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호

‘참수 도발’에 발목 잡혀 ‘이라크+시리아’ 패키지 戰 돌입

미군의 IS 공습

  • 김영미 | 분쟁지역 전문 PD

    입력2014-09-19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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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기자 2명이 시리아 반군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전사에게 참수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IS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는 이라크에 이어 아프간에서도 철수를 준비하던 미국이 바라던 바가 아니다. 지난해 8월, 미국은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해 민간인을 학살했을 때도 이를 외면했다. 오바마의 새로운 중동전쟁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참수 도발’에 발목 잡혀 ‘이라크+시리아’ 패키지 戰 돌입

    이슬람국가(IS)가 8월 19일 유튜브에 공개한 동영상의 한 장면. 이 장면 직후 복면을 쓴 남자는 들고 있는 흉기로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제임스 폴리(왼쪽)를 살해했다.

    8월 19일, 시리아의 반군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제목의 4분짜리 동영상이 올라왔다. 미국인 기자 제임스 라이트 폴리(40)가 참수당하는 장면이 담겼다.

    프리랜서 기자인 폴리는 2012년 11월 시리아에서 실종됐다. 폴리는 영상에서 가족과 형제들에게 “미국의 이라크 공습을 중단해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읽었다. 이후 옆에 있던 검은 복면의 남성은 폴리의 목을 벤 뒤 “이 처형은 미국의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고 말했다.

    영상은 이어 다른 남성을 비추며 그가 미국인 기자 스티븐 소트로프(31)라고 밝히고 “미국 정부의 다음 태도에 따라 그의 처형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며 예고했다. 스티븐 소트로프 역시 프리랜서 기자로 작년 8월 시리아 등지에서 취재하다 실종된 바 있다.

    폴리가 참수된 지 2주 후인 9월 2일, 같은 계정에 ‘미국에 대한 두 번째 메시지’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오렌지색 옷을 입은 소트로프가 무릎이 꿇린 채 칼을 든 IS 전사에게 참수당하는 장면이었다. 소트로프는 참수당하기 전 카메라를 향해 “당신들은 내가 누구이고 내가 여기 왜 있는지 알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전 개입에 따른 대가를 왜 내가 목숨으로 치러야 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동영상에는 또다시 세 번째 인질로 추정되는 사람이 등장한다. 구호단체의 보안전문가로 일하던 영국인 데이비드 카우손 헤인즈다. 헤인즈의 참수 소식은 9월14일(한국시간) 전 세계에 전해졌다.



    시리아 내전은 3년 반이 지나도록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전 초기, 바시르 알아사드 정권의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반군이 형성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우선 반군의 종류가 많아졌다. 민주정부 구성을 위해 모인 시리아 임시정부(SNC)와 자유시리아군(FSA) 외에도 알카에다와 연계된 알누스라 전선, 이슬람국가(IS), 또 수많은 무장 조직이 시리아 전역에서 정부군과 싸운다.

    무장 조직들의 속셈

    시리아 국가위원회 가지안테프 지부의 야사르 자르키 대표는 “우리는 그동안 알아사드를 물리치러 온 아랍 세계의 무장 전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제애를 느꼈고 그들도 우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것이 뼈아픈 실수임을 깨달았다”고 한탄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시리아 내전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내전이 길어지면서 수백만 명의 난민과 2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처음에는 시리아 정부를 반대하며 시리아 임시정부를 도와주러 시리아로 들어온 이슬람 무장 조직들이 각자의 이익에 따라 땅따먹기 하듯 시리아 땅을 점령해나갔다.

    특히 IS는 이라크 서부 팔루자를 중심으로 수니파 세력을 규합하며 시리아 내전을 발판 삼아 급성장했다. 세계 도처에서 몰려든 전사와 기금을 바탕으로 시리아에서 승승장구했다. 그 여세를 몰아 올해 6월부터는 이라크 북부와 서부를 중심으로 영토의 3분의 1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는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칼리프(최고지도자)로 세우고 이슬람 국가라는 나라까지 세웠다.

    상황이 위급해지자 이라크 정부는 미국에 군사적 개입을 요청했고 이에 망설이던 미국은 IS가 모술 댐을 장악하고 소수민족 예지디족을 학살할 기미가 보이자 뒤늦게 공습을 단행했다. 미국의 공습이 이라크 땅을 강타하자 IS는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라크군을 섬멸하며 획득한 헬기와 전차가 많았지만, 막강한 미국의 공군 화력에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참수로 선전효과 극대화

    IS가 반격 카드로 내민 건 미국인 인질 참수였다. IS는 이를 통해 미국과 서방의 정책결정자들을 위협한다. 참수는 프로파간다(선전·선동)를 극대화했다. 미국 CNN방송은 “참수 영상은 적들에게 공포심을 줄 뿐만 아니라 IS 지지자를 모으고 힘을 집결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CNN은 또 “서방 언론인이나 근로자에 대한 납치와 참수가 국외에서 강력한 선전도구가 되고, 살려두는 것은 납치 협상금 등을 받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된다”고 전했다. 텔레그래프는 “자칭 IS 최고지도자인 알바그다디의 전략적 핵심 목표는 탈레반을 밀어내고 IS를 세계 최고의 반미, 반서방 테러단체로 만드는 것이다. 참수가 그 목표를 이루는 데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고 설명했다.

