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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한국에서 암 환자가 된다는 것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한국에서 암 환자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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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몸에 10개의 관을 달고 죽는 사람들
  • ● 효자·명의 많은 나라에서 더 불행한 암환자
  • ● 의사의 고백 “항암치료요? 전 안 받을 겁니다”
  • ● 통증 조절 외면하는 병원·건강보험공단
  • ● “왜 환자를 속이지요? 죽는 건 나잖아요”
  • ● 심신파괴·가정파탄, 고통의 악순환
  • ● “재발하면 안락사 시켜달라” 유언장 쓴 사람들
‘…양 발톱을 다 깎고 손도 달라고 했습니다. 됐다는 사람의 손을 반 강제로 끌어다 놓았습니다. 날렵한 손 모양과 손가락, 예전 그대로지만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뒤집어보니 손바닥엔 미세한 잔주름이 뒤덮여 있었습니다. 끔찍했던 수술, 살갗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방사선, 까만 머리가 한 웅큼씩 빠지던 항암제, 그리고 무자비한 통증을 견뎌내고 있다는 징표였습니다. 주름을 펴보려고 손바닥을 쓸어내려도 없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지난 3월26일 또 한 명의 말기암 환자가 세상을 떠났다. 32세 주부 김현경씨. 생전 그녀는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 ‘말기암 환자의 살아가는 이야기’(column. daum.net/solanobagles/)라는 칼럼을 연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신동아’ 2000년 11월호에 그 전문이 소개되기도 했다. “통증 때문에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며 연재를 중단한 지 5개월. 결국 그녀는 한 줌 재가 되어 암도 없고 통증도 없는 나라로 먼길을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인 4월1일. 뜻밖에도 같은 사이트에 새 글이 올라왔다. 김현경씨의 남편이 쓴 것이었다. 그는 병든 아내의 발톱을 깎아주었던 어느 날을 아프게 추억하고 있었다.

98년 12월19일 직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던 김현경씨는 ‘한국의 말기암 환자’가 겪을 법한 그 모든 고통의 과정을 빠짐없이 밟았다. 주름진 손, 무력하게 부스러지는 발톱에서 남편은 또 한 번, 사랑하는 아내가 하루를 평생처럼 싸우고 있는 통증의 절망적 실체와 맞닥뜨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적고 있다. ‘부서지는 것은 현경이 발톱만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4000여 명의 네티즌이 이 사이트를 방문하고 있다. 게시판에 글을 올려놓는 이만도 하루 수십 명을 헤아린다. 김씨의 죽음이 알려진 날에는 무려 500여 편의 추모 글이 올라왔다. 김현경씨 남편이 쓴 새 글이라도 올라오는 날이면 사이트는 그야말로 초만원을 이룬다.

그 중 많은 이들이 김현경씨와 그 남편에게서 구하는 것은 동병상련의 위로다. 부모를, 배우자를, 친구를 암으로 잃은 사람들 혹은 지금 투병 중이거나 그 가족인 사람들 사이의 절절한 동지애. 이렇게 암과 그로 인한 죽음은 우리 삶 도처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한국 암환자가 제일 불쌍하다”

암은 인종이나 성별,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지구상의 어떤 인간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다. 그럼에도 투병자들은 곧잘 “한국 암환자가 제일 불쌍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열악한 의료 환경, 가족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구조, 의료진과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비싼 치료비, 삶의 질보다 타인의 시선에 더 민감한 가족…. ‘환자’는 없고 ‘병’만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유언장 쓰기 운동’을 벌여야 할만큼 죽음을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차분한 준비’조차 어렵게 한다.

“한국 암환자들에겐 일종의 코스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겠지만 우리만큼 정형화돼 있는 것 같진 않아요. 암 발견-통보-수술-항암제 투여-재발-다시 항암제 투여-사망. 그 사이사이에 방사선 치료가 곁들여지지요. 열이면 아홉은 이른바 대체요법을 찾아 산천을 헤매고 멀리 중국이나 일본까지 날아가기도 합니다. 상당수의 환자들은 제대로 된 임종 관리나 준비 없이 북적이는 병실 한 켠에서 몸에 호스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저 세상으로 가죠. 외롭고 두렵고, 인간의 존엄이란 찾아볼 수 없는 비참한 죽음입니다.”

‘한국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암환자 모임)’의 이정갑 회장(60)의 말이다.

“왜 환자를 속이지요?”

암은 무서운 병이다. 종류만도 270여 가지. 암세포는 혈류와 임파선을 통해 다른 장기로 빠르게 전이된다. 수술로 해당 장기를 완전히 도려낸다 해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 그래서 의사들은 한 번 암이 발생한 환자에 대해서는 표면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 해도 ‘완치’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언제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낼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토록 무서운 병이요, 88년 이후 대한민국 국민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병이지만 암 예방과 조기 발견을 위한 사회적 노력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국민은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 소개된 상식 수준의 정보에 의존할 뿐이다. 암은 ‘죽을 병’이며 수술이나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상식’의 주 내용이다.

암 선고는 환자 자신, 그리고 가족들에게 혼돈이고 절망이며 심지어는 ‘하늘이 내린 벌’로 여겨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법정에서나 쓰일 ‘선고’라는 말이 통용될까.

암은 불쑥 찾아온다. 취재 중 만난 환자들 가운데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 이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진단을 받은 다음에도 “그럴 리 없다”며 병원 서너 곳을 전전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암은 특성상 조기 진단이 쉽지 않은데다 정기 건강검진이 일상화되지 않은 현실로 인해 3기 혹은 말기에 이르러서야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암으로 인한 통증이나 신체 불균형이 나타나도 환자 스스로 ‘알아서’ 약을 사 먹거나 동네 병원에서 간단한 진료만 받고 만다. 암환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변비려니 했다”거나 “체한 것 같아 소화제만 사먹었다”, “치질 치료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직장암이더라”는 류의 이야기를 한다. ‘매년 8만명의 암환자가 새로 발생하는 나라’치고는 지나치게 허술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암환자 중 많은 수는 암 진단 통보 때부터 ‘소외’를 경험한다. 위암 3기 환자인 정화자씨(56)는 위 절제수술을 받은 다음에야 자신의 병명을 알았다. 그것도 “3기라 수술이 쉽지 않았다”는 레지던트의 무심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냥 위궤양 수술인 줄 알다 그 말을 들으니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구요. 그 심정 뭐라 말 할 수 없고…, 나중에는 화가 나데요. 죽을 병 걸린 사람은 난데 왜 다들 속이나 싶어서요. 그때부터 의사나 남편 말을 잘 믿지 않게 됐어요.”

가족으로서는 혹 병명을 안 환자가 좌절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내린 결정이겠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실제로 서울대 가정의학과가 항암치료 중인 환자 4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답변자의 87.5%가 ‘진단 결과를 환자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고 나머지 12.5%는 ‘상황에 따라서’라고 답했다. 알리지 말아야 한다는 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원자력병원 혈액종양내과 류백렬 과장은 “환자에게 사실을 끝까지 숨기려는 보호자들이 있다. 의사로서는 몹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타인이 무슨 권리로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를 당사자 모르게 처리할 수 있는가”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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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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