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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불패신화냐 이탈리아 어부지리냐

프랑스 불패신화냐 이탈리아 어부지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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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의 볼거리는 축구경기에 그치지 않는다. 월드컵은 그 자체가 국가적 이벤트요, 민족간의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다. 축구가 모든 스포츠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본선에 진출한 32개국은 저마다 목표를 세우고 담금질에 돌입했다. 한국처럼 16강진출이 숙원인 나라가 있는가 하면, 월드컵을 제패하겠다며 야심을 불태우는 나라도 많다. 그러나 32개국 모두가 꿈을 이룰 수는 없다. 어차피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는 법. 참가국의 50%인 16개국은 예선탈락이 불가피하고, 우승의 영광은 1개국만 누릴 수 있다.

역대 월드컵은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왔다. 월드컵 역사에 길이 빛나는 축구천재와 비운의 스타플레이어, 민족성이 담긴 고유의 축구 스타일, 급속도로 발전해온 기술과 전술, 축구강국을 울리고 웃긴 인연과 악연, 전세계 축구팬들의 탄성을 자아낸 숙명의 라이벌전…. 월드컵은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축구제전의 의미를 넘어 인류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 최고의 예술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이 21세기 첫번째 월드컵을 공동개최하는 것만으로도 축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추첨 결과 강팀들이 한쪽에 몰리는 ‘불공평한’ 대진표가 나왔다. 때문에 결승전보다도 치열한 16강전이 예고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조별예선이 끝나는 대로 A조와 C조가 일본으로 건너가고 E조와 G조는 한국으로 들어와서 토너먼트를 치른다. 따라서 16강전부터는 A C F H조가 한그룹이 되고, B D E G조가 또 다른 그룹으로 묶인다. 이에 따라 2연패를 노리는 프랑스의 행보가 험난해졌다.

포인트 1 ‘빅4’ 중 셋은 죽는다

프랑스가 A조 1위를 차지하면 16강에서 F조 2위와 만나고, A조 2위로 올라갈 경우엔 F조 1위와 대결한다. 그런데 F조는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가 속해 있는 이른바 ‘죽음의 조’. 프랑스는 조별예선 성적과 무관하게 16강에서 ‘죽을 고비’를 맞는 셈이다. 물론 지옥을 탈출하자마자 프랑스와 맞붙는 F조 2위도 억세게 재수가 없는 팀이다.



프랑스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기를 딛고 8강에 오르면 그곳에 브라질이 기다리고 있다. 브라질은 호나우두가 복귀한다는 전제에서 C조 1위가 유력하다. C조 1위는 16강에서 H조 2위와 붙는데, H조의 러시아 벨기에 일본 튀니지 중 브라질을 위협할 만한 팀은 없다. 그렇다면 프랑스와 브라질은 지난 대회 결승전 이후 4년 만에 재대결을 펼쳐야 한다.

프랑스가 이 고비까지 넘는다고 치자. 프랑스는 4강에서 F조 1위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F조 1위팀은 16강전과 8강전에서 비교적 쉬운 상대와 싸우는 반면, 프랑스는 초죽음이 돼서 4강전을 치러야 한다. 프랑스의 성적과 관계없이 일본에서 경기를 갖는 ‘빅4(프랑스 아르헨티나 브라질 잉글랜드)’ 중 한 팀만이 결승에 오른다는 사실은 최고의 결승전을 기대하는 팬들에게 실망이 아닐 수 없다.

반면 한국에서 토너먼트를 벌이는 그룹 중에서는 이탈리아가 가장 유리하다. 이탈리아를 위협할 팀으로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정도인데 이탈리아는 4강까지 이들을 피할 수 있다. 물론 이탈리아나 포르투갈이 서로를 피하기 위해 조별예선을 1위로 통과할 때 그렇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이탈리아는 토너먼트에 강하다. 예선에서는 무기력한 경기를 펼치다가도 16강에 오르면 전력이 급상승한다. 많은 축구전문가들은 이탈리아나 포르투갈이 결승에 오르더라도 프랑스나 아르헨티나를 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가 100% 컨디션으로 맞붙는 것을 가정한 분석이다. 아무리 강한 팀도 지치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축구의 상식이다. 이탈리아가 조추첨 이후 조심스럽게 ‘어부지리’ 우승을 꿈꾸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포인트 2 징크스는 깨진다

월드컵 우승팀에게는 세 가지 징크스가 있다. 이 가운데 2가지는 이번 월드컵에서 깨질 가능성이 높다.

첫째 징크스는 특정 대륙만 우승한다는 사실. 1930년부터 16차례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는 7개국. 유럽의 이탈리아 독일(서독 시절 포함) 잉글랜드 프랑스와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이다. 횟수로는 양쪽이 8번씩 정상에 올랐다. 준우승팀도 유럽과 남미가 독식했다. 유럽이 12번, 남미가 4차례 2위를 차지한 것. 이것은 그만큼 유럽과 남미가 세계축구의 강자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다.

