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 한 톨, 배추 한 잎도 부처를 대하듯 정성스럽게 다루는 사람. ‘건강과 도와 생명은 함께한다’는 그의 깨달음이 중병을 다스리고 사람들의 성품을 변화시켰다. 선재스님. 그의 정갈한 손끝에서 탄생한 선식(禪食)에는 맛의 깊이와 영혼의 향기가 어우러지고 있었다.

선재스님이 얼른 먹물옷을 덧입는다. 고은의 에세이에 내가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
[ 숲길에서 가랑비를 맞으며 경내 암자의 젊은 이승(尼僧) 한 분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아름다운 여자 스님이다. 그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맑음, 그 흰빛 이마의 고요, 아직도 염염한 색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그윽하고 눈부신 입술이 머금은 외로움, 바람 한 자락이 실수해서 와르르 와르르 나뭇잎새마다 가지고 있던 빗물이 쏟아질 때 그 때문에 아득하게 놀라서 떠지는 검은 눈동자의 잉잉거리는 아픔을 만난 사람이라면 아, 절에 오길 잘했구나라는 환희를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이 화려한 문장 이후 나는 여승을 만날 때면 필요 이상으로 감상적이 되곤 했다. 선재스님은 그런 잉잉거리는 눈동자를 예전에 졸업하고 몇 달 후면 세속 나이로 쉰이 되는 침착한 연대에 도달한 이승이다.
여기는 절이 아니다. 음식을 배우거나 구경하러 찾아오는 손이 하도 많아 산사 대신 수원시내로 숨어든 스님의 아파트다. 실내가 예전 대가댁 안채 같다. 넓은 거실에 그릇과 음식재료가 빼곡한데, 오래된 목기며 유기, 도기와 자기들은 선반에 차곡차곡 쌓아뒀고 삶은 고춧잎, 연잎, 취나물, 얇게 저며 썬 사과는 바닥에 흰 보를 펴고 정갈하게 널어뒀다. 고춧잎은 장아찌를, 연잎은 차를, 사과는 졸여서 반찬용으로 쓸 거란다.
절 마당에 연꽃을 키우는 이유
바지런하고 재빠르게 매만지고 뒤집다가 “말린 사과 한점 맛볼래요?” 하며 입에 쏙 넣어준다. 선재. 머리는 파르라니 깎았지만 마음씨 솜씨 맵시는 대갓집 큰 며느님같이 야물고 고운 사람. 그는 음식을 만드는 스님이다. 공부하는 스님들이 더 효율적으로 맹렬하게 정진할 수 있는 음식이 뭔지를 불경 안에서 찾아내 재료와 요리법을 부처님 시대 그대로 재현해내는 일을 한다.
“해국 큰스님이 서귀포에서 무문관에 드셨을 때 멀리서 봐도 스님 계시는 산이 훤하게 빛났었대요. 하루 한 끼만 드시면서 정진을 하셨다는데 먹는 음식에 따라 공부 진도가 달라졌다고도 했어요. 큰스님이 드시는 음식은 무얼까. 그게 그렇게 궁금하데요. 물어봐도 거기에 대해 말해주는 스님이 안 계세요.
내가 스스로 찾아보자 싶어 공부를 시작했지요. 불경을 샅샅이 뒤져봤더니 예상외로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굉장히 자세하게 나와 있었어요. 일반 음식이라기보다 스님들이 공부하다 병이 났을 때 치료하는 약으로 소개된 거예요. 약 대신 식품을 어떻게 조리해서 먹으라는 지침이 나와 있어요. 요리법뿐 아니라 손질과 보관법, 주방 설치법까지 정교하게 지시돼 있죠. 나중에는 해국스님 계신 곳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 올려 보내드렸어요. 무문관을 나오신 후 어찌나 치하를 하시던지….”
구수 사리불이 어느 날 열병이 나서 앓아누웠다. 병문안을 온 목건련에게 사리불이 물었다. “목건련이여, 그대가 열병이 났을 때 무엇을 먹고 나았는가.” 목건련이 답하기를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연의 줄기와 연의 뿌리를 다려 먹고 나았네.”
