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사포, 일제사격, 민간피해, 지형… 연평도와 서울의 공통점
- 2006년 합참의 피해규모 예측 ‘325만명 사상’의 한계
- 수도권 겨눈 240㎜ 방사포 1발 위력은 122㎜의 최대 4배
- 서울 종로구 인명 피해규모는 연평도의 최대 5760배
- 위력 작은 170㎜ 자주포, 그러나 콘크리트 벽 뚫리면…
- 주유소, 가스관 즐비한 서울… 화학탄 탑재 가능성은?
- 개머리 포대 반격이 장사정포 대화력전에 남긴 교훈
- ‘3일만 참으면’ vs ‘무책임한 전쟁도발론’의 역설
11월23일 오후 북한의 122㎜ 방사포 공격을 받은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곳곳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그리고 새벽 3시. 240㎜ 방사포와 170㎜ 자주포가 서울을 향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한다. 변변한 조기경보 없이 떨어져 내리는 포탄에 놀라 잠자리에서 뛰쳐나온 시민들은 지하철역과 아파트 주차장으로 뛰어들지만, 곳곳에서 치솟는 불길과 연기로 이미 엄청난 피해를 본 뒤였다. 전방의 K-9 자주포와 대구에서 출격한 F-15K가 이내 격파사격에 돌입하지만, 이미 인명이 살상되고 시설물이 부서진 것을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바야흐로 전쟁의 시작이었다.
이상은 한미 양국군이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의 사전징후 감지에 실패한 경우를 상정한, 말 그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다. 1994년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떠오른 이래, 광화문에서 직선거리 40㎞ 내외에 불과한 휴전선 북측 지역의 장사정포는 서울을 불안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군사위협으로 자리매김했다. 총 1100문으로 추산되는 서부전선의 북한 장사정포 가운데 서울을 사거리 안에 두고 있는 것은 170㎜ 자주포 100문과 240㎜ 방사포 250문. 이들 장사정포는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 서부전선의 한미연합군 전력은 물론 서울의 주요 국가시설을 타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측 지도부나 국민에게 끼칠 공포효과가 엄청날 것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그간 서울이 장사정포 공격을 받을 경우 피해규모가 얼마나 될 것인지 추산하는 작업이 꾸준히 이뤄져 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6년 8월 합동참모본부가 국회 국방위원회 이성구 의원실에 제출한 데이터. 개전 초기 한 시간 동안 이들 장사정포가 쏟아내는 포탄으로 인한 피해면적이 191.2㎢에 달하므로 총 325만여 명이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2004년 합참이 실시한 워게임 시뮬레이션에서는 전쟁 발발 24시간 이내에 수도권 시민과 한국군, 주한미군 사상자가 총 230만명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러한 장사정포 피해예측은 대부분 시간당 쏟아질 수 있는 최대 포탄 수에 해당 포탄의 최대 살상반경을 곱해 총 피해면적을 가늠한 다음, 여기에 서울의 인구밀도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추산됐다. 문제는 이 같은 추산이 여러모로 한계를 안고 있다는 사실. 개활지에서 측정된 포탄 1발의 피해면적을 콘크리트 건물이 즐비한 수도권에서 그대로 적용한데다, 떨어지는 포탄의 피해범위가 중첩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접근방식이 없다보니 불가피하게 선택된 방식이다. ‘신동아’ 역시 2004년 12월호를 통해 같은 방식으로 피해규모를 추산한 바 있다.
그러나 2010년 11월23일 북한이 벌인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인해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연평도 사건이 새로운 피해예측을 가능케 하는 매우 유용한 데이터를 남겼다는 것. 더욱이 연평도에서의 상황과 그간 거론돼온 장사정포의 서울 공격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사성을 갖고 있다. 우선 민간시설과 군사시설이 한꺼번에 피해를 당했다는 점이 그렇고, 북서방향에 산지가 자리한 지리적 특성도 비슷하다. 쉽게 말해 북측 포 전력의 위력과 이로 인해 남측이 볼 피해를 가늠할 수 있는 일종의 샘플 데이터가 되는 셈이다.
북한의 122㎜ 방사포(왼쪽)와 240㎜ 방사포.
