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제37회1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아파트 파수꾼의 밤과 낮

  • 강춘달(가명)

아파트 파수꾼의 밤과 낮

2/7
그제서야 와 닿는 게 있었다. 그 집 아이가 조금 전 학교 마치고 들어가면서 승강기의 층별 단추를 있는 대로 다 눌러놓고 내렸다. 벌써 여러 번째다. 화가 난 주민들이 나한테 와서 역정을 냈다. 할 수 없이 내가 그 아이를 불러 주의를 좀 주었는데 그게 아주머니 귀에 들어간 모양이다.

“별로 야단친 것도 아닌데.”

“경비 아저씨가 작대기로 다리를 꺾어 놓을지도 모른다면서 벌벌 떨고 있던데요. 지금 아저씨 무서워 학원에도 못 간다고며 들어앉아 있어요.”

“허허. 그놈 언구럭도 여간 아니구먼.”

내가 웃었다. 이미 상대편 행동을 보니까 이런저런 설명으로 무마할 단계는 넘어선 것 같아서다.



“언구럭이 아녜요. 걔는 언구럭 부릴 줄도 몰라요.”

“그눔 웬 장난이 그렇게 심한지. 툭 하면 보당(버튼)을 있는 대로 다 눌러 가지고는….”

마음 같아서는 다른 말도 좀 보탰으면 싶었지만 나는 가급적이면 좋은 쪽으로 몰고 갔다.

“세상에 장난 안치고 노는 아이들이 어디 있나요. 욕도 하셨다면서요?”

“또 별소릴 다 듣겠네. 안했습니다.”

“우리 애가 장난이 좀 심한 건 나도 압니다. 그렇더라도 타일러야지 야단은 왜 치는 겁니까. 여기에 어른들만 살 수는 없는 거 아녜요?”

“그게 아닙니다. 내가 댁의 아드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욕을 하겠습니까. 그냥 타이른 거 뿐인데, 잘못이 있다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이윽고 내가 숙이고 들어갔다. 어차피 사과를 받으러 온 거고, 사과를 하지 않으면 할 때까지 죽치고 따질 테니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사과는 이쪽에서 해야 한다는 것도 이미 내놓은 답이 아닌가.

“아저씨. 아이들은 아이들로 보세요.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라요. 아이들을 어른들의 눈에다 맞춰놓고 잘했느니 못했느니 해서야 되겠어요.”

평소에는 예사로 보아 넘겼는데 오늘 보니 여자의 눈매가 의외로 매섭다. 눈매만큼이나 말도 매섭다. 의미도 없는 것이지만 여자와 나와의 나이 차이를 생각해본다. 못해도 스무살은 더 되지 싶다.

“뭔가 아주머니께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만 올라가십쇼. 올라가시거든 바로 아이를 내려보내세요. 나 무서워 아직 학원엘 못 갔다니까 내가 안 무섭도록 해서 타일러 보내겠습니다.”

그때서야 여자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던지, 그러나 마지못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올라갔다. 여기 있어보면 가장 대하기 힘든 상대가 아이들이라던, 내가 처음 들어오던 날 일러준 구씨의 말이 새삼스럽다.

밤 12시20분. 오늘 하루도 또 이렇게 끝나는구나, 무사히 끝나주어 다행이다 하고 이 시간대마다 곧잘 내뱉는 자탄과 안도가 섞인 한숨을 가볍게 몰아쉬며 하루를 마감하는 신변정리를 하고 있는데, 제복차림의 한 남자가 경비실 밖에서 기웃거렸다.

사람을 찾고있는 듯한 행색이어서 창을 열고 내다보았다. 모범택시운전사 복장을 한 사람이 거기 있었다.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한 20분은 됐지 싶은데, 이쪽으로 올라간 사람 좀 찾을 수가 없겠습니까?”

“누구신데요?”

20분쯤 전에 누가 올라갔지, 생각해보았다.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이시간대에는 드나드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있더라도 예사로 보아 넘기기 때문이다. 내가 감시하는 것은 현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확인하는 일이다. 우리 골목에 사는 사람만 확인되면 그가 누구건, 무엇을 가지고 드나들건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차를 세워놓고는 요금 가지러 올라간 사람이 함흥차사가 됐으니 하는 얘깁니다.”

“기다리는 김에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글쎄, 20분도 더 기다렸다니까요. 기어 오르내려도 열 번은 더 했을 겁니다. 술이 잔뜩 취한 사람인데, 그래도 기억 안납니까?”

말투에 신경질난 사람 특유의 성깔이 묻어 나왔다. 술이란 말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1202호 박사다. 호주에 유학 가서 학위를 따온 사람인데 곧 대학 교수가 된다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 뒤뚱거리며 들어간 것 같았다.

“많이 취했던가요?”

“취하고 말고요. 곤드레만드레가 된 사람입니다. 토해 놓아서 시트를 다 버려 차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지체한 시간요금에 세탁비까지 다 받아내야 하는데. 내가 바로 올라가 볼게요.”