(대품국역 대장경 논부 심사 약제편 발췌)
절 마당에 연꽃을 키우는 이유가 거기 있었구나.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을 그저 윤회의 상징인 줄로만 여겼더니 사찰 앞의 연못이란 스님을 위한 상비약 보관소였구나.
“경전 ‘중일 아함경’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일체 제법은 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식(食)이 아니면 존재할 수가 없다’라는.”
부처님이 음식을 소홀히 여겼으리라는 건 턱없는 오해다. 욕망을 줄이고 공부에 집중하고 마음을 맑게 하는 음식에 관한 정보가 불경 안에 풍성하게 들어 있다는 건 놀라운 발견이다. 참살이(웰빙) 식품으로 치자면 부처님 음식만한 참살이가 또 있을까. 나는 아주 흥미진진했다. 선재스님은 입을 야물게 다물고 있다가도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말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우엉은 껍질 벗겨 물에 들어가면 기가 빠져버려요. 도라지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 뿌리채소는 속살을 물에 담그면 불성이 없어져요. 식물마다 불성이 있는데 그 불성을 잘 살린 음식을 먹으면 나도 따라 성불할 수 있거든요. 불가의 식사를 선식이라 부르는데 그냥 자연식이나 채식과는 개념이 달라요. 필요할 때는 육식도 취하고 오신채(五辛菜, 파·마늘·달래·부추·무릇)를 쓸 수도 있는 거예요.
말만 잘하면 절에서 새우젓 얻어먹는다는 속담이 있지요? 그게 맞는 소리예요. 절에도 새우젓이 있다고요. 물론 소량이고 비상시 약으로 쓰기 위한 거지만. 선식은 맑은 음식이고 지혜를 주는 음식이에요. 재료가 가진 불성을 잘 살려 요리하면 그 음식으로 건강뿐 아니라 도(道)를 얻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조미료, 첨가제, 인스턴트 음식은 불성이 없어요. 쪼스고(다지고) 튀기고 삶아도 불성이 다 달아나버립니다.
선식은 부처님 공부하는 스님들한테만 좋은 게 아니에요. 생명과 기가 살아있는 음식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고 특히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해요.”
그런 선식 조리법을 찾아내고 원하는 사람들에게 강의하고 실습하는 것이 지금 선재스님의 일이다. 이 집 현관에는 자그만 간판이 붙어 있다.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2년 전까지는 여주에 있었다. 보리사란 이름의 토굴에서(이름은 토굴이지만 실제로는 자그만 황토집) 절집 음식을 만들면서 살았다. 그러다 선재의 선식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과 전화가 점점 많아졌다. ‘아이가 백혈병인데’ ‘남편이 암인데’ 하며 처방을 요구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다 보니 원래 좋지 않던 간에 무리가 왔다. 어느 날 드디어 쓰러졌다. 과로였다. 쉬지 않으면 안 된다 해서 할 수 없이 고향인 수원에 숨어들었다. 지금은 찾아오는 손들은 안 만나고 동국대학교와 비구니회관에서 한 주에 두 번 진행하는 강의만 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 집으로도 환자를 끌고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또 어쩌겠습니다. 병원에서 포기했다는 사람, 마지막 희망으로 문을 두드리는 건데 명색이 중이 돼서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내가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환자 보호자에게 조미료 안 쓰고 금방 캔 재료로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밖에는.”
이곳 베란다엔 뚜껑 덮인 서너 말들이 장독들이 가지런하다. 된장과 고추장과 간장이 독마다 갖가지 장아찌를 품고 발효중이다. 집안에 향내가 은은하다. 빼어난 살림꾼 여자의 살림에서 날 법한 내음이다. 담백하고 소소한 절집을 연상한 내게는 예상 밖의 풍경이지만 선재는 음식으로 부처님 법을 전하기로 길을 정한 사람이니 편견을 갖지는 말자.