이번 포격은 오차가 적지 않은 포탄의 특성상 정밀타격이 아닌 일제사격 형태로 ‘쏟아 부은’ 것이라는 게 군 당국의 평가다. 서울에 대한 장사정포 위협 역시 유효 사거리를 넘어서는 ‘눈먼 포격’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특성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포 여러 개를 묶어 동시에 발사할 수 있게 만든 방사포는 내부의 자탄이 퍼져서 폭발하는 형태로, 타격력보다는 피해범위를 넓히는 데 주안점을 둔 무기체계다. 서울을 겨눈 장사정포 위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40㎜ 방사포도 같은 형식이다. 비슷한 사격방식과 무기체계 종류가 사용된 까닭에 연평도에서의 데이터는 유사시 서울 장사정포 피해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한 특징을 갖게 된 셈이다.
그간의 추산방식으로 122㎜ 방사포탄의 위력과 피해범위를 연평도 인구밀도에 적용해 계산하면 수백 명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해야 맞지만, 실제로는 그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전 방식에 문제가 있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이렇듯 실제상황에서 나타난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욱 규모가 큰 교전에서의 피해를 예측하는 일은 군사 분야 시뮬레이션에서 상식적으로 활용되는 작업이기도 하다.
‘신동아’는 관련 전문연구기관에서 장사정포 등 무기체계 분야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연평도 상황을 통해 유사시 서울 장사정포 피해규모를 추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한 전문가는 “실제로 군 당국에서도 이 같은 분석을 이미 하고 있을 것으로 안다. 단순해 보이지만 선입관에 따른 자연 왜곡이 어려워 실제에 더욱 근접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소개할 시뮬레이션 디자인은 이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원칙적으로 최대치를 적용해가며 완성된 것이다. 지루한 승수 방정식과 숫자싸움이 이어지는 작업이지만, 되도록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한발 한발 내디디기로 하자.
몇 가지 전제
연평도에서의 피해를 바탕으로 서울의 장사정포 피격 피해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초기조건을 변경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우선 공격에 동원되는 북한 측 무기체계의 위력이 다르고, 이들이 쏟아내는 포탄의 개수도 다르다. 더욱이 연평도와 서울은 인구밀도나 재산가치에서도 차이가 있으므로 같은 포탄이 떨어진다 해도 서울의 피해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유리로 지은 빌딩이 많은 서울 중심부의 건축특성이나 주유소, 가스관 등 2차 화재의 피해를 강화할 만한 요소들에서도 차이가 있다.
1. 122㎜와 240㎜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연평도를 공격한 122㎜ 방사포와 서울을 겨누고 있는 240㎜ 방사포의 차이다. 기본적으로 유사한 무기체계인 까닭에 적재되는 폭약의 양에 따라 위력과 피해범위가 늘어나는 것 외에는 대동소이하다. 연평도 현장에 떨어진 포탄 가운데는 불발탄도 적지 않았고, 폭발한 포탄 역시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해서는 심각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이는 북한의 방사포탄이 콘크리트를 관통할 만한 위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으로, 연평도에서 크게 훼손된 가옥들은 조립식 패널이나 함석지붕, 벽돌로 지은 오래된 건물이나 컨테이너 정도다.
이러한 폭탄의 피해 특성 자체는 240㎜라고 해도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봐야 옳다. 그렇다면 문제는 폭약의 양이다. 122㎜와 240㎜ 방사포는 구경이 다른 만큼 포탄의 크기도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물론 이러한 차이가 고스란히 폭약의 양으로 직결되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늘어난 크기가 대부분 사거리를 늘이기 위해 장약이나 추진제를 추가하는 데 사용됐다면 폭약의 양은 그만큼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
11월25일 국회에서 공개된 122㎜ 방사포탄.
두 방사포탄의 화약량이 4배 차이에 그친다면 피해범위는 2.5배 증가한다. 화약량이 2배 차이라면 범위는 1.6배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 단순화된 계산법이기는 하지만 이는 폭약의 양에 따른 피해범위를 산출하는 데 실제로 쓰이는 방식이다. 미 국방부가 운용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 피해 시뮬레이션용 컴퓨터 프로그램 HPAC(Hazard Prediction and Assessment Capability) 등은 모두 냉전기간 축적된 핵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이 같은 접근법과 공식에 따라 피해규모를 산정하고 있다.
