빌트인돼 있는 가구나 전자제품들이 매우 마음에 들어 조금도 교체하거나 수리하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오디오 세트만 빼고는. 김씨는 이른바 오디오 마니아다.
“조금이라도 업그레이드된 오디오가 나오면 아무리 비싸도 사지 않을 수 없어요. 오디오에 들인 돈만 합쳐도 집 한 채는 더 샀을 걸요(웃음). 전 부동산이나 자동차 등에 관심이 없어 특별히 큰돈을 쓰지 않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오디오만은 욕심이 생기더군요.”
이기훈 팀장은 “부자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마니아적으로 수집하는 경우가 많다”며 “주로 자동차, 오디오, 와인, 미술품, 골동품, 골프채, 샤넬 및 랄프로렌 같은 브랜드의 블랙라벨 등이 그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와인숍을 운영하는 사업가 김모씨는 “와인을 즐기는 것은 부자들에게 기본 에티켓이 됐다”며 “이젠 즐기는 것을 넘어 와인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한다.
“벽장만한 와인 셀러(wine sellar·와인을 보관하는 곳으로 온도와 습도 조절이 가능하다)에 최고급 와인이 가득 들어 있다면 그걸 마련하는 데 든 비용이 최소 7000만원은 됩니다. 와인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보통 창고 네 면에 셀러를 설치해 와인을 보관해요. 이를 모두 합치면 정말 엄청난 액수죠. 또 좋은 연도의 와인이 경매에 나오면 무조건 참가합니다. 1961년산 와인이 1600만원에 팔린 적도 있어요.”
와인 못지않게 많은 부자들이 마니아적으로 모으는 것이 바로 자동차다. 문정훈 팀장은 “타워팰리스 주차장에 내려가보면 외제차가 80% 이상”이라며 “한 집에 차가 2대 이상 있는 건 기본이고 포르셰,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최고급 명차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1년에 3대밖에 국내에 판매할 수 없는 페라리의 경우 이미 3년치 예약이 끝났다고 덧붙였다. 수입자동차 딜러인 (주)천우모터스의 박민씨는 “한정판매(Special Edition) 자동차인 경우 경쟁률이 무척 높아지는 만큼 가격도 엄청나게 올라간다. 그리고 자동차 마니아들은 자동차를 튜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고급 외제차는 아무데서나 튜닝하지 않는다. 전문적으로 벤츠만 튜닝해주는 회사가 따로 있는데, 여기서 튜닝한 차의 공식 명칭이 벤츠AMG”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부유층이라고 해도 일상적인 소비는 무척 합리적으로 한다는 게 문정훈 팀장의 이야기다. 실제 타워팰리스 지하에 위치한 스타슈퍼의 경우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생필품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이다. 대신 입주자들은 가까운 양재농협에 가서 쇼핑한다고 한다.
명품에 대한 선호도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명품 브랜드가 더는 ‘특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선영 대표는 “진짜 부자들은 백화점 명품매장에 가서 쇼핑하지 않는다. 이들은 본사 차원에서 관리되기 때문이다. ‘10개 한정판매’ 등 특별한 물품이 들어오면 본사에서 이들에게 먼저 연락해 구입 여부를 묻는다. 부자들은 소수만 파는 특별판매 물품은 웬만하면 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명품에 대한 선호도는 오히려 워너비 그룹보다 떨어진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유학
자녀교육 및 자녀에 대한 투자 역시 부자들, 특히 강남 부자들을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화두다. 2001년 10월 제일기획의 소비자조사 결과 ‘자녀의 성공은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라는 항목에 전체 응답자의 63.5%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월수입 4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의 경우 ‘그렇다’는 응답이 72.0%로 평균치보다 거의 10% 이상 나타났다. 또 제일기획 마케팅 보고서 ‘신인류탐구-코보스를 찾아라’에 따르면 코보스(한국의 보보스, 즉 한국의 신상류층)는 자녀에게 물고기도 주고, 물고기 잡는 법도 가르친다고 한다. 다양한 고기를 먹여주고 그중 가장 먹고 싶은 고기를 찾게 만든 후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준다는 것.