여기는 온갖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집약된 곳이다. 부드럽고 단정하고 넉넉하다. 집안에 온통 연이 가득하다. 큰 항아리에 풍성하게 꽂아둔 연잎과 연밥말고도 연꽃 모양 찻잔 안에 직접 김제 가서 따 말렸다는 향기어린 백련차가 담겨 있다. 찻그릇 받치는 나무접시도 연잎, 커다란 과일접시도 오목한 연꽃 이미지다. 만지고 보는 것만으로 마음에 향긋하게 웃음이 돈다.
수라간 궁녀였던 외조모
선재는 8남매의 여섯째, 언니가 둘 있는 셋째딸이었다. 용꿈을 꾸고 낳았다고 이름이 ‘용자’였다. 어려서부터 웬일인지 노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언니들이 윷을 놀면 뒤에서 간식거리를 만드는 게 더 재미있었다. 어머니가 솜씨가 좋으셨다. 아니, 외할머니를 먼저 말하는 게 낫겠다. 외할머니가 처녀 적에 수라간의 궁녀였다고 한다. 개화기 때 궁을 나와 혼인을 하셨는데, 그 수라간 궁녀의 큰딸이 선재의 어머니였고 어머니는 늘 곁에 얼찐거리는 선재에게 음식을 가르쳤다.
“우리 집 음식이 다른 집과는 달랐어요. 계란찜 하나를 해도 갖은 고명을 얹어 색깔 맞춰 해먹었고 호박철엔 호박편수, 가지철엔 가지선을 때맞춰 해먹고 살았는데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우리 집만 그랬더군요.”
형제가 많으니 집안 형편은 넉넉지 못했다. 직장 다니며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어머니는 불자였지만 그는 고등학교 때 친구 따라 성공회 성당엘 다녔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는 착한 신도였다.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 무렵 인연은 한 발짝씩 선재에게 다가온다. 성공회 성당에서 희한하게 수원 용주사로 단체 수련회를 가게 된 것이다. 용주사에서 부모은중경 강의를 우연히 들었다. 남들은 흘려 듣는 강의가 선재의 귀에는 천둥처럼 울렸다.
‘효도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품(下品)은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과 옷을 대접하는 것이요, 중품(中品)은 부모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고, 상품(上品)은 부모에게 불법을 전해서 집착과 윤회에서 놓여나게 해드리는 것’이라는 게 요지였다.

당장 불교청년회에 가입했다. 그러던 중 절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절실해졌다. 부모님은 절로 가려는 선재의 걸음을 막았다. 큰 불효라고 했다. 부모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무슨 효도냐고, 시집가서 애 낳고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효도라고 했다.
“상품 효도를 하고 싶어 절로 가려는데 내 부모님은 그걸 불효라고 하시니….”
갈등했다. 그러나 한번 정해진 선재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성정이 강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기가 어려워 기회만 엿봤다. 초조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세무서에 다니면서도 자신이 있을 곳은 절이라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세상일은 아무 의미도 없고 재미라곤 통 없었다. 부모님의 주선으로 선도 한 번 봤지만 영 시덥잖았다. 하지만 절에 가 스님 곁에 서기만 하면 마음에 평안이 왔다.
“한번은 친구 두 명과 용주사에 또 갔어요. 공양을 하는데 반찬이 너무 짜고 맛이 없어요. 친구가 나더러 ‘우리 식품영양학과 가서 스님들 식단도 짜주고 반찬도 해주는 공양주 보살할까?’ 하고 물어요.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던 참이라 꼭 그러자고 약속했지요. 그날 그 말이 씨가 됐나 봐요.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던 친구는 정작 지금 구청 공무원으로 근무중인데….”