2. 포탄은 몇 발이나 떨어질까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서울에 떨어질 포탄의 숫자다. 170㎜ 자주포의 경우 뒤에서 다시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은 피해의 주원인이 되는 240㎜ 방사포를 중심으로 들여다보자.
육군 교육사령부 교범에 따르면 240㎜ 방사포는 10발을 쏘고 다시 갱도진지로 복귀하는 데 평균 19분이 걸린다. 다시 말해 시간당 32발을 쏠 수 있다는 뜻이다. 수도권을 겨누고 있는 240㎜ 방사포의 양이 200문이라는 국방부의 평가를 대입하면 개전 초 한 시간에 총 6400발이 서울을 향해 날아올 수 있다. 이보다 보수적인 데이터도 있다. 앞서 설명한 2006년 합참 자료에서는 240㎜ 방사포가 시간당 1만2068발을 발사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80발이 떨어진 연평도에 비해 80~150배에 달하는 포탄이 떨어지는 셈이다. 엄청난 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해가 고스란히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연평도에서 포탄이 떨어진 탄착군의 넓이는 대략 2.5㎢ 정도에 불과하지만, 서울 중심부의 경우는 종로구만 해도 23㎢를 넘는다. 연평도에 1㎢당 32발(80/2.5)의 포탄이 떨어졌다면 모든 장사정포 포탄이 종로구에만 떨어진다고 해도 1㎢당 525(12086/23)발이 떨어지는 데 그친다. 한미연합사령부와 국방부, 합참 등이 위치한 용산구나 역시 서울 중심부에 해당하는 중구를 제외하고도 단위면적당 떨어지는 포탄의 집중도는 16배 내외에 불과한 셈이다.
3. 인구와 지형의 차이
피해규모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포탄 뿐 아니라 해당지역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먼저 인구밀도다. 연평도의 경우 포탄이 떨어진 2.5㎢ 범위 내에 2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1㎢ 기준 인구밀도로는 800명이 된다. 서울의 평균 인구밀도는 1만7000명이 조금 넘고 종로구의 경우 8000여 명에 불과하지만, 시내 중심부의 낮 시간 유동인구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감안해 평균 인구밀도에 4배를 곱한 7만명을 적용해보기로 하자. 이 경우 연평도와 서울 중심부의 인구밀도는 대략 90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물론 이 역시 최대치로 밤 시간에는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평도와 서울의 지형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가능하다. 야산이나 공지가 많은 연평도와 서울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서울 중심부에도 인왕산이나 북악산, 안산 등 적잖은 면적의 산지가 포함돼 있고 이들은 북서방향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막아내는 천연 방어벽 역할을 할 수 있다. 더욱이 240㎜ 방사포든 170㎜ 자주포든 서울 중심부는 정밀한 조준사격이 가능한 유효사격거리에 포함되지 않고 대신 최대사거리에만 포함될 뿐이다. 산지를 피해가며 번화가에만 포탄을 떨어뜨리는 일은 불가능하고, 일정한 범위를 설정해 일제사격으로 쏟아 부은 포탄의 상당량은 북쪽과 서쪽의 산봉우리를 맞히고 말 공산이 크다.