    IS는 이번 참수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렸다. 7개 언어로 된 각종 메시지와 전투사진 등을 실시간 배포한다. 그들은 미국의 폭격에 대항해 재래식 전투를 벌이는 것 외에 선전전, 정보전, 대리전, 사이버 공격 등이 뒤섞인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벌인다.

    첫 번째로 참수된 제임스 폴리는 교사 출신으로 시리아 내전 등 중동 지역 문제를 취재하던 프리랜서 촬영기자다. 폴리는 미군 기관지 ‘스타스앤드스트라이프스(성조지)’에서 일하던 2011년 시리아에 파견됐으며 실종 당시 AFP통신과 보스턴에 있는 인터넷 매체 글로벌포스트에 기고 중이었다. 그는 리비아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반대 시위를 취재하던 2011년에도 카다피 측에 억류됐다 6주 만에 풀려난 적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12년 11월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주의 타프타나즈에서 다시 실종됐다.

    그의 실종 이후 가족이 만든 탄원 홈페이지에는 폴리가 추수감사절인 그해 11월 22일 사라졌다고 설명돼 있다. CNN은 폴리가 무장 괴한에 의해 차에 태워져 납치됐다고 보도했다. 그의 실종에는 여러 의문이 있다. 폴리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 측 세력에 피랍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글로벌포스트 대표인 필 발보니는 “폴리가 시리아 정부군에 납치돼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수용시설에 갇혔다는 소식을 믿을 만한 정보원으로부터 들었다”고 지난해 5월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IS 수중으로 넘어갔으며 이들 손에 참수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두 번째 참수된 미국인 기자 소트로프는 지난해 8월 시리아에서 취재 중 실종됐다. 그는 센트럴플로리다대학교(UCF)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다가 2004년 UCF를 그만두고 마이애미로 돌아가 아랍어를 공부했다. 이후 예멘으로 건너가 아랍어와 문화를 공부했다. 중동 역사와 문화, 아랍어에 능통하게 되면서 ‘타임’과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포린 폴리시’, ‘월드 어페어스’ 등에 기사를 보내는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재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중동 민주화 시위가 일자 바레인과 이집트, 리비아, 터키, 시리아 등지에서 활발한 취재를 하며 좋은 기사를 많이 기고했다. 납치되기 직전엔 시리아 난민 캠프의 어린이를 비롯해 내전의 가장 큰 피해자인 민간인의 고통이 담긴 기사를 주로 송고했다.

    IS가 폴리와 소트로프에 이어 세 번째로 살해한 영국인 데이비드 카우손 헤인스는 11년간 군에서 활동한 보안업무 전문가다. 그는 프랑스 구호단체 ‘기술협력개발기구(ACTED)’ 소속으로 이탈리아인 직원 등 동료 4명과 함께 지난 3월 터키 국경에서 무장괴한들에 게 납치됐었다.

    최대 80여 명 인질

    이들 외에도 적게는 50여 명, 많게는 80여 명의 외국인이 인질로 붙잡혀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이 중 언론인은 20여 명에 달하며 상당수가 IS에 붙잡혀 있다. 인질은 대부분 미국인이다. 실종 언론인 중에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해온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오스틴 티스도 포함돼 있다. 그는 미국 프리랜서 기자들 사이에서 거물급으로 꼽히는데 2012년 8월 시리아에서 취재 도중 실종됐다. 항간에는 티스 기자가 네 번째 인질로 등장할 것이라는 말도 돈다.

    시리아 내 인도주의 지원단체에서 일하던 26세 미국 여성도 지난해 IS에 납치됐다. 이 여성은 안전상의 이유로 신원이 공개되지 않았으며 IS는 이 여성의 석방 대가로 660만 달러(약 67억 원)를 요구했다. IS는 동시에 미국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모의한 혐의로 2010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미 교도소에 수감된 여성 알카에다 요원 아피아 시디키(46)의 석방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시디키는 파키스탄 출신 여성 과학자로 ‘레이디 알카에다’로 알려져 있으며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신경과학을 공부하고 브랜다이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 과학자다. 그녀는 2008년 시안화나트륨(청산가리)과 테러계획이 적힌 종이를 지녔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붙잡혔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내 미국인을 공격·살해하려 한 혐의로 미국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2010년 86년형을 선고받아 텍사스 교도소에 갇혔다.

