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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화제

길상사를 찾는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

  • 윤청광 방송작가

길상사를 찾는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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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언론에서 ‘1000억원짜리 대원각’이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한 탓에 길상사는 그야말로 돈 많은 사찰로 잘못 각인되었다. 요정 대원각이 자리잡고 있던 대지와 임야 7000평, 건물 값을 시가로 따진다면 약 1000억원대의 재산이 될 것이라는 말은 세간의 추측일 뿐, 정확한 산출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요정 대원각을 시주받아 사찰로 바꾸는 개보수 작업에만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다. 그래서 사실 길상사는 아직도 개보수 작업 비용을 빚으로 짊어지고 있는 가난한 절이다.

대웅전도 없고, 관음전도 없고, 사천왕문도 없고, 해탈문도 없고, 석탑 하나도 없다. 일주문은 쓰러질 지경이고, 극락전 지붕마저 성치 않아 천막으로 덮어놓은 상태요, 식당은 비좁아 50명이 앉으면 꽉 차버린다.

그런데도 문을 연 지 2년6개월밖에 안된 길상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일요일에 열리는 가족법회에 500여명, 30대 이상의 남자들만으로 구성된 거사림회에 200여명, 여자들만으로 구성된 보현회에 100여명, 그 밖에도 청년회, 중고등회, 어린이회, 합창단이 따로 있다. 그리고 주말과 휴가철을 이용해 수련원을 열고 2박3일이나 3박4일의 단기수련회를 갖는데, 희망자를 다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쇄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직장인 수련회에 참가했던 사람만 2200여명에 이른다.

매일 새벽 6시부터 밤 8시까지 참선수행할 수 있는 ‘시민선방’에는 그동안 1500여명이 입방하여 참선수행을 통해 마음 닦는 공부를 했고, 매월 평균 50명이 새로 ‘시민선방’에 들어와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침묵의 방’에도 그동안 600여명이 들어가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법정스님의 법문이 있는 짝수 달 셋째 일요일의 가족법회에는 1000명에서 2000명에 이르는 인파가 몰려들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특히 사월 초파일 밤, 환상적인 연등 불빛 아래 열리는 자선음악회에는 50여명의 외국인과 함께 2000여명의 인파가 모여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우람한 건물도 없고, 고색창연한 탑 하나 없는 신생 사찰 길상사에 어떤 사람들이, 왜 모여들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안고 돌아가는 것일까?

길상사의 회주 법정스님은 ‘맑고 향기롭게’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다짐했다.

“깨달음에 이르려면 두 가지 일을 스스로 실행해야 합니다. 하나는 자신을 속속들이 지켜보는 일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관리, 감시하여 행여라도 욕심냄이 없도록, 삿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콩 반쪽이라도 나눠 갖는 실천행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지켜보는 것은 간단치가 않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먹고 자고 말하고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 화두를 붙들고 50분 좌선, 10분 방선을 되풀이하며 끝없이 자신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시민선방에 가득 앉아 있다.

길상사를 찾는 유명인사들

참선수행을 위해 길상사 시민선방에 들어앉은 사람들 가운데 여자가 3분의 1을 넘는다. 그동안 시민선방을 거쳐간 사람은 1500여명. 교육개혁위원장을 지낸 원로 김종서 박사는 매일 시민선방에 들러 참선했다. 그분에게 이제 참선은 일과가 되었다.

길상사에 가면 유명인사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방송인 이계진씨는 늘 부인과 함께 길상사를 찾는다. 국회의원 총선거 전 이계진씨는 모 정당으로부터 입당 권유를 받았다. 정치판에 뛰어들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가 큰 고민이었다. 법정스님께 어찌해야 좋을지 여쭈었더니 스님은 “법당에 가서 열심히 기도한 뒤, 마음이 결정하는 대로 하라”고 대답했다. 기도를 마친 후 그는 명쾌한 단안을 내릴 수 있었다. 정계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언론인 공종원씨 부부도 길상사에서 만났다. 삼성출판사 김종규 회장 부부도 환상적일 만큼 아름다운 초파일 연등 밑에서 만났다. 시인 류시화씨, 작곡가 노영심씨, 동화작가 정채봉씨, 출판인 김형균씨, 부산의 박수관 사장, 세무사 이성용씨 부부, 서세욱 화백, 송영방 화백, 음악가 장경의, 장형원 자매도 빼놓을 수 없는 길상사 가족들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외국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길상사에는 더더욱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비좁은 공양간에서 매일 적게는 200명에서 많을 때는 1000명, 2000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보현회의 자원봉사자들. 요일별로 당번을 정해 자원봉사하는 보현회 회원들은 기업체 사장 부인, 중학교 여교장, 공직자 부인에서 교사, 포장마차 주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다 모여 즐거운 마음으로 밥짓고, 반찬 만들고 국을 끓여내고 있다.

“맑고 향기로운 길상사에서 기도하는 마음과 정성으로 반찬을 만들고 밥을 지으니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즐겁습니다.”

보현회 회장 장수영(58·방배동) 보살은 활짝 웃는다. 34년간 교직에 근무하고 은퇴한 이상원(63·마포) 보살은 “하루에 한 번 길상사에 왔다 가야 마음이 편하다”면서 “길상사 시민선방에 들어가 한달간 수행한 뒤 보현회에 들어와 봉사를 시작했어요. 길상사가 있어서 너무너무 행복해요”라고 말한다.