정리하자면 포탄 1발의 피해범위에서 120㎜와 240㎜는 최대 4배의 차이가 있고, 떨어지는 포탄의 개수는 서울이 최대 150배 많지만 면적 차이에 따른 집중도를 감안하면 종로구에 모든 포탄이 떨어져도 16배까지 줄어든다. 인구밀도의 경우 유동인구를 포함해도 90배 정도가 최대치다. 이를 종합하면 서울이 당할 피해는 연평도의 5760배에 달할 것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연평도 피해의 5760배
이제 마지막 단계다. 군은 연평도 포격으로 사망자 2명, 중상자 5명, 경상자 10명 등 총 17명이 피해를 당했다고 발표했다. 민간인의 경우 사망자 2명이 확인됐고, 인천시가 집계한 부상자 숫자는 43명(이 가운데 20명이 사건 발생 후 2주 이상 입원치료를 받았음)이다. 여기에 앞서 도출된 공식을 곱하면, 서울 중심부에 장사정포 공격이 집중될 경우 사망자는 2만3040명, 중상자 14만4000명, 경상자 19만80명이 발생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총 인명피해 규모는 26만명에 조금 못 미친다. 2006년 합참 자료의 325만명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물론 장사정포 공격이 중구와 용산구 등으로 넓어질 경우 피해범위 내에 있게 될 시민의 숫자가 늘어나므로 인명피해도 늘 것이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렇게 포탄이 분산되면 집중도도 떨어지게 되므로 발생하는 인명피해 규모의 총량은 종로구로 한정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러한 결과는 연평도 포격 데이터로는 추적할 수 없는 170㎜ 자주포의 위력을 더해도 대동소이하다. 합참 자료에 따르면 170㎜ 자주포는 시간당 발사 포탄수가 240㎜ 방사포의 4분의 1에 불과하고, 1발당 피해면적은 5분의 1이 조금 안 된다. 다시 말해 240㎜ 피해면적의 20분의 1에 불과한 것. 다만 방사포탄의 자탄과 달리 170㎜ 자주포는 콘크리트를 관통할 수 있으므로 대형 건물 내부의 인명피해가 일부 증가할 수 있지만, 이 역시 건물이 무너지는 수준의 파괴력은 아니다.
재산피해의 규모도 개략적으로나마 유추가 가능하다. 앞서 계산한 포탄의 위력(4배)과 집중도(16배) 차이를 종합하면 연평도와 서울에 대한 포 공격 사이에는 64배의 위력 차이가 있다. 2010년 국토해양부 표준지 공시지가에 따르면 연평도 면사무소 인근의 중심가 공시지가는 대략 4만~5만원 선이고, 서울 중심가인 세종로 주변 고층빌딩 지역의 공시지가는 1300만~3500만원 수준으로, 부동산 가격 차이가 300~700배 된다. 이러한 차이가 그대로 연평도와 서울의 재산규모 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계산을 위한 비례용 척도로는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인천시는 연평도 포격으로 118채의 가옥이 손상을 입어 50억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를 포탄의 위력과 집중도 차이에 대입해보면 서울의 재산피해는 96조~224조원에 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략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30~60%, 1년 국내총생산(GDP)의 10~20%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인천시의 집계는 민간주택 피해만 집계한 것으로 공공시설물이나 군부대 시설, 전기·통신 등의 피해는 합산하지 않은 것이었다. 따라서 서울에서 예상되는 피해금액 역시 이러한 부분은 제외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주유소,가스관, 화학탄
물론 이러한 단순계산에는 반영되지 않은 변수들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결과에 영향을 얼마나 미칠지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요소들이다. 예를 들어 외벽 대부분이 유리로 된 서울 중심부의 초현대식 건물들이 그렇다. 방사포 자탄이 콘크리트 관통력이 없다지만 유리로 지은 건물은 훨씬 약한데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리 파편이 거리로 쏟아져내리면 인명피해를 증가시킬 공산이 크다. 주유소와 도시가스 배관시설이 직접타격을 받을 경우 대형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불바다’를 유발하는 추가요소다. 종로구에는 주유소가 10개에 불과하지만, 중구에는 15개, 용산구에는 21개나 자리하고 있다.
보수적인 전문가들과 군 당국이 우려하는 가장 심각한 추가변수는 북한이 장사정포에 화학탄을 탑재하는 경우다. 2004년 미국 랜드(RAND) 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연구원은 “240㎜ 방사포 로켓 1발에는 8㎏의 사린가스를 적재할 수 있다”며 대규모 화학탄 공격이 발발할 경우 사상자가 수백만 규모로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이러한 화학탄 공격은 바람이나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는 까닭에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서울 중심부의 경우 수천 명 수준의 경미한 피해만 주고 날아가버릴 것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같은 2004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은 “1t짜리 화학탄두라도 치명적 살상반경은 500m 내외에 불과하다”며 화학탄 위협이 과장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실제 피해가 산술적 계산보다 오히려 적어질 것이라고 판단케 하는 변수도 많다. 우선 조기경보의 문제다. 연평도의 경우 군과 민간인 모두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징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격을 받았지만, 수도권에 대한 대규모 장사정포 공격이 이렇듯 완벽한 기습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서해 5도에 대한 포 사격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형태지만 장사정포 공격에 대해서는 그간 한미 양국군이 무인항공기와 군사위성 등 다양한 정보수집·감시 체계를 구축해놓았기 때문이다.
