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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의 세계 ③­|군사애호가들의 별난 취미

군복수집에서 전쟁영화 엑스트라 출연까지

  • 김세랑 월간 ‘플래툰’ 기자

군복수집에서 전쟁영화 엑스트라 출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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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리터리 마니아. 우리말로 군사애호가쯤으로 풀이되는 이들은 각종 군용품을 수집하고 희귀한 군복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휴일엔 근교 야산에서 ‘어른들의 전쟁놀이’인 서바이벌게임을 즐긴다. 한 수 위의 마니아들은 2차대전이나 6·25당시 전투장면을 연출하는 리인액트먼트게임을 펼친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그만큼의 직업과 삶의 방식, 그리고 다양한 관심사와 취미가 존재한다. 마니아라는 단어. 어느 때부터인가 그리 낯설지 않게 된 이 단어를 우리는 흔히 광(狂)이라는 글자와 동일시하고 있지만, 사실 이 단어는 취미라는 말과 맥을 같이한다. 특별히 한쪽으로 이끌리는 흥미라는 뜻을 가진 이 취미라는 단어는 숨가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이미 본래의 뜻이 많이 왜곡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금단의 영역

사람들은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대부분 독서 영화보기 음악감상이라고 대답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지극히 익숙한 일상의 하나일 뿐 취미로 보기 어렵다. 초고속으로 전송되는 각종 정보와 하다못해 자장면 한 그릇도 인터넷으로 시켜 먹는 시대에, 위에 언급한 취미 아닌 취미들은 PC 앞에 앉은 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신세대들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런 종류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저요? X재팬 CD 수집과 일본 애니메이션 원판 수집이요.”

“예전에는 액세서리 만들기를 좋아했는데요, 요즘은 그때 만든 것들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통신판매하고 있어요.”

이 정도면 골수 마니아거나 아예 ‘준사업’ 수준 아니냐고 평할지 모르지만 이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취미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요즘 10∼20대의 취미생활이 30∼40대 마니아의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누군가가 내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예전처럼 간단하게 ‘영화감상이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도무지 이 취미는 말하기 좋게 간단한 단어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 취미는 대강 이렇다.

주말에는 콩알만한 BB탄이 나가는 장난감총을 들고 야산에서 총싸움질을 하고, 청계천 바닥에 눈을 붙인 채 쓰레기더미를 뒤져 군대넝마 따위를 주워오며, 허구한날 총이니 탱크니 하는 흉칙한 물건들과 관련된 책만 읽어대는 이상한 인간이 바로 나다.

사실 주변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 우리 사회에서 군이라는 단어는 결코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이다.‘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는 군대’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일 뿐이고, 그보다는 그간의 역사 속에서 보여준 굴절된 군의 실상이 훨씬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5·16 군사쿠데타로부터 12·12 사태, 광주 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오욕의 역사는 군이라는 단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놓았고, 덕분에 우리는 한동안 군복 앞에 서면 까닭 없이 위축되고 떨어야 했으며 수많은 징집 기피자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60∼9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군대는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될 성역이자 금기였던 것이다.

군사애호가

이런 금단의 영역을 넘보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남들은 제대하고 나면 부대 있는 쪽으로 오줌도 안 눈다고 한다는데, 금쪽 같은 주말에 칙칙한 군복을 걸치고 총을 둘러멘 채 산에서 뛰고 구르는 그놈의 서바이벌인가 뭔가가 그렇게 좋으냐며 빈정거리는 내 친구, 개업 이래 한번도 대여된 적이 없어 먼지가 수북한 옛날 전쟁영화만 골라 빌려 가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동네 단골 비디오가게 아저씨(물론 잘 안 나가는 테이프만 골라 빌리는 내게 무척 친절하다), 옷장 가득한 것으로도 모자라 집안 곳곳을 비집고 들어찬 각종 군복과 관련 소품들 때문에 진저리치시는 부모님까지….

