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은의 ‘담다디’는 리어카 음반상을 오늘날의 ‘길보드’로 뿌리내리게끔 만들어준 가수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상은은 ‘길보드’의 폭발적 인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시밭길을 걸었다. 이상은과 정반대로 김종환은 백번이라도 길보드에 절을 해야 할 처지다. ‘존재의 이유’가 길보드를 강타하면서 그는 무명 세월을 청산했다.
과거 패티김의 ‘이별’과 남진의 ‘님과 함께’가 음반판매량 10만장을 넘어섰다며 놀라던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음반시장은 90년대 들어 기적에 가까운 급성장을 거듭했다.
한국 음반시장이 비약적 성장을 이룩한 것은 1991년부터였다. ‘내 사랑 내 곁에’의 김현식, ‘보이지 않는 사랑’의 신승훈, 이듬해 봄 ‘난 알아요’의 서태지와 같은 ‘큰 가수’가 출현하면서 예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이후 김건모 룰라 조관우 H.O.T. 조성모 등이 나타났고 국내 음악팬들은 인기가수의 앨범 100만장 판매고를 그다지 신기한 뉴스로 여기지도 않게 되었다. IMF라는 직격탄을 맞아 문화수요가 줄어들면서 현재는 우리 음반시장이 세계 17위 혹은 21위로 추락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나라든 한국 음반시장을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 음악 평론가들은 한국 시장을 표면적 규모보다 더 크게 본다. 세계 11위가 아니라 너끈히 7~8위는 된다는 분석이다. IFPI 보고대로 한국 음반시장의 단순한 외형은 5000억 원일지 몰라도 실제는 6000억 원에 이른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왜 1000억 원이 불어난 것일까?
이 부분이 바로 불법 복제시장 또는 리어카 판매시장으로 얘기되는 ‘길보드’ 매출이다. 공식 매출에다 무시할 수 없는 비공식 시장이 존재하므로 한국 시장은 예상보다 더 무게가 나간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한국 음반시장이 서너 계단 위로 평가되는 것은 길보드 덕분(?)이다.
길보드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리어카에서 판매되는 불법 복제음반시장이며 다른 하나는 ‘길거리의 인기순위’다. 한국에서 길보드란 조어(造語)가 생겨난 것은 후자의 의미 때문이다.
길보드는 미국의 유명한 인기가요순위 차트인 ‘빌보드’에서 따왔고 보드 앞에 붙은 ‘길’은 순우리말이다. 결론적으로 ‘길거리의 빌보드’인 셈이다.
그런데 미국의 빌보드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음반 판매량과 방송횟수를 정확하게 포착하여 음악의 인기흐름에 관한 한 ‘공신력’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1990년 중반에는 마이클 잭슨과 머라이어 캐리처럼 일주일 만에 신곡이 차트 정상에 오르는, 과거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제작사의 강제적 마케팅에 오염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팬들은 여전히 빌보드 인기순위가 공정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결국 길보드는 비록 길거리가 매기는 판매량과 인기서열이지만 상당히 믿을 만하다는 인식이 내재돼 있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불법 시장이라는 나쁜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길보드엔 길거리의 위력을 높이 쳐주는, 미화(美化)적 이미지마저 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매기는 가요 인기차트와는 다른 시정(市井)의 별도 차트라는 것 말고도, 거리라는 이미지가 주는, 제도권의 과장과 형식주의와는 선을 긋는 실제적 ‘진실’이 있다고나 할까. 다시 말해 길보드가 방송보다 더 공신력이 있는 인기흐름을 반영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 때문에 길보드는 불법이라는 낙인 속에서 폐지 여론이 들끓고 있음에도 모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나 가요계 해당기관이 대대적 단속을 펼쳐 곧 없어질 것 같은 데도 늘 살아 있다. 항상 위태로우면서도 동시에 맥박의 간격은 일정하다. 참 신기하다. 마치 잡초처럼 목숨이 그렇게 질길 수가 없다.
