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호

일일이 선관위 해석 구하는 선거법은 정상인가

[이동수의 투시경] “내란 공범”은 되고 “이재명은 안 됩니다”는 안 된다던 선관위

  •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입력2025-02-0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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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공정’ 논란으로 번진 현수막 게시 불가 방침

    • 선거법, 단행본 두 권 분량으로 방대하고 복잡

    • 엄격한 선거법 규정, 선거 때마다 선거사범 양산

    • 신인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현행법이 진짜 기득권

    • 일일이 선관위 유권해석 구해야 하는 선거법은 비정상

    중앙선관위 전경. [뉴스1]

    중앙선관위 전경. [뉴스1]

    바야흐로 선거관리위원회 수난 시대다. 안으로는 계엄군이 들이닥치고 밖에서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부정선거론’을 제기하고, 정치인 몇몇은 대통령 의중과 국민 여론 사이에서 그 나름의 절충안을 찾았는지 부정선거라고는 말 못 하고 “부실 선거는 맞지 않느냐”고 한다. 요즘처럼 선거 없는 기간에 이토록 선관위가 주목받은 경우도 별로 없다.

    그런 선관위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현수막 때문이다. 논란은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 지역구인 부산 수영구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11일 조국혁신당이 수영구 일대에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 불참, 정연욱도 내란 공범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게시한 것. 이에 정 의원은 맞불을 놓는 차원에서 “그래도! 이재명은 안됩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게시하려 했다. 그런데 선관위가 정 의원 현수막에 게시 불가 방침을 내렸다. 사전선거운동 위반이라는 이유였다.

    공직선거법 254조는 누군가의 당선 또는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사전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선관위는 조국혁신당의 ‘정연욱 저격’은 다음 총선이 3년 넘게 남은 만큼 사전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반면 정 의원의 ‘이재명 저격’은 조기 대선이 곧 치러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낙선을 위한 사전선거운동 성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표현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당연히 반발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결정을 보류하고 전체 위원회를 열어 이 사안을 재논의했다. 결국 게시 불허 통보 5일 만에 해당 문구를 허용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이재명은 안됩니다”라는 표현을 사전선거운동이 아닌 단순 정치 구호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확대 운용한다고도 했다. 2024년 12월 24일 정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선관위 인정 현수막] 그래도! 이재명은 안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게시했다.

    선관위 번복, 단순 해프닝 아니다

    선관위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이재명은 안됩니다”라는 문구를 금지 또는 허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공직선거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었을 거다. 그러나 선관위의 번복을 단순 해프닝으로 보고 넘기기는 어렵다. 정치권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법은 그대론데 선관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선거법 유무죄가 갈린다. 때로는 하나의 법을 놓고 지역선관위와 중앙선관위가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2016년 ‘젓가락 논란’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뜬금없이 김밥과 젓가락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일부 지역선관위가 “김밥을 젓가락과 함께 제공하는 건 식사 접대”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사무소를 찾는 지역구민에게 과자나 떡, 김밥 등 간식을 제공하는 건 허용된다. 하지만 식사 접대는 불가능하다. 당시 논리를 요약하자면 김밥을 이쑤시개로 찍어 먹으면 간식이라 문제없고,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면 식사라서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논란은 중앙선관위가 “문제없다”고 입장을 내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중앙선관위는 “지역선관위 직원이 잘못 설명했다”고 해명했다.

    1년 내내 선거법만 살펴보는 선관위조차 혼선을 빚는 건 우리나라 공직선거법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279개 조항으로 구성된 공직선거법의 글자 수는 약 29만 자에 달한다. 200자 원고지로 1500매쯤 된다. 300쪽짜리 단행본이 보통 원고지 1000매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선거법 하나가 단행본 한두 권 분량의 내용을 담고 있는 셈이다.

