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문재인이 3040男 ‘尹 탄핵 여론’ 나눴다

[이동수의 투시경] 탄핵 앞에 놓인 ‘보이지 않는 단절선’

  •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입력2025-03-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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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향수’가 사대남 민주당 지지 이끌어

    • ‘노무현 죽음’ 죄책감 느낀 사대남, 검찰 상징 尹 반발

    • 삼대남, ‘노무현 향수’ 없고 ‘문재인 반감’ 강해

    • 부동산·남녀 갈등에 삼대남 진보 진영서 이탈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한 후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동아DB]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한 후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동아DB]

    사람은 대체로 젊을 때 진보 성향을 보이다가 나이 들며 차츰 보수적으로 변한다. 이를 잘 보여준 것이 2002년 16대 대선과 2012년 18대 대선이다. 청년층과 노년층의 ‘세대 대결’이 펼쳐졌던 두 선거에서 청년층은 노무현·문재인 후보를, 고령층은 이회창·박근혜 후보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선거는 중장년층에 의해 좌우됐다.

    오늘날 이 공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2030 남성이 진보에서 이탈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30대 남성이 20대 남성과 동질성을 공유하지만 40대 남성과는 상반된 정치적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2030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가 대표 사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관련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갤럽이 2월 28일 발표한 ‘2월 통합교차집계(2~4주차 통합)’ 결과에 따르면 30대 남성의 42%가 국민의힘·개혁신당(보수 계열 정당)을 지지했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진보 계열 정당) 지지율은 31%였다. 무당층은 26%다. 조사 당시 탄핵 정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30대 남성은 보수세가 상당히 강하다. 반면 40대 남성은 29%만 보수 계열 정당을 지지했다. 반면 진보 계열 정당 지지율은 55%에 달했다. 무당층은 15%였다. 해당 조사에서 20대는 30대와, 50대는 40대와 방향을 같이했다.

    탄핵 찬성하는 사대남 vs 반응 유보하는 삼대남

    태어난 시점이 그리 멀지 않은 30대 남성과 40대 남성의 정치적 태도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놓고도 엇갈렸다. 40대 남성은 강한 강도로 탄핵에 동의하고 있다. 앞선 여론조사에서도 40대 남성의 74%가 탄핵에 찬성했다. 반대는 24%, 모름·응답 거절은 2%였다. 반면 30대 남성 여론은 다소 유보적이었다. 찬성 55%, 반대 37%, 모름·응답 거절이 8%다. 강하게 반대하지는 않지만 압도적으로 찬성하지도 않았다. 이른바 ‘삼대남(30대 남성)’과 ‘사대남(40대 남성)’은 어쩌다 이렇게 다른 집단이 됐을까. 두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단절선’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힌트는 이들의 20대에 있다.

    40대는 2000년대에 20대를 보냈다. 그들의 청춘은 뜨거웠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유례없는 4강 신화를 달성했고, 중국이 세계 무역 시장에 편입되며 새로운 기회가 펼쳐졌다. 무엇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었다. 지역주의 타파, 권위주의 청산을 내세우며 등장한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돌풍을 이끈 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무장한 2030이었다. 이들은 기성 정치인과 다른 모습의 노 전 대통령에 열광했고 자발적으로 헌신했다. 노 전 대통령의 팬클럽 ‘노사모’는 온라인에서 조직을 확대해 나갔고, 딴지일보와 서프라이즈 같은 웹사이트는 진보 진영에 무기가 될 논리를 제공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출구조사에 따르면 노무현 후보를 선택한 20대는 59%로 20대 대선 당시 출구조사에서 윤석열 후보의 20대 남성 득표율(58.7%)이나 이재명 후보의 20대 여성 득표율(58%)보다 높다.

    노 전 대통령과 청년의 허니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은 곧장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4대 개혁 입법에 매진했다. 이념적 성격이 짙은 관련 법안은 커다란 반발을 초래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개혁의 고삐를 죌수록 지지층 이탈은 계속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기 중반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인터넷에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유행어가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온라인은 청년층 중심의, 진보 색채가 짙은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서조차 노 전 대통령은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임기 말 그를 지지하는 청년은 많지 않았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2030 세대 절반 이상이 이명박·이회창 등 보수 후보를 선택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선 아예 투표를 포기했다. 이 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은 28.1%에 그쳤고,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압승을 거뒀다. 오죽하면 진보 진영에서 ‘20대 책임론’이 제기될 정도였다. 청년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체제 순응적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진보에서 멀어지던 청년을 붙잡은 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진보 진영은 물론 2030 사이에서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감정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의 분향소에서 “나 당신 싫어했어. 그런데 이렇게 가면 안 되잖아”라며 절규한 어떤 고시생의 모습은 한때 그를 지지했던 세대가 가진 부채 의식을 보여준다. 이 부채 의식은 보수 정권과 검찰을 향한 분노로 치환됐다.

