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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비화

“미제 방탄유리, 황금 수도꼭지, 일제 변기…부산시장 관사는 전두환 ‘부산 별장’이었다”

전직 고위 공무원이 20년 만에 털어놓은 5공 秘史

  • 글: 손점용 전 부산시 공무원

“미제 방탄유리, 황금 수도꼭지, 일제 변기…부산시장 관사는 전두환 ‘부산 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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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호화판 관사 꾸미기,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소”
  • ●“붉은 꽃과 노란 국화는 안 돼요. 영부인이 싫어하십니다”
  • ● 전두환 형 기환씨, ‘비공식 치안본부장’ 행세
  • ●“손 과장, 국유지 사용료 반환소송 취하하이소, 각하 육촌동생이 부탁하는데…”
  • ● 각하 방문 시 업무요령 ‘대열 무단이탈 금지, 양복 넥타이 신발 단정히 하고 각하께서 가까이 오실 때는 열렬한 박수’
  • ● 1987년 노태우 후보 유세 ‘100만명 동원작전’, “시내버스 1400대 터미널로 돌려라”
  • ● 아무리 써도 남아도는 선거자금 “태어나서 그렇게 돈 써보기는 처음이자 마지막”
“미제 방탄유리, 황금 수도꼭지, 일제 변기…부산시장 관사는 전두환 ‘부산 별장’이었다”
“와이래 잠이 안 오노. 위에서도 아래서도 뭐시 이래 시끄럽노? 잠을 못자겠다….”1983년 9월8일 밤, 부산에 온 전두환 대통령은 당시 부산에서 제일가는 해운대 웨스턴 조선비치호텔 VIP룸 침실에서 이렇게 투덜거렸다. 그는 청와대 침실이 아니면 아스라이 들려오는 잡음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선비치호텔 VIP룸은 개장 이래 박정희 대통령 전용객실로 사용되다가 정권이 바뀌자 전 대통령의 방으로 제공됐다. 물론 특수 방음처리가 돼 있는 방이었다.

엎치락뒤치락하던 그는 자정을 넘길 무렵 벌떡 일어났다. 그는 “지금부터 각 기관의 야간 경비태세를 점검하겠다”면서 경호요원만 데리고 동래구청과 부산시경 등을 돌아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그는 호텔로 찾아온 부산시장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부산엔 내가 자주 내려오는데 이렇게 큰 도시에 시장관사가 왜 그 모양이오? 빨리 넓고 좋은 집을 지어서 다음에는 날 좀 편하게 잘 수 있게끔 해주시오.”

당시 부산시장 관사는 동래온천장에 있었다. 역대 시장들이 관사 없이 지내온 것을 알고 한 재일교포 할머니가 시청에 기증한 것으로, 박영수 시장 때부터 사용해왔다. 대지 602평, 건평 126평 단층집인 관사는 사방이 업소에 둘러싸여 경호상의 어려움이 크고 대통령이 묵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당시 나는 부산시 이재과장(서기관)으로 국가와 시의 부동산을 관리하고 시 산하 건물을 짓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C시장은 곧장 관련부서 직원 32명을 전원 소집했다.

“대통령 지시에 따른 시장특명이 떨어졌습니다.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지금부터 늦게까지 수고를 해주셔야겠습니다. 대통령이 오시면 숙박하실 수 있는 시장공관을 빨리 지어야 합니다. 이재과 3개 계(係)가 한 구(區)씩을 맡아 적당한 부지를 찾아서 내일 아침까지 영선계장에게 도면을 전해주세요.”

이튿날, 후보지 중 8개 지점을 골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동료들과 현장 일대를 샅샅이 누볐다. C시장을 건립 후보지 현장으로 안내하자 세 번째 지점에서 “좋소. 여기로 합시다”고 낙점했다.

시장관사 아닌 ‘부산 청와대’

“대지 2500평, 공사비 16억원…”

10월5일 청와대에 들어가서 계획을 설명하니 총무수석과 경호실 경호처장은 입을 맞춘 듯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돼! 각하의 뜻을 그렇게 몰라요?”

그들은 도면에 그어진 계획선을 산허리로 거침없이 밀면서 말했다.

“대지는 적어도 5000평, 건평도 400평은 넘게 잡고, 공사비도 20억원 이상으로 잡아주시오.”

‘부산시장 공관’이 아니라 ‘부산 청와대’를 짓자는 얘기였다. 그들은 대지 4800평에 지하1층 지상2층 연건평 464평을 제시하면서 세부 사항을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시장관사 62평 : 침실 거실 37평, 주방 식당 11평, 다용도실 6평, 접견실 8평 ▲대통령실 133평 : 침실·거실 42평, 접견집무실 34평, 가족실 46평, 가족식당 11평 ▲부대실 145평 : 연회실 73평, 대식당 21평, 주방 22평, 부속실 19평, 대기실 10평, 관리실(기계실 경비실 등) 288평. 참으로 거창한 규모였다.

건축설계는 그해 11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김 건축연구소’에 맡겼다. 시장관사 예정지의 땅주인들은 대부분 투기꾼이었다. 간부와 직원들이 삼고초려해가며 겨우 부지 매입을 매듭지었는데, 가장 골칫거리는 전직 부산시장 ○씨였다. 1561평의 실제 소유자가 전직 시장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는 가장 손쉬운 매입협상 대상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내려온 전직 시장은 시장실로 달려와 따졌다.

“당신은 그래, 선배 시장인 내 땅을 도시계획에 묶어놓은 것만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공관 부지로 몽땅 뺏어가겠단 말이오?”

시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 어른이 그렇게까지 화내실 줄은 미처 몰랐소. 손 과장, 국유지든 시유지든 쓸 만한 곳을 내놓으라니 도와주시오.”

시장의 지시에 따라 12월21일 ○씨 자택을 방문했다.

“내 땅의 값이 2억4000만원이라니 장래가 유망한 시유지를 그 돈만큼 넘겨주시오.”

“예, 이러이러한 시유지가 있는데, 어떻겠습니까.”

“그쪽은 개발이 끝난 곳 아니오? 야산이라야 값이 뛸 텐데….”

오랜 승강이 끝에 부지사용 승낙서를 받을 수 있었다. ‘명색이 시장을 지낸 사람이 그렇게 땅 투기를 하십니까’ 하고 쏘아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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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점용 전 부산시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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