기사는 아랫입술을 있는 힘을 다해 깨물더니만, 잇자국을 달고 안으로 쑥 들어갔다. 말리고 어쩌고 할 틈도 없었다. 일 돌아가는 걸 보니 말려서 될 일도 아니었다. 나는 얼른 인터폰을 통해 그 사실을 1202호에다 전했다.

사전 연락을 취하고 저쪽 허락을 얻어낸 뒤에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외래객 내방순서다. 더군다나 지금 같은 밤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경비로서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이럴 때의 행동반경이다. 참견 범위가 어디까지며, 어떤 방법으로 참견하냐도 미지수다.

무조건 정의의 편에 서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고 주민들만 옹호하는 것도 모양이 좋지 않다. 하지만 주민들이 내는 관리비에서 봉급을 받고 있는 이상,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래도 욕, 저래도 욕을 얻어먹게 돼 있다.

오늘밤도 조용히 보내기는 다 틀렸구나,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기사가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며 내려왔다. 표정이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보다가, 보다가 또 희한한 놈 새끼 다 보겠네. 세상에 그런 똥배짱 가진 놈이 어디 있나 말여.”

수가 되게 틀어진 모양이다.

“그 집이 맞던가요?”

“그새 한밤중이잖아요. 곧 내려올 테니 미터기도 꺾지 말고 기다리라 해놓고, 식구들한테는 말 한마디 없이 자빠져 자고 있으니, 그 자식이 어디 사람 새끼여.”

기사는 양 볼이 퉁퉁 부어 올랐다. 곧 영감이 내려왔다. 청년의 아버지다. 내복 위에 점퍼를 걸친 차림이 자다가 벼락을 맞고 허겁지겁 나온 것임이 분명했다.

“기사양반. 차 어디 있수?”

“시트도 엉망입니다. 냄새가 등천(승천)을 하구….”

“다른 얘기는 하지 말아요. 모든 배상은 해달라는 대로 내가 다 해준다고 했잖수. 가 봅시다.”

영감의 융숭한 말에 그만 기사의 기고만장이 거짓말같이 꼬리를 내린다. 영감은 기사를 따라 택시가 있다는 쪽으로 허둥지둥 가더니만 이내 돌아왔다. 일이 너무 심드렁하게 끝났다.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한 모양이다. 분명히 영감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쨌든 나로선 그런 다행이 없다.

“용이 개천에 쉬고 있으니까 지나가던 거렁뱅이가 오줌을 갈기고 간다더니만 턱도 없는 놈이 와서 떠들고 지랄이야. 젊은이가 술 한잔 먹었기로서니 그게 무슨 큰 허물이라구. 고얀 놈들.”

영감은 경비실 앞에 와서 나 들으라고 한마디 던져놓고는 바로 올라가버렸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표는 내지 않았지만 가슴을 바작바작 태우고 있었다. 이 밤중에 왜 미친놈을 올려보내 사람을 성가시게 하냐고 한번쯤 다그칠 줄 알았다. 그럴 경우 나로선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휴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날씨가 너무 좋다. 경비실에 박혀 있기가 답답해서, 그렇다고 자리를 비우고 멀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이나 달래볼 양으로 입구 계단 밑에 내려와 서성이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관리사무소장이 찾아왔다.

“혹 105동으로 자리를 옮겨볼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만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봐, 대개의 경우 자기 골목 주민과 불협화음이 있거나 그럴 조짐이 보일 때는 자리를 바꾼다. 혹 나에 대한 무슨 좋지 못한 신고가 들어간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왜 그러는 데요?”

“그쪽에서 옮길 사람이 한 분 있어서 그럽니다.”

그때서야 감이 잡혔다. 그리고 소장이 나를 남다르게 생각해서 찾아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105동은 평수가 큰 동이다. 평수가 큰 동에 사는 사람들이 작은 동에 사는 사람들보다 부유층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경비원이라면 누구나 보이게, 안 보이게 그쪽 근무를 원하고 있다. 명절 끝으로 양말 한 켤레라도 더 얻어 신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뺨을 한 대 맞더라도 금반지 낀 손에 맞으라는 논리인 셈이다.

“소장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냥 여기 있으면 싶습니다.”

나는 완곡하게 사양했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데 그곳에 가서 사람들을 새로 알아야 한다는 게 솔직히 귀찮았다. 기어코 백씨가 나가는 모양이었다. 105동에 결원이 생겼다면 보나마나 뻔한 일이다.

지난 달 105동 3문에 근무하는 백씨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 자기가 근무하는 골목의 한 아이가 우리 외삼촌이라면서 청년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갔다. 백씨로선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그 집 아이가 그렇다니까 믿고 들여보낸 것이다.

그런데 그 청년은 도둑이었다. 청년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한 아이를 눈여겨 봐두었다가 그 아이의 신상명세를 아이들끼리 주고받은 이야기 속에서 캐내어서는 외삼촌이라며 접근한 것이다.