딸에게 3배하던 어머니
스물다섯에 선재는 짐을 꾸렸다. 배낭 하나를 메고 집을 나섰다. 화성 신흥사의 성일스님을 은사로 모시겠다고 진작에 결심해둔 터였다. 떠나던 날 마침 올케가 병석에 있었다. “어머니가 ‘올케 수술이나 끝나고 떠나거라’ 하세요.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마음이 더 바빠지데요. ‘아니 바로 지금 가야 해요’하며 딱 자르고 나왔어요. 머리를 깎던 날 불교청년회 사람들이 꽃다발을 사들고 온 것도 기억나네요.”
선재가 출가한 첫해 겨울에 어머니가 절로 찾아왔다. 추운 날이었다. 무를 뽑는데 땅이 꽁꽁 얼어 있어 잘 뽑히지가 않았다. 손가락이 곱아들고 볼이 얼었다. 뽑은 무를 지게로 져 나를 때 어머니가 들어섰다.
“가서 보면 울 테고 울면 스님의 어머니 자격이 없으니 가지 말라고 아버지가 한사코 말리시더래요. 그래서 울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오셨다는데 승복에 삭발하고 언 손으로 지게질 하고 있는 딸 모습에 우리 어머니가 스르르 자리에 주저앉으셨어요. 그날 저녁 큰스님이 언 무를 잘라 채반에 널어 말린 뒤 갖은 양념에 재워 구워주셨어요. 솜씨 좋은 어머니도 첨 먹어보는 맛이라 하셨죠. 그게 사찰 음식이었어요. 요즈음도 언 무 구이를 할 때면 늘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그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16년 동안 딸을 만나면 삼배(三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평생 존댓말을 썼다. 어머니는 절에 오시면 늘 딸이 좋아하는 묵을 쒀서 들고 오셨다.
“우리 어머니는 도토리묵 하나도 설렁설렁 무치지를 않았어요. 고춧가루가 들어가면 ‘거랑맞다’ 해서 식초와 간장, 깨소금만으로 맛을 내셨어요. 청포묵을 썰 때면 아무리 가늘게 채를 썰어도 끊어지는 법이 없었고. 우리 어머니의 동치미 맛을 따라낼 수 있을 때까지 딱 10년이 걸리더라고요.”
절에 와서 처음 3년간은 공양주 노릇을 맹렬히 했다. 물론 절음식도 배웠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지만 절에서는 힘든 줄 몰랐다. 힘든 게송(偈頌)도 금방 외워지고 맘만 먹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선재의 직책은 신흥사 청소년 수련원의 교육담당이었다. 아이들 데리고 심성훈련 프로그램을 맡아서 진행했다.
이불호청에 먹물을 들여 휘장을 만들어 절에 온 아이들과 연극공연도 했다.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것에 민감하던 선재의 눈에는 유독 예쁜 것들이 잘 들어왔다. 헌 나무토막도 선재가 주워놓은 건 유독 멋이 난다고들 했다. 수련원은 점차 멋진 공간으로 변해갔다. 아이들도 신흥사에 다시 오고 싶어 했다. 어려서부터 키워온 선생님의 꿈이 절에 와서 이뤄진 것이다.
인스턴트 즐겨먹는 ‘문제아 그룹’
“그런데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여느 애들은 절에 와서도 절음식을 잘 먹어요.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던 아이들이지요. 그런데 이른바 ‘문제아’들은 절에서 만든 음식을 다 남기는 거예요. 대신 몰래 가게에 가서 라면이나 과자를 사먹어요. 걔네들이 왔다 간 후엔 온 산에 인스턴트 음식봉지들이 막 날아다녀요. 애들의 심성이 먹는 음식과 깊은 관련이 있겠구나 싶데요. 그런 애들에게 억지로 사찰음식을 먹였더니 얼마 후부터는 날뛰던 애들이 확실히 침착해진다는 것도 발견했어요.”