    시디키가 체포 당시 지녔던 종이에는 폭탄·화학무기 제조법과 에볼라 바이러스 무기화 계획,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 미국 내 주요 장소에 대한 테러 계획 등이 적혔다. 그는 9·11 테러를 지휘한 알카에다 전 작전사령관 칼리드 셰이크 무함마드의 조카와 재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카에다나 탈레반 등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은 그동안 여러 차례 그의 석방을 요구한 바 있다.

    美·英 “몸값 협상은 없다”

    ‘참수 도발’에 발목 잡혀 ‘이라크+시리아’ 패키지 戰 돌입

    미국의 시리아 공습 거점인 걸프만 주둔 조지 H W 부시 항모 전단.

    IS에 납치된 미국인 인질 외에도 알누스라 전선 등 여러 시리아 반군단체에 억류된 인원까지 합하면 시리아 내 미국인 인질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는 걸프 지역 정보원의 말을 인용해 카타르가 시리아 내 여러 무장단체에 억류된 4명의 미국인 인질을 석방시키기 위해 중재 작업에 나섰다고 전했다. IS는 최근에도 시리아에서 이탈리아 여성 2명과 덴마크인 1명, 일본인 1명을 납치했다. 이들은 기자, 사진작가, 구호요원 등이다.

    IS는 인질에 대해 비인간적인 고문과 구타를 자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납치된 사람 중 일부는 IS에 몸값을 주고 풀려나기도 했다. 세 번째 인질로 공개된 영국인 해인즈와 같이 납치됐던 모트카는 이탈리아 당국이 몸값으로 600만 유로(약 79억원)를 전달해 석방됐다.

    독일의 일요판 신문인 ‘벨트 암 존탁’에 따르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일 동부 브란덴부르크 출신 한 남성이 인도적 지원 업무를 위해 지난해 6월 시리아에 갔다가 실종됐다. 이후 이 남성의 가족은 올해 초 IS로부터 이 남성의 몸값을 요구하는 내용과 다른 인질의 처형 장면을 담은 영상을 e메일로 받았다.

    독일 연방범죄수사국(BKA)과 연방정보국(BND) 등 관계 당국이 IS와 협상을 벌인 끝에 이 남성은 피랍 1년 만인 지난 6월 석방됐다. 신문은 이 과정에서 ‘상당한 고려’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독일 정부가 거액의 몸값을 지급했을 가능성을 추측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독일 외무부 대변인은 이런 보도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첫 번째 인질로 참수된 폴리 기자와 함께 IS에 인질로 붙잡혔던 프랑스 기자 디디에 프랑수아를 포함해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덴마크인들은 몸값을 지불하고 모두 풀려났다. 그동안 IS는 인질에 대한 몸값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폴리 기자의 경우 몸값으로만 1억3250만 달러를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와는 몸값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 미국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9월 4일(현지시각) 웨일스에서 개막된 나토 정상회의 연설을 통해 인질의 몸값 요구에 응하는 국가들은 결과적으로는 테러 세력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IS 협상 중재자 없어

    폴리 기자가 참수된 직후인 8월 24일, 미국 언론인 피터 테오 커티스(45) 씨는 납치 2년여 만에 풀려났다.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2012년 10월 시리아가 아닌 터키 안타키아에서 납치됐다. 그를 억류했던 조직은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연계한 ‘알누스라 전선’으로 IS와는 다른 조직이었다.

    애초 IS와 알누스라 전선은 같은 알카에다 연계조직이었으나 노선과 이념 차이로 결별했다. 알누스라 전선이 커티스를 석방한 것은 제임스 폴리 기자의 참수 영상이 공개된 뒤 미국이 시리아 지역에 공습 의지를 밝히자 “우리는 IS와는 다른 조직이며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을 밝히려는 제스처로 보인다. “우리는 언제든 협상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IS에게 보이려는 전략으로 본다.

