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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햇볕정책 아류? 거북하되 적절한 표현”

통일·외교·안보通 길정우의 ‘내가 본 박근혜와 북한’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우리가 햇볕정책 아류? 거북하되 적절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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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가리 대전? 北, 무리수 둔 것”

▼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국의 새 정부 길들이기 혹은 ‘판가리 대전’(‘판가리’는 ‘판가름’의 북한식 표현)을 벌인 것이라고 분석합니다만….

“북한이 진정으로 판가리를 기대했다면 위협 수준을 그런 식으로 무작정 올려서는 안 되는 거죠.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이 부드러워지면 위협에 대한 굴복이 되는 겁니다. 북한이 그런 것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무리죠.”

▼ 북한이 왜 그렇게 설쳐댔다고 봅니까.

“북한으로서도 상당한 무리수를 둔 거예요.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는 매년 이뤄지는 것인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강경한 위협을 지속적으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가진 군사적, 경제적 자원을 엄청나게 소비 혹은 소모했거든요.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아직도 본인이 기대하는 것만큼 강하지 않은 게 아닌가, 그렇게밖에는 해석이 안 돼요. 본인의 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둔 것 같습니다.”



▼ 박 대통령이 대북 정책 골간을 짤 때 지금과 같은 상황도 상정했는지 궁금합니다.

“강경 대 강경으로 가는 상황은 엑서사이즈(exercise·기량을 닦기 위한 연습)를 많이 해본 거거든요.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검토했습니다. 북한이 독특한 체제이기는 하지만 준비 안 된 3세대 지도자가 짧은 시간 안에 당과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봤습니다. 위기에 대응한 뒤 대화의 국면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가 어떻게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풀어가면서 이니셔티브를 잡느냐를 두고도 고민을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先 핵 포기 요구하지 않는 정책

▼ 대화 국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북한을 다룰지도 구상이 마련돼 있고요?

“우리가 원하는 상승 국면으로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가 우리의 제일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일종의 비전입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많은 이가 답을 잘 못하더라고요.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그렇고요. 명쾌하게 설명하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지도자의 비전입니다. 한반도의 장래와 관련한 박 대통령 본인의 비전을 가리키는 거예요. ‘남북 간 신뢰가 최저 수준에 있는데 이 상태로 놔둬선 우리가 원하는 남북관계의 장을 만들 수 없다. 그러려면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언론에서는 신뢰에만 주목하는데, 신뢰를 쌓아가는 것은 프로세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신뢰 프로세스는 생물(生物)과도 같은 거예요. 그러한 과정을 거쳐 신뢰를 축적해야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신뢰를 구축해가면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남북관계를 꾸준히 진전시키는 게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입니다.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거대한 비전인 거예요.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트고 그것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고 남북 간 협력을 통해 상생의 기조로 간다는 것이죠.”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선(先) 핵 포기, 후(後) 대화’를 강조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다른 겁니까.

“남북관계 개선과 핵 문제 해결을 병행하겠다는 겁니다. 핵 문제 해결을 우선한다는 게 허망하다는 것을 20년의 노력을 통해 확인했잖아요. ‘비핵화 과정, 남북관계 개선 과정이 함께 간다. 안보 문제와 경제 관계를 병행해서 풀어간다’는 겁니다. 그 밑바닥에는 (쌀, 비료 등) 인도주의적 지원을 통해 물꼬를 튼다는 게 있고요. 저는 명확하게 앞으로의 방향이 그려집니다.”

▼ 박 대통령도 그렇게 인식하는 거고요?

“늘 병행한다, 어떤 전제를 조건으로 삼은 남북관계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 이명박 정부는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했다는 비판을 들었는데요.

“개인적으로 남북관계에 있어 과거 지도자를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래도 그 나름의 철학을 갖고 이끌었다고 평가합니다. 이명박 정부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 박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차이는 남북관계 장래에 대해 고민, 다시 말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는지에 있다고 봅니다. 철학이라고 할까요. 박 대통령은 철학이 받쳐주는 덕분에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잔잔하지만 꾸준히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엮어 동북아 판 짜야”

▼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 당국자로 일한 한 인사는 사석에서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안보라인을 ‘약체’ ‘햇볕정책 아류’라고 평가하던데요.

“그분이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요. ‘햇볕정책의 아류’라는 표현도 적절하다고 봅니다.”

▼ 적절하다고요?

“저 같은 사람이 햇볕정책 아류죠.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팀이 2년여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이어서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조금 더 보수적인 분도 있고 반대인 분도 있지만 토론을 거치면서 비슷비슷해졌습니다. 그분들의 생각을 햇볕정책 아류라고 한 것은 거북한 용어지만, 햇볕정책이라는 게 ‘인게이지먼트 폴리시(engagement policy)’잖아요. 포용정책, 관여정책으로 번역되지만 두 표현이 적확하지는 않습니다. 포용이나 관여와 engagement는 뉘앙스가 달라요. engagement는 접촉의 면을 넓혀가는 겁니다. 북한을 고립시키는 게 아니라 엮어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engagement 정책을 햇볕정책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햇볕정책의 아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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