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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의로운 내부고발자의 조건

  • 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매체경영학 yule21@empas.com

의로운 내부고발자의 조건

21세기의 로빈 훗, 저널리즘계의 간달프, ‘어간지’.

한국 네티즌이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앤 어산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전쟁 기밀문서 7만여 건 등 미국 외교의 비밀을 폭로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를 둘러싼 논쟁은 전세계적으로 뜨겁다 못해 불에 델 지경이다.

국내 언론은 어산지가 일정부분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에 반해 미국 언론에선 무죄라는 목소리가 더 크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어산지를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정부가 어산지의 행위에 대해 정부 기밀문서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스파이 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사실보도를 했다. 그러면서도 “미국 정부의 정보를 보호하도록 만든 법률이 미국 시민이 아닌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어산지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이고 위키리크스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서비스를 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미국 정부가 어산지를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설명한다.

NYT와 WP의 처벌 반대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어산지의 체포에 반대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어산지를 기소하지 말라(Don‘t charge Wikileaks)’는 제목의 사설까지 실었다. 사설은 “어산지를 간첩죄로 처벌하는 것은 나쁜 아이디어다. 어산지는 간첩이 아니다. 어산지는 기밀 준수에 대해 법적으로 구속돼 있지 않은 사람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그를 기소할 권리가 없다”고 했다. 이어 화살을 미국 정부에 돌려 “(정보가 새지 않도록) 집안 내부를 보수하는 작업을 해야만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미국 조야에선 “위키리크스를 이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뉴트 깅리치 공화당 의원과 같은 보수매파의 목소리는 처음과 달리 잦아들고 있다.

어산지의 폭로는 미국의 입장에선 심각한 국익침해인데 왜 미국언론은 그를 두둔하는 논조를 펴고 있을까.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71년 6월13일 뉴욕타임스는 미 국방부의 베트남전 1급 기밀 보고서,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했다. 당시 이를 둘러싼 정부와 언론 간의 갈등은 세계 언론 역사를 바꾼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1964년 베트남전 확전을 위해 미 함정이 북베트남에 공격당한 것처럼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사실이 나타난다. 전국적으로 반전운동이 거세졌고 참전 명분을 상실한 미국은 결국 베트남전에서 패하게 된다. 조앤 바에즈, 밥 딜런 등이 앞장섰던 반전운동도 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국가 기밀과 언론자유가 치열하게 대립하다 결국 언론자유가 승리한 대표적 사례로 인용된다. 뉴욕타임스는 간첩죄로, 뉴욕타임스 측에 보고서를 몰래 넘겨준 전직 해군 장교 대니얼 엘스버그는 간첩·절도죄 등 12개 중범죄로 기소됐다. 그러나 미 연방 대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때 연방대법원의 무죄 판결문은 오래 기억되고 있다. 판결문은 “헌법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정부의 비밀을 파헤쳐 국민에게 알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기관의 비리나 비행을 폭로한 행위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했다.

신화와 불명예의 차이

펜타곤 페이퍼 사건에 적용해보면 어산지의 폭로는 죄가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다만 어산지의 폭로내용이 정부기관의 비리나 비행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따를 것이다.

어산지에게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된 브래들리 매닝 일병은 펜타곤 페이퍼의 제보자 엘스버그와 성격이 다르다. 엘스버그는 공익을 위해 폭로한 양심범인 반면 매닝은 그 공적인 동기가 뚜렷치 않다. 즉 전자는 전쟁조작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폭로내용을 그 목표에 국한했다. 그러나 후자는 내용을 가리지 않고 다 누출시켰다. 그래서 엘스버그는 내부고발자의 신화로 존경받고 매닝은 무책임한 군인이라는 불명예만 얻고 있다.

신동아 2011년 2월 호

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매체경영학 yule2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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