축구팬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여덟번째 우승팀’이 나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전망한다. 그들이 꼽는 ‘다크호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것은 프랑스 아르헨티나 브라질 잉글랜드 등 우승후보들의 대진운이 나쁘다는 점에서 나온 분석이다.

둘째 징크스는 개최 대륙에서 우승팀이 나올 확률이 93.8%에 달한다는 점.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한 기록을 빼면, 모두가 개최대륙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58년 대회 때도 유럽 7개국이 8강에 올라 강세를 보였다. 이 때문에 펠레 디디 바바 가린샤 자갈로 등이 엮어낸 브라질의 ‘스웨덴 신화’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개최대륙에서 우승팀이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환경과 관련이 깊다. 음식과 기후, 시차와 생체리듬 등에서 ‘안방’이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한국이 객관적 열세를 인정하면서도 16강진출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 것도 바로 홈 어드밴티지 때문이다.

2002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남미와 유럽이 아닌 대륙에서 열린다. 지금까지 월드컵은 유럽에서 9번, 남미에서 4번, 북미에서 3번 열렸다. 아시아 축구의 현 수준을 감안할 때 이번 월드컵에서 개최대륙이 우승하는 징크스가 깨질 것은 자명하다. 비록 역대 월드컵에서 홈팀이 우승한 확률이 38%(6회)에 이르지만, 한국과 일본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는 남미와 유럽 중 어느 쪽이 유리할까. 일단 시차와 음식에서는 우위를 가리기 힘들다. 다만 더위에는 남미, 장마에는 유럽이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징크스는 전대회 우승팀이 개막전에서 고전했다는 점. 이것은 전대회 우승팀의 경우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실전 감각이 떨어지는데다, 컨디션 사이클을 16강 이후로 맞추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불가리아와 비겼으며,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카메룬에 0대1로 패했다.

하지만 2002월드컵에서는 그런 ‘이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전대회 우승국 프랑스의 파트너는 아프리카의 세네갈이다. 세네갈은 월드컵에 처녀 출전하는데다가 주전들이 대부분 프랑스 리그에서 뛰고 있다. ‘사고’를 치기에는 전력이 너무 많이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는 여유있게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 같다.

포인트 3 生卽死요, 死卽生이라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아마도 2002월드컵 F조에 속한 네 팀 감독들은 이 말을 되새기고 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 어느 팀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모두 16강은 물론 8강까지 올라갈 만한 전력을 갖추었지만, 16강 티켓은 두 장뿐이다. 우승후보랍시고 컨디션을 조절하다가는 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더구나 조 2위가 되면 16강에서 프랑스와 만나게 돼 있어 F조 1위 싸움이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축구팬들은 F조에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2강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F조의 운명은 스웨덴이 쥐고 있다. F조에 편성된 4팀의 상대전적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990년 이후 펼쳐진 4팀간 A매치에서 스웨덴은 무패를 기록했다. 잉글랜드에 2승3무, 나이지리아에 1승의 우위를 보인 것. 특히 잉글랜드에는 지난 33년간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한편 스웨덴과 아르헨티나는 1934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맞붙은 게 유일하다. 당시 스웨덴은 아르헨티나를 3대2로 물리친 바 있다.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파워축구를 구사하며 실점이 적기로 유명하다. 어느 팀이든 스웨덴을 만나면 득점을 올리지 못해 쩔쩔 맨다. 94미국월드컵 준결승전이 대표적이다. 후반 35분 호마리우가 극적인 헤딩골을 터뜨리지 못했다면, 브라질의 네번째 우승은 물거품이 됐을지도 모른다.

잉글랜드가 F조 예선에 더욱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스웨덴전이 첫 경기(6월2일 사이타마)로 잡혀 있기 때문. 만일 이 경기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아르헨티나와의 라이벌전(6월7일 삿포로)에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된다. 반면 스웨덴은 아르헨티나전이 마지막 경기이기 때문에 잉글랜드보다는 다소 유리한 상황.

F조에서 나이지리아가 약세로 평가되는 이유는 상대전적 때문. 1990년 이후 A매치에서 나이지리아는 아르헨티나에 1무1패, 잉글랜드와 스웨덴에 각각 1패씩 기록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는 94미국월드컵과 98프랑스월드컵에서도 조편성의 불리함을 딛고 16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1994년에는 불가리아, 1998년에는 스페인과 불가리아를 물리쳤다. 만일 이번에도 나이지리아가 선전할 경우, F조의 16강티켓은 마지막 경기가 끝나야만 가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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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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