그런데 어린이 멤버십 클럽인 싸이더스스포츠 리틀즈(이하 리틀즈)를 운영하는 이원형 대표이사는 “강남의 부유층은 국내 교육과정에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자녀를 교육시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자녀가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후에야 외국유학을 보냈지만 요즘은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외국유학을 보내는 추세다.
“솔직히 리틀즈는 상당히 대중화됐어요. 주로 중산층이 참여하죠. 가입비가 연 340만원이지만 매주 일요일마다 레포츠 활동을 하기 때문에 1회에 들어가는 비용은 10만원을 넘지 않아요. 이 정도면 아주 고급이라곤 할 수 없죠. 오히려 강남 부유층 자녀들은 그들의 요구에 따른 ‘특별’ 과외를 합니다. 방학 때 유학하고 있는 학교의 커리큘럼에 있는 레포츠를 미리 배워가는 거죠. 보통 방학 때마다 4∼5팀 정도 과외를 받는데, 비용은 천차만별입니다.”
문정훈 팀장은 “타워팰리스 입주자 중 대부분은 외국유학을 다녀왔고, 지금도 방학 때면 한국으로 돌아온 유학생들로 타워팰리스내 게스트방이 꽉 찰 정도”라고 말했다.
‘다섯 살 난 우리 아이와 영어로 대화할 어린이를 구합니다. 우리 부부가 미국유학 중에 낳은 아이라 지금은 영어를 참 잘하는데, 한국에 있으면서 완전히 잊어버릴까 두렵네요. 아이도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다시 미국으로 보낼 거거든요. 유아놀이방에 2시부터 4시까지 시간을 잡아놓았습니다. 우리 아이처럼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는 아이면 좋겠습니다.’
타워팰리스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글이다. 이 글 밑에는 ‘같이 하자’는 내용의 무수한 리플이 달렸다. 문정훈 팀장은 “실제로 유아놀이방의 어린이들 중 70% 이상이 영어로 유창하게 이야기한다”며 “이 아이들 역시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원형 대표는 “상류층 부모들은 자녀가 국내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건 상류층으로 살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실제로 씨티은행 PB팀은 미국에서 열리는 전세계 부자고객 자녀모임에 한국의 VIP 고객 자녀들을 참가시키고 있다. 부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씨티은행뿐 아니라 모든 은행의 PB팀은 부유층 2세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이들 역시 대를 이어 은행의 큰 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PB팀은 오는 12월부터 고객 2세 중 대학생 이상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PB스쿨’을 열 예정이다. 부동산, 세무 등 경제 분야부터 재즈, 와인, 골프, 역술, 연예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초빙해 교육을 시킨다는 것. 모든 과정은 무료로 제공될 예정이다. 다음은 이상수 팀장의 설명.
“단순히 고객 2세들에게 교육만 시키겠다는 게 아닙니다.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과 인연을 맺어주는 것은 물론 고객 2세들끼리도 돈독한 관계가 돼서 후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게 가장 큰 목적입니다. 또 비슷한 집안의 젊은 남녀가 모이니 PB스쿨에서의 만남을 계기로 결혼까지 할 수도 있는 거고요(웃음).”
“부자 될 이유와 자격 충분하다”
취재 중 만난 부자 마케터들은 한결같이 “자수성가형 부자든, 전문직에 종사하는 부자든, 상속 받은 부자든, 고객들을 상대하다 보면 그들에겐 부자가 될 이유와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느껴진다”고 소리 높여 말했다. 부동산, 주식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자기 분야에선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며, 절약 습관이 몸에 뱄지만 불우한 이웃을 위해서는 거액을 기부할 줄 아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것.
하지만 이들을 쳐다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왜일까. 혹 지나친 자기보호와 사회에 대한 부담감으로 그들만의 성채 안으로 들어가버리기 때문에 그 차가운 시선을 녹여버릴 기회를 갖지 못해서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