    커티스 기자 석방 협상에선 카타르의 역할이 컸다. 이는 알카에다만 하더라도 협상의 루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IS의 경우 협상을 중재할 나라나 조직이 없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폴리 기자의 비극 이후 우리는 커티스 씨가 곧 집으로 돌아오리라는 기쁜 소식에 안도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미국으로서는 자국민에게 ‘하나는 잃고 하나는 얻었다’는 논리를 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후 날아든 소트로프 기자의 참수로 미국은 다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소트로프 참수는 오바마 대통령을 사면초가로 몰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폴리 기자의 참수 소식을 들은 직후 IS를 “암덩어리”라 규정하며 강력한 응징을 천명했지만 몇 차례 추가 공습 이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공화당에서는 우유부단하게 미적거리는 오바마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미국의 외교정책이 자유낙하 중”이라며 하루빨리 IS를 공습해야 한다는 공화당의 요구가 빗발쳤다. 또 이번 사건은 9·11테러 13주년을 앞두고 미국 본토를 겨냥한 IS의 테러 위협이 고조되는 와중에 터져 미국인의 불안감을 고조했다.

    복잡한 이해관계

    이런 와중에 우리에게 잊힌 이름이 있다. 바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다. 시리아 내전이 그의 독재에서 비롯됐다는 걸 세계인은 이미 잊었다. 시리아 내전의 판도가 ‘IS 대 미국’으로 흘러가면서 그를 둘러싼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시리아 정부로서는 IS의 약진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 됐다. 시리아 정부는 내전 초기부터 시리아 임시정부나 자유시리아군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했으며 최근까지 반군과의 전투를 ‘테러와의 전쟁’으로 불렀다. IS가 등장해 시리아와 이라크를 휩쓸자 이 논리는 사실이 돼버렸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인 인질 사태는 시리아 정부에도 유리할 것이 없다. 시리아 정부는 그동안 미국의 군사 개입을 가장 꺼려왔다. 만약 미국이 시리아 반군을 도와 군사 공격을 감행한다면, 알아사드 정권이 축출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는 3년 넘게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온건한 반군인 자유시리아군(FSA)을 지지하며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물러나라고 촉구해왔다.

    시리아 정부는 최근 미국 정부를 향해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왈리드 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은 “미국이 시리아 내 IS세력을 공습하려면 시리아 정부와 조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주권 침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시리아는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 지역 및 국제적 수준에서 협력과 조율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며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IS와 싸워야 하는 미국도 시리아 정부의 손을 뿌리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미국인 인질 사건은 시리아 반군의 태도도 많이 바뀌게 했다. 지난해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해 반군을 공격했을 때, 미국이 시리아 정부를 공격해 알아사드 정권을 축출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미국은 결국 군사적 개입을 포기했다. 반군은 실망했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 없이는 반군 스스로 알아사드 정권을 몰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12월 미국 정부는 시리아 반군에 대한 일반 원조를 중단했다. IS 등 과격 무장단체가 시리아 반군의 원조 물품 창고를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오랜 내전으로 영향을 받은 시리아 민간인에게는 계속 인도적 지원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시리아의 온건 반대 세력은 급속도로 위축됐다. 미국이 지원을 중단하자 시리아 반군은 자연스레 급진 이슬람그룹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IS와 알누스라 등 과격 세력이 시리아에서 맹활약하게 된 계기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6월 말부터 미국 정부는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부랴부랴 5억 달러(약 5078억 원)의 예산안을 마련해 의회에 제출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시리아 단일 반군연합체 시리아국민위원회(SNC)의 아흐마드 자르바 의장과 회동까지 했다. 하지만 시리아 반군의 실망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었다.

    ‘새로운 참전’

    결국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 13주년을 하루 앞둔 9월 10일 “이라크에 이어 시리아에서도 급진 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를 공습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두 미국 기자의 참수 사건이 빚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었다. 오바마는 “미국의 최종 목표는 분명하다. 지속적인 대테러 작전을 통해 IS를 분쇄해 결국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상군 투입 없이 공습만으로 전쟁을 치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지상군 없는 공습만으로는 IS를 궤멸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미국 공화당의 1인자인 존베이너 하원의장도 “우리의 목표는 IS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전날 발표한 방식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많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2011년 미국은 이라크에서 완전 철수하면서 다시는 중동 땅에서 전쟁을 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또 올해엔 12년간 전쟁을 치러온 아프간에서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은 시리아에서 내전이 벌어졌을 때는 물론이고 지난해 8월 시리아 정부가 대량 살상무기인 화학무기로 민간인을 공격해 전 세계인의 공분을 샀을 때도 애써 고개를 돌렸다. 중동에서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랬던 미국이 전혀 예상치 못한 IS의 미국인 인질 참수로 발목이 잡힌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시리아 공습 결정으로 다시 중동전쟁에 발을 담그게 됐다. 아니, 발을 담근 정도가 아니라 내전과 전쟁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이번 공습은 제2의 이라크 전쟁이자 시리아 내전에의 새로운 참전이라는 의미도 갖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렇게도 피해왔던 ‘이라크+시리아 패키지’를 받아 든 것이다. 오바마의 중동 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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