1970~80년대 이른바 ‘빽판’의 바통을 이어받아 80년대 중반 생겨난 이 리어카 시장의 생명력을 그토록 길게 부지시켜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 불법 시장에서 음반을 사는 사람이 꾸준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요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길보드는 노점이나 리어카를 넘어 하나의 음악매체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신문에서도 대놓고 길보드를 언급한다. 인기가수 유승준의 경우를 보자. 지난 1998년 유승준이 ‘나나나’로 히트를 치고 있을 때 한 신문은 ‘유승준, 길보드 강타!’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이쯤 되면 거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뿌리칠 수 없는 무한매력
왜 음반 소비자들은 일반 레코드 가게를 놔두고 길보드에 기웃거리는가? 첫째, 음반이 너무 저렴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테이프가 주력이었으나 지금은 CD도 막강하다. 테이프의 길보드 판매가는 1500원에서 2000원이며 CD는 3000원이다. 레코드에서 음반을 사는 것에 비해 3배 정도 싼 셈이다. 합법적 음반매장에서 테이프는 5000원에서 6000원, CD는 1만원이 기본 가격이다.
문화비용 지출에 인색한 국내 수요자들 처지에서 보면 너무도 고마운, 일종의 사은품이다. 자기가 아무리 미치도록 좋아하는 인기가수라도 누가 CD를 3000원에 사고 싶지 1만원짜리를 내고 싶겠는가? 그래서 길보드는 보편화된 우리의 에누리 정서, 싼것을 밝히는 인지상정과도 잘 부합한다. 테이프의 경우는 물론 음질이 좀 나쁘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우리가 언제부터 질(質)을 운운했나.
길보드의 매력을 알기 위해 1997년에 나온 한 길보드 제품의 수록곡을 보자.
‘그녀를 위해’(이정봉), 비련’(구피), ‘소원’(일기예보), ‘사랑을 위하여’(김종환), ‘무아지경’(DJ. DOC) ‘A Lover’s Concerto’(사라 본) ‘사랑해 누나’(유승준)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H.O.T.) ‘결혼해 줘’(임창정) ‘송인’(쿨) ‘수필 러브’(주주클럽), ‘배신감’(젝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김경호)….
언뜻 봐도 당시 쟁쟁했던 최고 가수의 인기가요가 모두 들어 있다. 음반 제목도 ‘최신 다운타운 톱 가요’로 붙어 있다. 길보드가 왜 거리의 인기차트인지를 실감나게 한다. 아마 당시 공중파 TV 인기가요 순위라고 해도 틀림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히트곡 레퍼토리가 한 장에 몽땅 실려 있다는 것이다. 아마 소비자로서 이 모든 곡을 정품으로 구하려면 각 아티스트의 독집을 모두 다 사야 할 것이다.
아티스트 독집 30장의 현 히트곡을 골라내 하나에 담았으니 음반 소비자는 앨범 30장 살 가격을 한 장 값으로 그것도 아주 싸게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다. 정품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히트곡 컬렉션이다. 아니 정품은 이렇게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비록 음질은 열악하지만 그 속에 담긴 다양한 레퍼토리는 입이 벌어지게 한다. 길보드는 바로 이런 불가능에 가까운 ‘히트곡 총집합’ 전략으로 우리 음반산업의 어두운 뒤안길을 불 밝히며 든든하게 터를 잡았다.
또 다음과 같은 이점도 있다. 음반 구매시장이 합법과 불법이라는 두 채널로 존재하면서 소비자는 두 가지 음반구매 패턴을 병행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은 ‘정품 CD’로 사고 ‘한번 그냥 들어볼까’ 하는 가수의 음반은 ‘리어카의 테이프’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팬으로서는 기분 좋은 ‘구매패턴의 이각(二角)화’다.
종로 2가에 자리를 튼 한 음반 리어카 상은 말한다.
“지난 1993년 서태지가 ‘하여가’ 2집을 냈을 때 서태지와 경쟁하던 다른 인기가수의 테이프가 먼저 나왔어요. 그 테이프 참 무지하게 많이 팔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서태지 테이프가 나왔지요. 당연히 많이 나갈 줄 알고 서태지 테이프를 많이 깔아놨어요. 그런데 서태지 것이 생각 밖으로 안 나가는 겁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애들이 서태지 앨범은 우리 테이프가 아니라 정품 CD나 LP로 사려는 심리가 있었던가 봅니다. 기다렸다가 레코드 가게에서 정품을 사서 소장하겠다는 거죠. 그래서 다른 가수 것은 많이 나갔는데 서태지 것은 나가지 않았던 겁니다.”