    공직선거법 백미는 단연 선거운동 관련 조항이다. 우리나라 선거법은 선거운동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걸로 악명 높다.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사람만이,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하도록 세세히 규정한다. 명함도 ‘길이 9센티미터 너비 5센티미터 이내(공직선거법 제60조의3)’ 크기로 만들라고 한다. 뒤에는 명함을 나눠주는 장소에 관한 추가 조건도 붙는다. ‘선박·정기여객자동차·열차·전동차·항공기의 안과 그 터미널·역·공항의 개찰구 안, 병원·종교시설·극장의 옥내(대관 등으로 해당 시설이 본래 용도 외의 용도로 이용되는 경우는 제외한다)’에서 명함을 주거나 지지를 호소할 순 없다고. 읽는 것만 해도 숨 막힌다.

    규제가 만들어낸 ‘웃픈’ 현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 선거가 끝나면 수십, 수백 명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입건된다. 난다 긴다 하는 법률가 출신 의원들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곤욕을 치른다. 2021년 8월 상인연합회 간담회차 대구 서문시장에 방문했다가 졸지에 선거법 재판을 받게 된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감사원장을 그만두고 대선을 준비하던 그는 지지자들의 요청에 따라 현장에 있던 소형 마이크로 1분가량 간단한 인사말과 지지 호소 발언을 했다. 이게 문제였다. 공직선거법은 허용된 기간 이외에는 마이크 등 확성장치를 통한 지지 호소를 금하기 때문이다. 이 일로 최재형 전 의원은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다. 판사 출신으로 30년 경력의 법률가인 그도 선거법의 덫을 피할 순 없었다.

    ‘선거사범’이라고 하면 으레 공무원들을 선거에 동원하거나, 부정한 돈을 살포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도 없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많은 경우 선거법 위반은 사소한 데서 발생한다. 앞선 사례처럼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 때에 무심코 마이크를 잡는다든지, 선거를 앞두고 기관이나 단체 사무실을 방문해 지지를 부탁하는 행위가 그렇다. 선거 때 홍보용 피켓을 바닥에 내려놓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68조(어깨띠 등 소품)는 표찰·수기·마스코트 등의 소품을 ‘몸에 붙이거나 입거나 지니고’ 선거운동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켓을 들고 있다가 팔이 아프다고 잠깐 내려놓는 순간, 그 피켓은 선거법상 광고를 위한 ‘시설물’로 취급받을 수 있다.

    이처럼 별의별 게 다 선거법 위반이 되다 보니 선거철이 되면 선관위 직원들의 단속과 캠프 관계자들의 읍소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혹여라도 있을지 모를 선거법 위반 가능성을 없애려면, 어디에서 어떤 유세를 할 것인지 선관위에 일일이 문의한 뒤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법이 워낙 복잡해 선관위도 즉답을 하지 못한다. “검토해 보고 답변드리겠다”고 한다. 그렇게 또 하루이틀이 지난다. 후보 중에는 가뜩이나 짧은 선거운동 기간을 절약하기 위해 이벤트 준비와 선관위 문의를 병행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그러다가 선관위로부터 “안 된다”는 답변이 오기라도 하면 기껏 준비한 이벤트를 직전에 취소해야 한다. 이런 일은 흔하게 벌어진다. 이해할 수 없는 규제가 만들어낸 한 편의 시트콤이다.

    규제가 너무 많아지면 제도는 현실과 괴리되게 마련이다. 법이 있는 현실을 부정하면 음성적 영역만 커진다. 선거법이 그렇다. 선거법상 선거를 돕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급여나 식비를 제공하는 건 금지돼 있다. 당 선거나 예비후보 기간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인간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대선처럼 ‘덩어리가 큰’ 선거는 길게는 1년 전부터 사실상의 대선 캠프가 꾸려진다. 그 시간 동안 급여는커녕 식비도 받지 않고 일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때 나 몰라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책임감 있는 리더들은 어떻게든 비용을 마련해 금일봉으로 지급하곤 한다. 정치권에서 종종 문제 되는 ‘돈봉투 사건’은 사실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것처럼 검은돈의 성격만 갖고 있지는 않다. 실상은 자원봉사자들 수고비 성격을 띠는 경우도 많다. 깨끗한 선거를 만들자며 과도하게 규제한 게 오히려 음성적 영역을 더 키운 꼴이다.

