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박정희 후예”라는 보수, 박정희 꿈과 반대로 가고 있다

[이근의 텔레스코프]

  •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입력2024-12-1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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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화 세력으로 보기 민망한 현재 보수 

    • 박정희의 근대화 = 경제·사회·문화적 전근대 타파 

    • 관존민비·관용차·권위의식… 전근대 의식 만연한 보수 

    • 보수여! ‘근대화 2.0’ 목표로 다시 뛰어라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개통 테이프를 끊고 있다. [동아DB]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개통 테이프를 끊고 있다. [동아DB]

    과연 우리나라는 근대화를 이룩한 선진국인가. 보수의 근대화 프로젝트는 목표를 달성했는가. 지금의 자칭 보수 세력을 근대화 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근대라는 시대에 살면, 전근대적인 것은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인가.

    이른바 보수 정부 집권하에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서 필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1970~1980년대에 청년 시절을 보낸 나와 같은 세대는 군사 쿠데타, 권위주의, 비상계엄을 온몸으로 경험했고, 민주화 투쟁과 최루탄이 일상이었다.

    신문엔 주기적으로 간첩 사건과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등장했다. 언론은 통제돼 신문 기사의 행간을 읽는, 엄청난 독법 능력을 키워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세대는 나라에 대한 걱정을 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 같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하다 보면 ‘전근대’라는 단어를 계속 마주하게 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국가에서 전근대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고, 풀어야 할 과제라는 것이 웬 말인가 싶겠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이 그렇다.

    근대화를 고속으로 달성하다 보니 근대화된 부분도 많지만, 그 근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전근대적 요소가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아 있는 전근대적 요소들은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제어하는 관습, 문화, 태도, 철학, 세계관에 관한 것이 많다. 이에 근대적 하드웨어를 전근대적 소프트웨어로 돌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마치 조선시대 관리들이 최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관청에 행차하는 모습이라고 할까. 첨단 무기의 전쟁에서 전통 무술을 뽐내는 것이라고 할까. 상당한 부조화가 생겨난다.

    근대화 세력 표방하는 전근대화 세력 보수

    지금 우리의 자칭 보수 세력은 근대화라는 업적을 이뤘다고 자부한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빠른 속도의 경제성장으로 근대화의 기적을 달성했다고도 한다. 또 근대화 과정에서 독재·권위주의·인권탄압·노동탄압 등이 있었지만 이는 고속 경제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었으며, 이러한 물질적 성장의 바탕 위에서 민주화·선진화가 이뤄질 수 있었다고 강변한다.

    그래서 근대화 세력인 한국의 보수 세력은 근대화라는 보수의 목표를 이미 달성했기 때문에 새로운 비전을 찾지 못한 채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그 나름의 분석과 해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한가. 지금의 자칭 보수가 정말 근대화 세력인지 알기 위해 그들이 “대한민국 보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근대화 프로젝트로 다시 돌아가 보자. 자식들이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작금을 보면 현 보수는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근대’라는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자식들은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형국이 아닌지 성찰해 봐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의 보수 세력은 불행하게도 근대화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전근대화 세력’이 되고 있다. 그들의 문화·태도·세계관·철학이 모두 전근대를 향하고 있다. 근대를 전근대로 돌리고 있다면, 이는 나라를 망치는 일이 아니겠는가.

    박정희는 경제성장만을 꿈꾸지 않았다

    2023년 10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묘소를 참배한 후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2023년 10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묘소를 참배한 후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박 전 대통령은 1961년부터 1980년까지 20년 동안 연평균 9%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세계적 지도자다. 1945년 이후 신생독립국이 된 150여 개의 국가 가운데 이러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박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보수가 자랑하는 근대화의 아버지가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경제성장이다. 하지만 그가 달성하고자 했던 근대화는 단순히 경제성장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전 국가인 조선과 대한민국의 ‘전근대적 요소’를 타파하는 것이 그가 생각한 근대화의 ‘총체적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가 조선일보에 쓴 ‘군인 박정희를 세계적 지도자로 만든 세 가지 깊은 생각’이라는 글에서 박 전 대통령의 생각을 느낄 수 있다. 송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의 저서 ‘우리 민족의 나갈 길’과 ‘국가와 혁명과 나’의 내용을 인용했다.