그렇다. 난 군사애호가다. 군대 이야기에 귀가 쫑긋해지고 군대 물건을 보면 그 족보 캐기에 여념이 없다. 내가 즐기는 것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모형 만들기요, 둘째는 군복 수집, 셋째는 서바이벌게임, 넷째는 군사관련자료 수집이다.

가장 오래 즐겨온 모형 제작은 나를 군사애호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어준 분야다. 내 또래라면 어릴 때 ‘조립식’이라 불리던 플라스틱 군인인형이나 탱크 한두 대쯤 만들어 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학교 앞 문방구 진열장에 놓여 있던 탱크, 비행기, 독일군 인형은 모든 아이들이 갖고 싶어한 귀물(貴物)이었다. 나 역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좋아했는데, 유별난 점이 있었다면 다른 아이들보다 손재주가 좋아 훨씬 빨리 만들고 멋지게 색칠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사이에 난 조립식 탱크와 비행기 제작의 제왕이었고, 가끔은 입소문을 들은 선배나 형들이 보름달빵이나 부라보콘 같은 것을 사들고 와서 자기 탱크를 대신 만들어달라고 청탁할 정도였다.

군인 인형 제작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친구들은 공부 때문에 포기했는데, 난 오히려 더욱 모형 만들기에 몰두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멋진 장난감쯤으로 여겼지만 모형 만들기에 빠져들다 보니 좀더 잘 만들고 좀더 실감이 나게끔 색칠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당시 군대나 무기관련 기사가 심심찮게 실리던 잡지인 ‘학생과학’에 나온 탱크나 비행기 기사와 사진을 스크랩해두고 모형을 그 사진과 똑같아 보이게 색칠하는 비법을 연구해 들어갔다. 탱크 캐터필러를 실물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시뻘건 녹을 긁어다가 발라보기도 하고 탄흔을 표현하기 위해 성냥불로 모형을 그을리다가 탱크 포신을 홀랑 태워먹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난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국내 최초의 전국 프라모델 콘테스트에 참가해 동상을 수상했다. 이후 매년 한 차례씩 열리는 이 대회에 세 번 더 참가해 장려상과 2회 연속 대상을 수상하는 제법 화려한 경력을 갖게 되었다. 상이란 건 역시 좋은 것이다. 매일 모형만 안고 산다며 밤낮 가리지 않고 꾸중하시던 부모님의 꾸지람이 큰상을 몇 번 탄 뒤에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덕분에 난 별 어려움 없이 모형을 잘 만들기 위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필연적으로 모형 탱크나 비행기가 아닌 실제 무기들의 구조와 역사 같은 것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

이런 관심은 특히 군인인형을 만들 때 더 커졌는데, 인형이 착용하고 있는 옷과 장비, 총 등의 실제 모양이나 재질, 색상, 용도가 궁금해진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군복과 군장류를 수집하기 시작해서, 주로 재래시장에서 작업복으로 팔리고 있는 헌옷들 속에서 군복과 장비를 찾아냈다. 1950년대에 6·25전쟁을, 겪고 60∼7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나라기 때문에 당시의 군복을 찾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수많은 헌옷더미에서 군복만을, 그것도 어느 시대에 어떤 부대가 입은 복장인지를 구별할 줄 아는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지만.

이렇게 해서 찾아낸 옷들은 대부분 미군과 한국군이 입던 것이다. 6·25 당시 체형이 작은 국군이 주로 입어 스몰 작업복으로 알려진 OG-107작업복(1950년대에 등장, 1970년대까지 사용), 미 해병대가 방한용으로 입었던 파카, 제1·2차 세계 대전 때의 각종 군장, 미군 장교의 정복, 50∼60년대의 국군 군복 등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는 한 시대를 기록하는 일에 참 인색하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국군의 군복이나 군대에 관련된 장비나 장식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가 없어 수집하는 데 몹시 애를 먹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장비가 시골집 부뚜막을 닦는 걸레로 쓰이거나 공사장 작업복 등으로 쓰인 탓에 50∼60년대에 사용한 국군 군복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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