그러던 중 신흥사 수원 포교당의 한 젊은 스님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겼다. 영양실조가 사인이라고 했다. 기가 막혔다. 공부하러 뜻을 세우고 절에 들어온 스님이 영양실조라니. 선재는 스님들의 식사당번을 자청했다. 70여명 분의 공양을 맡은 것이다. 오늘은 스님들께 뭐를 만들어 먹일까 궁리하는 것부터가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맡은 후론 정말 잘해 먹였어요. 돈도 쪼끔 들이고 궁리를 해서 메뉴를 다양하게 짰죠. 영양실조가 말이 됩니까. 두부김밥도 만들고 표고버섯 냉면도 만들고 우엉잡채도 만들었죠. 스님들이 다들 내가 만든 식사를 기다리게 됐지요.”
그러다 중앙승가대학에 진학했다. 원래 전공은 사회복지학으로 노인복지와 장애인복지에 관심이 있었으나, 다들 “선재는 사찰음식에 관한 논문을 써야한다”는 충고를 해왔다. 은사인 성일스님도 너 아니면 누가 하냐고 적극 권하셨다. 오랜 시간을 들여 일일이 경전을 뒤져가며 ‘사찰음식문화 연구’라는 논문을 완성했다. 타고난 솜씨에 음식 만들기를 즐기는 기질에 전문적인 연구까지 마쳤으니 선재는 이제 삼박자를 갖춘 사찰음식전문가가 된 것이다.
마침 불교방송에서 ‘푸른 맛 푸른 요리’의 진행을 선재에게 의뢰했다. 침착하고 어여쁜 선재스님의 요리 프로그램은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머잖아 불교방송 최고의 인기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선재는 방송에서 무엇을 어떻게 요리해 먹으라기보다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요리재료를 대할 것인가를 먼저 말했다.
발우공양의 마음가짐으로
“선식의 기본은 자비사상이에요. 모든 생명은 똑같이 소중하다는 거지요. 그러니 콩 한 톨 배추 한 잎도 함부로 다룰 수가 없는 거지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자세도 마찬가지로 자비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불경은 가르치고 있어요. 모든 사람이 부처님으로 보여서 그 부처님에 공양을 바치고 싶다는 마음으로 요리를 해야 한다는 거지요.
여러 번 말하지만 모든 식재료에는 불성이 있어요. 영양을 섭취하는 게 아니라 그 불성을 우리 몸 안에 받아들이는 것이 공양입니다. 공양으로 인해 우리 안에 있는 불성이 자라게 되고. 그러니 먹는 사람도 음식을 대할 때 부처님 대하듯이 해야 하는 겁니다. 음식이 부처인데 어떻게 함부로 버릴 수가 있겠어요? 맛을 위해 조미료를 마구 칠 수가 있겠어요? 맛있다 맛없다를 논하면서 반찬투정을 할 수가 있겠어요? 배불러서 거북해질 때까지 과식할 수가 있겠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늘 우리들의 방종한 식생활에 내리치는 준엄한 죽비다. 그걸 이미 3000년 전에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15조원에 이른다는 뉴스를 봤다. 서울에서 하루에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만도 2600t이 넘는다 한다. 그 많은 불성을 갖다버리면서 우리가 잘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먹을 게 없어 굶주리던 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온 나라가 다이어트 열풍에 무섭게 휘말렸다. 맛에 취해 과식을 하고 그로 인해 과체중이 되고 그걸 빼기 위해 다시 헬스클럽에 가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거기에 대한 경고를 부처님은 그 옛날 이미 경전 속에 다 설명해놓으셨다는 거다.