    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사대(事大)주의, 게으름, 불로소득 관념, 개척 정신의 결여 같은 나쁜 유산들로 인해 민족성이 악화되고 관존민비(官尊民卑)와 공인(工人)에 대한 천시가 굳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은 ‘5·16 군사정변’의 의의(意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이것은 멀리는 고·중세대, 가까이는 이조(李朝) 오백 년간의 침체와 왜제(倭帝·일본의 통치) 36년간의 피맺힌 학정, 해방 이후 고질을 총결산하여 다시는 가난하지 아니하고, 약하지 아니하고, 못나지 아니한 예지와 용기와 자신을 가진 신생민족의 우렁찬 신등정(新登頂)이다.”

    또 송 교수는 서민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애정도 기술했는데, 이를 통해 ‘서민들이 잘사는 나라’가 박 전 대통령의 최고 통치 목표였음을 보였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관직을 둘러싼 당쟁, 파당주의, 특권의식, 그리고 이에 물든 정치인들에게는 환멸과 염증을 표했다며 이 부분을 인용했다.

    “또다시 전(前)근대적인 파당의식의 포로가 되어 정쟁(政爭)을 일삼는(…) 돈과 감투 분배에 눈이 어두운(…) 사리사욕(私利私慾)으로 뭉친 도당(…) ‘입으로 정치’하는 습성을 타파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의 근대화 프로젝트가 타파하려고 했던 전근대적 관습·문화·태도·세계관을 몇 개의 단어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대주의, 불로소득 관념, 개척 정신의 결여, 관존민비, 공인에 대한 천시, 관직을 둘러싼 당쟁과 파당주의, 특수 특권의식, 돈과 감투 분배에 눈이 어두운 사리사욕으로 뭉친 도당, 입으로 정치하는 습성 등이다.

    이러한 것들은 근대화 격변기에 조선과 대한민국을 뒤처지게 하고, 식민지로 전락하게 만든 전근대적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보수 정부하에서 이러한 것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부활하고 있다. 관존민비의 사상은 국회와 정부, 사법부의 고관들에게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선거 때와 뉴스에 나올 때만 국민을 위하는 척하고, 그때를 제외하면 ‘고관대작’들은 단지 고위공직자라는 이유로 특권의식에 젖어 권위적 행태를 보이곤 한다.

    고위직이기에 신분 차별이나 ‘갑질’을 해도 된다는 생각은 전근대적 발상이다. 근대인 지금은 어떤 고위직이라 하더라도 단지 여러 직업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직위가 위로 올라갈수록 고도의 판단력과 책임을 지는 위치로 올라가는 것일 뿐, 적정한 절차 없이 생사여탈권을 갖도록 권한이 부여되지 않는다. 대신 책임에 상응하는 금전적·상징적 보상을 하는 것이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규칙이다.

    보수가 칭송하는 박 전 대통령은 바로 저 특권의식, 관존민비의 전근대적인 행태를 바로잡고자 했는데 지금의 보수 세력은 박정희가 가장 혐오하는 행태를 그대로 살려내고 있다. 근대화 세력이 아니라 전근대화 세력이 된 셈이다.

    근대 하드웨어를 전근대 소프트웨어로 돌리니…

    보수는 근대적 전문성을 가진 세력이어야 한다. 하지만 보수는 정권을 잡으면 전문성과 상관없이, 자기 진영 사람들의 자리를 챙겨주는 게 가장 중요한 업무처럼 돼버렸다. 정적(政敵)을 날리고, 자기 사람 챙기는 것이 일상이던 조선시대를 보는 것 같다.