    “극악무도한 정치검찰에 아이콘 잃어선 안 돼”

    분노는 10년 뒤 ‘조국 사태’를 맞아 한층 강화됐다. “조국 수호”라는 당시 구호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를 간직한 세대가 가진 결의를 보여준다. “또다시 극악무도한 정치검찰로부터 우리의 아이콘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민주당과 그 지지자는 검찰개혁에 모든 것을 걸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 등 해묵은 검찰개혁 과제가 일사불란하게 처리됐다. 아이러니한 건 민주당과 지지층이 강하게 나올수록 오늘날 2030의 지지는 허물어졌다는 사실이다.

    반면 30대는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추억이 별로 없다. 현재 38세인 1987년생만 하더라도 그가 당선될 때 중학생이었다. 이들이 ‘대통령 노무현’을 기억하는 게 있다면 화끈한 연설이나 1년 만에 사라진 ‘수능등급제’ 정도다. 당시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았던 20대는 말할 것도 없다.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이유로 참여정부 시절 성과보다 그의 인간미를 꼽는다. 지역주의에 맞서 손해를 감수했고,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 대해 “짜지 않은 소금이 무슨 소금이겠냐”며 쿨하게 넘긴 모습은 요즘 정치인에게서 볼 수 없는 면모다.

    하지만 동시대를 공유하지 않으면 인간미를 체감하기 어렵다. 마치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586세대가 남북 화해에 치를 떠는 이전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영상이나 텍스트는 있으니 2030 세대도 노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서라도 민주당과 진보 진영을 지지할 유인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다른 모든 조건’ 가운데 핵심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리서치뷰가 1월 2일 발표한 여론조사는 재미있는 대목을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해당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는 세대별로 ‘대통령 호감도’를 물었다. 2030 여성은 전·현직 대통령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에 가장 호감을 느꼈고, 다음은 문 전 대통령이었다. 2030 남성도 노 전 대통령에 가장 호감을 느낀다는 점에선 같았다. 그런데 박정희·이명박·김대중 전 대통령이 뒤를 이으며 차이가 나타났다. 문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동률이거나, 0%의 선택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노 전 대통령을 가장 좋아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별로라는, 얼핏 경향성 없어 보이는 결과는 요즘 2030 남성의 정치적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 당시 극심한 남녀 갈등은 2030 남성이 진보 진영에서 이탈한 핵심 요인이다. 남녀 갈등은 30대보다 20대에 더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는 남녀가 경쟁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30대가 돼 결혼·출산을 경험하다 보면 남녀 간 입장 차가 좁혀지는 측면도 있다.

    왜 30대는 왜 20대 못지않게 진보 진영에서 이탈했을까. 부동산이라는 대답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폭등한 집값은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를 심화했다. 그의 임기 초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 잡아 주택을 보유했던 중년층은 집값이 치솟은 덕분에 자산을 증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 사회에 진출해 돈을 모으기 시작한 청년은 그럴 수 없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19~2022년 2030, 즉 청년층과 40대 이상 즉 중·장년층의 순자산 격차는 44% 더 벌어졌다. 상대적으로 주택 보유자가 많았던 덕분에 중·장년층 자산이 더 증가했기 때문이다. 집값이 높아지니 주거비 부담도 덩달아 커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청년층의 순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2017년 31.6%에서 2022년 39.0%로 상승했다. 전·월세 보증금 대출이 늘어난 탓이다. 같은 기간 중·장년층의 부채비율은 25.4%에서 23.0%로 감소했다.

    2030 남성 커뮤니티, ‘검찰’ 안 보여

    2019년 7월 25일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왼쪽)이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DB]

    2019년 7월 25일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왼쪽)이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DB]

    ‌청년기 대통령에 관련된 기억은 30대 남성과 40대 남성 사이에 기다란 단절선을 그어놓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진보 진영에서 이탈했던 청년을 확실한 우군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 남녀 갈등과 부동산 가격 상승은 한때 열렬한 지지자였던 2030 남성을 돌아서게 했다. 그 경험이 오늘날 탄핵에 대한 2030 남성과 4050 남성의 상반된 여론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탄핵에 동의하는 집단 안에서도 세대별 차이는 있다. 40대 이상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대통령 탄핵을 ‘검찰 독재 청산’의 일환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죽이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감옥에 넣었으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끊임없이 괴롭힌 ‘정치검찰’의 상징이다. 이들은 민주당·조국혁신당 등이 추진하고 있는 공수처 강화·검찰청 해체 등의 이슈를 적극 지지한다. 4050이 진보 진영을 확실한 대안 세력으로 보고 있다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2030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검찰’이라는 단어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싫은 이유는 무능했던 국정 운영과 극우 유튜버 등에 빠진 듯한 모습 때문이지 그가 검찰총장 출신이라서가 아니다. 검찰을 개혁하는 것이 경제·안보 등 여타 이슈에 앞설 일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있다. 2030 남성에서 탄핵 찬성 여론이 절반을 넘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에 앞서는 기현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검찰개혁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민주당을 대안 세력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착각하는 것도 곤란하다. “민주당이 싫다”는 것이 “국민의힘을 지지하겠다”는 태도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여론조사에서 2030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서 “민주당도 싫고 국민의힘도 싫다”는 의사가 관측되고 있다. 과거 대통령들이 씌운 굴레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집단만이 이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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