그렇게 그 집에 들어온 청년은 아이한테 점심때가 되었으니 점심이나 같이 먹자면서 돈을 주어 중국집 만두를 사오게 내보낸 뒤, 그 틈을 이용해서 장롱을 털어 달아났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청년은 아이한테 절까지 점잖게 받아먹었다는 것이다.

“돈이 남아돌아 당신네 월급 주냐”

경비원도 아이도 꼼짝없이 당한 것이다. 온 단지가 발칵 뒤집혔다. 당사자는 경비원에게 책임을 물었다. 도대체 눈 뻔히 뜨고 앉아 뭘 하냐는 것이었다. 우리가 돈이 남아돌아 당신네들을 앉혀놓고 월급 주냐는 말도 나왔다. 그들로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경비원으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 그런 입장에 놓이더라도 그럴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바로 책임론이 뒤를 따랐다. 보상을 하라는 말도 나왔다. 절차를 밟아 경찰에 신고는 했지만 범인을 잡을 수도 없을 뿐더러 그것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백씨가 나가는 모양이죠?”

“어제 날짜로 나갔습니다.”

이곳 경비원의 정년은 65세인데 백씨는 올 봄에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 1년 더 연장근무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집이 그만큼 어려운 처지였던가 보다.

밤 12시가 다 되었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4문으로 집합.”

4문의 조씨 목소리다. 어느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음복(飮福) 음식이 내려온 모양이었다. 이 시간에 모이라면 뻔한 일이다. 나는 속이 출출하던 차에 마침 잘됐다 생각하며 갔다. 제사음식이 틀림없었다.

서둘러 갔는데도 2문의 오씨, 3문의 이씨는 벌써 와서 먹고 있었다.

경비실에는 전부터 내려오는 불문율이 몇 가지 있는데 제사음식 나눠먹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음식이 많건 적건 같은 동 근무자들을 불러 같이 먹도록 돼 있다.

“앗다, 모두들 동작 한번 빠르구랴.”

“원래 양반은 글 덕이고, 상놈은 발 덕이라고 하잖아. 동작이라도 빨라야 먹구 살 거 아닌개벼.”

오씨의 말이다. 경비실에 보낸 음복치고는 제법 융숭했다. 떡 한 접시에 전 한 접시가 보통인데 여기에는 과일도 한 접시가 따로 담겨왔고, 게다가 접시도 모두 컸다. 술도 제사에 쓴 술이 아니라 따로 준비해서 보낸 것이 분명하다.

아마 보낸 쪽에서도 여러 사람이 나눠먹는다는 것을 알고있는 모양이다.

“야, 이 집 예의범절은 알아줘야 하겠는데.”

“우리 조선생, 머슴 한번 잘 살았구먼.”

그것도 얻어먹는 것이라고 공치사나마 한마디씩 거든다.

“야, 이 사람들아.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 못 들어봤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간적인 유대가 두터웠기 때문이야.”

조씨가 은근히 으스댄다.

“오냐. 늬 잘 났다.”

그만 오씨가 면박이다.

“그나저나 이것도 따지고 보면 조씨한테 얻어먹는 건데, 우리가 신세를 너무 많이 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내가 술잔을 기울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 그 형편은 된다니까.”

“참 그러고보니 먼젓주에도 얻어먹었잖아. 영 미안한데.”

“그리구 조심들하라구. 잘못하다간 또 병원 가는 수가 있어.”

“이 사람 말하는 거 좀 봐. 병원 실려가면 어지간히두 좋겠다.”

지난 여름 101동에서 경비원 한 사람이 제사음복을 잘못 먹고 토사곽란(吐瀉亂)으로 혼쭐이 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빗대어 한 말이다.

“자, 그만 일어나자. 반장 순찰 돌 때 다 됐다.”

이씨의 말에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벽시계로 갔다.

12시40분. 오씨가 먼저 일어나고 내가 뒤를 따라나왔다.

나는 경비실에 들어서자마자 달력을 젖혀 음력으로 다음달 열아흐렛날을 찾아본다. 아버지 제삿날이 그 날이다. 비번인가, 아닌가 손가락을 꼽아본다. 아니다. 그런 다행이 없다.

아까부터 관리소장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 같더니만 우리 문으로 들어와 경비실 옆에 있는 벽보판 앞으로 가더니 무엇인가를 한 장 뜯어서는 들고 들어왔다.

“강씨요, 앞으로 이런 거 여기 못 붙이게 하세요. 게시판엔 관리실에서 허가해준 것만 붙이도록 해요.”

말투가 무거운 것으로 봐 떼어낸 벽보에 무슨 문제가 있는 듯 보였다.

“알았습니다.”

꼬치꼬치 묻는 걸 원하지 않는 눈치 같아, 자꾸 소장이 든 벽보에 눈이 가는 걸 얼른 거두었다. 대놓고 밝히기가 뭣한 문제가 있음이 분명했다.

2/7
강춘달(가명)
목록 닫기

아파트 파수꾼의 밤과 낮

댓글 창 닫기

2019/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