당시 위용이 하늘을 찌르던 서태지 팬들이 ‘우리 오빠’의 앨범은 정품으로 소장하고 다른 가수의 앨범은 한번 들어보기 위해 길보드 제품을 샀던 셈이다. 지금은 MP3로 곡을 공짜로 듣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그래서 길보드도 근래 불황이다!) 아직도 리어카 테이프를 살 때 ‘한번 사서 들어보고 좋으면 정품 CD를 산다’는 전제로 구매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로 가수를 웃기고 울리기도 하는 것이 길보드다. 그것에 덕 보는 가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가수나 제작자를 아주 고단하게 만든다. 이상은을 보자. 1988년 ‘담다디’라는 곡으로 혜성처럼 떠올랐지만, 나중에 국내 가요계를 떠나 일본에서 활동하는 등 전전하다가 지금은 대중가수보다는 ‘마니아 가수’가 된 ‘꺽다리’다.
당시 강변가요제를 주관한 MBC 라디오국의 프로듀서들은 “‘담다디’는 방송되는 그 순간 떴다”고 표현한다. 당시 10대 팬들의 반응은 정말 광풍에 가까웠다. 이상은은 여가수 최초로 억대 가수로 가치가 상승했다. 실제로 계약하진 않았지만, 그때 지구레코드사는 개런티 1억8000만원을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은의 ‘담다디’는 리어카 음반상을 오늘날의 길보드로 뿌리내리게끔 만들어준 가수로 평가된다. 강변가요제 실황은 테이프로 불법 복제돼 그 다음날부터 리어카에서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당시 판매열풍을 기억하는 한 음반 리어카 판매상은 “모르긴 몰라도 100만장은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품 LP(그때는 LP시절이었다)는 2주일이 지나서야 출시됐다. 이미 길보드에서 수요가 완전 소화됐기 때문인지 정품의 판매량은 시원치 않았다. 길보드가 다 팔아버렸으니 제 아무리 화려한 디자인으로 LP를 내봤자 살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MBC는 앨범이 늦게 나온 걸 원망할 수밖에 없었고 이상은도 기형적인 음반시장에 혀를 차야 했다. 이상은은 뒷날 독집 앨범을 발표하고 당당한 인기가수로 활동하면서 ‘사랑할꺼야’ ‘해피 버스데이’ 등의 히트곡을 냈지만, 어쩌면 이때부터 ‘괴상한’ 국내 음악계에 정이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아티스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상황, 아티스트를 조종하려만 드는 가요계가 도무지 수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기 절정의 시점인 1991년 이상은은 최고 스타의 자리를 박차고 혈혈단신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고 그 후 일본에서 4장의 음반을 발표하는 등 아예 활동터전을 옮겨버렸다.
‘담다디’ 이상은의 고통
그는 한 신문에서 “난 음악을 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가요계와 팬들은) 음악은 뒤로 제쳐놓고 ‘사내 같다’ ‘키가 크다’고 해서 좋아하는 현상에 토할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오면 베갯잇이 노래지도록 울기만 했다”며 당시의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상은의 그런 역경과 고통을 가져온 배경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길보드에 이르지 않을까? 길보드를 기원으로 해서 우리 음악계와의 관계가 꼬이기 시작한 것 아닐까?
조금 과장하면 길보드는 이상은이란 거름을 통해 덩치를 키웠고 그러면서 그의 기를 빼앗아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다. 길보드는 그렇게 이상은의 현재 모습을 간접적으로 결정했다.
이상은과 정반대로 김종환은 백번이라도 길보드에 절을 해야 할 처지다. 많은 음악관계자들은 1990년대 후반 최고의 ‘길보드 히트곡’으로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를 꼽는다. 이 노래는 고교 졸업 후 통기타 가수로 다방과 클럽을 전전하고 새벽 의류시장에서 디스크자키까지 해야 했던 무명의 그를 일약 ‘업타운 스타’로 만들었다.
이 앨범은 16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우리 음악계에 모처럼 ‘아줌마 부대’를 출현시켰다. 그는 다음 앨범 ‘사랑을 위하여’로 다시 11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심지어 ‘그가 나오면서 위축됐던 성인음악에 햇빛이 들었다’는 평까지 나왔다.