“발우공양도 그래요. 보잘 것 없는 의식 같지만 들여다보면 부처님은 그것만으로 세상의 도를 말씀하시고 있어요. 발우공양 해보셨어요? 음식 먹기 전에 조상과 부처와 죽은 영가들에게까지 다 감사하잖아요. 발우공양은 시공을 초월한 우주적인 식사예요.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식사의 미덕이 거기 다 들어 있습니다. 제 그릇에 스스로 먹을 만큼만 음식을 덜어 먹잖아요. 조용히 음식이 오게 된 근원을 생각하고 중생의 은혜에 감사하며 먹되 그릇에 밥풀 하나 고춧가루 하나 남기지 않잖아요. 또 자신이 먹은 그릇을 자신이 잘 닦아서 보관하죠. 그만큼 완벽하게 아름답고 깨끗하고 겸허하고 절약하는 환경친화적 식사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토불이는 부처의 가르침
최근 불교 정토회 스님들이 ‘빈 그릇 만들기 운동-음식 남기지 않기 켐페인’을 벌인다는 소식을 들었다. 빈 그릇 남기기 운동이 부처님 정신을 실천하는 운동이 되는 이유를 알겠다. 더구나 부처님이 권하는 건 전체식이었다. 전체식이란 모든 식재료를 한 부분도 버리지 않고 다 먹는다는 뜻이다. 채소는 뿌리에서 잎까지, 열매는 과육과 껍질까지, 곡식은 거르고 남은 물까지 모조리 음식에 이용하라는 의미다. 땅에서 나는 귀한 식품을 한 부분도 버리지 말고 귀하게 다루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래야 우리 몸이 음식물에 담긴 불성을 훼손 없이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 더 크다.
“건강과 도와 생명은 따로 노는 게 아니에요. 불성이 깃들인 음식으로 그걸 한꺼번에 얻을 수가 있는 겁니다. 당연히 그 반대도 있을 수 있고….”
요즘 절집 음식조차 조미료와 인스턴트와 수입식품으로 오염되는 것을 보면 선재는 걱정스럽다. 제대로 된 선식을 하지 않으면 도를 얻기도 그만큼 어려워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부처님은 3000년 전에 이미 신토불이를 강조하셨어요. 오늘날처럼 식품이 바다를 건너다니기 이전인데도, 사람은 무릇 자신이 태어난 곳 100리 안의 것을 먹어야 한다고 하셨죠. 건강할 때는 100리 안의 것을 먹지만 몸이 조금 안 좋을 때는 70리 안에서 나는 것을 골라 먹고, 더 많이 아플 땐 30리 안의 것만을 먹어야 한다는 구절이 있어요. 희한하지 않습니까. 경전 구절은 ‘병을 제(除)해주는 품’이라고 언급돼 있는데 음식이란 모두 약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부터 가까운 자연에서 나는 산물이 가장 효력이 좋다고 쓰여 있어요.”
선재의 음식 이야기는 끝이 없다. 아니 부처님의 음식 이야기가 그만큼 세세하고 다양하다. 수행한다는 것을 단순화하자면 ‘음식을 통해 생명존중 사상을 얻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도 있겠다. 생명존중 사상이 바로 자비다. 어려운 수행법을 따로 찾을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선식을 정성껏 만드는 것만으로도 자비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선재스님의 가늠이다.
“부처님은 음식을 크게 유정과 무정으로 나눴어요. 유식이란 경전에 나오는 말인데 유정은 동물이고 무정은 식물이니 무정 위주의 식사를 하라고 가르쳐요. 그러나 무정이라도 기가 있고 마음자리가 있으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거지요. 왜, 식물도 음악을 들으면 즐거운 반응을 보인다는 게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잖아요. 부처님은 음식을 만들면서 그것과 대화를 하라고도 가르쳐요.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닌 똑같은 생명체라는 거지요. ‘중일 아함경’은 음식이 각각 성품이 다르다고도 말해요.”
동적 식품과 정적 식품
선재스님이 말한 내용을 내 나름대로 요약·정리해보겠다. 음식물은 동적 식품과 정적 식품으로 나뉜다. 동적인 건 먹었을 때 바깥으로 뻗치는 힘이 강해 정서의 동요가 쉽고 성격이 과격해지며 조급해지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정적인 건 마음자리를 침착하게 안정시키는 식품이다. 수행하는 승려나 수험생은 아무래도 정적인 식품을 먹여야 마땅하다.
동적 식품으로는 육식과 생선, 어패류와 오신채가 대표적이다. 오신채는 익혀 먹으면 음심이 나고 날로 먹으면 성을 잘 내게 되는 야채들이니 승려들은 금하는 게 옳다. 술, 조미료, 설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