    내 사람을 꽂고, 남의 사람은 막고, 전문성보다 충성심과 사리사욕이 더 강력한 인사 기준이다. 사람에 대한 충성보다 법과 원칙을 더 중요시하고, 국민을 우선시하면 “배신자” “반역” “의리 없는 놈”과 같은 전근대적 욕설이 난무한다.

    전문성·정책의 영역에서 배신·의리 같은 전근대적 기준이 왜 나와야 하는가. 의리·파벌·이권 카르텔로 인사를 하니 실력도 없고, 전문성도 없고, 비전과 리더십도 없는 사람들이 기관장을 맡아 초고속으로 기관을 망가뜨린다. 근대의 하드웨어를 전근대적 소프트웨어로 돌리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전근대적 병폐는 근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법치’를 무시한 범법자를, 단지 반역자·배신자가 되지 않으려고 보호하는 일이다. 자기 쪽 사람은 아예 공소조차 하지 않는 검사들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니고, 몇몇 보수 정당의 ‘나으리’들은 범법, 심지어 내란이 의심되는 무지막지한 일을 도모한 ‘주군’마저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보호하려 한다.

    2021년 9월 28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왼손에 ‘임금 왕(王)’자가 적혀있다. [동아DB]

    2021년 9월 28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왼손에 ‘임금 왕(王)’자가 적혀있다. [동아DB]

    ‌게다가 그 주군은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는 등 주술에 심취해 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그야말로 박 전 대통령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지금의 보수 정당은 전근대를 수호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역시 정당이라는 근대적 하드웨어를 전근대 소프트웨어로 돌리고 있으니 정당이 온전할 리 없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윗사람을 모시는 전근대적 의전 역시 가관이다. 고관이 행차하면 수십 명이 의전에 동원되고, 동선과 자리 배치에 조금이라도 불편이 생기지 않도록 직원들이 쩔쩔맨다. 자리 배치와 사진 촬영 배치도 중앙이 아니면 큰일이다. 일본 자동차 회사 토요타의 한국 지사에서 만들어낸 말 가운데 ‘하차감’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차의 승차감이 아니라 차에서 내릴 때 받는 대우, 즉 하차감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크고 비싼 고급차가 많이 팔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이 나오는 이유도 전근대적 신분 문화와 의전 문화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모두 쓸데없는 인력·세금 낭비다.



    보수가 진정 박정희 후예라면 ‘졸부 사회’ 벗어나야

    이외에도 전근대적 소프트웨어는 무수히 많다. 공사 구별 없이 공적 권한을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등 마음대로 권한을 남용하는 일이 빈번하다. 지금 대한민국이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무너지는 징조가 있다면, 그것은 전근대 소프트웨어로 인해 여기저기서 망가지고 있는 기관과 조직들이다. 그 합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이루는 것이니 전근대적 소프트웨어는 가히 국가적 위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눈을 국내가 아닌 국제로 돌려도 국가적 위협은 전근대적 리더이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국제질서인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근대 질서다. 과학, 법, 다자 규범, 보편 가치, 합리적 시장원리에 의해서 돌아가는 질서다.

    지금 이 질서를 흔드는 국가, 즉 러시아·중국·이란·북한은 전근대적 지도자들이 전근대적 세계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또한 근대국가라는 하드웨어를 전근대적 소프트웨어로 돌리고 있으니 나라가 온전할 리 없다.

    박 전 대통령이 그렸던 근대사회는 물질적 풍요만 있는 ‘졸부 사회’가 아니다. 관습, 문화, 전통, 태도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물질적 하드웨어와 함께 근대화된 사회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근대화의 꿈을 가장 처참하게 짓밟는 세력은 바로 자칭 “박정희의 후예”라고 하는 보수 세력이다. 보수 세력은 이제 ‘근대화 2.0’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다시 국민과 함께 뛰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추앙하는 박 전 대통령의 꿈을 온전하게 이룰 수 있다.

    이근
    ‌● 1963년 출생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 외교안보연구원(국립외교원) 교수
    ●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위원회 의장
    ●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 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저서: ‘도발하라’ ‘대한민국 넥스트 레벨’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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