그의 인기는 다름아닌 1993년 길보드에서 불이 붙었다.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리어카 음반판매대에서 세차게 울려 퍼진 ‘존재의 이유’는 감상적인 멜로디와 중간의 대사에 힘입어 곧바로 팬들의 귀를 잠식했다. 이 곡이 길보드가 배출한 대박이라는 것을 당시 한 스포츠신문 기사가 밝히고 있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를 10분만 걷노라면 요즘 뜨고 있는 노래가 무엇인지 대번 알 수 있다. 유행에 민감한 길거리 리어카 판매상들이 최근 들어 가장 즐겨 트는 인기가요는 제목도 생소한 ‘존재의 이유’라는 곡이다. 특히 20대 여성들이 줄지어 찾는 이 노래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기다려 달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호소력 짙다.”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도 이 곡을 틀어 거리의 공습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최수종이 주연한 당시 KBS TV의 인기드라마 ‘첫사랑’도 이 곡을 극중에 삽입했다. 신세대 노래에 기죽어 있던 기성세대는 ‘우리 것이 생겼다’는 듯 연일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불러댔다.
길보드는 이상은의 운명과는 다르게 김종환의 기를 살려주는 수준에서 기능을 멈춘 것으로 보인다. 수요를 바닥내기는커녕 오히려 길보드의 중요한 기능인 ‘바람잡이’ 노릇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정품 테이프의 수요로 연결된 것이다.
리어카가 어느 정도 팔면서 붐을 조성해주고 일반 레코드점도 그 덕에 음반을 더 팔고…. 적대적인 두 상업집단의 동반상승 효과다. 이 경우는 착한 길보드?
김종환이 길보드 망을 뚫고 정품으로 선전한 것에 대해 이런 분석이 가능하다. 김종환 이전에 길보드가 낳은 전설적인 성인음악 스타로는 1980년대의 김연자와 주현미가 있다. 연달아 스타가 나오자 이후 비슷한 가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렇게 되자 택시기사를 비롯한 주요 구매층은 길보드가 제공해주는 비슷비슷한 메들리 음악에 질려버렸다. 이 시점부터 성인들이 슬슬 리어카 판매상에 등을 돌렸다.
1990년대 들어 신세대 발라드와 랩 댄스가 등장하면서 길보드는 젊은이들 판이 돼버려 성인 구매자들의 퇴각을 한층 종용했다. 이후 어른들은 음반을 사고 싶어질 때 ‘체면’ 때문이라도 합법적 음반매장으로 가야 했다. 그래서 나중에 김종환과 같은 성인음악이 나왔을 때 길보드에서 바람이 불긴 했지만, 기성세대 구매자들은 정품시장에서 테이프와 CD를 샀다는 것이다.
길보드가 히트의 보고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리어카 판매상들은 근래의 대표적 히트곡으로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를 전후해 김종서의 ‘대답 없는 너’,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 박지윤의 ‘하늘색 꿈’, 김현정의 ‘그녀와의 이별’, 벅(Buck)의 ‘맨발의 청춘’, 클리프 리처드의 ‘Early in the morning’, 디바의 ‘왜 불러’, 컨츄리 꼬꼬의 ‘오 가니’ 그리고 유승준의 ‘나나나’ 등을 꼽는다.
1999년 이후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신바람 이박사’가 일으킨 트로트 신드롬이다. 이박사 역시 길보드가 초기에 바람을 잡으면서 일약 방송광고에도 나올 만큼 인기 스타로 떠올랐다.
솔직히 리어카 음반시장이 자리잡게 된 1980년대 초부터 상기한 곡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 가요의 절대다수가 어느 정도는 길보드 히트곡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떤 히트곡이든 길보드는 그 곡이 인기조짐을 보이는 시점에 연일 틀어대며 바람을 잡았다.
길보드의 빼놓을 수 없는 대박(?) 히트작이 있다. 이번엔 노래가 아니라 그 노래를 만들어낸 덩치 큰 레코드사다. 1993년 국내에 직접 배급을 개시한 대형 음반유통회사 BMG가 바로 그 히트작이다. 그 무렵 BMG는 탐색에 나서던 참이었다.