육군 교육사령부 교범에 따르면 170㎜ 자주포의 운용인원은 12명, 240㎜ 방사포의 경우 6명으로, 서울을 사거리에 둔 장사정포의 운용인원만 도합 3000명에 달한다. 불과 18문이 동원된 연평도 상황과 달리 이 같은 규모의 병력이 전면적인 공격을 준비할 경우 우리 측 감시체계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서두에서 소개한 혹은 앞서의 추산에서 상정한 ‘완벽한 기습 성공’은 말 그대로 최악의 최악을 거듭한 시나리오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북한의 포 전력을 격파하는 능력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연평도의 경우 북측의 사격 원점을 파악해 대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문제점이 확인됐지만,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는 장사정포의 경우 이미 대부분의 갱도진지 위치가 우리 측 정찰자산에 의해 확인되어 각각의 대응 무기체계에 표적으로 할당돼 있는 상태다. 여기에는 K-9 자주포나 MLRS(다연장로켓포) 등 지상군뿐 아니라 F-15K와 KF-16 등 항공자산도 포함된다.
특히 서울에 대한 포격은 전면전 상황이므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전투기·폭격기 역시 조기에 출격해 갱도진지 무력화에 나서게 된다. 장사정포 위협이 확인된 이래 한미연합군이 준비해온 이른바‘대화력전(對火力戰)’이 그것이다(상자기사 참조). 장사정포 공격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대부분 ‘개전 초 한 시간’을 전제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반격에 의해 장사정포 상당부분이 초기에 무력화될 수 있다는 가정에 따른 것이었다.
분명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 숫자로는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이 갖는 전략적 의미를 충분히 담아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는 뜻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단 한 발만 서울에 떨어져도 그 심리적·정치적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으므로 피해 예측 시뮬레이션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망자가 2만명이든 20만명이든 남측의 전쟁수행 의지에 미치는 영향은 별 차이가 없으리라는 것. 북측이 수도권 민간지역을 타격할 수 있도록 장사정포를 전진배치한 것이나 화학탄 탑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은 모두 그러한 ‘공포효과’를 최대화해 억제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측면이 있다.
뒤바뀐 입장
그러나 그간 장사정포의 서울 공격에 대해서는 서두에서 살펴본 것처럼 합리적이지 않은 방법론으로 수백만이라는 숫자를 쉽게 거론하는 측과 거꾸로 뚜렷한 근거 없이 이를 축소하려는 측이 맞서 정치적 논쟁을 거듭해왔다. 2004년 10월 국회에서 여야 간에 벌어진 장사정포 위협 논란이 대표적이다. 당시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전쟁 발발시 시간당 2만5000여 발이 쏟아져 1시간 만에 서울의 3분의 1이 파괴된다”고 주장하자,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턱없는 과대평가”라고 반박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 차이는 이러한 구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6년의 시간이 흐른 뒤 상황은 뒤바뀌었다.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은 2010년 5월24일자 칼럼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육·해·공 합동으로 3일 내에 북한 장사정포의 최소 70%를 파괴하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만약 북한이 도발해도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의 핵심목표를 폭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군 관계자들의 발언을 소개했다. 칼럼이 발표되자 진보진영의 주요 인사들과 매체들은 “전쟁의 참화와 북한의 군사위협을 턱없이 과소평가하는 광적인 ‘전쟁불사론’”이라며 비판에 나섰다. 장사정포 위협의 객관적인 실체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이에 대한 평가는 정반대로 바뀐 셈이다.
사망자 2만3000명, 재산피해 224조원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3일만 참으면 되는 숫자인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참혹한 규모인지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정보의 부족, 객관적인 평가의 부재가 토론을 말싸움이나 정치 논쟁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을 논거로 삼아 극단적인 위협 과장이나 낙관론을 펼치는 것은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안을 내놓는 작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전인수 격 주장을 넘어 시뮬레이션 자료를 통해 설득력 있는 위협 평가에 접근하는 일이 긴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시각이 아니라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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