길상사에 법회가 열리는 날에는 길목 어귀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교통정리, 주차관리, 사찰 안내를 도맡아 하고 있다. 이들은 거사림회 회원들인데 기업체 사장, 공직자, 의사, 교사, 전문직 종사자 등 각계각층에서 모였다.

공무원인 이재격씨(54)는 주말이면 길상사에 와서 자원봉사를 한다.

“법정스님의 책을 읽고 길상사에 오게 되었지요. 길상사는 부담이 없고 생활불교를 지도해서 정말 좋습니다.”

그는 길상사에서 배운 대로 이타행(利他行)의 실천을 위해 이미 17회의 헌혈을 했고, 장기와 각막은 물론 사후에는 시신까지 기증하기로 등록을 마친 분이라고 옆사람이 귀띔해준다.

중소기업체 회사원인 정태호씨(46)는, 길상사에서 자원봉사를 마치고 나면 지체부자유자를 위해 ‘부름의 전화’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절에서 배운 대로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하고 새삼 다짐한다.

의정부에서 소아과의원을 개업하고 있는 의사 홍기돈씨(45)는 신문에서 길상사 개원소식을 보고 개원식날 참석한 인연으로 길상사 거사림회 회원이 되었다. 그는 “길상사는 세속적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아 좋다”고 말하면서 일요일이면 가족과 함께 길상사를 찾는다고 했다. 그는 또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훌륭한 의사보다는 어진 의사가 되라”는 유언을 남기셨는데 그 유언과 불교의 가르침이 같으므로 그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고 말한다.

삼보통상 대표인 이부열씨(48)는 ‘맑고 향기롭게’ 회원이 돼 길상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 보살의 거룩한 뜻과 회주스님의 가르침에 감동, “내 뼈와 혼을 길상사에 묻겠다”는 각오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저는 저 자신이나 제 가정을 위해 기도해본 일이 없습니다. 회주스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이웃과 세상이 다 편안케 하소서 하고 기도드립니다.”

그는 앞으로도 ‘맑고 향기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들은 무엇을 느끼는가

길상사를 찾은 사람들은 과연 길상사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마음에 안고 돌아갔을까.

수많은 수련회 참가자들은 “수련회의 발우공양을 통해 음식의 소중함을 새삼 깊이 깨달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특히 수련생들은 끼니때 음식을 먹기 전에 오관게(五觀偈)를 독송하게 되는데, 오관게를 외울 적마다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음식을 먹을 적마다 이 게송을 외우면서 뼈저리게 자신을 되돌아보았다는 고백도 눈에 띄게 많았다.

“마음 다스리는 법 하나 배우고 갑니다. 그리고 묵언과 하심(下心), 꼭 실천하고 싶습니다.”─이경주(41·회사 경리)

“내 자신의 아집, 집착이 굉장했었구나라는 반성과 그로 인해 상대를 받아들이는 데 몹시 배타적이었던 나의 행동과 사상을 느끼면서 여유로운 자세로 생활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임옥수(38·교사)

“두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여인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살다가 잠깐의 출가를 경험하게 되어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동안 너무도 게으르고 아집에 눈이 가려 내 가족, 내 집, 우리 식구에게만 머물러 있다가 ‘나’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잠깐이나마 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유선자(36·주부)

길상사의 법회에 참석했거나, 문화강좌를 수강했거나, 2박3일 혹은 3박4일의 수련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길상사 찾아가기를 잘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고 나 자신과 약속을 했습니다. 그 결과,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그 사람에게 삼배(三拜)를 올리라고 하신 스님의 말씀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부처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껴봅니다.”─강예자(주부)

“아이들 공부, 남편의 늦은 귀가, 나의 일에 대한 절대적인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울력하는 마음, 나를 낮추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나에게는 공부가 되고, 가족들에게는 평화로움이 될 것이다.”─박정완(주부)

“세상을 살아오면서 요번 수련기간처럼 말을 아꼈더라면 성내는 마음, 탐내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불씨가 되는 말을 한번쯤은 이겨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을 사랑하고 아끼며 살고 싶습니다.”─이난숙(주부)

길상사에는 오늘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권력을 탐하지 않고 분에 넘치는 부(富)를 넘보지도 않으며 허황한 영예를 쫓지도 않는 평범한 사람들, 착한 사람들. 누가 오라고 부르지도 않고, 누가 가라고 떠밀지도 않건만, 그들은 하나둘 길상사를 찾는다.

그리고 맑고 향기로운 경내를 거닐다가 그들은 저 나름의 행복을 한아름씩 안고 돌아간다. 거창하지도 않고 요란스럽지도 않은 아주 작은 행복을 나름대로 마음에 안고 돌아간다.

그래서 길상사는 행복의 샘터가 되어 가고 있다. 길상사는 열려 있다. 산책을 즐길 수도 있고 명상에 잠길 수도 있다. 길상사가 활짝 열려 있는 한 우리는 권력을 부러워할 것도 없고, 엄청난 부를 시샘할 까닭도 없고, 허망한 명예를 탐할 일도 없다.

행복은 밖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맑고 향기롭게 살면서 길상사 ‘침묵의 방’에 앉으면 우리는 알 수 있다. 길상사 ‘시민선방’에 앉으면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찾는 행복은 내 안에 있음을….(문의:02-3672-5945)

신동아 200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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