이것저것 상황을 재고 있던 때 한국에서는 1990년 최고 영화이자 최고 음악의 히트 블록버스터가 터졌다. 케빈 코스트너와 가수 휘트니 휴스턴이 주연한 영화 ‘보디가드’와 그 영화의 주제곡으로 삽입된 곡 ‘I will always love you’였다. 멜로디는 물론이요, 휘트니 휴스턴의 절창에 감동한 팬들의 반응은 거셌다.
영화 속의 노래가 인상적이면 대중은 음반을 통해 다시 듣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천하의 길보드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당시 리어카는 완전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로 도배됐다.
리어카 판매상들은 지금도 “그때만큼 테이프를 빠르게, 또 많이 팔아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족히 100만장은 나갔을 것으로 추산한다.
BMG는 충격을 받았다. 한국이 ‘길보드의 나라’인지 몰랐던 것이다. 이 곡이 마구 불법으로 팔려나가는 데 광분했고, 그러면서도 한국 음반시장이 그렇게 크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실 BMG측은 시장 규모와 관련해 한국 진출을 그리 낙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길보드에서만 100만장이 팔려나가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와, 이거 안되겠구나!’ 불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나중 문제고, 바로 눈앞에서 돈을 날리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거리의 제작자들에게 수입을 뺏기는 게 아까워서라도 하루라도 빨리 직배를 개시해야 했다.
BMG는 직배하자마자 서둘러 영화 ‘보디가드’의 사운드트랙을 출시했다.
자, 이 상황에서 합법으로 출시된 이 앨범은 과연 잘 팔렸을까? 길보드가 다 빼먹어 이것은 잘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또한 음반시장 현대사의 미스터리 하나가 추가된다. 공식적으로 나온 음반도 자그마치 120만장이나 팔렸다.
직배관계자들은 길보드와 일반 음반매장에서 공히 100만장을 판 앨범은 팝과 가요를 통틀어 이 앨범 하나밖에 없다고 단정한다(물론 길보드야 공식 집계가 될 수 없어 순전 느낌에 의한 것이지만). 판매량도 그렇거니와 BMG라는 막강한 세계 음반사의 직배를 재촉한 이 ‘사건’만큼 길보드의 가공할 위력을 입증해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길보드에 대한 방송 제작자 아티스트 레코드사 등 모든 음반관련 집단의 시선은 한결같다. 지금 당장 초토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명백한 불법을 놓고 가타부타 이야기하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길보드는 엄연한 범죄다. 그러나 들끓는 ‘길보드 섬멸론’은 이 리어카 시장의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작자들도 나쁜 줄 알지만 길보드가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전체 음반매출에서 길보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떤 사람은 40%(연간 2500억원 가량)에 달한다고 주장하지만 대략 20% 이상으로 보인다.
“길보드는 제작자의 뼈를 갉아먹는 암적인 존재입니다. 두말할 필요 있습니까. 없애버려야죠. 그런데 길보드의 도움을 받은 곡도 많은 게 사실이에요. 리어카가 뽑은 곡 중 나중에 히트한 게 어디 하나둘입니까. 아예 거기서 나와서 거기서 팔린 노래도 있잖아요. 그 사람들 정확해요. 아주 빠르고 그들이 지금까지 괜히 살아 있는 건 아니지요. 그래서 가벼이 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대충 단속해 가지고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베테랑 제작자인 조성국씨(장스튜디오 이사)의 말이다. 그는 길보드가 히트에 관한 한 나름대로 ‘전문가 집단’이라고 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길보드를 통해 어떤 곡이 뜨고 있는지, 뜰 것인지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길보드가 이처럼 ‘히트의 바로미터’가 되면서 방송 홍보가 여의치 않은 신인 제작자나 가수들은 그것에 의해 인세가 탈취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때로 부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내 노래도 저기에서 흘러나왔으면…’
만약 길보드에 노래가 나온다면 그것은 곧 ‘팔리는 음악’, 아니면 ‘팔릴 것으로 보이는 음악’으로 ‘인정 절차’를 획득한 것이다. 수천만 원의 제작비를 쏟아붓고서라도 히트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작자,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은 신인가수들한테 ‘드러낼 수는 없지만’ 내심 기분 좋은 일이다.