    1948년 미군정 법령 제175호 국회의원선거법이 마련될 때만 해도 선거법은 9장 55항으로 비교적 단순했다. 오늘날 가장 큰 비판을 받는 조항 중 하나인 사전선거운동 금지 조항도 없었다. 그러다 1952년 5월 부산정치파동을 거치며 선거운동 기간과 방식 등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했다.

    명목은 끝없는 선거운동으로 인한 폐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기성 정당에 대한 불만으로 무소속 의원들이 약진한 게 컸다. 여당인 자유당과 야당인 민주당은 오랜 합의 끝에 1958년 선거운동 기간을 제한하고 사전선거운동도 금지하는 선거법을 탄생시켰다. 기탁금 제도도 이때 도입됐다. 그러자 무소속과 정치 신인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실제로 제2대 국회에서 전체의 60%를 차지하기도 했던 무소속 의원 비중은 제4대 국회(민의원)에서 11%로 급감했다. 35%가량이던 제3대 국회와 비교해도 3분의 1로 줄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장면이 담긴 내부 CCTV를 공개했다. [뉴스1]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장면이 담긴 내부 CCTV를 공개했다. [뉴스1]

    정치개혁은 선거운동 조항 개혁에서부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정치권에선 다시 개헌을 비롯한 정치개혁 논의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국회의 반대에도 인사를 강행하고, 타협점을 찾기보다 재의요구권을 남발해 국정을 마비시키고, 심지어 비상계엄까지 발동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자는 게 핵심이다.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건 개헌의 단골 소재다. 덩달아 양당제를 공고히 하는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개혁 방안으로 제기된다.

    각 주장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건 정치개혁 방안으로 제기되는 주장 상당수가 당장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적 내용을 담고 있거나 현역들의 유불리 싸움에 그친다는 점이다. 메시지의 당위성만으로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개헌해서 정치를 바꾸자는 정치인들은 그 개혁이 현실로 닥쳤을 때 곧이곧대로 수용할 수 있을까. 평소 4년 중임제와 대통령 권한 축소를 주장해 온 이재명 민주당 대표만 해도 정작 자신이 대통령을 목전에 둔 상황이 되니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대표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정치인 중 상당수는 그 개혁으로 본인이 손해를 입게 되면 입장을 선회할지 모른다. 정치인들의 이상적 이야기는 “현실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헌법이나 선거체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것보단 공직선거법 하나를 바꾸는 게 더 쉽다. 그게 현역들의 기득권을 깨는 데도 더 유효하다. 앞서 언급한 사전선거운동 금지 조항이 대표적이다. 현역 정치인에게는 유권자를 만나고 행사에서 축사하는 등 ‘통상적 정치활동’이 모두 선거운동이다. 현역들은 지역에 사무실을 둘 수 있고, 보좌진을 자신의 정치활동에 동원할 수도 있다. 이들이 누리는 이러한 권리를 원외 경쟁자나 신인들은 대부분 누리지 못한다. 공직선거법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매우 짧게 설정함으로써 그들이 평소 지지를 호소하는 것도 막아놓았다. 상대의 양손을 다 묶어놓고 권투 경기를 하겠다는 격이다.

    “내란 공범”은 되고 “이재명은 안됩니다”는 안 된다고 해서 논란이 된 선관위 당초 결정은 선관위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선거법이 문제다. 온갖 것을 다 규제해 놓은 까닭에 말 한마디 하는 데도 일일이 선관위의 해석을 구해야 하는 선거법이 정상이라고 할 순 없다.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서라면 선거운동을 자유롭게 하되 공무원 동원, 금품 살포, 여론조작 등 몇몇 핵심적인 것만 금지하면 된다. “이재명은 안된다”는 현수막 건다고, 강당에서 마이크 한번 잡았다고 선거법 위반이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선거법이야말로 현역들의 진짜 기득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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