바람잡이 기능, 바로 이것 때문에 가요계에선 더러 방송사 섭외가 용이하지 않은 일부 제작자들이 리어카 판매상에게 접근, 노래를 틀어 줄 것을 요구한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되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쯤 되면 길보드는 길거리 차트를 넘어 ‘길거리 방송사’가 되는 셈이다.
지금 우리 음반시장을 보면 유난히 모음집 음반이 많이 눈에 보인다. 영어로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불리는 이 음반은 팝송에 많지만 근래에는 가요 모음집도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모음집 앨범의 강점은 좋은 곡을 대량 수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요나 팝송 할 것 없이 다다익선의 효과는 절대적인 것이어서 컴필레이션 앨범들은 스타 앨범을 빼고는 웬만한 독집 판매량보다 많다. 한두 직배사가 연합해 만들어낸 ‘나우(Now)’나 ‘맥스(Max)’의 경우는 시리즈로 계속 발매되고 있으며 잘 나가는 것은 50만~60만장을 거뜬히 팔아치운다.
하지만 컴필레이션 팝 앨범이 이처럼 호응을 얻은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팝 모음집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여러 곡을 모은 음반은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음악 팬들이 선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수의 독집이었다. 그래서 레코드사들도 굳이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에서 컴필레이션은 길보드의 전유물이었다. 사실 길보드는 1980년대에는 팝송 모음집을 주요 메뉴로 내놓았다. 하지만 길보드의 컴필레이션 효과가 나타나면서 마침내 그것에 시큰둥하던 레코드사의 방침까지 바뀌고 있다.
지금 보면 결과적으로 레코드사가 길보드를 따라온 셈이다. 많은 음악관계자들은 현재 컴필레이션 앨범 제작 붐은 길보드가 씨를 뿌린 것임을 드러내놓고 인정한다. 길보드는 참 만들어낸 것도 많다!
그런데 컴필레이션 앨범에 대한 비판이 이만저만 아니다. 곡 위주로 편집되어 있기 때문에 아티스트의 참맛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귀를 만족시켜주는 수준이므로 진정한 음악청취 자세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길보드도 똑같은 지적을 받는다. 하긴 조상이 나쁜 피인데 어찌 후손이 욕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길보드 히트곡은 하나도 없다?
길보드가 히트의 보고라는 사실에 코웃음치는 사람들도 있다. 길보드 섬멸을 주장하는 이들은 “지금까지 길보드가 낸 히트곡은 단 한 곡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MBC 라디오국 이우용 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를 길보드가 만들어낸 히트곡이라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길보드가 먼저 띄운 곡이 결코 아니에요. ‘존재의 이유’는 김종환이 일하던 의류상가에서 먼저 바람이 일었어요. 길보드는 그 바람을 반영했을 뿐입니다. 길보드가 골라낸 보석처럼 얘기하는데 전적으로 잘못된 겁니다. 신바람 이박사도 그렇고 김종서 신승훈 유승준 다 마찬가집니다. 다 이전에 어떤 인기 조짐이 있었고 길보드는 그것을 빨리 캐치했을 뿐이지요.”
이부장은 “길보드는 현상(現狀)만을 반영하는 판매차트 또는 판매예상차트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해달라”고 강조한다. 그들이 판매전문가들이지 음악전문가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판매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지 자발적으로 새로운 음악흐름을 창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길보드가 히트곡을 만들어낸다는 견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길보드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기초에 대한 역행’, 즉 반(反)질서의 표본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 음악의 잠재력을 파손시킨다는 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토록 무수한 사람들이 떠들어댔는데도 결론은 ‘깊은 뿌리만 확인하는 역부족’으로 나타나야 하는가에 있다.
길보드도 문제지만 길보드를 버젓이 살아 있게 만드는 우리가 더 문제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우리 문화의 현주소라는 생각이 든다.
‘비판과 무관심’ ‘단속과 방치’라는 적대적 요소들이 번갈아 교대하며 결과적으로는 묘하게 공생하는 가운데 빌보드는 처형을 면하고 활보한다. 그 왜곡과 모순의 사회현실에서 오늘도 음악의 어두운 공룡 길보드는 호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